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손으로 내 원수를 에돔에게 갚으리니 그들이 내 진노와 분노를 따라 에돔에 행한즉 내가 원수를 갚음인 줄을 에돔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블레셋 사람이 옛날부터 미워하여 멸시하는 마음으로 원수를 갚아 진멸하고자 하였도다
겔 25:14-15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 새들이 그 속에 깃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시 104:16-17
우리들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데 따른 보호하심과 인자하심을 알게 하신다. 하여 우리들은,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시 104:33-34).
하는 찬송을 하게 하신다. 오늘은 암몬을 필두로 네 나라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다루고 있다. 저들은 주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핍박하였던 족속들이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으면서 에스겔은 선민을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심판과 그 후의 영광스런 회복을 예언한다. 유다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은 모두 일곱 나라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동북에 위치한 암몬을 필두로 하여 시계 방향으로 여섯 나라들을 언급하고 맨 나중에 이스라엘 남방에 위치한 애굽을 다룬다. 이들 나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바벨론을 도구로 하여 저들을 심판하신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오늘은 유다와 근접한 네 적성국가로 요단 동편에 위치하였던 세 나라 곧 암몬, 모압, 에돔과 요단 서편 지중해연안에 위치한 블레셋에 대한 심판을 알리고 있다. 유다에 대한 심판을 다루는 24장과 확연히 구별되지만 이 계시의 말씀이 주어진 시점은 24장과 본문이 같다. 먼저 1-7절은 암몬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다. 이러한 암몬에 대한 심판예언은 21장 28-32절에서 연결되는데 이처럼 암몬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 것은 선민의 멸망을 기뻐하며 조롱하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모압에 대한 심관 예언으로(8-11),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그들이 유다 족속도 모든 이방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성 및 탁월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같이 불경한 언사로 내뱉은 것들이 이스라엘의 멸망과 관련되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이는 저들의 조롱이나 저주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저들이 멸망당하는 것은 주의 백성을 함부로 일컫고 대적하여 그리 된 것인데… 사실 이런 광경을 어려서부터 자주 보았다.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 우리는 너무 가난했고 늘 어려움 가운데 노출되어 부친의 목회는 물론 우리 자녀들의 삶도 녹록하지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누구는 같이 나누어 교회와 우리 가정을 늘 섬기듯 돌보며 위하는 이들이 있었고 더러는 웃음거리로 삼아 별별 소릴 다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삿대질을 하고 막말을 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던 이도 있었는데 나중에 듣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기구한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느닷없이 죽었고, 병들었고, 심지어는 다 망해서 성인용 오락실을 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와 주의 종에 대해 함부로 굴다 예상치 못한 일에 봉착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다음은 에돔에 대하여(12-14), 그들이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할 때 덩달아 유다를 쳐서 원수를 갚았기 때문이다. 에돔은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운 형제국이면서 그 조상 에서와 야곱의 일로 인하여 줄곧 이스라엘을 적대시하였고, 다윗 때부터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는 일이 많아서 선민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당할 때 도망하였던 도피자들을 죽이고 사로잡아 바벨론에 돌려주는 등 비열한 짓을 일삼았다. 끝으로 블레셋에 대한 심판으로(15-17), 가나안 땅에 정착할 당시부터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경쟁자로 여기며 미워하였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본문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주변의 네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선민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선민을 핍박하고 대적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이 드러내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신다. 징계와 징벌을 가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인데 이를 비웃고 조롱하거나 덩달아서 대적하고 멸시하는 데 있어서는 용서가 없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비록 보잘것없는 존재로 비쳐지고 때론 그 형국이 말도 안 되게 비참할 때도 있으나 이를 세상이 비웃거나 멸시하는 것을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신다.
늘 어려서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살았던 나로서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러한 결국을 보았다. 설마, 하고 여겨지는 일에서도 두려움은 앞선다. 한 번은 사택이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이 아주 고약하게 굴었다. 특히 그 남자는 술만 먹으면 트집을 잡아 욕을 해대고 막말을 했고 심지어는 교회가 어떻고 하나님이 어떻고 하며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일삼았다. 도저히 견디지 못해 이사를 하고 얼마쯤 지났을까? 남자는 풍을 맞아 반신불구가 되었고 그의 처는 계단에서 굴러 죽었다. 이 일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린나이에도 그리 된 것이 무서웠다. 이후 나는 아무리 어떻다 해도 주가 세우신 목회자나 교회를 두고 함부로 말하는 일을 삼간다. 하나님은 엄히 약속하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이는 오늘 날 우리 성도들을 향하신 확실한 보장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경이롭고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비록 그 일이 세상적으로 한심하고 더러는 무가치한 일 같을 때도 이를 함부로 논하여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늘 날 교회가 사회로부터 여러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이를 함부로 덩달아서 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당신께서는 결코 그 어떤 대상으로부터도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 않으신다.
에스겔은 앞선 24장까지에서 하나님의 선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였다. 이어서 25-3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사명은 선민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과 더해서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했다. 가령 요나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전하는 일에 거부감이 들었다. 저들은 이방족속으로 더욱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당대의 강국이기도 했다. 다소 선민우월주의도 있었을 것이고 더해서 이방의 땅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회개하게 하는 일이란 마뜩찮은 일이었다. 그러다 다시스로 가려던 것을 하나님이 붙드셨고 강제하여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렘 1:10).”
실제 하나님께서는 선민에 대해서만 아니라 열방에 대하여도 예레미야를 통해 당신의 뜻과 계획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 그대로 열국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새로 심으셨다. 성경은 이처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이 성취되는 것으로 선민 이스라엘에 대해서만 주권자가 아니시고 모든 열방과 역사에 대해서도 주권자가 되심을 보여준다. 당시 근동 지역의 민족이나 나라들은 각 나라나 민족마다 섬기는 우상이 있었고 타락하여 범죄한 국가들이었다. 이러한 형국에 에스겔의 사명은 단지 그뿐 아니라, 요나와 나홈 역시도 선민과 무관한 니느웨나 에돔과 같은 이방 나라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다.
선지자로 이사야, 예레미야 등은 에스겔과 같이 선민들을 향해서만 아니라 주변 열국에 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각각 저들의 신들을 섬기고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그래서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각국의 모든 역사에도 주권자가 되심을 분명히 하셨다. 이들 나라들은 단지 그들 나라 뿐 아니라 온 세상을 대표하며 상정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 자신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과 역사의 주권자가 되심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권자로 모든 나라와 민족이 그의 통치 아래 있음을 알게 하신다. 그리할 때 우리는 진정 이 세상 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며 충성된 삶이란 궁극적으로 믿는 자들에게 뿐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 축복의 삶을 살아야 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시 103:17-19).
그러므로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단 7:27).”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구는 복음 전하는 자로 그 선봉에 서지만 성도이면 누구라도 교회를 섬기고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한다.’ 이는 주의 이름으로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암몬 족속을 향하여 예언하는 오늘 말씀을 위시하면 더욱 그렇다. 암몬은 그 족속의 신 그모스를 섬겼다. 에스겔은 암몬 족속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대변자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얼굴을 돌리시니, 곧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적하신다’는 사실을 표하여야 했다.
곧,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시 34:16).
그렇듯 에스겔은 누구의 부름을 감당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기필코 행해야만 하는 것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사 50:7).” 하는 말씀이 오늘 날 우리의 다짐과 확신이 된다. 설교와 기도를 가지고 있으나, 또한 동시에 그것을 향한 얼굴을 돌리는 것도 사명이다. “인자야 네 얼굴을 암몬 족속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예언하라(겔 25:2).”
좀 더 들어가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더러는 세상으로부터 얼굴을 돌려야 한다. 오늘 날 이 사회가 추구하는 기본과 상식, 실용과 합리하는 터울로 사람 중심의 사회가 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버젓이 교회 안에서도 이와 같은 해석과 논리로 신앙을 접근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토론과 타협의 말씀이 아니다. 우리 믿음의 삶은 실용과 현실주의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적당히 뒤섞여 사는 상식의 종교가 아니다. 말씀과 신앙을 상식으로 접근하면 하나님의 뜻은 와전되고 그 신앙조차 사람을 이롭게 하는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전락한다. 철저하게 성경은 강조하시는 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분명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 우리 삶의 중심이고 목적이다.
하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곧 사람 중심의 삶이 아니다. 한낱 우리가 사는 동안에 위로와 도움을 얻고자 하여 채택한 일개 마음의 위안 정도의 종교가 아니다. 그러려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게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의 관점은 영생이다. 이 땅의 임시적이고 거쳐 가는 삶이 아니다. 셈할 가치도 없는, 입김 같고 안개나 이슬 같은 정도의 생을 두고 영생을 견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고 몽매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릴 감찰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단지 믿음을 이 땅에 사는 데 따른 수단으로 삼는다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13).” 이와 같은 말씀은 모순이 된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우리가 백날 옳다 그르다 설왕설래하며 선을 추구한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3).”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 안에 산다. 하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9).” 그러므로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16).”
이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시 104:1).
시편의 세계를 살아야 한다. 시편으로 호흡하고 기도하며 추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
새들이 그 속에 깃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16-17).
오늘 우리의 삶에 대하여,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4-25).
이로써 오늘도,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30-31).
그런즉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33-34).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0) | 2026.02.22 |
|---|---|
|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0) | 2026.02.21 |
|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0) | 2026.02.19 |
|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0) | 2026.02.18 |
|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룰지라 (0) | 2026.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