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하현. 2026. 2. 24. 04:5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온 애굽으로 얼굴을 향하고 예언하라 인자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군대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기리니 그가 그 무리를 잡아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상이 되리라

겔 29:2, 18-19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시 108:13

 

 

유난히 하나님 대신 믿고 의지하였던 애굽에 대한 예언이다. 애굽에 대한 예언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주어졌다. 이들 에언은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재배열되었다. 본문은 이러한 애굽에 대한 예언으로 ‘한 악어’와 한 ‘갈대 지팡이’의 비유를 통해 애굽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다. 이르시길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6).” 하여 애굽 때문에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7).”

 

결과적으로 애굽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었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상하게 하였음을 지적한다. 하여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에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나라 가운데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나라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14-15).” 더는 누구의 의지도 도움도 될 수 없는 소수국가로 분할하고 미약한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16).”

 

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모든 심판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백성, 그의 자녀들에게 미친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바벨론에 대하여는 “인자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군대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크게 수고하여 모든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모든 어깨가 벗어졌으나 그와 군대가 그 수고한 대가를 두로에서 얻지 못하였느니라(18).” 하며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신 바벨론에 대하여,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기리니 그가 그 무리를 잡아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상이 되리라(19).”

 

결국 애굽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그에 따른 바벨론의 수고에 대하여,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대가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0).” 이와 같이 평가하고 있다. 곧 바벨론에게 있어 애굽 정복의 가장 큰 유익은 역사적으로 반바벨론 동맹을 분쇄한 것이다. 여기서 ‘그가 그 무리를 옮겨 가며’ 할 때 무리는 ‘시끄러운 소음’을 뜻하는 것으로 정신없이 노략과 약탈을 감행하는 느부갓네살의 군대를 일컫는다. 이를 ‘옮겨 가며’ 행하는데 바벨론 군대의 이동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수고’를 주가 알아주신다. 여기서 ‘수고’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한 ‘섬김’의 의미를 내포한다.

 

이 수고는 바벨론이 두로 성을 공략한 것이다. 그 결과로 애굽 땅을 보수로 받게 된다. 뒤에 이어지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하시는 표현은 ‘애굽을 그에게 주었다’는 다음의 결론과 이어진다. 곧 바벨론의 수고는 애굽을 정복한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두로의 공략을 가리키는 것이란 점이다. 사실상 바벨론이 두로를 공격한 이유가 하나님을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 다만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심으로 두로를 심판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설마 바벨론이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한 것이겠나? 그것이 어떤 의도로 행해졌든지 중심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6-7).”

 

모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악한 날에 악인들도 그 쓰임을 다한다는 데서 ‘모든 게 합력함’을 본다. 가령 일련의 우리 사회를 보면서, 또는 요동치는 국제정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들의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역사가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정화시키고 더 나아가 새로운 질서를 편성하는 데 기틀이 된다는 것이다. 뜬금없는 계엄선포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지만 그 덕분에 정권은 일찍 몰락하였고, 숨겨져 있던 부정부패가 드러나게 되었다. 사법부의 어떤 판결들이 사회적 공분을 사면서 결과적으로는 감찰개혁과 같이 자신들의 상실한 정화능력을 외부의 힘에 의해 정비하게 한다. 그렇듯 두로와 시돈의 멸망도, 애굽의 멸망도, 잠깐은 번영과 영화로 성공인 듯하나 실패가 된다.

 

하여,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빌 1:15-17).” 그런 거 보면 관점의 차이가 어떻든지 결과가 말해준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 곧 바벨론이 선한 의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이러한 쓰임을 다한 게 아니라, 저들 또한 사리사욕으로 전쟁과 정복을 이어간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게 하심이었다.

 

바로 ‘그 날에’ 내용상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도구로 애굽을 정복하게 되는 날에 영적으로 궁극적인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되었고,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30:3).” 이는 곧 ‘메시야의 때’, 구주의 도래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솟아나게 하고’ 이는 ‘권세와 힘’을 상징하는 동시에 포괄적으로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나의 기도에서도,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또는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 중에도,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애 2:3).” 이와 같이 성경이 가리키는 모든 방향은 메시야이다.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시 75:5, 132:17).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눅 1:69-70).”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뿔’은 곧 여기서의 ‘뿔’과 같이 ‘메시야적 구원’을 의미한다. 이 이스라엘의 뿔의 생성을 애굽의 멸망, 그 날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은 애굽이 하나님 나라와 대치되는 모든 이방 세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또 너로 그들 중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이는 “곧 그 날에 도피한 자가 네게 나와서 네 귀에 그 일을 들려 주지 아니하겠느냐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24:26-27).”

 

곧 오늘의 이 모든 일과 그에 따른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언급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것을 우리가 보리라.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더욱이 믿는 자들은 비로소 위로를 받을 것이고 이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이들은 두려움으로 떨며 후회와 탄식으로 볼 것이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그 때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겔 33:21-22).” 모두가 입을 모아 주의 하신 일을 말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욜 2:28-30).” 이와 같은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게 하신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직간접적으로 그 의미를 내포하고 전달하고 있다. 나는 보건대 정치나 사회, 교회의 여러 부패와 패악의 순간에서 그 너머의 결과를 본다. 계엄의 날 밤에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무슨 진영논리나 정치적인 관점으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차치하고 무속과 사이비 이단의 득세가 세상에 드러날 것을, 오늘의 어떤 부조리나 한 강국의 패역한 정권의 횡포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느낀다.

 

메시야적 구원이 임하는 시기의 정황을 설파한 모든 선지자들의 약속을 확증하셨다. ‘애굽과 이스라엘’은 그 대표적인 상징관계이다. 이스라엘 족속은 언제나 애굽을 의지하고 그리워하듯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움을 바랐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저들에게 달려갔다. 곧 오늘 우리가 먼저 의지하는 그 모든 대상이 애굽이다. “그 날에 나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돋아나게 하고 나는 또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21).” 하심으로 우리가 의지하고 그토록 따라서 살려하였던 것들의 허망함을 드러나게 하실 텐데,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대가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0).” 악이 악을 정화시키는 셈이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3-5).

 

결국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 31:3).”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따라 살고 있는지… 나름은 믿고 의지한다면서 정작 그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으로 간다. 나름의 이상과 낭만을 꿈꾸며 인생의 도약을 최고의 의미로 하여 산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다는 바울의 절규가 막연한 게 아니다. 우리는 태생이 세상을 향하게 돼 있다. ‘남들처럼,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으로 축복의 척도를 삼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확실한 것은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10:13-15).”

 

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이를 우리가 알면 알수록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 한 구절의 말씀에 오늘 본문의 말씀은 물론 성경의 모든 주제는 함축된다. 그러므로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사 26:10).” 이는 어쩔 수 없다. 감수하고 사는 수밖에, 우리가 어찌하여 저들을 구원할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오늘의 어떤 현상들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마 10:14).”

 

결과적으로 애굽은 애굽으로 간다. 두로와 시돈은 두로와 시돈다운 결과로 심판을 당한다. 그렇듯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눅 10:11).” 뭐라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벗어나고 돌아서야 한다. 설령 그것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것들이라 해도,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곧 오늘의 이 모든 말씀은 단지 애굽의 결과나 그 역사를 알게 하려 하심이 아니다. 앞서 두로와 시돈에 대한 심판도 그러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모든 것은 ‘갈대 지팡이’를 의지함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겔 29:7).”

 

이를 의지한 것도 문제지만 의지하게 하는 것들도 심판의 대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 31:3).”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시 108:1).

 

오직 주를 의지함으로,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4-6).

 

그리할 때에,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12-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