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기도할 뿐이라

하현. 2026. 2. 25. 04:38

 
애굽에 칼이 임할 것이라 애굽에서 죽임 당한 자들이 엎드러질 때에 구스에 심한 근심이 있을 것이며 애굽의 무리가 잡혀 가며 그 터가 헐릴 것이요 구스와 붓과 룻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및 동맹한 땅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칼에 엎드러지리라
겔 30:4-5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시 109:4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일은 마치 애굽에서의 삶과 같다. 자의적으로든지 타의적으로든지 우리는 노예가 되어 종노릇하며 산다. 다들 돈벌이에 급급하며 사느라 사는 일에 얽매어서 전전긍긍한다. 그러면서 이 땅의 우상을 숭배한다. 저마다의 복을 바라며 기웃거리듯 타문화와 타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각자의 기호에 따라 의지한다. 애굽은 곧 세상을 지칭하는데, 우리 믿는 자들의 회심은 출애굽과 같다. 우리는 사랑으로 대하나 저들은 적대적이라 이를 기도할 뿐이라고 시편은 진술한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시 109:4, 21-22).
 

곧 우리가 애굽과 같은 이 땅을 살면서 주 앞에 의뢰할 뿐이어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모든 게 주의 뜻을 이루심이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믹돌에서부터 수에네까지 무리가 그 가운데에서 칼에 엎드러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0:6).” 궁극적으로의 결말을 우리는 안다.
 

본문은 유다 주변국들의 심판을 예언하는데, 특히 유다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믿고 의지하였던 애굽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있다. 이는 주전 587년 10월 12일에 주어진 계시이다. ‘한 악어와 한 갈대 지팡이의 비유’로 예언하였고(29:1-16), 이어 두로의 멸망이 집행되고 바벨론은 애굽을 정복하였다. 오늘 이 본문이 주어진 시점은 “스물일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17).”
 

하여 본문의 예언이 두로가 함락된 주전 573년 이후 약 2년 정도가 흐른 때이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2차 애굽 원정으로 애굽의 멸망은 주전 568년으로 약 3년 전이다. 이어서 “인자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군대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크게 수고하여 모든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모든 어깨가 벗어졌으나 그와 군대가 그 수고한 대가를 두로에서 얻지 못하였느니라(겔 29:18).” 그러나 결국은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기리니 그가 그 무리를 잡아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상이 되리라(19).” 그렇게 해서 애굽을 바벨론의 수고의 보상으로 주어졌다.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대가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0).”
 

이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과로 이 모든 일은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해 교만한 두로를 심판하셨고, 이 일은 무려 13년이 소요되었다. 그 동안 바벨론 군대는 엄청난 수고와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군대는 두로를 함락할 시에 얻게 될 전리품을 생각하며 그 모든 수고를 감수하였다. 그러나 바벨론이 두로를 함락하였을 때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두로 사람들이 이미 그들의 소유를 해외로 빼돌렸을 뿐 아니라, 13년의 긴 전쟁 수행으로 많은 군비를 소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고에 따른 대가로 애굽을 더하여 주신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애굽 침공을 허락하신 목적은 교만한 애굽 왕과 애굽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로에 대한 심판을 수행한 바벨론의 수고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애굽은 선민의 원수가 된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로 애굽 곧 세상이 있다면 이에 메시야의 권세와 힘이 이를 또한 꺾을 것이다. 애굽으로 상징되는 선민의 모든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날, 곧 메시야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번성케 하실 것임을 예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은 바벨론을 통한 애굽과 동맹국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첫 번째 예언은 애굽에 대한 심판의 임박성 나타낸다(1-5). 두 번째 예언은 애굽의 멸망과 황폐함을 말한다(6-9). 세 번째 예언은 바벨론에 의한 살육을 나타낸다(10-12). 네 번째 예언은 여호와께서 이 심판을 주도하셨음을 나타낸다(13-19). 이처럼 하나님께서 온 천하를 주권적으로 통치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세상의 역사는 성경의 관점으로도 알 수 있듯이 바벨론의 애굽 침공이 애굽의 교만을 심판하고, 두로에 대한 심판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에 따른 보상으로 바벨론에게 주어졌다는 데 주목하게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결과론적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란 사실을 분명히 한다. 즉 바벨론의 애굽 침공 후에 이 성경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말씀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곧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데 있어 그때마다 그 일이 진행되고 처리되는 과정이 아니라, 앞서 ‘창세전에’ 절대 주권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질 것을 알게 한다.
 

곧 오늘 우리의 구원의 사역도 그에 따른 찬송도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수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인자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군대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크게 수고하여 모든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모든 어깨가 벗어졌으나 그와 군대가 그 수고한 대가를 두로에서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기리니 그가 그 무리를 잡아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상이 되리라(29:18-19).”
 

에스겔은 이처럼 애굽과 관련하여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계시를 받았는데 본문은 그중 맨 나중에 받은 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6절에 이어 두 번째로 이 계시를 기록한 것은 애굽에 대한 심판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란 사실과 애굽의 멸망이 주전 573년에 있었던 바벨론의 두로 함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로 산다. 우리의 믿음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하나님은 예비하셨다. 물론 우리는 먼저 이를 셈하여서 주의 일에 순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천국에서의 각각의 영광이 다르다는 것 또한 잘 알고 나아간다. 즉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1).”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하여 우리는 경기에 임하는 선수와 같이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행 13:25).” 세례요한은 그 너머 영광된 면류관이 있음을 알았다. 바울도 역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상을 바라면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동시에 그에 따른 상급이 주어질 것을 우리는 또한 잘 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아브라함도 이 상급을 알고 있었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대하 15:7).” 우리가 믿음으로 충성하는 데 따른 영광을 사모하는 것은 마땅하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사 40:10).” 하고 성경은 곳곳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약속하였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사 62:11).”
 

이는 우리 신앙의 당연한 결실이다. 바벨론이 두로와의 13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며 수고하였으나 얻지 못한 것을 두고 애굽을 저들의 보상으로 주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새롭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수고한 것에 대해 잊지 않고 ‘놀라운 은혜’로 갚으신다. 이것으로 오늘도 우리의 인내는 힘을 얻는다. 가령 아들이 몇 년째 회계사, 세무사를 위해 공부한다. 여러 번 떨어지고 다른 자격증을 이수하면서도 목표를 향해 갈 때, 나는 응원할 뿐이다. 이제 나이가 있어 어디라도 들어가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동시에 어떤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달려가는 것도 지지한다. 그렇게 해서 결과가 어떨지는 우리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천성을 향해 가는 우리 성도의 달음질도 그와 같은 인내를 바탕으로 한다.
 

비록 현세에서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해도,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그렇듯 믿음의 경주는 인생의 완주와 다를 게 없다. 한 번을 사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서 얼마나 이 땅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여 사는가, 하는 게 애굽에서의 삶으로는 관건이겠으나 우리는 그와 동시에 저 너머의 세상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하여 바울의 선언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이에 시편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물론 두로와 시돈이 멸망하였고 연이어 애굽도 심판을 받은 것에 대해 우리는 주목해야 하는데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의외의 묵상은 바벨론이 그 도구로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고, 주가 사용하시는 데 따른 수고의 보상 또한 분명하게 언급하시는 것과 같이 분명하였다. 그리하여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6).” 이에 따른 바울의 확고한 의지는 오늘 우리의 좌표가 되어준다.
 

곧 이 모든 진리를 위하여,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이를 알면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추구하고 갈망하였던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이는 결국 ‘믿음으로 난 의다.’ 물론 사는 동안 살면서 남들처럼 잘 살기를 바라지만 행여,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2-3).
 

더러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는 한다. 부럽지, 당연히 나도 저들처럼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0-12).” 하여 오늘도 다만 주를 바라며 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산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 4:8-10).”
 

우리가 살면서 사는 동안에 받을 위로와 평안과 금생의 복도 있으나 이는 장차 누리게 될 천국에서의 삶으로도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여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3-38).” 이와 같은 말씀은 읽고 묵상하는 것으로도 힘을 얻고 위로가 된다.

 
그러므로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시 109:1-3).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사는 일이란 그와 같아서,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4).
 

우리의 무기는 기도뿐이다.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21-22).
 

그러하나,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6-27).
 

하여 오늘도 기도할 뿐,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30-3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