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겔 31:18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 110:1
유다 주변국들 가운데 마지막 일곱 번째로 애굽을 거듭 예언하고 있다. 이는 유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신하게 하여 의지하고 따르게 하였던 데 따른 애굽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여호와의 개입에 의한 바벨론 왕이 애굽을 심판하는 것을 나타냈다(30:20-26). 이어 영화롭던 앗수르의 멸망과 대비되어 애굽의 멸망이 거듭 기록된다. 본문에 의하면 이 예언이 주어진 때은 주전 586년 3월 1일로 이때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약 40여일 전이다.
이들을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백향목으로 비유하여 애굽의 영화에 상응하던 앗수르의 영화를 회상한다(2-9). 여기서 앗수르의 영화를 회상하는 것은 그렇게 영화로웠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락한 것처럼 애굽 또한 지금은 영화를 누리지만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의 뒤를 따라 몰락할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15-18). 하나님은 앗수르를 상징하여 ‘레바논의 백향목이 하늘 구름에 닿을 만큼 키가 컸다’고 말씀하심으로 과거의 앗수르의 위상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음을 말씀하신다.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3).”
백향목은 물이 풍성한 강변에 심겨져서 그 가지가 굵고 번성하였다고 말씀하심으로 앗수르가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음을 설명한다(4-5). 그리고 공중의 새가 백향목 가지에 깃들이고 또한 땅의 짐승들이 그 가지 밑에 새끼를 낳았다고 말씀하심으로 앗수르의 번성으로 주변 열국들이 혜택을 입었음을 시사한다.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크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뻗어 나갔고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5-6).” 앗수르를 상징하는 레바논의 백향목은 하나님의 동산 에덴의 나무들이 시기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하신다(7-9).
이는 앗수르가 영화의 극치를 누렸음을 나타낸다. 가령 저들이 악으로 가득하여 멸망하여 마땅할 때, 요나를 보내 이를 선포하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5, 10).” 하는 원리는 놀랍다. 비록 요나는 이를 스스로 판단하여 저들 같은 악인에게도 회개와 더불어 용서가 있는 것에 성질을 부리며 화를 내기도 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4:1-2).”
요나의 말 속에 답이 있듯이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우리의 선입견이나 편협한 판단으로 이를 용인하고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한다. 누가 악하여 더는 용서하기 힘든데, 저가 돌이켜 회개하고 주 앞에 나올 때 저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앞에 우리는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저런 위인을…’ 하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마음으로 요동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자신 또한 그 자와 같은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곧 우리도 다들 바 없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3).”
하여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로 회개하였던 것을 볼 때 저들의 영화가 어떠한 의미였을지 짐작이 간다. 요나의 표현처럼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그처럼 복에 복을 더하셨던 것인데 저들은 결국 죄악을 벗어나지 못했고 멸망하였다. 그리하여 레바논의 백향목 같은 저들을 벌채하심은 교만 때문이었다.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겔 31:18).” 즉 교만에 빠진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멸망을 지적하고 있다.
저들의 교만은 “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주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는 키가 크다고 교만하지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가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을 마시는 모든 나무가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음에 넘겨 주어 사람들 가운데에서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라(13-14).”
끝으로 백향목과 동반하여 멸망하는 비유로 앗수르와 같은 영광을 누리던 애굽에 대한 심판과 멸망의 경고를 보도한다. 즉 교만한 앗수르를 찍어 ‘교만의 경계’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리는 영광으로 인하여 교만하여진 애굽을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된 앗수르를 멸한 것처럼 철저하게 멸하실 것이라 말씀하신다. 결국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다. 하나님은 교만을 꺾으시고 낮추신다. 교만은 자신을 높여 하나님 위에 이르게 한다. 그저 유한한 존재인 것을 상실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마치 천년만년 갈 것 같은 오늘의 권세에 눈이 먼 것이다.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의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성품이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6:16-18).” 이는 우리가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경험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다. 하여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18:2).” 하는 말씀으로 우리의 삶에서 그 경로를 바로 잡으시고는 한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도 아무리 곁에서 누가 뭐라 해도 듣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늘 날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었고 저들은 주의 사랑으로 나를 권하고 위하여 충고하였으나 나는 듣지 않았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그 아집으로 살아간다. 이를 꺾기까지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는데, 주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은 동시에 작동한다. 내가 악의 길로 가는 때도 하나님은 동시에 나의 안위를 돌보셨다. 돌아보면 이 두 힘은 동시에 작동하던 것으로 나를 회개하게 하려 여러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과 동시에 그런 가운데서도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붙드시는 힘이 있었다. 오늘도 새벽에 눈을 뜨면서 잠시 침대에 앉아 기도하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데 가족방에 카톡이 올라 있었다. 아들이 몇 번씩 떨어지면서도 준비하던 전산세무1급에 합격한 소식을 알렸다.
새벽에 운전하고 오면서 어제 저녁 둘이서 라면을 먹으며 했던 말을 생각했다. 우리가 높이면 하나님이 낮추신다. 우리가 낮추면 하나님이 높이신다. 나의 부족함으로 혼자 필리핀으로 보내졌을 때 6개월 이상은 잠만 잤다고 한다. 영어도 어렵고 낯선 땅에서의 적용이 힘들어서 학교생활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중에 하나님이 저를 붙드셨고, 필리핀 우수대학으로 꼽히는 라쌀대학교로 진학을 하고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역일도 하고 주한대사관에서 사건사고전담팀으로 2년 가까이 일을 했다. 중간에 휴학을 하고 해병대를 입대한 것도 어찌 보면 독한 마음으로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스스로 학자금을 하고 생활비를 하고 귀국하였을 때, 나머지 모은 3천을 내놓으며 세무회계사가 되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요나의 물고기 뱃속 같은 시절로 신대원에 끌려갔고, 목사가 되기까지 아들에게 변변하게 생활비도 대줄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4-5년이 지나면서 녀석은 풀 먹인 화이셔츠 같이 빳빳하더니 서서히 숨이 죽은 김장배추 같이 되어, 어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나이도 이제 서른이 훌쩍 넘었고, 하여 우선 세무서에 취직을 하여 다시 더 공부하며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경력과 자격을 갖춰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투나 표현이 귀국하였을 때, 마치 당장이라도 목표를 이룰 것처럼 당당하던 포부와 달리 자신을 많이 내려놓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뭘 하든…, 하면서 나는 잘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데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내심 나는 늘 주의 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누가 뭐라든지, 혹은 어떤 삶이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 사는 세상으로 가장 주와 가까이 살 수 있는 복의 자리는 목회이다. 물론 누구도 동조하거나 선뜻 따르지 않는다. 내가 그랬듯이 하나님이 그리 행하시면 그리 될 것이라….
합격발표를 자정 후 1분만에 올린 것을 보면 녀석도 마음을 졸이기는 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 뭐라 언급하지는 않았다. 잠결에 아내가 귀에 대고 말한 것 같기도 한데.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교만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려는 어떤 의지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고요히 주를 바랄 수 있는 마음으로는 겸손뿐이다. 이에 호세아 선지자는 절규하였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호 7:10).”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반드시 심판에 이르게 된다.
언제든 우리의 눈과 마음도 높여질 수 있다.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그러기까지 하나님은 더러 불고기 뱃속에 우리를 던져두신다. 교만은 엄연히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것으로 모든 죄의 뿌리다. 하여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그 끝은 세상과 같이 정죄 받는 것이라, 미연에 이를 막으시려 징계하신다.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신 8:13-14)”
그러므로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큰 교훈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또, 다시 또 교만하여질 수 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나는 아들이 어디라도 들어가서 직장생활을 하고 돈벌이로 끌려 다니는 것에 우려하였다. 아내가 종종 뭐라 좀 말하라고 핀잔을 줄 때도 나는 말하지 않았다. 딸애의 성향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편이다. 직장이 어디든지, 연봉이 어떻든지, 아이의 우선순위는 신앙 안에서였다. 그러다보니 대학교 졸업 후에 어디 선교단체부터 오늘까지의 직장 모두 믿는 사람들의 기업이었다.
상대적으로 아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뚜렷하여 뭐라 하면 오히려 엇나가는 식이라, 스스로 해병대를 지원했을 때도 그렇게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듯이 공부를 더하고, 어떤 목표를 세우고 하는 것에도 뭐라 할 말이 있으면 나는 ‘기도뿐이라.’ 아버지, 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나님께 한다. 또는 설교 중에 말씀으로 전하여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린다. 아내와도 그렇고… 목사가 되고 난 뒤 내가 평안한 것은 나는 기도할 뿐이다. 기회가 되면 말씀으로 전할 뿐이다. 그리고 주가 책임지실 것을, 나 자신 역시 내가 내 것이 아님을, 나의 나 된 것이 주의 것이라는 데서 모든 것을 주께 맡긴다. 늘 그렇게 하려고 한다. 어디가 아픈 일도, 누구의 어려움으로 내가 힘들 때도, 가난한 교회 재정도, 앞날의 어떤 두려움도…. 내가 주의 것이면 나는 책임이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것이 신앙의 근간이다. 나의 주장도 어떤 신념이나 이상도 모두 헛것으로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아서, 내가 아는 나는 변덕스럽고, 한없이 가볍고, 편협하고, 옹졸하여서… 내가 무얼 할 수 있다는 것은 다 헛것이다. 그리하여 교만은 제거되고 겸손으로 나를 낮출 때,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1:22-23).”
나의 인생의 반은 교만으로 달려갔다면 남은 반은 죽어라 하고 겸손으로 달려야 한다. 그러다 늘 걸려 넘어지기 일쑤지만, 하나님이 나의 그늘 나의 쉼이 되신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17:7-8, 91:4-6).
그러므로 오늘도 교만을 한 꺼풀 또 벗어내며,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 110:1).
주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3).
하여서,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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