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하현. 2026. 3. 3. 05:08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5-2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시 115:11-1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주권적인 구원’이 선포되고 있다. 더욱이 선민의 회복과 그에 앞서 원수의 대표로 에돔을 향한 심판이 선언되었다(35:1-15). 오늘은 이에 따른 이스라엘의 땅을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거주함으로 선민과 그 땅이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현실을 진술하고 있다.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원수들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아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36:1-2).”

 

죄악으로 인하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내 맹렬한 질투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하였노니 이는 그들이 심히 즐거워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내 땅을 빼앗아 노략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음이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예언하되 그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에 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질투와 내 분노로 말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이방의 수치를 당하였음이라(5-6).” 곧 선민의 땅을 노략하고 차지한 주변 원수들을 필히 폐망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스라엘 산하의 수욕이 그치게 될 것이라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맹세하였은즉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이 자신들의 수치를 반드시 당하리라(7).” 이어서 회복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8).”

 

이런 가운데 8-15절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지칭하기는 ‘내가’ 하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쓰인다. 곧 이 선민의 땅을 회복시키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그의 주권과 무조건적인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곧 이스라엘 땅의 회복은 순전히 그 일을 약속하시고 친히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이루어질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범죄 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나가 절망 중에 살아가며 사망의 구덩이로 향하는 사람들의 회복이 무엇으로 가능한지를 일깨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원과 회복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오늘을 살면서 여러 급박한 상황으로 세계 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이들이 통곡하고 아우성친다. 도시 곳곳하마다 돈에 찌든 영혼들은 소비문화에 휩쓸려서 누리고 또 즐기는 데 여념이 없다. 한쪽은 울음이 터져 애통해하고 한쪽은 흥청망청 쾌락에 젖어 비명소리를 낸다. 이런 가운데 요동하지 않을 것은,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 17:14).” 곧 우리는 승리할 터인데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느 1:8-9).”

 

그 길은 명확화고 분명하여 주를 경외함으로 이 모든 것에서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에 산들을 언급하심은, 이제 에돔(세일 산)의 황폐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이스라엘(이스라엘 산)의 회복이다(35장에 이어). 새로운 목자의 출현으로(34장)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했던 선지자는 본문에서 새로운 땅의 회복(36:1-15)과 선민의 궁극적 회복(16-38)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그에 따른 미래의 비전을 점층적으로 주지시키고,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맹세하였은즉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이 자신들의 수치를 반드시 당하리라(7).” 하시는 극적인 반전을 약속하신다.

 

우리의 대적은 ‘에돔’이고 ‘애굽’이며 우리 모든 이방의 주변국들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고 섬기는 데 있어 모해하는 모든 ‘이방 세력’을 상징한다. 앞서 35장이 오늘 본문의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다. ‘에돔’은 그에 따른 표징이다. 오늘 3절에서 ‘남은 이방인’으로, 5절에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으로 구별되어 쓰이는 대적은 에돔을 비롯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이방 국가를 포괄적으로 언급한다. 곧 우리의 영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우리의 신앙을 도태시킨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옛적 높은 곳’ 같다. 곧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36:1).” 하심으로 ‘이스라엘 산’과 병행을 이루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지칭한다. 이 땅은 옛적 이스라엘에 주어진 약속의 땅인 동시에 영원한 소유가 된 땅이다.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신 33:15-16).”

 

곧 우리가 오늘을 사는 데 있어 우리 영혼이 딛고 사는 땅, 전에는 알지 못했던 땅에서 이제는 확실히 주의 약속으로 주어진 삶을 터전으로 산다. 영적으로 우리의 기업으로 얻어진 것들, 자식이요, 땅이요, 인생의 여러 형태의 삶일 텐데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9-10).”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범주다. 하여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사 43:4-5).” 하고 이어지는 약속의 삶은 이 땅에서부터 첫 발을 내딛고 서는 천성을 향해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잠 13:21-22).” 할 때의 그 신앙의 계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외람된 소리지만 그 부모의 딛고 선 땅으로 자식들이 거닌다. 보면 주변의 여러 가정에서 이를 목격할 수 있다. 나름 열심을 다해 신앙을 지켜가는 데 있어 안 믿는 부모와 그 조상의 여러 날들이 실상은 오늘에도 여파가 있다. 아무개는 안 믿는 시부모와 친가의 어른들로 인하여 신앙은 더디고 둔화된다. 명절마다 치러야 하는 조상들의 땅을 딛어야 한다. 제사만 여러 차례로 때마다 저는 눈물로 호소한다. 심지어 더 극한 상황은 저마다의 신앙으로 별의 별 종파가 다 모였다. 하여 나는 아내의 경우 이들과의 교류를 끊었고 더는 왕래를 않는다. 그런 가운데 그 자녀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연관을 갖는데 저마다 살아가는 땅이 다른 것 같다. 성경은 일러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곧 서로가 허용하는 범주에서 땅이 더럽혀지듯 우리의 삶이 주를 가까이 할 수 없다. 오늘 본문은 ‘선민의 땅’이 다시 회복되어 옥토가 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을 약속한다.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이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36:11-12).” 앞서 그 땅의 가증한 우상과 추악한 범죄는 선민의 땅을 더럽혔으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머무실 수 없는 그 땅을 회복시키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머무는 가나안 땅, 약속의 땅으로의 회복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29:11, 73:27-28).

 

이는 오늘 말씀이 증거하시는 바,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을 성읍들에 거주하게 하며 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겔 36:9-10).” 그리하여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 4:11-12).” 곧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어찌 다시 이 땅을 회복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가령 나의 부친은 앞서 나의 조부와 증조부의 땅에서 벗어났다. 어릴 때 강원도 평창 저 깊은 산골마을에서 나름의 문중의 땅에는 온갖 우상과 토속신앙의 삶이었다. 초등학교 때 강원도 시골집에 가 있을 때면 집안 곳곳에 귀신 밥이 있었다. 변소에도 문간 밖 한편으로 하얀 쌀밥 위에 숟가락이 꽂아 있었다. 장독대 위에는 정한수 그릇이 놓여 있어 오며 가며 나의 조모는 합장을 하고 손바닥을 비볐다. 그런데 부친이 예수를 영접하고 이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으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이 모든 우상의 행적을 지웠다. 형제들의 반발과 인친적의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에 굴하지 않았다. 결국 부친의 결의는 삽시간에 그 형제들의 가정을 전복시켰고 이제 다들 주를 영접하고 산다. 삶의 터전이 달라진 것이다.

 

곧 더렵혀져 황폐한 땅을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회복이 주어진 것이다.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겔 36:9).” 여기서 사람은 곧 귀환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함인데, 포로에서 풀려나서 다시 주 앞에 그 삶이 복귀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갈고 심을 것’은 땅을 경작하여 농사를 지을 것이란 뜻이나 곧 우리 영혼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날들이다. 기업으로 주어진 땅을 우리는 개간하여 다스려야 한다. 설령 부모 세대의 우상의 땅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결국은 떠나가야 하는 땅도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로 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하신다. 그 땅은 ‘황폐한 곳’으로 그냥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폐허가 된 곳이다. 이스라엘의 주권이 회복되는 것이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딤후 2:6-7).” 곧 우리가 오늘을 사는 데 있어 어떠하든지, 그 사정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 땅을 주신 바 우리로 건축하라 하신다. 그렇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6-8).”

 

하여 예수께서 이르시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우리가 이 텅빈 땅을 개간하여 건축하는 삶이란, 주신 땅에 거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곡식이 풍성하게 되는 삶을 살아가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농부의 꾸준함과 무던함과 같이 우리의 수고와 발걸음으로 열매가 풍성하게 될 것을 믿는다. 결국은 인내다. 더디고 막연하여 그러느니 세상 어떤 다른 수단을 찾아 빠른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농부가 계절에 따라 몸을 움직이듯 우리의 신앙이란 말씀을 따라 주신 그 계절 같은 상황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여,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시 101:3-4).

 

그러므로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사 51:11).”

 

오늘을 사는 게 버거울 때, 우리의 ‘땅’이 어떠한지 그 삶을 둘러봐야 한다. 믿는 자로 죄악으로 사는 삶이란 고역이다. 하여 더는 견딜 수 없던 삭개오처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8-9).” 하여 우리의 땅이 회복되는 것은 신앙이 회복되고 삶이 전환되어 예전의 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에,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 36:37-38).”

 

하여,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시 115:1).

 

주가 이 모든 일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9-11).

 

이로써,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15-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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