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겔 38:23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시 117:1
선민들의 회복에 있어 세상 끝 날에 선민 최후의 원수 곡의 침입과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1-2).” 앞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한 가운데 본문은 이스라엘이 다윗 시대에 비견될 만한 번영기를 구가하는 중에 맞게 될 ‘곡 연합군’의 침략과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후 승리를 서술한다.
본문은 다소 묵시 문학을 반영하고 있다. 상징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그에 대한 사탄의 반격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종말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를 예시한다. 이를 여러 선지자들이 앞다투어 전하였다. 이는 오늘 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위협한다. 은혜의 시대를 살면서 어느 때보다 안이하고 해이하여 신앙이 와해되고 붕괴되는 현상을 본다. 교회는 비대하여 더욱 더 크고 웅장하여지나 온전한 신앙으로의 길은 점점 묘연하여진다. 사회를 걱정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할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이 오히려 사회의 걱정이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되어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선지자들의 경고와 예언을 찾아보았다.
먼저 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사 29:6, 8).”
이를 풀어서 요엘 선지자는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28-32).”
아모스 선지자도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암 5:18-20).” 하고 전하였다.
스바냐 선지자도 ‘여호와의 큰 날’이라 칭하며 이를 ‘분노의 날’, ‘패망의 날’로 칭하였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습 1:14-16).”
스가랴 선지자 역시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슥 12:2-3).” 하고 전하여,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14:6-7).” 하고 전하였다.
이에 ‘곡 연합군’의 이스라엘 침략이 묘사되는데, 특히 본문에서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겔 38:3).” 하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정욕까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한 섭리의 일환으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이사야는 이를 경고하여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사 10:5).” 하고 전하며,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9).” 하고 묻고,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15-16).”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알렸다.
‘마곡’은 야벳 후손으로 언급된 바 있다.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창 10:2).” 그러므로 마곡 땅에 있는 ‘곡’은 교회 시대의 종말과 관련된 것으로 ‘마곡 땅에서 온 곡’에 뒤이어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 의해 수식되고 있다. 여기서 ‘마곡 땅’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을 포괄하는 명칭인 것을 알 수 있다. ‘마곡’이란 말에 대한 병행의 의도로 사용된 정치적 관료의 명칭으로 ‘곡’의 어원이 ‘높다’, ‘장엄하다’, ‘오르다’란 뜻이다. 그렇다면 ‘곡’은 정치적 최고 권력자에 대한 명칭으로 또는 오늘날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실상은 교회의 해가 되고 성도의 길을 훼방하는 존재나 상황으로 해석된다.
‘곡’이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에 대한 견해는 분명하지 않다. 먼저 리디아 왕의 ‘기게스’로 그의 이름은 앗수르 문헌에도 있다. 또는 알렉산더나 그와 유사한 역사적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구약의 몇몇 왕들을 위한 보편적 장소로 사용되고 있어 행정적인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본문에서 ‘곡’은 본장의 묵시적 형태로 그 이름의 역사성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수장’을 상징한다. 곧 종말론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대변하는 사탄’을 지칭한다. 실제로 ‘곡과 마곡’은 하나님을 연합하여 대적하는 자들로 나타난다.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계 20:7-8).”
이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으로 ‘로스’는 야만 민족의 조상으로 유추된다. 당시 볼가 강 주변의 ‘루스’란 기마 민족이 있었다. 그 군대가 ‘말과 기병’으로 언급된 것이다.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마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겔 38:4).” 성경에서 ‘메섹과 두발’만이 항상 함께 기록되어졌다는 점은 특이하다.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사람과 놋그릇을 가지고 네 상품을 바꾸어 갔도다(27:13).”
할 때 ‘로스의 왕’은 ‘우두머리가 되는 왕’이란 뜻을 가진다. ‘로스’는 특정한 지명이나 민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왕 ‘곡’의 위상을 특별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수식어로 보인다. ‘메섹과 두발의 대왕’으로 읽으면 “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32:26).” 하듯이 여러 번 이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는 데 있어 일차적으로 구약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귀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나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죄와 사탄의 억압으로부터 구원됨으로 온전히 성취된다. 우리의 최후 원수인 ‘곡’으로 상정되는 사탄의 세력을 멸망시킴으로 완성된다. 에스겔은 여기에 선민의 최후 원수인 곡의 멸망에 대하여 예언함으로 회복의 완성과 선민 최후의 멸망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곡에 대한 멸망 후에 진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전에는 내가 그들이 사로잡혀 여러 나라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39:25, 28).” 그렇게 하여 최종적으로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9).”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해서 오늘 본문은 마곡의 왕 곡을 향한 심판을 예언의 말씀으로 하는 서론으로 하나님께서 곡과 그를 추종하는 모든 세력을 심판하기 위한 일환으로 그들로 선민을 침략하도록 섭리하신 것을 선언하였다(1-6). 그렇게 해서 세상 끝 날에 있게 될 곡과 그 추종세력의 대규모 이스라엘 침략에 대한 삼중 예언을 보도하고 있다(7-16). 곧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부각된 ‘곡’의 ‘이스라엘 침략’에 대한 예언이고(7-9), 선민의 틈을 노린 ‘곡’ 자신의 판단과 탐욕이 부각된 예언이며(10-13), ‘곡’ 자신의 판단이면서 이는 여호와의 섭리가 ‘곡’의 이스라엘 침략에 따른 예언이다(14-16). 끝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한 ‘곡’에 대한 총체적 대재앙을 통한 파멸을 예언한다(17-23).
이처럼 이스라엘을 침략한 ‘곡’에 대하여 진노하심으로 지진과 칼과 전염병을 비롯하여 폭우, 큰 우박덩이, 불, 유황 등의 각종 재앙을 내려 ‘곡의 세력’을 멸하신다는 것이다. 곧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교회가 시련을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 종말에 이르러 하나님 나라로 완성되어 가기까지 세상에서 ‘하나님의 원수’를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곡의 세력들’,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받으며 많은 시련을 겪게 된다. 교회는 항상 사탄의 세력의 도전에 대비하되 그들이 공격할 틈을 얻지 못하도록 영적으로 각성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묵상하면 오늘 우리 믿는 자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으로 나타낸다. 주 안에서 늘 바르게 성실하게 주의 길을 가는 자들이 어처구니없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 일로 교회를 섬기는 데 방해가 되고 심지어 그 신앙을 지키는 데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오히려 가만히 보면 주를 알지 못하거나 그들과 짝하여 사는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본다. 하여 시편은 앞서서 그와 같은 현상으로 갈등하는 성도의 갈등을 진술하였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1-3).
왜냐하면 ‘그들은 죽을 때도 고통이 없다. 그 힘이 강건하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다.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4-9). 하고 이어지는 시인의 서술이 오늘 우리 사회에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적당히 믿음으로 살며 적당히 교회를 섬기면서 적당하게 세상과 짝하여 사는 자들이 오히려 잘 살고 유리한 것 같다.
나의 고정관념이랄 수 있겠으나 무교나 불교 신자는 대체로 부유하고, 천주교인들은 평안하고 너그러우면서 여유롭다. 유독 이단들과 사이비 종파들은 악착같고, 상대적으로 믿음으로 온전히 신앙을 지키려는 자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바울은 해석하길,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b-10).” 하였는데,
이는,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7-8a).”
하는 부분으로 정리하면 그 의미는 시편의 시각에도 맞는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6-17).
결국 우린 세상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바로 알기 어렵다. 현재 겪는 현실의 어려움과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는 이를 깨달을 수 없다. 시인과 함께 성소로 들어가야 한다. 온전하게 주를 신뢰함으로써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는 진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2-25).
이를 알기까지 교회와 그 몸이 성전이 되는 우리의 고초는 가히 어려움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하여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렘 1:9-10).” 하여 오늘의 승리는 우리 것이라는 데 확신을 갖는다. 모든 ‘이김은 여호와의 것’이라 하심과 같이 주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오늘도 이 ‘곡의 세력들’이 세상을 주관하는 듯하다. 열 평 남짓한 우리의 이 작은 교회를 이루어 가는 데 있어서도 이처럼 힘에 겨울 뿐인데, 이제는 공공연하게들 말하길 개척교회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누구는 대놓고 주차장을 운운하며 교회도 이제 확보된 주차공간과 비례하여 부흥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는 저 귀퉁이 작은 공간만 있어도 예배 처소로 족할 것인데… 하며, 솔직히 마음이 자주 어렵기도 하다. 그러니 시편의 시선으로 성소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안의 ‘곡’도 금세 곡소리를 내며 염려와 근심으로 아우성이다.
그런 가운데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고후 6:7).”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하심을 명심하고, 이에 따른 것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 4:2-4).” 오늘도 이런저런 어려움이 엄습한다 해도, ‘한 소망 안에서.’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하는 이 확실한 보증으로, 오늘 말씀에서 에스겔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겔 38:23).”
이에,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 117: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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