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볼지어다 그 날이 와서 이루어지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라
겔 39: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18:28-29
우리의 그 날은 하나님으로 모든 게 회복된 날이고 저들에게 이 날은 멸망의 날이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25).” 곧 우리의 이 날은 주의 사랑이 베풀어지는 날이고 저들에게는 심판이 내려지는 날이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9).” 이를 이루어 회복하는 날이다. 하여,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시 118:1-2).
우리가 살면서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6-7).
여호와의 심판이 동시에 회복을 의미한다. 세상 끝날 선민의 최후의 원수 ‘곡’의 침입과 멸망 예언을 다루고 있는 오늘 본문에서도 세상 끝 날에 있을 ‘마곡의 왕 곡’의 이스라엘 침략과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전반부 38장에 이어 오늘 39장에서도 이스라엘의 침략자 곡의 군대가 종말을 맞아 전멸할 것을 예언한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섭리로 세상 끝 날에 이스라엘에 침략을 감행한 곡의 군대가 전멸하고 곡의 땅에는 대재앙이 일어날 것을 알린다(1-7).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7년간이나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병기 수거와 7개월간에 걸친 곡 군대의 시신 매장을 통한 이스라엘 땅의 정결을 예언한다(8-16). 또한 야생의 새와 들짐승을 향하여 곡의 군대에서 사체를 먹으며 잔치할 것이라고 한다(17-20).
“그 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쪽 사람이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길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에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매장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11).”
결국 이 예언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곡의 군대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살당할 것을 시사한다. 사해 동편 사람들이 통행하던 골짜기가 곡 군대의 시신들로 막혀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묘사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극렬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최후 심판 날이 이르기까지 사탄의 세력은 기승을 부리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고 교회를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안은 최후의 심판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1).” 곧 저들을 상대하시는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 되심을 알린다.
‘곡’은 그들의 탐욕과 선민을 향한 적대적 감정으로 선민을 적대시하고 공격하였다. 그때마다 그들의 침공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들의 선민 침공으로 그들이 자처하는 전멸이다. 이를 주가 거행하시는 데 있어,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북쪽 끝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화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사나운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 먹게 하리니 네가 빈 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
저들의 이와 같은 결국은 “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 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 물건을 겁탈하며 노략하리라 하고 네 손을 들어서 황폐하였다가 지금 사람이 거주하는 땅과 여러 나라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주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38:11-12)” 이루어진 일이다. 곧 이러한 죄를 짓는 것은 모두가 스스로의 이익을 얻고, 즐거움을 위하여 탈취할 것들과 자기 삶이 이것들로 채워져 평안할 것이라 믿었던 결과이다. 결국 ‘마곡의 왕 곡’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패망한 것처럼 악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시 9:16, 34:21).
하는 시편의 진술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0-11).” 곧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하여 마지막까지 싸워 주신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곡’을 대적할 것이라 오늘 말씀도 이를 증거한다. 오늘 시편의 시선이 정확하였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8:28-29).
왜냐하면,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5).
이를 증명하시듯,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6-9).
그렇듯 이 땅에서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어떤 걱정과 근심으로 마음이 어려울 때, 삶이 고단하여 지칠 때도 우리는 성경의 약속을 붙든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이는 모든 믿는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그리하여 우리가 누리고 사는 이 은혜의 증거를 사랑한다.
이에 따른 바울의 설교는 놀랍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이를 우리가 믿고 붙들려 살 때,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30-31).”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일이란 앞서 나의 근심과 염려가 또는 현실의 어떤 어려움으로도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5-56).” 하여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롬 6:8-9).” 하심으로 우리가 새 힘을 얻는다. 요즘 나는 나의 한계와 내 곁의 이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에서 마음이 자주 어려워진다. 아내가 무릎 수술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하루는 장모를 모시고 병원에 가고 다른 한 번은 아내를 데리고 수술한 병원으로 가서 물리치료와 함께 주사치료를 받는다.
그저 그럴 수 있는 일이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사람으로 나는 이중적으로 힘에 부친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장모를 휠체어에 태워서 이동하는 길이서도, 병원에서 하염없이 대기하고 또 기다리는 일들도 어렵다. 가령 내가 나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할 때도 나는 이 기다림이 오히려 힘들어서 가장 일찍 서둘러서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는데 이건 또 그럴 수가 없다. 어제는 아내가 주사치료를 하고 이어서 물리치료를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다시 이사를 해야 하는 지역을 돌아보며 교회도 그 인근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돌아보는데, 잠깐씩 차가 신호에 걸리고 사람들이 왁자한 골목에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둘러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병원으로 갔다. 이렇듯 사소한 나의 사는 일들이 어렵다. 고질적인 어깨 통증에 행여 이 팔마저 못 쓰게 될까, 하고 두려움이 엄습하는 가운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식이라… 실제 우리의 고통은 누가 알아줄 수 없고 함께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듯 우울증으로 힘에 겨워하는 이와 대소변 신경을 건드려서 홀로 생활하면서도 그것을 수치스러워하는 이에게, 나는 서로가 다가갈 수 없는 그 고통의 한계에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 누구는 어디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며 기도를 부탁할 때, 나는 어디가 안 아프고 덜 힘들어서 감사하게 된다. 아내와 같이 천천히 산책을 하며 운동을 할 때 저는 어디가 아프다며 호소하는데, 나는 늘 아픈 곳이 견딜만하여 감사한다. 안면이 있는 의사는 장모를 모시고 갈 때면 목사님도 봐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럼 나는 멋쩍어하며 적당하여 감사하다고 혼잣말을 한다. 다들 낫고자 하나 나는 이만하길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바란다는 것은 다들 그 믿음의 분량과 같이 고난의 분량도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말씀으로밖에 의지할 데가 없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오늘 여기 우리의 최종적인 고통의 ‘곡의 군대’의 종말을 묵상하며 남은 생을 다잡아본다. 주를 바라고 의지하는 데 있어 앞서 선민을 대적하는 열국을 하나님이 상대하시며,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신 바 있다(1-20). 이어서 그와 같은 고통의 주적을 상대하시는 데 있어 우리 믿는 자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21-24). 이는 여호와의 주권적 사랑으로 현재의 모든 상황에서 우리가 은혜로 거함이란 것을 알게 한다(25-29). 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24:7).” 오늘도 이 아침 주 앞에 나아오게하신 것을 안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이처럼 말씀으로 앞서 이 모든 것을 예언하심은 궁극적으로 만유의 주가 되시는 예수를 바로 알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오늘도 중동전쟁이 확산되고 세계가 이와 같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여전히 악한 이들은 자신들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회개와 멀리 있을 때, 이를 통하여도 주를 더욱 바람이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11-12).
나는 나의 말할 수 없는 수고와 고통과 불안으로 주를 더욱 의지한다. 말씀으로가 아니면 무엇으로 어디서 위로를 얻을까? 다들 축하하는 딸애의 결혼날짜가 다가오는 것이 서서히 나로 두려움 가운데 떨게 한다. 누구나 떨리고 긴장하는 일이겠으나 나의 불안은 또한 병적이라, 이를 뭐라 한들… 나의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내 안의 ‘곡과 그 열국의 요동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 하여 기도하기는,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 51:11, 69:17).
이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8:1).
이처럼 시편으로 산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5).
그렇게 또 하루 오늘도,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6).
나 역시 사람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7, 14).
그러므로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7).
살자,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0-21).
하여,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24).
고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8-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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