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하현. 2026. 3. 9. 04:22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겔 42:14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2-3

 

 

성소에 대한 측량에 이어 성전의 부속 건물에 대한 설명과 측량이 제시된다. 14절까지는 성전의 남북 뜰에 연접해 있는 4개(남2, 북2)의 방이 언급되었다. 북편 뜰은 곧 성전 안 뜰(41:10)의 북쪽을 가리킨다. 여기서 ‘방’은 골방과 같다. “성전의 벽을 측량하니 두께가 여섯 척이며 성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너비는 각기 네 척이며(41:5).” 골방은 집합적인 의미로 방들이 소속된 건물 전체의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 골방 앞뜰을 향하였다는 것은 분리된 지역과 마주 대하였다는 뜻이다.

 

분리된 지역은 성전 뒤편의 서쪽 들을 가리킨다. 서편 건물 북쪽, 곧 성소의 북서쪽에 위치하여 건물이 마주 대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곧 성소의 북편 골방 앞의 뜰에 잇닿아 이 건물이 위치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 언급된 이 방은 8절에 언급된 바, “바깥뜰로 향한 방의 길이는 쉰 척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백 척이며” 곧 성전 앞을 향한 건물을 지시한다. 그 건물의 장 곧 동서간의 길이는 성소와 같은 100척이다. 한편 ‘광’이 50척이라는 것은 ‘두 방’으로 언급된 두 건물 사이의 10척의 통로까지(4) 포함한 전체 폭을 언급한 것으로, 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안뜰 문통의 길이와 같다.

 

이러한 내용을 읽다보면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새 질서의 확립을 다루고 있는 대목으로 새 성전에 관한 계시의 연속적 진술로 읽힌다. 성경은 이와 같이 성전에 대한 환상을 소개하면서 성전 주위의 방 곧 뜰에 있는 부속 건물에 대해 설명하고 성전 전체의 크기를 측량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성전의 회복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전 건축의 구속사적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제사장들의 방에 대해 묘사하고(1-14), 성전의 사면 담에 대한 측량을 묘사하고 있다(15-20). 현재의 건물까지 인도된 과정을 살펴보면 집 바깥 사면의 담(40:5)에서 점점 성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각 문들을 척량(40:5-16)하고, 바깥뜰에 도착(40:17)하였다. 방들과 각 문들의 척량(40:17-19)하고, 북향 문을 척량(40:20-23)하였다. 남향 문을 척량(40:24-27)하고, 안 뜰에 도착(40:28)하였다. 안 뜰 남문을 척량(40:28-31)하고, 안 뜰의 동문을 척량(40:32-34)하고, 안 뜰의 북문을 척량(40:35-37)하고, 번제물 씻는 방과 상에 대해 설명하였다(40:38-43).

 

그렇게 해서 제사장들의 방에 도착(40:44-49)하고, 성소 내부에 도착(41:1)하여, 성소 내부를 척량(41:1-4)하였다. 그리고 지성소에 대한 척량(41:4-11)을 기록하고, 서편 건물과 성전 내부 장식에 대해 설명(41:12-26)하였다. 그런 뒤 성전 곁의 건물들에 도착(42:1)하고, 그 건물들에 대한 척량(42:1-14)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성전의 담을 척량(42;15-20)하였다.

 

에스겔은 성전 건물의 외부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서 지성소까지 도달한 후 다시 되돌아 나와 바깥쪽의 건물들로 인도되었다. 그렇게 성전 재건에 대해 예언(40-48장)하며 구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곧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모든 구약적 제사 제도들이 영원히 폐지되었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결국은 천국의 기업을 누릴 자들이 참된 교회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이에 대하여는 베드로도 설교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하고 우리의 구별됨을 알게 한다. 사도 요한의 계시록이 신령한 천국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에스겔의 이 부분을 참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계 21:12-15).” 그러므로 에스겔이 말하는 성전 재건은 교회를 예표하는 것이다.

 

성전의 남북편 골방 뜰에 있는 두 방들에 대한 설명은 제사장들이 잠시 쉬며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먹고 거룩한 의복을 갈아 입으며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비축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아울러 밤낮으로 성전을 떠나지 않았던 여선지자 안나와 같이 경건한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 2:37).” 또한 천사가 성전의 바깥에 나가서 측량한 성전의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역할을 하였다.

 

에스겔은 제사장들의 방과 성전 안마당의 환상을 통해 성전의 중요성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선민으로서의 거룩성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해 주고 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워줘야 한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영적인 것을 탐구하며,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세속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적으로 주의 일에 매진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는데, ‘먹고 사는 일’로 생활이 또는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이 어려움을 겪을 때는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기가 어렵다.

 

소위 ‘투 잡’을 뛰듯 배달이나 대리운전으로까지 하며 개척교회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나로 인하여 아내가 혹은 자녀들이 생활에 쪼들리고 힘에 겨워할 때는 어떤 열패감으로 마음이 어렵기도 하다. 심지어는 극한 생활고에 시달려서 결국은 사역을 접은 경우들도 여럿 있다. 나 역시 버틴다고 버티는 경우라, 더러는 교회가 아닌 다른 일을 구상하기도 한다. 물론 그 모든 게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온전히 기도하며 순종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 가령 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이 막연한 게 아니어서, 어제도 한 친구가 비로소 같이 줌으로나마 예배에 참가하여 좋았다. 그런데 채 감사가 식기도 전에 저는 가까운 곳에 예배를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내가 붙들고 말고 할 게 아니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가끔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생각으로 마음이 어렵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말씀을 읽고 주석도 찾아보면서 묵상하고 설교 원고도 작성하는 게 전부지만 요즘은 이처럼 새벽에 나아와 말씀 앞에 앉는 일이 부담이 된다. 몸 상태도 그렇고, 운전을 하고 다니는 일도 그렇고, 물리적으로 이 장소를 임대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 드는 비용도 그렇고… 이러한 생각으로 마음이 어렵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때에 말씀은 나를 채근하듯 붙드신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 10:9-10).”

 

이 모든 것을 주가 예비하시고 함께 하셨던 것을 알면서도 마치 늘 처음부터 답보 상태인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다. 마치 요나의 심정처럼 이럴 거면 왜 그토록 나로 목사로 세우셨을까? 글방을 교회를 바꾸시고 오늘까지 이끄셨을까? 하는 어려운 마음도 있다. 물론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시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지키며 유지하기가 힘에 겹기도 하다. 물론 이 모든 시간들이 나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지만,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고전 9:10).” 하실 때, 하나님께 속한 사역자의 삶이란 가난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오늘 본문은 제사장들의 방 전체를 가리켜 ‘거룩한 방’이라 하였다.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겔 42:13).”

 

이 방이 제사장들이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가져다가 먹고 보관하는 곳임을 밝히며, 이를 거룩한 곳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으로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14).” 즉 사역자로서의 방과 그 안에 두는 지성물과 제사장의 의복 등이 모두 거룩함을 강조한다.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란 ‘지성물’을 먹고, ‘거룩한 의복’을 입고 성전 안에서 생활하는 일이다. 이를 하나님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거룩하다하신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움 받은 자 외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의 삶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두 다 거룩하다.

 

그런 거 보면 이는 내가 인위적으로 그리 구별하여 살았던 것보다 임의로 하나님이 주관하셨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전에 즐기던 것들로부터 경계를 세우시듯 나로 불안증을 앓게 하셨다.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 또한 사람 좋아하고 어울려 다니기 즐기던 것을 모두 막아버리셨다. 이로써 나는 신대원으로 부르심을 받으면서부터 만남도 행동반경도 모두 제한적이 되었다. 이제는 예전의 친구들, 그 좋아하던 자리가 어렵고 불편하다. 서로가 그리 되었다. 가끔 저들과 연락을 하면 서로가 어색한 관계가 된 것을 느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산다는 일은, 아브라함이 아비와 본토와 친척을 떠나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외딴 삶을 살았던 것과 같다. 모세가 속해 살았던 애굽성을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은둔하듯 살았던 것과 남은 일생을 주의 백성들과만 살았던 것도 그러하다.

 

이 같은 ‘떠남과 버림’의 과정은 숙명이다. 여전히 세상과 어울려 예전처럼 살며 신앙을 지키는 일은 없다. 정화를 통해 그 삶 전체는 다른 궤적을 산다. 속한 삶의 자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에 부합된 자로 세워지는 일은 현실적으로 외로운 일이다. 이는 성도로서의 숙명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라 일컬음을 받기에 부적합한 것들, 불의하고 불경하며 죄악 된 요소들과 떨어져 구별되는 자리하는 ‘골방’ 같다. 우리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성경의 이치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여,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이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하신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어렵고 힘들어 낙심과 좌절이 찾아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갈 1:6).” 다른 복음, 곧 더 나은 어떤 삶을 찾아 스스로를 파양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지는 생활로 들어가는 것은 끔찍하다. 그렇게 누구는 선교사에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어떤 이는 친구의 정육점 일을 돕다가 그 가게를 인수하면서 목회를 떠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저들의 사정과 저간의 형편을 이해한다. 다만 그래서 좀 더 나은 삶으로 살았는가, 하고 나이 들어 병들고 보면 모두가 후회뿐이다. 우리로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살기를 원하시는데,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 1:11-12).” 부디 나의 남은 생에서 행여 다시 이 길을 벗어나지 않기를… 어디가 아플 때, 또는 무슨 어려움으로 힘이 들 때, 여기까지만, 오늘까지만… 하면서 이 하루도 주 앞에 올라온다.

 

이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하시며 우리로 고작 새나 풀만 못할까, 하여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27-28).” 그러니 남들 다 살만하고 화려하였다 해도,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29).” 이에 대하여는 단호하심으로 말씀하시길,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30-31).”

 

나는 나의 건강과 형편과 사정을 두고 염려하다 이처럼 말씀 앞에서 다시금 주의 일에 거룩함을 되새긴다. 그러므로 오늘도 시편으로 호흡하며,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시 36:5-6).

 

고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이를 붙들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옷을 입고 살기를. 이를 위하여도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그리하여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오늘도 성전에 올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하심으로 붙들려서,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3).

 

하심으로 새 힘을 얻는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5-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