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43:27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오늘은 성전 본체 건물의 좌우 곧 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제사장들의 방과 바깥담의 식양에 대해 알린다(1-20). 이어서 여호와의 영광이 새 성전에 강림하심과 새 성전의 식양에 관련한 규례를 알게 한다(21-27). 먼저 여호와의 영광이 새 성전에 영원히 임재하실 것을 약속하며 그에 따른 조건을 전한다(1-9). 에스겔은 지금 그발 강가에서 성전에 대한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동문을 통하여 성전 바깥뜰과 안뜰을 거쳐 성전 안으로 들어가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음을 서술하고 있다(1-5).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에스겔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면 그들 가운데 영원히 임재하시겠다는 약속하신다.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9).” 그리하여 새 성전의 식양과 관련하여 규례를 전하는데, “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11).”
곧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새롭게 지어진 새 성전에 임재하심을 보여주신다. 새 성전이 온전한 것은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과 광야에서 성막을 완공하고 봉헌할 때, 또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봉헌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과 성전’에 임하심으로 ‘그 성막과 성전’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 같이 오늘 이 새 성전의 강림 또한 백성들의 헌신과 거기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불의와 죄악, 우상 숭배로 오염되었던 성막을 파괴하고, 성전이 바벨론의 침공으로 무너진 것도 주의 영이 떠나실 때였다.
오늘 이 교회와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곳에 임재하시기를. 오늘 말씀은 여호와의 영광이 새 성전에 강림하실 때 백성들의 무수한 죄악과 우상을 섬기는 불경함이 사라져야 했다. 성전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망한다. 교회도 그러하여서 하나님이 이곳에 계실 때 상한 영혼들의 회복과 치유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그만큼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하여 시인은 노래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이는,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73:16-17).
우리가 살면서 사는 데 따른 여러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다. 가령 이번 중동전쟁으로 인접 국가에 있던 교민들이 대피하여 귀국하면서, 자기가 살면서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울먹였다. 곧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모든 게 그렇다. 남의 일로 여기던 것을 자신들이 겪을 때면 놀라울 따름이다. 이에 우리가 고통 중에 주를 바랄 수 있는 곳은 주의 성전에서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곧 하나님이 우리 삶에 임재하심이란 그저 막연하고 관념적인 내용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체험하며 산다. 나는 아주 단순하여서 오늘이 어제보다 덜 아프거나 힘들어서, 이렇듯 오늘도 교회로 나와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고 힘들 때, 또는 무엇으로 불안하고 마음이 어려울 때,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주가 함께 하심을 느낀다. 곧 매순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이란 특이하면서도 일상적이다.
특별한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가운데서 주가 함께 하심을 느낄 때가 더 많은 삶이 복되다. 즉 누구의 아주 특별하고 희한한 간증에서 느끼는 감동도 중요하지만 나의 하루 일과 중에서 아주 사소한 의미로도 주가 함께 하심을 느끼는 것이 귀하다. 이를 보면 하나님의 임재는 가장 간절한 자의 곁에 있다. 늘 모든 순간에 주를 바라는 자는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 주를 바랄 때이다. 가령 아내와 늘 운동으로 산책을 하는데, 무릎 수술을 하고 난 뒤부터 아내의 걸음걸이는 조심스러워졌다. 혹시 몰라 불안하기도 하여서 천천히 걸으면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 곁에서 이를 볼 때 주를 알게 하심이 참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부로 걸음하고 마음껏 돌아칠 때는 모른다. 거침없는 삶이란 스스로를 자신할 때이다.
이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 21:13).” 그래도 된다고 여기는 것은 늘 그래왔던 습관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오만함 때문이다. 부패한 성전에서 예수께서 꾸짖으신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셨고, 헤롯 성전은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해 돌 하나도 둘 위에 남지 않고 철저히 파멸되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4:1-2).”
나는 요즘 교회를 이전하는 일로 주께 묻는다. 우리 형편에 한 번 또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 좀 더 합당하고 용이한 곳을 찾아 물색하며 주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누구는 돈만 있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다. 나는 우선 현재 아이가 찾아오기 쉬운 곳으로 한다. 보다 쉽게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장소로 물색한다. 무엇보다 예배가 용이하고 성도의 교제가 가능한 곳으로 찾아본다. 그러면서 우리 형편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워낙에 가진 게 없는 터라 선뜻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또 딱 맞는 장소가 있다 해도 이를 유지할 수 있는가도 고려한다. 그러면서 주께 묻고 또 묻는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딱 맞는, 필요한 곳으로 주가 옮기실 것을 믿는다.
하여서,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9).”
곧 주가 세우셨고 하게 하셨고 맡기신 일이어서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 아니다. 우선하여 모이기에 힘쓸 수 있는지, 예배가 가능한지를 생각한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산다면 교회도 가정도 나의 날들도 은혜가 더욱 가득할 것이다. 사울이 왕이 되고 초기에는 하나님과 백성로부터 인정을 받았다(삼상 10:17-24, 11:1-15). 이후에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후(15:10-16:1) 실정과 악정을 일삼다 결국 자기 아들들과 더불어 비참하게 죽었다.
오늘 이 교회를 이뤄가면서 혹은 나의 사소한 생활 속에서 행여 나의 마음이 주를 멀리할까 하여 조심한다. 깨어 있게 하시려고 나의 육신에 가시를 주셨다. 마음이 어려워서도 주를 더욱 바라게 하신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활 곳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다. 그래서도 내 안의 염려나 근심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이처럼 말씀으로 먼저 내게 선포한다. 나 자신에게 말씀이 선포되지 않으면 내 안의 걱정과 불안이 항상 나를 점유하려 든다. 가령 딸애 결혼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늘 아프다. 그래서도 주눅이 드는 것 같이 마음은 저 혼자 우울해한다. 감사를 식어버리게 한다. 하여 주 앞에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0-11).
어떤 염려가 또 근심이 마음을 채울 때면 감사보다는 후회가 또 서러움이 가득하다. 우리 영혼이 우울해질 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73:28).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이 우울한 영혼을 달랠 수 있을까? 되레 어려운 처지에서 돌아보며 ‘아버지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6-17).” 하고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18-19).” 돌아서는 그 자리가 복되다. 그리할 때,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오늘 이 나의 나 된 것으로 주가 기뻐하시기를. 그러므로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7-8).” 그리하여 오늘도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곧 오늘의 어떤 어려움, 그 마음의 무거운 짐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전에 알지 못하였던 소망과 기쁨으로 주를 바라게 된다. 하여,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오늘도 이 글 앞에서 묵상과 글쓰기로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었다. 고로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곧 우리가 주 앞에 거룩하기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3-14).” 오늘의 이 현실이 아니다. 당장의 어떤 상황이나 여건으로가 아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우리가 자라간다는 것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이를 위하여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살후 1:3-4).” 하여서, 이제 여기저기 아프고 나이 들어 점점 무력해질 때에도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오늘 이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나는 먼저 나의 일상을 돌아보고, 이 교회의 날들을 생각하며 주 앞에 더욱 온전하게 쓰임 받다 주 앞에 돌아가기를. 그럴 때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과 같이,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43:27).” 이에,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이것으로 교회를 이루어가게 하심인데,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7-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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