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겔 44:23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시 123:1
새 성전과 새로운 제사와 및 새 땅에 대한 종말론적 환상을 다루고 있다. 앞서 새 성전의 구조와 장식 및 번제단과 각 동 각 부분별 측량 형식의 새 성전 식양을 기록하였다. 이어 새로운 제사와 관련하여 그 규례를 보도하였다. 그런 뒤 성전 바깥뜰 동문 폐쇄와 이방인들의 성전 출입 금지 명령을 알리고 있다. 먼저 성전 바깥뜰 동문 폐쇄에 대한 것을 전한다(1-3).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바깥뜰 동문에 이르자 그 문이 닫혔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이고, 그 이유는 당신께서 그 문을 통해 성소로 들어가셨기 때문이라 설명하였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는 통로로 삼으신 동문을 폐쇄하신 것은 우리들의 무분별한 출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성전 바깥뜰 동문이 폐쇄되었어도 왕만큼은 그 문의 현관까지 들어오는 것이 허용되었다.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에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3).” 이는 왕에게 동문 출입이 허용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성전 바깥뜰의 남문이나 북문을 통하여 성전 바깥뜰로 들어온 왕에게 동문의 현관에서 하는 식사를 허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전 동문은 어떤 경우에도 열리지 않았다.
이어 에스겔은 천사의 인도로 성전 바깥뜰에서 거룩과 성결을 생명처럼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을 알린다(4-9).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 가운데 영원히 임재하신다. 북문을 통하여 성전 바깥뜰 경내로 들어간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성전 관련 규례와 성전 출입에 대한 규정 및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의 성전 출입 금지 규정을 다루었다. 곧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곳이다. 따라서 성전은 우상 승배자들이나 부정한 것으로 더럽혀진 자들로 어지럽혀져서는 안 된다. 물론 새 성전 이전에도 이방인들의 출입은 금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타락은 이를 허용하며 스스로 성전을 더럽혔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성전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심지어 우상을 섬기는 데 있어도 주저하지 않았다.
새 성전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으로 우리 자신이 그러하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성전 된 그 심령과 삶의 자리에서 허탄하고 악한 것이 자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새 성전의 동문이 폐쇄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으실 것을 의미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곧 우리 주님은 신약 교회를 대표하는 우리들을 향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하고 약속하셨다. 이는 주님께서 당신의 몸을 바쳐 이루실 속죄의 사역에 근거하여 죄사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며, 영원히 성령으로 성도들과 더불어 거하실 것임을 확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 곧 주의 공로로 구속 곧 죄사함을 받은 존재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라 일컫는 분이다. 이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의미다. 곧 하나님의 임재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이에,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7).”
곧 동문을 닫고 출입을 금하는 하나님의 임재는 그 영광이 우리 안에 거하심이다. 이를 구약의 시선으로 보면 구별된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전하여지나 예수께서 이 휘장을 가르시며 우리로 누구든지 주 앞에 나아올 수 있게 하셨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1).” 이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막힌 담이 없으며 그분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하며,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곧 왕도 출입이 엄격히 금하여졌던 곳까지 우리로 담대히 나아와 주를 뵐 수 있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이 놀라운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13:6).” 확신과 확증으로 주 앞에 나아오게 되는 것이다. 하여,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 119:36-37).
하고 주 앞에 기도하며 나아간다. 곧 이 교회를 이뤄가는 데 있어 더 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상한 영혼을 위로하며 전하는 데 있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새로운 도약을 놓고 기도한다. 현실적으로 교회를 옮기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 어제그제 몇 곳을 둘러보며 우리의 형편을 생각하였다. 그러다 역전에서 가깝고 맞춤하니 장소가 다 갖춰진 곳이 있었다. 이를 놓고 주 앞에 기도하게 된다.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는데 앞으로의 일을 두고 생각하면, 주님 어떨까요? 하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였다. 현실은 돈인데 이를 맡김으로 한 번 도전할 것인지 그냥 이대로 있어야 할지.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미 7:11).”
생각이 많아 주의 이름을 연이어 부르게 된다. 그러면서 본문을 다시 응시하면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을 때, 사독 계열 외의 레위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김으로 백성들로 넘어지게 하는 죄악을 저질렀던 바, 저들로 제사장 직분을 박탈하고 일반 레위인들이 담당하던 성전 맡은 일을 사독 계열의 레위인들에게 전가하신다(10-14). 이어서 사독 계열의 레위 제사장들의 제사장직 독점과 그들의 직무와 관련한 규례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다(15-31). 이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족속이 당신을 배반하고 떠났을 때, 오직 사독 계열의 레위인들과 제사장들만이 주의 성소의 직분을 지켰음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5).” 하여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내가 맡긴 직분을 지키되(16).” 그렇게 성전 안뜰을 출입할 때의 의복(17-19), 그들의 일신과 관련된 금기(20-22), 제사 업무 외에 그들어 행해야 할 업무, 곧 규례와 절기와 안식일 준수의 의무(23-24), 또한 정결에 때한 규례(25-27), 기업과 분깃(28-31) 등을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를 제사장이라 명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삶이어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그러므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결국 이 한 몸으로 사는 동안 교회가 되고, 교회를 이루어가는 데 전심으로 주를 바라는 게 중요하다. 이곳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나은지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하나님의 교회를 이뤄가는 데 막바지 도전을 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형편도 간당간당하여 두려울 뿐이었다. 마침 같이 알아보던 아들이 속에 담고 있던 말을 했다. 교회면 교회고 글방이면 글방이지 왜 자꾸 글방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 돈벌이를 하려해!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퉁명스럽게 한 것인데, 순간 나를 긴장시켰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9층에서 내려와 7층으로 오면서 하다못해 교회라는 표기보다 글방이란 표현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였을까? 2년 넘게 있는 동안 일체 전도의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주가 이루신다는 데서 출발하여 생각해야 하는데, 늘 한편으로는 내가 어떻게, 돈벌이로나마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이제 내가 주께 바라는 한 가지 일,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이것으로 중심을 삼아 나의 삶을 다시 점검한다. 나의 지나간 시간들처럼 주 앞에 다시 후회와 낙심이 없도록, 주여 나의 지혜와 총명을 더하시고 나의 건강이 주 앞에 온전하여 이 일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기를.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18:17-18).
하여 오늘을 더 사는 동안,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욘 2:6).” 이와 같은 말씀으로 인정하여 이제 나의 남은 기력을 대해,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56:13).
하고 주 앞에 나의 모든 것을 전가한다. 심지어 나의 죄책까지도 주께 맡김으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 42:3-4).” 하여 주 앞에 굳은 결심으로 서본다. 그러할 때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3-4).” 이로써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고, 또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때 퍼뜩, 정신을 가다듬는 것은 이 일이 주의 일이라는 것. 교회를 이루어가는 데 있어 뜻을 모으고 생각을 집중하여 한 영혼이라도 주 앞에 나아올 수 있게 하려는 것. 그것에만 마음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를 거듭하기를. 할 때에, 오늘 본문의 중심과 같이 속된 것, 이방과 우상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피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8).” 하신 말씀으로만 의지하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3-14).”
하여 나의 먹고 사는 문제는 주가 책임지실 터,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시 123:1).
나의 이 간절함은,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2).
주의 은혜로만 가능한 길이다. 나의 살고 죽는 일은 주가 행하실 것이다. 하여서,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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