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너희에게 만족하니라 너희는 포악과 겁탈을 제거하여 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속여 빼앗는 것을 그칠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45:9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시 124:8
말씀은 언제나 현재성을 갖는다. 오늘 나의 이야기로 적용되고 재확인된다. 선민의 회복에 대한 말씀은 강렬하면서도 세부적이다. 구석구석 하나하나 모든 것에 두루 미친다. 먼저 오늘 본문은 거룩한 구역과 성읍 기지를 지정하는 데서 시작한다(1-6). 즉 거룩한 구역과 성읍 기지 전체는 사방이 이만 오천 척인 정방형으로 되어 있다. 거룩한 구역은 동일한 크기로 남북에 양분되었다. 남쪽의 땅은 성전 부지와 성전에서 시무하는 제사장을 위한 땅이다. 사방 오백 척이 성전 부지로 주어졌다. 성전 부지 사방으로 오십 척의 땅이 성전에 딸린 전원이다(1-4). 또 거룩한 구역의 북쪽은 성전에서 수종 드는 레위인의 기업으로 주어졌다(5). 그리고 이 거룩한 구역과 아래쪽으로 잇대어진 길이 이만 오천 척 너비로 오천 척은 성읍 기지로 지정되어 이스라엘 족속의 공동 소유지로 주어졌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게 치밀하고 지체 없다. 이어서 왕과 일반 백성들을 위한 땅이 지정되고(7-8), 먼저 왕을 향하여 백성들을 수탈하는 것을 금지하고 공평하게 시행할 것을 명령한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너희에게 만족하니라 너희는 포악과 겁탈을 제거하여 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속여 빼앗는 것을 그칠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9).” 이어서 10-12절은 표준 도량형 지정에 대하여 지시한다. 표준 도량형의 지정은 넓게는 경제 정의 실현을 위한 것이고 좁게 보면, 공평한 과세를 위한 사전 조치이다(13). 그리고 왕이 백성들로부터 받아 하나님께 바칠 예물을 규정한다(14-17). 그리고 선민이 지켜야 할 절기들을 주요 실례로 네 절기에 각각 드려야 할 제물을 알게 한다(18-25). 여기서 네 절기란 정월 초하루, 정월 칠 일, 유월절과 무교절, 장막절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세밀하시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검토하시고 지정하심으로 새 나라와 새 성전의 규모와 쓰임에 대해서, 또한 이들 백성을 통치해야 할 왕과 그 백성들의 규례를 모두 관여하시고 다스리신다. 이를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반영하신다. 가령 어제 나는 또 한 번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는 데 있어 미리 준비하시고 예정하심을 보았다.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았다. 몇 개월째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이다. 나는 늘 눈앞의 형편에 맞춰 교회를 찾고 옮기는 데 따른 어려움으로 우유부단하였다. 전날에도 보고 온 중상복합건물의 한 곳이 내내 마음에 남았었다. 새벽에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하여 그곳에서 교회를 할 수 있나 물었다. 관리규정상 종교시설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런가? 하고 이를 기점으로 마음을 접을 거였다. 조금 뒤 대표라는 자가 전화를 했다. 임차인이 괜찮다고 했다며 그의 뜻을 전했다. 막상 그러자 생각이 더 많아졌다. 가계약으로 백만 원을 걸어야 하는데 교회 통장에는 이번 달 임대료로 모으고 있는 30만원이 전부였다. 가계대출로 하여 70만원을 빼려고 하고 있을 때 아들이 들어왔다. 자신이 우선 백만 원을 헌금할 테니, 그것으로 가계약을 하고 교회 간판과 이사비용도 자신이 부담할 테니 모자라는 보증금만 준비하라고 했다. 그것도 극적으로 모바일에서 70을 막 대출받으려고 하고 있을 때 말이다. 그렇게 가계약을 하고 현재 있는 곳의 주인에게 알리고, 저가 부동산에 내놓고 부동산 중계인이 전화하여 권리금으로 200을 받아주겠다며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새로 들어갈 곳의 주인은 첫 달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다들 이 무슨 일인가? 이상할 정도로 일은 정리되고 진행되었다.
교회를 이루고 견디며 지키는 일이 귀하였다. 나는 다만 여기 있을 뿐이라, 면구스러워서도 한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이처럼 주가 이루어 가시는 데는 내가 알지 못하는 손길과 보호하심이 있다. 비록 1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어느 큰 대형교회를 이루어가는 일만큼이나 다채롭기만 하다. 이처럼 ‘거룩한 구역’과 ‘성읍 기지’로 이루어진 사방 정방형 좌우와 ‘왕을 위한 땅’과 왕으로 하여금 백성들을 압제하는 일이 없게 하시는 일들이 세세하다. 또한 그에 따라 지켜야 할 절기를 일일이 가르치는 것도 세심하시다. 이 모든 일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나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신다. 행여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살까하여 간당간당하고 늘 조금은 부족하게 두시면서도 이와 같이 면밀하게 하나님이 주도하신다는 것을 목격하고 감사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10:14-15).” 하시는 말씀을 보여주신다. 곧 우리로 주를 인정하는 데서,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28:6).” 하심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신다. 때로는 더 많이 혹은 적당하여서 조금은 여유 있기를 바라게도 되는데, 어제처럼 아니 늘 한결같이 나의 날들 가운데서 주의 손길은 세심하시다. 이를 참지 못하고 아등거리는 것이 나여서, 나의 나 된 것으로 못 견디다 주 앞에 자주 엎드리게 하신다.
이곳에서 벌써 10년이 넘었다. 9층에서 8년 넘게, 7층에서 2년 반의 시간이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나로서는 교회로 나와 이 자리를 지키는 게 일이었다. 추울 때는 교회에서 잘 수 없어서 새벽 이른 시간에 나오는 것으로, 날이 풀려서는 밤을 지키며 오후께 내내 교회에 있었던 것으로… 그저 나는 한 게 없이 교회를 지키며 오갔을 뿐인데 이를 통하여 주가 이루시었다. 결국 답보상태로 있다 새로운 도약으로 나아가게 하심은 모험이다. 인천 주안역과 시민공원역으로 연결된 주상복합건물이다. 아들이 나서서 외벽에 간판도 걸고 ‘정식으로’ 그리하게 되었다. 이제 내 생에 마지막이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나는 모든 것을 주 앞에 맡기기로 했다. 임대료 80에 관리비까지 하면 엄두가 나질 않는데… 내 안의 염려는 이처럼 늘 사람을 들들볶듯이 앞장서기 일쑤다. 교회나 집이나, 내 곁의 한 영혼이나 나의 영혼을 두고 주가 이루시는 것도 다르지 않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오늘을 살면서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의 삶으로 사는 일이란 이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여로 일이 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다. 중간에서 임차인을 설득하고 설명하던 중계인이 말하길, 자신도 오랫동안 작은 개척교회를 섬겼다며,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안다며 나의 의기소침함을 눈치 챈 것처럼 말을 덧붙였다. 곧 이와 같이 저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심을 알리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먼저는 새 땅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야 할 ‘거룩한 땅’을 지정하셨다(1-5). 이 거룩한 땅 아래로는 거룩한 구역과 연하여 ‘성읍 지역’이 지정되었다(6).
이와 같이 나의 생활과 그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시면서, 더하여 이 교회를 유지하고 이어가는 데 있어 주가 이루심을 알게 하신다. 여기서 ‘거룩한 땅’ 가운데서 ‘제사장의 거주지로 구별된 땅’의 중앙에 사방 오백 척의 땅은 ‘성전 부지로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이 측량한 가운데에서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을 너비는 만 척을 측량하고 그 안에 성소를 둘지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그 곳은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 곧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수종드는 자들에게 주는 거룩한 땅이니 그들이 집을 지을 땅이며 성소를 위한 거룩한 곳이라(3-4).”
이처럼 막연한 옛 이야기거나 이스라엘 지형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로 이 성전이 새 땅의 맨 위나 맨 아래에 위치하지 않고, 정중앙에 오게 하셨다는 사실에서도 의미가 크다. 며칠 전부터 나는 이 일이 ‘내 남은 생의 마지막이다.’ 하는 각오로, 이제 한 번 옮기면 또 훌쩍 10년 이상이 지나가고 그때는 노인이 될 터인데… 하는 심정이었다. 언제 어떻게 주가 멈추시고 오라 하실지는 모르지만 지나간 시간이 어떠했든지, 남은 질주를 하려는 마음으로 교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거룩한 구역’이 국토외 정중앙이라 볼 수 없지만, 새 땅의 중앙에 세워진 분명한 이유는 모든 삶이 성전과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권능으로 중심을 삼게 하기 위함이다.
곧 오늘 우리로서는 어느 주상복합아파트 건물 상가 2층 구석진 곳으로 8.5평의 작고 협소한 장소이나 외형적으로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산다면, 오늘 우리로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가 중심으로 나의 생의 반경은 지정되었다. 돌이켜 주가 나를 붙드시면서 더는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나 기준이 아니다. 신대원 당시, 학기 중에 나는 사역자로 어디 부교역자로 있던 이가 아니라서 새삼 어디 전도사로도 일할 수 없을 때 일생을 아이들 글짓기 선생으로 살던 내게 글방 그 공간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다. 그때 그 일도 얼결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시작하여 5년 남짓 목사고시를 두 번씩이나 떨어지면서도 지키게 하신 교회다.
목사가 되고 십 수 년을 있던 글방을 떠나서 인천으로 온 것이 벌써 또 십 수 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주안동으로의 이전이어서 새롭다. 고등학교 대학교 신혼 때 맴돌았던 구역인데….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보면 모든 게 다 희한하고 이상하고 놀랍다. 나의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우상’을 따라갔던 그 지점으로의 복귀 같다. 오늘 이 본문에서의 선민 회복이 모두 내 이야기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은 하나님이 이루신다. 늘 하나님이 승리하신다. 선민이면서도 이방인들과 동일한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로 떠돌게 하시다가 결국은 성전 중심으로 성읍과 삶의 터전을 재편하시고 그 중심에 성전을 두시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나에게는 이처럼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며 명확하다. 내가 그토록 어리석게 살아서 주를 멀리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이와 같이 회복시키실 것과 회귀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살게 하시는 데까지 거침이 없으셨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서 ‘마른 뼈’와 같았던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데 있어 하나님은 친히 교회를 그 중심에 두게 하셨다. 나를 지배하던 악으로부터 나를 빼앗아 도로 하나님께 우러러 사는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정중앙에 계신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을 나처럼 이렇게 생동감 있게 그 삶 가운데서 목격하고 경험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돌이켜 나의 어리석음과 죄악 됨을 생각하면 눈물뿐이라, 용서를 구할 염치도 없는데….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신 16:11).”
오늘 나에게 맡기신 이 교회가 그러하여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이를 살면서 나의 후반부 인생에서 비로소 인정하게 하심인데, 여기는 ‘여호와 삼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곧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목격한 여호와의 영광의 떠나심(10:18-22, 11:22-24)과 다시 돌아오심(43:4)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새 성전에 거하시면서 다시는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리라 하신 약속으로 귀결된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43:7).”
결과적으로 이 모든 사역이 ‘여호와 삼마’로 종결되는 것이다. ‘삼마’는 원어로 ‘저기에’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거기’는 지시적인 의미로 주가 지목하시는 바로 그 장소, 거기다. 거기는 12지파 곧 전 이스라엘의 공동 소유이고, 여호와의 처소이다. ‘새 이스라엘’과 그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라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거기’다. 곧 ‘하나님의 <거기에> 우리 교회가 있다.’ 나의 삶이 있다. 이 목숨의 목적과 목표가 있다. 거기는 ‘거룩한 땅’으로 구별된 거기다. ‘속된 땅’으로부터 불러내어 나로 ‘거기에’ 두심으로 하나님께 속된 땅에서 하나님의 구별된 자로서 나의 생을 지배하시고 관여하시는 것이다.
그저 나로서는 ‘거기에’ 있었을 뿐이라, 교회에서 자고, 새벽 이른 시간에 교회로 나오고, 묵상을 글로 쓰고, 누구의 어떤 어려움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주의 이름을 불렀을 뿐 한 게 정말 없다. 교회도 번듯하게 부흥시키지 못했고, 한 가정이라도 제대로 세워 교인이 몇이라도 불어나지도 않았다. 그저 다들 지나가는 사람들뿐이라, 더러는 외롭고 회의에 빠져 이게 다인가? 이게 뭐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추스르며 또 누구, 어떤 일로 마음 졸이는 게 전부였던 나였어서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을뿐더러, 나 하나 변변하지 못한 것인데…, ‘여호와 삼마’로 오늘 여기, ‘하나님의 거기에’ 따로 구별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주의 은혜라… 나의 생은 전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은혜 아닌 게 없었다.
오늘도 이 모든 ‘되어지는 일’을 보면서 내가 하는 것은 없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고로 이제 나의 남은 생이 주의 것이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주가 어찌 이루어 가시는가를 기대하며!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하여 나는 주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거기에’ <여호와 삼마>로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시 124:1-5).
나의 날들이 그러하였고 그러하였음을 인정하면서.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6).
여전히 저들과 어울려 죄악 중에 있었을 나인데,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7).
하여 나도 주 앞에 엎드려 아뢰는 말,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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