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이같이 아침마다

하현. 2026. 3. 13. 04:36

 

이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준비하여 항상 드리는 번제물로 삼을지니라

겔 46:15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 125:1

 

 

오늘은 온전한 예배에 대해 묵상하게 한다. 본문은 45장 18-46절에서 하여 왕이 백성들로부터 거두어 드릴 제물과 성전 출입과 관련한 규례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특히 오늘 본문 1-12절에서는 안식일과 매달 초하루 등에 드려야 할 제물과 왕과 백성들의 성전 출입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초하루에도 열고(1).” 여기서 안뜰 동문은 성소와 마주하고 있는 곳이며 안식일과 초하루는 하나님께 대한 공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성소와 마주하고 있는 안뜰 동문이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혔다가 안식일과 초하루에만 활짝 열렸다는 것에 잠깐 주목하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전 안뜰 동문을 안식일과 초하루에만 열게 하고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도록 하셨을까? 우선 안식일과 초하루에 동문을 연 것은 그만큼 열심을 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이 안뜰의 동문은 안식일과 월삭 때만 왕이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저녁때까지 열려 있었다. “군주는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군주는 문 통로에서 예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2).”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예배를 기뻐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도 없이 성전에만 몰두하는 것을 원하시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당신을 예배하며 살도록 요구하시지만 이는 동시에 주어진 삶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도 주께 영광이 된다. 우리의 ‘일하는 엿새 동안’에의 생활을 존중하시며 이 또한 우리의 예배인 것을 알게 한다. 하여 ‘일하는 엿새 동안’에 성전 동문을 닫게 하신 것은 각자의 삶에서 충실할 것과 예배해야 하는 날에 예배하지 않고 일하는 것 역시 죄가 되는 것을 알게 한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 성도의 삶이 그 자체로 거룩한 예배가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요즘 세대의 직업과 윤리의식은 믿는 자의 시선으로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딸애가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리는데, 교회에서 언니 동생 하는 아이가 있는 모양이다. 그 애가 무슨 일을 하다 그만두고 칵테일과 술을 하는 무슨 바에서 밤새 일을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오후께 만났다고 하는데 교회에서는 또 그렇게 열심인 모양이다. 밤새 술손님을 상대하며 말 상대가 되는 그 일이 다니던 직장보다 훨씬 더 수입이 좋다면서 말하더란다. 잘 알지 못하는 일이라 뭐라 하기 그렇지만 그만큼 ‘성도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다들 ‘수입과 소비’에 있어서는 세상을 누리고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오늘 말씀에서 주목하는 동쪽 안뜰 문을 보면서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일’은 열려야 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9-10).” 하는 말씀으로도 알 수 있다. 곧 주일은 우리 일의 중심이 된다. 그런데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느 13:16-17).”

 

이를 보면 주일에 대한 의식이 막연할 때 일상도 무너진다.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하여서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옛말을 곧이곧대로 따라 산다. 눈 뜨기 무섭게 주식현황을 살피고 전날에 못 다한 일에 매달리는 게 현대인의 삶이다. 영업을 담당하는 이가 자주 술자리에 불려가고 업주들이나 점주들을 상대하며 실적을 올리느라, 저들 문화에 종속된다. 그러다보니 주일을 지키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 되었다. 즐거운 안식과 평안의 시간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치러야 하는 의무인 것 같다. 그렇게 주일을 의무처럼 지키면서 일하는 엿새 동안의 시간들은 권리인 듯 행사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시선을 집중시켜서,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 29:1-2).

 

곧 우리에게 있는 권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 2:7-8).” 롯과 같은 삶이 되어 비루하다. 우리가 성도의 권능을 잃으면 비천한 삶으로 전락하여 남들처럼 돈돈거리며 살게 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하여,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

 

그러므로 먼저는 주일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구별하여 지킴으로 엿새 동안의 날들에 구심점이 된다. 곧 이 한 날의 예배가 우리의 일상에서 엿새 동안을 예배의 날로 권능을 더한다. 가끔씩 산책을 하며 시장을 갈 때면 저마다의 일에 여념이 없는 모습에서 숙연함을 느낀다. 꾸부정한 허리를 한껏 더 구부려서 생선을 다듬고 있는 어느 노인의 깊은 주름진 손등과 앞에 놓인 과일을 틈나는 대로 닦으며 사람들을 부르는 소리에 감동한다. 저마다 각자의 진열된 물건을 몇 년씩 또는 수십 년을 되풀이하며 다루고 사는 모습이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곧 저마다 그와 같은 ‘엿새 동안의 일’ 가운데서 주를 의지하며 사는 일이란 ‘주신 이의 은혜’에 따라 사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안식일이나 초하루에 열린 안뜰 동문은 저녁까지 결코 닫아서는 안 되었다. 즉 성전 안뜰의 동문은 안식일과 초하루 등 하나님께 대한 공식적인 제사가 드려지는 날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곧 해질 무렵까지 열어두어야 한다. 이는 누구라도 언제든지 오게 하고, 안식일에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전심으로 이루러지기를 바라신다. 그것으로 우리의 일상은 온전히 굴러간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고’ 쉬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이다. 이 날을 인간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로 구별하셨다.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눅 6:5).”

 

이 날을 우리가 거룩히 여김은, 우선 명령이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다음은 주신 날에 따른 원동력이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9)” 곧 우리의 일상의 동력은 주일에 받아서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10).” 그리하심으로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11).”

 

이 날의 복됨이 차고 넘쳐 우리의 일상을 덮을 때 우리의 하루하루가 예배가 된다. 생선을 다듬는 손길에서부터 과일을 나르고 닦고 성실하게 파는 상인의 말들까지 모두 주를 찬송하는 것일 수 있다. 몸이 불편하여 걸음을 떼기 어려운 이가 주어진 그 한 날에 어기적거리며 몸을 가누는 일 또한 주를 경배하는 일이다.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의 개념도 같다. 정작 그 십분의 일이 주의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게 주의 것임을 인정하는 데서 헌금도 헌신도 봉사도 일상도 모두 드려지게 된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사 56:2).”

 

곧 우리가 일하는 엿새 동안의 시간들 곧 일상의 모든 게 주 앞에 거룩하니,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이는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 11:44).” 하심으로 우리의 일하는 엿새 동안의 생활반경이 정해진다. 어느 청년의 대수롭지 않은 듯한 돈벌이 수단으로 밤에 술을 팔며 술취한 자들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일이란 게 과연 주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인지?

 

분명히 오늘도 우리에게 향하신 말씀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이를 토대로 하여 하루하루의 삶은 복되다. 그러할 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곧 우리의 ‘엿새 동안의 일’이 온전한 주일의 기쁨에 참여하게 한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오늘의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든지, 최선을 다해, ‘힘 있는 대로’ 또한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주인이시다.

 

오늘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교회는 물론 집도 사정에 따라 옮겨야 할 형편에서 주께서 주도하시고 함께 하심을 알 수 있다. 곧 나는 나의 일상에서 주가 이끄심을 자주 느낀다. 어제는 어디 집을 결정하고 들어오는 이에 따라 우리도 서둘러 나가야 할 형편이었는데, 가계약을 보내기 직전에 부동산 이가 보낸 문자 하나로 확실해졌다. 곧 우리가 이사할 곳이 아직 입주 날짜가 확실해진 게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무작정 계약부터 하면 난감할 뻔했다. 부동산에서 이를 다 알면서도 요령껏 계약을 성사시키려고만 한 것 같다. 하나님은 그 일 막판에 제동을 걸게 하셨고, 우리로서는 급할 게 없다. 하긴 딸애 결혼식 하고 바로 며칠 뒤 이사를 한다는 게 너무 급박하다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주가 막으심으로 행여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막아주셨다. 우린 다만 주께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곧 이 기도는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과 같아서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대상 29:9).” 그러므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 곧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13).” 주신 바 엿새 동안의 일터에서 우리가 주를 바람은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느 10:35).” 이러한 마음으로 아침은 내게 하루의 맏물로 “이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준비하여 항상 드리는 번제물로 삼을지니라(겔 46:15).”

 

나의 이 부족할 따름인 시간과 글쓰기와 묵상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 15:20-21).” 곧 오늘은 죽었던 나로 살게 하신 매순간의 첫날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14:40).” 그리할 때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살후 3:6-7).” 그렇듯 삶이 곧 예배가 되고 한 날 한 날이 주일이 되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임재하시고 우리는 이를 묵상함으로 실상이 된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시 25:4-5).

 

그렇듯 나의 하루는 별 것 없는 것 같으면서도 생명의 길을 걷는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6:23, 16:20).” 이로써 우리에게 부여하신 일상도 주의 날에 주의 앞에 드려지는 것이어서,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고후 11:28-29).” 하여 교회와 내가 하나가 되어 주를 섬기는 것이다. 이에,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호 14:2).”

 

하고 오늘도 주 앞에 아뢴다. 고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 125:1).

 

하시는 이 놀라운 견고함으로 믿음을 삼아,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4-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