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하현. 2026. 3. 14. 04:1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겔 47:6-7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40장부터 전개된 성전의 측량과 새로운 율법의 지침이 일단락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중심으로 성취될 이스라엘의 축복이 생명수의 환상을 통해 제시된다(47:1-12). 물과 기름짐의 축복은 구약에 있어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어 사해까지 흘러 들어가 황무하고 죽어있던 땅을 기름진 땅으로 변화시키고 있다(1-12). 이와 같은 회화적 묘사는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풍성한 축복을 상징한다.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사 33:20).” 하는 말씀으로 증명되고,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시 46:4, 65:9).

 

하는 시편의 찬송으로 뒷받침 된다. 궁극적으로 구원의 원천이 하나님이시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 그러한 구원 사역은 온 우주를 풍성하게 소생시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성도들의 죄악을 담당하여, 친히 자신을 ‘생수의 강’으로 언급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10).” 하시고 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7:38-39).”

 

하여 이 ‘생명수의 강’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이는 성전 중앙에 위치한 ‘성소의 문’을 가리킨다. 생수가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가신 바로 그 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겔 47:1).” 이는 그 생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발원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동으로 흐르다가’ 정확히 문지방 중앙에서 동쪽으로 흘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그 생수의 진행 방향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하신 데서 ‘전 우편’은 ‘그 집 가장자리의 오른 쪽’을 의미한다. 생수가 성소 문지방의 오른쪽(남쪽) 끝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이다. 곧 그 문지방 오른쪽은 제단 남쪽이 된다. 이에 ‘흘러내리더라.’ 하는 것은 성소가 안뜰보다 높이 위치해 있음을 암시한다. 이에 에스겔은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하며 진술한다. 여기서 ‘강가로’는 생수의 강의 가장자리 곧 뚝 위로 선지자가 그 물 속에서 세 번째 측량 때까지 따라 내려갔다가 그 물 속에서 네 번째 측량을 목격하고 다시 뚝 위로 올라온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나무가 심히 많더라.’ 하는데, 여기서 ‘많더라’는 것은 원어상 (양이나 질에 있어서)풍성한 것을 뜻한다. 단지 나무의 많은 것을 말한다기보다 나무와 함께 그 열매의 풍성함까지도 내포한다. 곧 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으로 이와 같은 비옥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에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47:12).” 하는 말씀에서 계시록 22장에서의 ‘생명수 샘’과 그 주변의 ‘생명나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조 당시 에덴의 풍성함의 근원이 강과 나무들이었다는 것을 잘 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창 2:10).”

 

훗날에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10).”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 사역을 보여준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3).” 이는 새로운 창조 사역과 동일한 것이다.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새 실과를 맺으리니’ 점진적으로 강조된 본문은 생수가 결코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게 될 것을 시사한다. 곧 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영원한 회복과 구원의 사역을 보여준다.

 

이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생수가 위에 언급된 영원한 생명과 풍요의 원천이 되는 이유를 재삼 강조하며, 모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며 번성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거처, 곧 성소에서 직접 발원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의 역사는 창조 당시 에덴의 정황과 같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곧 이 생수를 통해 열린 실과의 식용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 기인한다. 구원을 암시한다.

 

생수를 통해 자란 생명나무는 그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나누어 주게 된다.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하심에서 단지 식용의 의미를 떠나 ‘약 재료’ 곧 ‘고치다’란 뜻의 ‘라파’에서 파생된 말로, 병들고 썩은 것을 고치는 효능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약 재료가 병들고 썩어진 세속적인 세계에 작용함으로 그 세계가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 사역을 통해 치유되는 것을 알게 한다.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2).”

 

이와 같이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나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 성전 바깥쪽에서 볼 때 바깥뜰 동문 우측에서 분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성전 동문 밖에서 분출한 물이 계속해서 동쪽으로 흐르는 가운데 천 척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의 발목--> 무릎--> 허리-->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깊이가 되어 강을 이룬 사실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서 발원하여 강을 이룬 물이 아라바로 흘러가서 죽음의 바다인 사해에 이를 것과 그로 인하여 사해가 살아나고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물과 고기들이 번성하고 과일나무들이 풍성하게 열매를 맺게 되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란 사실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풍성케 하였다는 ‘사도 요한의 새 예루살렘 환상’으로 연결되었다(계 22:1-2). 성전 문지방에서 발원한 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풍성한 영적 축복을 상징한다. 이 물이 만물을 소성케 한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전 영역에 걸쳐 실현될 것을 시사한다. 또한 하나님의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자들은 모두 새 생명을 얻게 되며,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에 사해와 같이 죽은 인생을 새 생명으로 풍성케 하실 것을 알게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생명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환상이 아닌 현실로 체험하며 산다.

 

하여,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하신 것 같이 오늘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으로 살게 하셨다. 한동안 주를 멀리하고 살았던 만큼 나를 묶어두심으로 세상으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셨다. 새삼스러우나 나는 그때 너무 힘들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하나님의 단호하심은 나를 꼼짝 못하게 했다. 돌아보면 기이할 정도이다. 신대원 3년 동안 6학기를 내내 울면서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토록 어울리고 기대며 의지하였던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하셨다. 즉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심지어는 다들 그러고 산다고 생각하며 죄를 죄라 인식하지 못하던 것에서 나를 돌이키셨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그때를 생각하면 그저 신기하고 이상할 뿐이다. 자주 언급했던 것 같이 그때도 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사람들과 어울리며 저들의 도움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당시 내 곁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돌이켰을 때 마치 물이 불어나 발목을 적시고 허리를 감싸고 능히 헤엄칠 수 없을 만큼 잠길 때까지, 그때도 나는 기필코 새벽예배를 나갔다. 그땐 그게 나로서도 이해가 안 된다. 부끄러운 소리겠으나 그 시각에 교회로 가면서 담배를 물었고, 끝나고 오면서 다시 또 담배를 물었다. 낮에는 여러 방법으로 살 궁리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새벽예배에 갔고, 갈 때마다 울었다. 오죽하니 당시 담임 목사님이 조심스럽게 묻기를 혹시 가족 중에 누가 불치병에 걸렸는가? 했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그렇게 재수를 하고 신대원에 끌려가서는 오전 수업을 가면서 울었다. 운전을 하다 하도 눈물이 나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엉엉 울었던 일도 있다. 같이 공부하던 동기들이 대부분 스무 살 가까이들 어렸다. 아마도 내 모습이 이상했을 것인데 또 그렇게 힘겨워하며 신대원을 하는 동기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글방 모임이 생겼고, 더러는 우리 글방이 교회되기 전부터 기도회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때들 오던 예닐곱 명의 사역자들 역시 어떤 회의와 갈등으로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 신대원 학비를 무명의 여러 손길로 후원 받았고, 그때마다 휴학을 하려던 핑계가 없어져서 한 학기 한 학기를 채워냈다. 졸업과 동시에 나는 교단에서의 목사안수를 피하고 독립교단연합회로, 두 번 낙방을 하면서도 2년 만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답보상태인 것 같으면서도 여러 명의 지나가는 영혼들을 대하였다.

 

이제 마지막 도약으로 교회 이전이 결정되고 난 뒤 내심 감회가 새롭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기어이 나를 이끌어 채우셨다. 중학교 때 감정적으로 서원하였던 것으로 알았던 주의 종의 사명을 이루셨다. 그에 앞서 나의 생은 모든 게 다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생후 6개월에 얻은 장애와 그런 가운데 보내야 했던 학창시절과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여 나름은 두 아이를 건사하며 살았던 날들과 이후 엎어뜨리고 다시 일어서게 하시기까지…. 60여 년의 시간이 단순하게는 3등분 되어 선명한 색깔을 띈다.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교회를 옮기면서 드는 이와 같은 마음으로 어지러웠는데, 오늘의 말씀이 그 의미를 함축하여 전달하신다. 이를 이사야의 증거로 보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곧 나 같은 자를 이처럼 귀히 여기시며 일생을 붙드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선명하다. 그러므로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 36:9).

 

하는 것이 나의 찬송이고 기도가 된다. 그리하여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1-22).” 하심은 악에 익숙해져 더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때에 고꾸라뜨리시더니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렘 13:23-24).” 이를 나만큼 생생하게 간증하며 주 앞에 나아올 수 있을까? 이에 오늘에 이르러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하시는 주의 생수로 목마름이 없게 하신다. 하여서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오늘도 이처럼 주 앞에 나아와 이르기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하심으로 선다. 주가 이루실 것을 안다. 나로 여기까지 인도하신 이가 또한 주의 뜻을 따라 행하실 것을 상상하며 긴장한다. 그때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하여 교회를 다하기까지, 나의 남은 여정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시 126:1-2).

 

이것이 나의 간증이 되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3).

 

오늘의 감사가 되어 이 날을 소망으로 산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