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하현. 2026. 3. 15. 04:20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겔 48:35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127:1

 

 

성의 출입문들이 12지파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이는 그 성읍이 온 이스라엘의 공동 소유인 것을 암시한다. 이 성읍을 ‘여호와 삼마’라 하였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새 이스라엘 공동체와 항상 함께하시리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에스겔의 사역이 절정에 달했다. 그 날 후로 여기서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이 완성되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의 날이다. 동시에 본서에 기술된 모든 예언과 규정과 지침들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때이다.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한다. ‘여호와 삼마’라는 단어로 종결되는 바, 이는 에스겔 선지자의 사역을 함축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곧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목격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심(10:18-22, 11:22-24)과 다시 돌아오심(43:4)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새 성전에 거하시면서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리라는 약속으로 귀결된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43:7).”

 

결과적으로 모든 사역이 ‘여호와 삼마’로 종결되는 것이다. 여기서 ‘삼마’는 원어상 ‘저기에’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성읍이 12지파, 곧 이스라엘의 공동 소유란 점에서 단순하게 여호와의 처소를 지칭하는 말이다. 새 이스라엘과 그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다. 앞서(47장)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을 ‘생명강의 환상’과 ‘땅의 분배’라는 차원에서 묘사하였다. 이러한 종말론적 분위기는 본문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아울러 하나님의 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룬다. 에스겔은 지금까지 본서의 내용을 전개함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여부를 축으로 삼았다.

 

선지자는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성전에서 떠나가시는 것을 보았고(11장), 새로운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였다(43:4, 44:2).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성전에 영원히 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48:35).”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종말론적 회복은 물질적이거나 현세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업이며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하신다. 에스겔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 본문을 끝으로 에스겔서는 마무리 된다. 먼저 일곱 지파의 땅 분배에 대하여 묘사한다(1-7). 그리고 하나님에게 속한 땅의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8-22). 나머지 다섯 지파의 땅 분배를 묘사하고(23-29), 성읍의 출입구에 대한 할당을 묘사하고 있다(30-35). 새 땅의 경계와 분배의 범위 및 방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새 땅의 중앙에 위치한 거룩한 구역과 왕의 기업을 기준으로 하여 일곱 지파가 차지할 땅에 대하여 앞서 정하였다. 이를 보면 새 땅의 북쪽 경계로부터 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 지파 순으로 땅을 할당받았다.

 

이어서 제사장의 땅과 레위인의 땅으로 이루어진 거룩한 구역과 거룩한 구역 아래쪽으로 면하여 구별된 성읍 기지를 합한 사방 이만 오천 척의 구별된 땅과 제사장의 땅 안에 있는 성전 부지, 그리고 이만 오천 척의 구별된 땅의 동서로 하여 주어진 왕의 땅에 대한 지정을 보도하고 있다. 끝으로 새 땅의 중앙부에 위치한 거록한 구역과 왕의 기업을 기준으로 하여 그 남부 지역에서 다섯 지파가 차지할 땅에 대하여 보도하고, 이를 보면 새 땅의 남부 지역에서는 위로부터 베냐민--> 시므온--> 잇사같--> 스불론--> 갓 지파 순으로 땅을 할당받았다.

 

새 땅의 분배는 여호수아 시대의 땅 분배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호수아 시대에 제사장과 레위인의 땅이 따로 구별되지 않고 각 지파의 기업에서 일부가 할당된 반면, 새 땅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땅이 따로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여호수아 시대에는 왕의 기업이 주어지지 않았으나 새 땅에서는 왕의 기업이 따로 주어졌다. 또 여호수아 시대에 북쪽에서 기업을 얻은 잇사갈, 스불론, 갓 지파가 남쪽에서 기업을 얻고 남쪽의 대부분을 기업으로 차지하였던 유다 지파가 북쪽에서 기업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 유다 지파 내에서 기업을 할당받은 시므온 지파가 독립된 기업을 할당받았다.

 

이러한 새 땅의 분배는 역사적으로 실제 성취될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온전히 차지하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새 땅의 중앙에 성전이 위치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거할 처소를 미리 예비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본문 전체를 중심으로 하여, 이러한 땅 분배는 과거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정복과 그때의 땅 분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중심에 성전을 두고 왕과 레위인과 제사장의 성읍 기지로 속된 땅이 구별되었다. 그 주변에 야곱의 본래 아내인 레아와 라헬의 아들들의 후손들이 자리하고, 변방에 그 첩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의 후손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47장에서 생명수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1).”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로 인하여 회복될 땅에 대한 진술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로 인하여 다시 소성케 되었고 풍요로운 땅,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며 생명력이 넘치는 땅으로 변모되었다. 이처럼 잘 조성된 땅,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하게 조성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가족으로 하여금 애굽에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거처를 먼저 마련하시고 거기서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지파별로 땅을 분정하고 거기에 사람들을 심으셨다.

 

여기서 새 땅은 궁극적으로 성도들이 거할 복락원,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들이 거할 처소를 새롭게 조성하시고, 인도하여, 거할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담을 지으실 때 아담이 가장 존귀한 존재였지만 그를 먼저 지으시지 않고 도리어 마지막에 지으셨던 것과 같다. 고센 땅은 목초지로 유목 민족인 그들을 위해 미리 예비하셨다. 그곳에서 그들을 번성케 하셨다.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압제할 때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후에 그들이 들어가 거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먼저 예비하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며 복락을 누리도록 이끄셨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천국, 당신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천국을 예비하시며, 거기서 우리들로 하여금 복락을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신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밧모섬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 고난 받는 사도 요한을 찾아가셔서 예비하신 천국, 그를 믿는 신실한 성도들이 거할 천국이 얼마나 복되고 은혜로운 곳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이와 같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후 5:1-2).” 그리하여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이를 소망하여 인내하며 주의 길을 갔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을 다 찾아 구원하신다. 이를 주님은 ‘잃은 드라크마 비유’에서도 밝히셨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눅 15:8-9).” 그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 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오늘을 사는 동안 각자의 즐거움과 그 생의 만족함이 있겠으나 이 땅의 모든 것으로는 일시적이고 잠깐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저 천국의 것으로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설령 믿음으로 이 땅에서 추구하던 것을 받지 못하였다 해도,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에 낙심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이것이 믿음이다. 내가 이 길을 가는 동안 설령 바라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낙심하지 않을 것은,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12:3).”

 

그렇게 오늘 본문은 단지 새로운 시대의 새 땅을 분배하고 그 문들을 열거하는 게 아니다. 더 나은 저 본향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수 22:5).” 하여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여 내가 말을 하고 안 하고, 누구에게 어떤 것을 권하고 안 권하고 할 때 그 기준은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먼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신 말씀에 주목한다. 곧 우리가 맡기신 직분에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충성되어,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겔 48:10-11).” 하는 오늘 말씀으로 연상할 수 있다.

 

내게 맡기신 사명, 이를 중히 여기며 사는 일이란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하여 나의 하루가 주 안에서 온전히 채워지고 다스려져서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0-11).” 곧 오늘 내가 인내할 수 있는 것은 말씀으로다. 이 말씀을 가졌은즉 시험을 면한다. 내가 이 말씀을 굳게 잡아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나를 이를 빼앗으려 육신의 고통이 또는 물질의 어려움이 또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어떤 평판에 대해 일체 좌고우면하지 않기를.

 

이를 위하여 우선은 탐심을 버려야 한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 12:15).” 다음은 경건의 유익을 지켜야 한다. 세상이 어떠하다 하여도,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5-6).” 그러므로 바울 사도와 같이 일체의 자족함으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이로써 오늘의 어려움, 어떤 고통에 따른 주의 뜻을 알게 된다. 곧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겪는 인생의 무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다면, 욥의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을.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하여 시편의 시선으로,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42:8, 63:3).

 

하여서 예수님은 이르시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 하여 날마다의 인내와 충성으로, 주의 길을 가는 것.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 하심을 다시 되새긴다. 이 짧은 한 구절의 말씀은 나로 신대원을 하고 목사로서의 이 길을 가는 동안 수시로 붙드시는 구절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실 때 근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근심하지 말라하시는 이가 ‘너는 내 것이라.’ 하심이다.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여 오늘도 “그 사방의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하심에서 주가 거기 계신다. 나로 이끄시는 곳이다. 내가 주의 나라에서 주의 영광을 보리니, 그날은 주의 정하신 주의 날로,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9:2, 68:3, 70:4).

 

할 것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127:1).

 

오늘을 살며 지탱하여 가는 일이란,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2).

 

하여 우리의 안식은 영원하여서,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3-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