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단 4:1-2, 37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1
이방 나라 왕인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공표를 한다. 이에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저들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느부갓네살이 두 번째 꿈을 꾸게 되었고 이를 다니엘이 해몽하여, 7년 동안 미친 자가 되어 들짐승과 같이 생활하다 급기야 회개하고 회복되어 하나님을 찬양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2).” 하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포한다.
곧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해석하기 위한 노력이 불가능하였음을 보여주고(1-7), 다니엘에게 자신의 꿈을 소개하는 내용(19-27), 그 꿈이 왕에게 성취된 사실(28-37)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자신의 위치로 교만하면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되고, 회개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37).”
꿈의 성격이 세상 전체의 미래에 관한 계시다. 이는 왕 자신의 미래에 관한 계시이기도 하다. 꿈의 배경은 큰 신상(2:31)에서 나무(4:10)로 바뀌었다. 꿈의 실현은 왕을 향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약속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꿈을 통한 교훈은 세상 나라의 허구성과 하나님 나라의 권위가 영원함을 알린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2:44).”
이를 비롯하여 깨우치는 것으로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4:26).” 이는 느부갓네살 왕 개인에게 집중되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방인에게도 미칠 것을 암시하고, 이 세상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밝힌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과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결국 이제까지의 내용 속에서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체험이 주로 주변적인 사건과 관련된 간접적인 체험이었다면 오늘은 느부갓네살 왕 개인으로 직접적인 성격이라 하겠다. 곧 막연하게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이 모든 내용은 직접적이다. 그러므로 드러나는 사상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내용이고, 개인적으로 그 사실이 입증된다는 것이다.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17).”
그리하여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25).” 이를 직접 경험한 후에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32).” 이와 같이 반복적으로 증거한다.
이러한 세계는 예레미야의 예언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렘 27:15).” 이로써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꾸며낼 수 없고 거짓으로 증거할 수 없다.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16-17).”
당면하는 현실이 설령 비극적이라 하여 희망적인 메시지만이 능사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역사와 그 뜻을 전하여야지 섣불리 희망을 전하는 것은 옳지 않아서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18).” 당장의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할 수 없다.
이는 욥의 고백에서도 나타난다.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욥 12:13-14).” 곧 우리의 어떤 어려움이라도 주가 뜻에 따라 이루시는 것이라, “그가 물을 막으신즉 곧 마르고 물을 보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 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15-25).” 이러한 현실이 더러 달갑지 않은 일이라도 주가 이루시는 뜻이 있다.
하여,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시 145:6-7).
누가 오랫동안 이단에 속해 있었다. 저의 외로움과 힘든 처지를 저들은 위로하였고 보살피며, 성경을 왜곡하여 전하였다. 그때는 그저 사람이 그리웠고 저들의 관심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그 영혼은 어딘가 공허하였다. 그러다 우연처럼 나와 연락이 닿았고 그곳은 이단으로 한 교주의 그릇된 설파와 결국은 여신도 성추행으로 구속까지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수십 년을 다녔던 그 교회를 떠났고 집 근처 올바른 교회로 인도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저들의 관심은 지속적이었고, 그 가운데 한 여전도사는 어떤 사명감으로인지 인간적인 애정으로인지 알 수 없으나 오늘까지도 그 관계가 이어졌던 모양이다. 그는 내게 물었고 나는 단호하게 끊을 것을 당부하였다.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애매한 관계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어쩌고 하는 인정 때문이다. 이를 끊어내기까지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오늘 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세상 권세에 권위를 부여하시고, 교만하고 방자할 때 그의 위엄과 권세를 폐하기도 하심을 보이신다. 이를 오늘 이방 나라의 왕 느부갓네살이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37).”
곧 이 땅의 권세나 어떤 만남이나 그에 따른 관계가 자기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도 그 소유가 그에게 있지 않다. 어떤 일의 주체도 우리 스스로 자기 주도적으로 이루어가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권세나 삶의 영역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리이고 맡은 자로서의 청지기일 뿐이다. 심지어 오늘 나의 건강과 생명까지도 그러하다. 잠시 맡기심으로 이를 망각하고 교만하여질 때 하나님은 넘어뜨리시고 그 자리를 도로 찾으신다. 이 사실을 망각했던 느부갓네살은 7년 동안 정신병자가 되어 이리저리 방황하며 살았다. 하나님은 이처럼 절대자의 위치를 넘보는 인간의 반역을 간과하지 않으신다. 아울러 아직 살아서 깨닫고 돌이킬 때, 즉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받아주신다는 것도 오늘 말씀은 보여주신다.
어제 저 누구와의 통화에서 이를 전달하고 싶었고, 혹여 그 마음에 그이가 여자여서 미련이 있는지? 사람으로 외로워서 그러한 것인지? 다소 직설적으로 물었다. 어떠하든지 만일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하라고 일렀다. 먼저 그이로 하여금 이단을 떠나라는 것과 서로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할 것, 이도저도 아닌 막연한 관계로 공연히 감정이 소모되고 어쩌다 또 정욕의 죄를 짓지 않도록…. 나는 저의 안타까운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더는 자세히 언급하는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아닌 건 아닌 것’이어야 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가령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던 선생이 있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으로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교사가 되었고, 이내 공교육에 환멸하여 모 종합통신의 기자가 되었다. 그렇게 십 수 년 나는 선생을 따랐고 모든 것을 공유하며 지냈다. 처음 선생은 모 교회 청년부에서 영어성경공부를 지도하였고,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서로의 신앙도 일치하였다. 그러면서 저는 점점 다신론주의자가 되었고 급기야 우리나라 문화콘텐츠에 매료되어 기자 생활을 접고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한국 콘텐츠 산업에 전념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저는 나와 가까운 만큼 그러한 결정을 ‘고립’으로 여겨 누구보다 반대하였다. 어느 순간 나는 저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연락을 차단하기까지 하였다.
늘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사랑하던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나의 젊은 날에 저들과의 교제와 그와 같은 모임들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람을 더 사랑하는 시간들을 따라다녔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지속적이었고 기어이 나를 끌어내어 따로 세우셨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6-7).” 그러므로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 1:5-7).”
그렇게 요즘은 딸애 결혼을 앞두고 새삼 예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려니까, 하는 게 나은지 어떤지… 선생에게는 연락을 드려야 하는지 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어느새 한 달도 안 남았다. 나는 오늘 느부갓네살 왕의 간증 같은 본문이 감동적이다. 저는 말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2-3).” 하는 이와 같은 간증이 또는 고백이 이방 나라 왕의 입에서 나온 것이 기쁘다.
그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가서 전하였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 4:28-30).” 우리들 또한 바울과 같이 증거하는 삶으로 산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8-19).” 누구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삶은 허망하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막 8:36-37).”
이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시 39:6-7, 49:17).
이에 오늘 느부갓네살 왕의 진술은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방의 나라에서 그것도 왕의 신분으로 저가 고백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2).” 하는 말과 함께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3).” 이와 같은 찬송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란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37).”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나의 판단과 기준을 뒤로 하고, 나의 아집과 교만을 삼가며,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1).
하는 시편의 평안함으로,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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