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현. 2026. 3. 21. 04:25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바벨론 제국이 멸망한 후 메대의 다리오 왕에게까지 총애를 받게 된 다니엘의 지혜와 총명은 물론 그의 신앙이 입증되는 내용이다. 다니엘에 대하여 시기하며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빌미삼아 ‘황제 숭배’ 예식을 통해 다니엘을 제거하려 음모를 꾸몄다. 이를 다 알면서도 다니엘은 개의치 않고 평소대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였다.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

 

이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성향과 부패와 권력에 대한 야욕을 볼 수 있다. 이를 허위로 부풀려 왕 앞에 요구하고, 왕은 스스로도 조서에 도장을 찍음으로 그 권위를 파기할 수 없었다. 서로의 입장은 달라도 그 허울과 기만과 잔인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악의가 드러난다. 당시 다니엘은 총리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1-2).” 다리오 왕은 메대의 마지막 왕으로 아하수에르의 아들이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9:1).” 그는 고레스가 배려한 바벨론에서 2년간의 통치를 끝으로 죽게 된다.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5:31).”

 

다리오가 즉위하면서 가장 먼저 행해야 할 일은 바벨론 지역에 대한 행정 조직을 정비하는 일이었다. 당시 바벨론은 ‘120방백’의 통치를 받는 몇 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었다. 그 구역들은 다시 각각의 소구역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120방백은 소구역들을 치리하던 지방 장관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책무는 주로 세금을 징수하고 각 방백들을 총괄하고 지휘하였다. 즉 왕의 국고에 대한 재정상의 관리를 통해 국가의 통치 기강을 세우는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세 명의 총리가 있어 메대의 철저한 행정 조직과 엄격한 국고 관리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다니엘은 그 중 한 사람으로 ‘마음이 민첩하다’고 표현하였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3).” 이는 탁월한 영적 능력을 가리킨다. 앞서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5:12).” 이와 같이 다니엘은 정부의 모든 관료들 중에 탁월한 존재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능력 때문이었다.

 

그가 지속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견지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하였음을 동시에 알 수 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이러한 사실은 다니엘의 세 친구의 경우(3:8)와 같이 다른 동관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빌미가 되었다. 오늘의 이 사달이 난 것도 권력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시기하여 생긴 일이다.

 

다니엘은 꿈을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이방에 전달하는 선지자였다. 본문은 그런 다니엘의 시련을 소개함으로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를 동시에 점검하게 한다. 우리는 계시의 말씀으로 이 예언의 현장을 사는 사람들이다. 현재 모든 일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전개되는 것을 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을 들먹이며 온갖 거짓을 선동한다. 저들은 극우나 극좌로 분리되어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고 사회 전역에 뿌리내렸다. 누가 천사가 와서 자신에게 말하였다 하고, 누구는 자신을 이 시대에 있어 하나님의 대언자라 한다. 곧 저들은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하심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뿐인가?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그야말로 개인방송들이 날뛰고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다. 이에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하셨다.

 

그리하여 오늘도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전쟁이 일어나고 서로를 끌어들여 서로의 패권다툼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그런 가운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하심 같이 다방면으로 우리 삶은 공격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는 더욱 더 그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하면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이는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그 모든 것에 우상숭배와 악령들의 형상이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개발되고 재생산되어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28).” 점점 더 사람들은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29-31).”

 

이러한 현상이 오늘의 현실이다. 곧 우리는 다니엘과 같이 영적으로 바로 서지 않으면 언제라도 이와 같은 문화에 휩쓸려 갈 것이다. 오늘은 한 아이돌그룹의 공연이 광화문에서 열린다고 하는데, 이 한 번의 공연으로 수조 원의 수익이 창출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저편에서는 전쟁으로 무참히 사람들이 죽어가고, 또 우리나라 어디에서는 공장화재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한편에서는 수십만의 인파가 몰리는 대공연이 연출된다고 하니…. 그런 가운데서도 다니엘과 같이 우리는 주 앞에 의연할 수 있을까?

 

저는 전날에 하던 대로 기도하였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 곧 다니엘의 신앙은 이방 세계 속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덩달아서 부화뇌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저는 성실하였고 정직하였다. 오죽하면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4).” 하여 저들은 율법을 찾아봤을 것이고, 왕을 충동하여 한시적으로라도 왕의 신상 외에 절하지 못하게 하는 꼼수를 썼던 것이다.

 

이전에는 느부갓네살 왕 당시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러한 고초를 겪었다. 이어 오늘은 다리오 왕 때 다니엘이 이러한 시험을 겪었다. 이후는 꿈이나 환상 등 묵시적인 계시가 주를 이루며 다니엘의 활동을 전개한다. 본문은 다리오 왕이 어인을 찍는 과정을 묘사하며(1-9), 다니엘이 곤경처하게 되고(10-18), 사자굴에 던져지지만 구원하심을 받는다(19-28). 곧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악인에 대한 단호한 심판이 전개된다. 다리오 왕은 벨사살이 죽은 후 바벨론을 쓰러뜨린 페르시아(바사)의 대제였던 고레스이다.

 

멸망을 앞두고 있던 바벨론이나 이를 정복하고 확장하는 페르시아(바사) 왕국이나 결국은 멸망을 전개로 이어진다. 곧 우리는 나름 이와 같은 역사의 굴레와 오늘의 현상을 안다. 그만큼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나이가 들면서도 우리 몸의 증상이 이를 입증하듯 하루가 다른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시절의 후대가 형성되는데, 이상할 정도로 우리 곁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다.

 

누가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한 뒤 유책사유를 전부인에게 말을 돌리는데 그 짓도 가관이다. 그러면서 하고 사는 일이란 게 성인오락실이나 성인노래방을 운영한다는데 그의 두 자식들은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듯 속수무책이라. 큰 애는 서울에 혼자 살며 취업준비로 벌써 몇 년째 돈만 까먹고 있다하고, 작은 애는 간신히 고등학교 졸업장은 땄는데 하루 일과가 게임에 중독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혼자 신앙을 지키며 두 아이를 건사하느라 식당 일을 하며 사는 이가 사는 게 고달플 따름이라.

 

또한 우리 집으로 오는 ‘똥싸개’는 결국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사고를 친다. 같이 놀다 그랬다는데 다른 애 다리를 부러뜨렸고, 수업 중에 혼잣말과 헛소리를 하여서 어제는 그 엄마가 학교로 불려갔던 모양이다. 아이가 교사들을 향해 뭐라 궁싯거리며 말도 안 되는 소릴 했던 모양인데, 특히 여교사들이 기겁을 하고 아이의 수업을 거부한다고 했다. 자세히 그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그러니 아내도 아이와 수업할 때면 징그럽다고 할 정도이니, 다들 정신과치료를 권하고 심지어 학교에서는 특수아동으로 분류하여 특수반으로 재편성을 하려고 하는데… 아이엄마가 전화로 그런저런 말을 하며 운다. 그러니 아내도 선뜻 뭐라 할 수 없고 그만두지도 못하고.

 

이와 같은 일이 단편적이라, 다들 남의 이야기 하듯 하나 실은 가정마다 앓고 있는 영적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으로 힘겨워하는 이나, 돈돈거리며 사방팔방 돈 되는 일이면 기웃거리며 다니는 이나, 악악거리면서도 남들 보기에는 대기업에 다닌다고 좋아해야 할지… 서로가 속 모르는 소리로 남의 일에 혀를 끌끌 차지만 실상은 다 본인들 이야기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오늘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기류를 느끼며 사는 일이란 주를 더욱 경외함으로 의연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붙드신다. 오늘 다니엘은 이를 증명하듯 의연하였다. 비록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던 요나의 경우에도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7).” 주가 예비하셨다. 이를 바울은 누구보다 잘 알았고, 하여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9).”

 

곧 오늘 우리 삶은 거저 얻은 것이나 값진 것이다. 우리가 오늘도 다니엘과 같이 자신의 신앙을 견지할 수 있는 것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럴 수 있는 것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늘 나의 이 마음은 요동치듯 염려와 근심이 치받듯 일어나지만, 세상이 아무리 어떠하고 우리 삶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오히려 이 어려움이 우리로 단단하게 한다. 주를 더욱 바라게 한다. 그러므로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잠 29:27).”

 

우리가 의인인 것은 하나님을 바라고 구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그런 점에 있어 대체로 그 가족이나 부모는 먼저 이를 부정한다. 그럴 수 있다는 말로 누군가의 동조와 지지를 받기 원한다. 그러나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그래서 불가능하다. 아내는 어쩌면 좋은가? 하고 아이 문제로 뭐라 말해줘야 할까 물었다. 나는 저를 위로하되 냉정하게 평소 아이 상태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미 아이의 지능도 낮고, 장애판정을 받으라는 기관의 연락도 있었는데도 한사코 그 엄마는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채 한 달이 안 돼서 교사들이 수업을 못하겠다고 할 정도니까….

 

그 엄마의 심정은 이해하나 또한 저들도 다를 게 없다. 전에 한 아이도 지능이 낮아 지적장애 판정을 놓고, 나는 이를 인정하라고 권하였고 저는 나마저 그렇게 말한다면서 서운해 하였다. 그리고는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지적장애판정과 특수반이나 학교로 재배정을 받았고, 그 아이는 더욱이 조현증상까지 진단을 받아 약물을 복용해야 했다. 저이는 울며 하소연을 하다 장애등급에 따라 어떤 수당이 어떻다는데… 하는 것을 어찌 신청하는가 하는 것을 물어서 짐짓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러니 보면 아이들이 가장 취약한 영혼이라. 전쟁 중에도 아이들의 피해가 먼저 속출하듯 현실의 악한 영들로 젊은 세대들이 먼저 병들어간다.

 

우린 늘 세상과 하나님 중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는 셈이다. 오늘 다니엘도 선택해야 했다. 왕의 조서는 번복될 수 없고 자신은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라 알고 있었다. 자, 너는 어쩔 것인가? 하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곧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19-20).”

 

이에,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시 119:30).

 

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오늘도 이와 같은 묵상을 통해 나 자신에게 먼저 말씀을 선포한다. 말씀이 선포되지 않으면 염려와 근심이 들끓듯 일어난다. 그러므로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시 55:17-18).

 

우리의 승리는 날마다 매순간마다 요구된다. 이에 서로가 속엣 얘길 나눌 수 있고 이를 털어놓고 기도로 하나 됨이 귀하다. 늘 나의 카톡에는 누가 어떤 일로 기도를 부탁한다. 누구의 어떤 사연을 듣고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라. 이와 같은 성도의 연합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오늘도 이에 따라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