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히브리서 2장 / 큰 구원

하현. 2026. 3. 19. 15:40

260322 주일

 

히브리서 2장

큰 구원

 

 

히 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 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히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들어가는 말

 

‘구원’은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구하는, 우리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그 기쁘신 뜻대로 이루어 가시는 ‘큰 구원’이다. 곧 이 땅의 필요를 초월하는 ‘영원한 생명의 것’으로 ‘더 좋은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바보 같았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39-40).” 이에 히브리서는 구약의 증언들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논증한다(1:1-4:13).

 

곧 예수는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시다(1:4-14). 천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신(神) 같다. 선지자들과 제사장의 권위도 그러하다. 오늘은 이 복음에 있어 우리가 주의할 것(2:1-4)과 예수 그리스도 곧 성자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논증한다(5-13). 예수님은 우리 죄를 속량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14-18). 오늘 본문을 다시 두 단락으로 나누면, 첫째, 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말씀을 등한히 여길 때 초래되는 ‘신앙의 표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1-4). 둘째, 우리 죄를 속량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예수께서 몸소 시험을 받으셨고, 우리가 시험 받을 때 능히 도우실 것을 강조한다(5-18). 이를 히브리서 전체가 증거하고 있다.

 

<우리 신앙이 표류하는 것에 대한 경고>

 

1) 복음에서 떠나 표류하는 신앙의 위험성(1-4).

2) 불신앙에 대한 위험성(3:7-4:13).

3) 미성숙함으로 인한 위험성(5:11-6:20).

4) 영적 침체에 따른 위험성(10:26-39).

5) 하나님을 거부하는 데 따른 위험성(12:25-29).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논증>

 

1) 그리스도의 신적인 본성에 대하여(1:1-14).

2) 그리스도의 인성과 뛰어나신 인격에 대하여(2:5-3:6).

3)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하여(4:14-5:10, 7:1-28).

4)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8:1-10:18).

5) 우리 믿음의 정의와 모범에 대하여(11:1-40).

 

-큰 구원

오늘 주제는 ‘큰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3).” 곧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이 땅에서 필요로 하는 구원이 있겠으나 이는 일시적인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사 우리 죄를 속량하신 이유는 영원한 것, 곧 생명의 나라에서 얻어야 할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다.

 

-구원의 창시자

주께서는 우리가 시험 받아 고난당하는 것을 도우실 것을 약속한다.“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10).” 이것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18).” 그러므로 ‘큰 구원’을 입은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신앙을 잃고 표류할 수 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시험을 당하셨고, 그러므로 우리를 시험에서 도우신다.

 

본문이해

 

1. 신앙의 표류에 따른 경고(1-4).

 

1장 후반부(1:4-14)에서 천사와 비교함으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증하였다. 히브리서는 이제 다섯 가지 훈계 가운데 첫 번째는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완성이 되신 그리스도’이심으로, 우리가 이를 저버릴 때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을 받아 떠내려 갈 수 있다. 본문은 이 계시의 완성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계시하였다. 이 경고의 직접적인 대상은 ‘유대인 성도들’이었다. 저들은 여전히 구약 시대의 율법과 제사를 고집하였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에게 주신 숭고한 복음을 저버리는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었다.

 

1) 미혹하는 영: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1).” 하고 경고한다. 예수님도 이르시길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이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2) 세상 염려와 근심으로: 이에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은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고통으로 ‘흘러 떠내려갈 수 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3).” 여기서 <큰 구원>이란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3) <큰 구원>은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사랑이다: 율법의 구원 사역과 대조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구원>은 <영생>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여기서 사랑은 자기를 내어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저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4) 구원의 기쁨을 상실한 사람들: 이에 우리는 ‘흘러 떠내려갈까’ 주의해야 한다. 이는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하여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배’와 같다. ‘손가락에서 빠져나간 반지’ 같고, ‘깨진 항아리에서 새어나오는 물’과 같다. 복음을 듣고도 여러 사정에 의해 회피한다. 은혜로 살면서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으로 사는 게 힘들고 어려워서 세상으로 떠내려가는 성도들이 수두룩하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안 믿는 자들과 같이 ‘떠내려 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아간다. 문화나 유행에 휘말려 구원의 기쁨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마치 롯과 같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상에서 이미 멸망하기로 정해진 자들과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을 따라 산다. 이는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 2:7-8).” 이러한 자들은 출애굽을 하고 광야에서 불순종한 자들이다. 가나안에 들어가 저들 이방 민족의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선민들이다.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영영 구원의 기쁨을 상실한다.

 

5) 주의 사랑을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 구원의 기쁨을 상실하여 침체된 영혼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이로써 하나님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망각하고 세상의 여러 문화에 흡수되어 주의 사랑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자들이다.

 

※ 우리의 ‘마음 밭 비유’

 

① ‘돌밭에 떨어진 씨앗(마 13:6)’: 이는 자기 아집과 자기 판단으로 그 속에 ‘돌 같은 불신’이 있어서, 흙이 얕은 곳에서는 싹이 나오다 해가 쬐면 뿌리를 내리지 못해 금세 말라 죽는 것과 같은 신앙이다. ②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7)’: 신앙으로 얼마간 자라다가도 염려와 근심으로 금세 막혀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③ ‘길 가에 떨어진 씨앗(4)’: 말씀이 그대로 있어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사탄이 채간다. 곧 길가 밭 같은 마음은 믿고 안 믿고 가리지 않고, 온갖 사람들이 그 마음을 밟고 다녀서 밭이 언제부터 길이 되었다! 돌은 아집이고, 가시는 염려이다. 모두가 복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여 신앙이 금세 시들거나 수십 년이 지나도록 늘 그대로 자라지 못한다. 이로써 우리의 신앙이 흘러 떠내려가게 한다.

 

2. 비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5-18)

 

비하(卑下)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시편 8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심’을 말한다. 곧 그리스도의 비하와 <큰 구원>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17).” 곧 흠이 없으신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음으로 우리의 시험 받아 고난당하는 것을 도우신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이 사람이 되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다.

 

2) 당신의 신실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17).” 이는 신실하신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 22:42).”

 

3)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시험당할 때 능히 도우신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18).”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날 물질만능주의 사고와 쾌락주의 물결에서도 성도로서의 경건함과 신실함을 지킬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주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간구하는 것이다.

 

나오는 말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정죄함을 받아 영원히 죽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바랄 때,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11)” 하였는데 이는 곧 우리도 ‘거룩하게 하심을 입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를 우리의 ‘믿음의 성화’라 하였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신득의’ 곧 ‘칭의’의 교리를 정립했다. 곧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입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화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의 신분’이다.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도’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이다. 오늘을 살면서 우리는 비록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하는 것 같이, 이를 위해 징계도 필연적이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받았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변화된 삶이다. 더러는 고난과 역경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우리의 성화를 이루어가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하여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 10:3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