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단 7:17-18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34:1
사자굴에서 구원받은 후 다니엘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6:28).” 동시에 하나님은 만방에 계시되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26).” 앞서 6장까지는 주로 다니엘이 이방 나라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중심으로 그 내용이 전개되었다.
본문은 이제 다니엘이 직접 하나님께 ‘받은 꿈’을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다니엘이 ‘꿈의 해석’을 했으나 이제는 직접 ‘꿈을 꾸는 자’로 바뀌었다. 이전의 꿈들과 본장에 나오는 꿈들이 모두 ‘하나님의 계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나님의 역사를 꿈의 형태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네 짐승에 대한 환상을 묘사하고(1-14), 이 환상에 대한 해석을 묘사하고 있다(15-28).
이는 네 왕국에 대한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의 내용(2장)과 연결된다. 이 네 나라에 대한 계시는 신상으로 구성되었던 네 나라가 모두 파멸당한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는 반면, 본문은 난폭하고 잔인한 네 짐승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또 2장은 메시야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긴 시간, 메시야 시대를 초점으로 하고 있지만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집중하고 있다. 이 두 부분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2장의 상징물은 큰 신상의 형태로 묘사되는 네 짐승이었고(2:31), 오늘 본문은 네 짐승 자체이다(7:3). 각각의 주제는 세상 나라들의 멸망이다(2:44, 45, 7:26). 2장에서는 그에 따른 심판자 하나님(2:44)을 강조하고, 오늘 본문은 인자와 항상 계신 이를 강조한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7:13).” 본문에서 밝히는 네 짐승은 사자와 독수리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또 보니(4).”
그리고 곰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5).” 표범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6).” 등으로 세상 역사의 흐름과 적그리스도의 출현,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다니엘의 꿈을 통하여 세계 역사의 변화를 예언하고, 다니엘이 목격한 네 짐승으로 세계를 주도할 네 제국을 상징한다. 이 세상 나라들은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으며, 재림으로 인하여 완전히 붕괴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신다. 이 땅에 존재했던 막강한 국가들이 메시야의 재림으로 완전히 패망하고 오직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네 강대국으로 바벨론과 메대와 바사, 헬라, 로마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나타낸다. 이는 세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 앞에 소멸될 것이다. 오늘 3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할 때 이는 소란한 세상 역사 속에 태동하고 소멸하는 4개의 제국들을 가리킨다. 결국 이 4개의 제국은 상징적으로 ‘인본주의적인 세상’을 상징한다. 여기서 짐승은 인본주의의 근본을 가진 세상 역사의 잔악성과 폭력성이 하나님 나라의 특성과 비교해서 야수와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른 성경에서 흔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열방’에 대해 ‘리워야단’, 용, 뱀 등으로 묘사되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사 27:4, 51:9-10).”
또는 악어와 독수리로도 나타났다.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겔 29:3).” 이에 오늘 본문에서 네 짐승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언급된다.
첫째는 날개 달린 사자의 모습을 한 짐승이다. 니느웨와 바벨론의 유적지에서 이와 같은 형상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곧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을 상징한다. 사자와 독수리는 지상과 공중의 짐승들 중 왕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유추된 표현이다. 역대의 세계 제국들 중에서 특히 바벨론의 위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징은 2장의 신상에서 ‘금 머리’가 곧 바벨론을 상징한 것과 일치한다. 당시 느부갓네살 역시 사자와 독수리로 비유된 바 있다. “보라 사자가 요단 강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렘 49:19).”
그런데 ‘그 날개가 뽑혔고’ 더욱이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하는 본문의 진술은 4장과 연관시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정신병을 얻어 그의 지위와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를 다시 ‘사람처럼’ 느부갓네살의 정신병이 회복되고 이성을 되찾은 것으로도 이해된다. 그러나 본문은 이렇듯 한 개인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그 제국 자체에 대한 환상이라는 점에서 왕과 제국의 필연적인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곧 느부갓네살의 왕적 위상의 상실과 동시에 바벨론 제국의 영광과 국력의 상실이 함께 연계된 것이다. 따라서 ‘사람처럼,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하는 부분은 더 이상 탁월한 위엄과 힘을 가진 사자가 아니라 비천하고 낮아진 인간과 같아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둘째는 곰과 같은데, 곰은 사자 다음으로 힘이 센 짐승으로 여겨진다. 이는 바벨론의 뒤를 이어 대제국을 형성하게 되는 메대와 바사 제국을 상징한다. 이때 ‘몸 한편을 들었고,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할 때, 몸 한편을 들었다는 것은 메대와 바사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제국에서 바사(페르시아) 제국으로 단일화 될 것을 표현한다.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다’는 것은 단일화 된 바사 제국의 고레스와 캄비세스가 행한 일련의 정복을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주전 546년에 리디아와 539년에 바벨론과 525년에 애굽을 정복하였다. 그렇게 해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는 의미가 이해된다.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5).” 이는 세 나라에 대한 완전하고도 철저한 정복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6).” 할 때 표범은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 제국을 의미한다. 이를 표범으로 비유한 이유는, 비록 사자 같은 위엄이나 곰과 같은 힘은 가지지 않았으나 그들의 약탈과 신속함이 위의 두 짐승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곧 헬라가 특유의 기동력으로 신속하게 정복을 수행한 것을 의미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느부갓네살과 같은 왕적인 위엄은 없다. 그러나 정복에 있어서는 신속하였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잔인하였다. 그것으로 불과 13년 만에(주전 336-323) 세계적인 대제국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으며’ 하는데, 여기서 ‘네 개의 머리’는 알렉산더 사후에 분할되는 네 개의 나라 즉 안티파터와 카산더의 헬라와 마게도냐, 리시마쿠스의 트라케와 소아시아, 소아시아와 팔레스틴을 제외한 셀류쿠스의 아시아(시리아), 톨레미의 애굽과 팔레스틴을 의미한다.
한편 ‘권세를 받았으니’ 할 때 ‘권세’는 ‘지배하다, 통치하다’란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 세상에 대한 지배권과 통치권을 의미하는 것이다. 2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할 때 다니엘은 이를 언급하였고, “왕을 뒤이어 왕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39).” 이 네 개의 나라가 각각의 강력한 제국이 될 것임을 암시하였다. 이렇게 해서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7:7).”
이는 곧 일반적인 짐승의 묘사와 달리 넷째 짐승에 대한 언급으로 이는 로마 제국을 상징한다. 로마 제국이 특별한 모습의 짐승으로 묘사된 것은 그가 가진 무서운 힘과 파괴력, 잔혹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제국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쇠가 된 큰 이’는 로마 제국을 암시한 2장의 ‘신상의 철로 된 다리’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그의 강력함과 파괴력, 정복욕을 상징하였다. 한편 ‘그 나머지’는 이전 제국들의 침략에도 살아남은 나라들을 가리킨다.
‘또 열 뿔이 있더라.’ 하심은 2장에서 신상에 관한 환상 중에 열 개의 발가락에 상응하는 부분으로, 성경의 표현에서 ‘뿔’은 힘의 상징이고, 열 개의 발가락은 로마 제국을 기점으로 태동될 수많은 왕이나 제국을 가리킨다. 이는 역사적으로 로마시대부터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때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 본문에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7:8).” 하는 대목은 인간적인 성정과 지혜(사람의 눈, 입이 있어), 그리고 사탄에게서 부여받은 능력과 권세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적그리스도적인 인물과 문화를 상징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르시길,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5).” 이에 대해 바울 사도도 이르길,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3-4).” 하는 말씀으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유추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더러 교회의 목사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사람들 위에 굴림 하는 격이다. 어느 진영을 떠나서 특히 대형교회의 경우가 이렇듯 성직자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세상 권세를 누리는 것에서 환멸을 느낀다. 이단과 사이비종파의 교주와 같은 경우는 아예 대놓고 자신들을 재림주니, 예수니, 하나님으로 떠받들어지는 경우가 아예 뚜렷하여 경계하기 쉽다. 또한 문화라는 이름으로 온 세상을 열광하게 하는 오늘 날의 교류가 더욱이 그러하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인본주의적인 사상을 내세우며 ‘국민’으로 굴림 되고 추앙되는 자아의 실현이 오늘 날 모든 사회의 이상과 현실이 되었다. 이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7-10).”
그리하여,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계 13:4-5).” 하여 우리는 오늘 날 그 절정의 순간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6).” 하는 것 같이 안 믿는 자들은 물론 믿는 자들 역시 교회와 성도에 환멸을 느껴 스스로들 거리를 두고 교회를 다니거나 신앙을 이어간다.
그렇듯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7-8).” 하는 날들의 한 표징이 아닐까? 나는 어제 ‘광화문 공연’과 그에 열광하여 전 세계에서 밀려온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저렇듯 열광하고 난리치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 싶은데, 이런 소리가 오히려 이상하고 과도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느덧 세상에 물든 우리의 인식이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열광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 살고 보자는 식으로, 개처럼 벌어도 정승처럼 쓰면 된다는 식으로… 우리의 사고는 은연중에 이 땅의 복락에 안주하고 있다.
오늘 이 다니엘의 환상과 그 해석은 묵상이 깊어질수록 오늘을 목도하게 된다. 네 짐승과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어 믿는 자들 또한 무뎌지고 굳어져서 ‘그럴 수 있는, 그래도 되는, 그게 뭐?’ 하는 정도의 판단과 허용으로 나의 이러한 묵상을 오히려 느닷없다고 여길 수 있겠다. 무슨 신상을 구입하려고 며칠 전부터 길가에 진을 치고 줄을 서는 사람들과 어제와 같이 공연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몰려오기도 하는… 지구 저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서로가 아우성치고, 같은 나라 어느 도시에서는 화재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고, 그런 가운데 전쟁 당사국이 월드컵 축구에 뛰네 마네 하는 보도를 보면서 나는 다만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교회 이전을 앞두고 단 돈 몇 백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야 하는 현실에서 전쟁 중에도 주식이 얼마나 올랐네 내렸네 하는 뉴스를 보면서… 나의 묵상은 잘못 된 것일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말씀과 역사와 오늘의 현실에서 중첩되는 사실을 보면서도 이것이 정말 그러한가? 하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 문득 노아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여전히 화창하고 모두가 잘만 살아가는 세상에서 저는 묵묵히 나무를 베고 방주를 지으면서 오늘의 나처럼 막연하여 이상해하지 않았을까? 40년을 미디안에 숨어서 은둔생활을 하던 모세가 느닷없이 애굽으로 가라 하실 때 그 심정은 또 어땠을까? 오늘 본문을 읽고 역사적으로 그러했고 오늘에 그러한 것은 알겠는데, 이걸 어찌 이해해야 할지… 나의 미련하고 아둔함으로 주 앞에 엎드린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34:1).
'깊은 밤' 같은 오늘 이 현실에서 우리는 성전에 서 있는가? 그런 우리에게,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2).
하심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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