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단 8:15-17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시 135:13-14
다니엘서의 핵심은 장래에 대한 환상의 글이다. 그 가운데 2장에서의 환상은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갈등이 어떻게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였다. 어제 7장에서의 환상은 이 세상 나라가 누구에 의해 심판받을 것인가를 집중 묘사하였다. 즉 2장이 심판의 목적을 밝히고, 7장은 심판의 주체를 묘사하였다. 2장에서는 세상 세력을 금 신상(2:31)으로 계시하였고, 7장에서는 네 짐승으로 계시함으로 그 잔인함과 포악함을 보여주었다. 이에 반하여 오늘 본문은 세상 세력을 숫양과 숫염소로 묘사함으로 제국의 운명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할 가혹한 핍박과 시련을 계시하고 있다. 7장에서 나타난 ‘뿔의 활동’이 본장에서 계속 나타나고 동일하게 묵시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곧 7장에 나타난 환상의 일부분을 확대 부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본장은 두 뿔 가진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을 통해 메대, 바사 제국과 그리스 제국의 운명을 보여주고, 작은 뿔로 비유된 왕의 유대교 박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역사적으로 당할 시련을 예시하고 있다. 7장의 구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환상의 내용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는 상징적인 환상과 해석적인 환상으로 구분된다. 본문은 ‘환상’이라는 표현으로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환상 후 벨사살 왕 제 삼 년에 다시 한 환상이 나타나니라(1).” 하는 것부터 여러 번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환상은 묵시적인 이상으로 처음 다니엘이 환상을 본 후 2년이 뒤에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내용의 기록이다. 여기서 이를 전하는 이가 천사 가브리엘인 것을 분명히 한다.
“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15-17).”
다니엘은 특별히 이 환상의 해석자인 천사 가브리엘의 신적 권위를 부각시켰다. 이는 곧 이 계시의 진실성과 역사적 성격과 예언 성취의 신속성을 보여준다. 곧 가브리엘은 ‘사람 모양’ 같이 나타났다. 이는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9:21).” 하며 그의 사역을 언급하였다. ‘그 사람 가브리엘’은 ‘강하다’, ‘큰 힘을 가지다’란 뜻에서 유추된 말로 ‘용사’란 의미다. 이는 곧 ‘하나님의 용사’란 뜻의 천사 가브리엘을 지칭한다. 이 장소는 ‘을래 강변’이었다.
그는 먼저 두 뿔을 가진 숫양이 나타나고, 그 뒤에 숫염소가 나와서 숫양을 짓밟고 강성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메대와 바사 제국이 그리스 제국의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당하는 모습의 예언이다. 또한 작은 뿔의 출현은 성전 제사를 폐지하고 성소를 더럽히며 하나님을 모독한 안티오쿠스 에피타네스의 박해 사건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미래의 환란에 대한 예언은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를 직접 섭리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본문은 다니엘의 생애 후반기이다. 곧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 원년(주전 553년경)부터 바사 제국의 고레스 3년(주전 536년) 사이에 직접 받은 환상이다. 향후 이 땅에 등장할 대제국들을 중심으로 하여 세상 끝 날, 선민을 위한 영원한 구원이 실현될 때까지 하나님의 역사 과정을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4대 묵시 중 하나이다. 그 중 하나는 앞서 7장이 향후 세계사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 포괄적인 내용을 담아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으로 묘사하였다. 오늘 8장에서는 두 번째 묵시로 숫양과 숫염소로 묵시를 다루고 있다. 여기는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고 등장할 메대와 바사 제국과 이후에 등장할 헬라 제국 및 헬라 제국이 분열하여 형성되는 네 왕국에 관한 묵시이다.
이는 느부갓네살이 환상에서 본 신상 중에 은으로 된 가슴과 팔 부분 및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 부분에 해당하는 묵시이자, 7장의 네 짐승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짐승인 곰과 표범에 대한 묵시로도 중첩되어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 8장의 묵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는 한 숫양과 숫염소의 연이은 득세와 숫염소의 한 작은 뿔의 신성 모독 환상을 보여준다(1-14). 이 묵시를 ‘을래 강변’에서 받았다. 다니엘의 이 두 번째 환상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 왕 3년에 있었다. 첫 번째 환상을 보고 2년 만이다. 이 환상을 본 엘람 지방 수산성 근처에 있는 ‘을래 강변’에서이다.
수산성은 바사 제국의 계절적 수도의 하나가 되는 곳인데, 당시 다니엘이 이곳에 머물게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환상 속에서 본 두 뿔을 가진 숫양의 득세에 대해, 두 뿔이 다 길었는데 그 중 한 뿔은 다른 한 뿔에 비해 길고 그 긴 뿔은 한쪽 뿔보다 나중에 난 것이다. 이러한 두 뿔을 가진 숫양은 세 방향 곧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받았다. 이 숫양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어 숫양은 자기 마음대로 강성할 수 있었다. 여기서 두 뿔 가진 숫양은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킨 메대와 바사 제국을 상징한다. 두 뿔 중 작은 뿔은 메대를 가리키고 긴 뿔은 메대를 병합시킨 바사 제국을 나타낸다.
그리고 서쪽으로부터 두 눈 사이에 아주 강력한 한 뿔을 가진 숫염소가 매우 크게 분노하여 두 뿔 가진 숫양을 쳐서 그 뿔들을 꺾고 마침내 숫양을 굴복시키는데, 이는 장차 도래할 헬라 제국을 가리킨다. 이 강한 뿔은 헬라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이다. 숫염소가 분노하여 숫양의 두 뿔을 꺾고 숫양을 짓밟은 것은 헬라 제국이 그 동안 헬라를 괴롭혀 오던 바사 제국에 대하여 강한 복수심으로 정복할 것을 의미한다. 또 숫염소의 이 강한 뿔이 꺾이고 대신 네 뿔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다는 것은 알렉산더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후 그의 휘하에 있던 네 장군들이 헬라 제국을 네 왕조로 분할하여 다스리게 될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네 뿔이 상정하는 알렉산더의 네 장군은 시리아를 다스린 셀류쿠스, 애굽과 팔레스틴을 다스린 톨레미, 마케도니아를 다스린 카싼더, 비두니아를 다스린 뤼시마쿠스이다.
이어서 숫염소의 네 뿔 중 한 뿔에서 한 작은 뿔이 발현하여 극도로 강성하며 신성 모독을 저지른 것에 대하여(9-12),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12).” 이는 우선 한 작은 뿔은 시리아의 셀류쿠스 왕조의 열 번째 왕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B.C. 175-163년)를 가리킨다. 그는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여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고, 우상과 부정한 짐승의 피로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폐하는 등 악행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내가 들은즉 한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그 말하는 이에게 묻되 환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13-14).” 여기서 천사들은 서로간의 문답을 통하여 작은 뿔 곧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악행이 이천삼백 주야 동안 지속될 것임을 계시하고 있다. 여기서 이천삼백 주야란 에피파네스가 유대인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를 죽인 주전 171년부터 마카비가 에피파네스를 몰아내고 성전을 정결케 하는 주전 165년 12월 25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우리는 본문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나는 세상의 인본주의 나라들은 끊임없이 명멸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을 모독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사실이 보여주듯 세상 역사 가운데 교회와 성도를 적대시하고 핍박할 악의 세력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란 것이다. 하지만 또 지적한 것처럼 그 둘은 실로 허망하여 제한적이고 한시적일 뿐이다. 결코 영원히 우리를 대적하지 못함을 상기시킨다. 여기서도 보면 바벨론에 끌려가 베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와 바사가 다스릴 때도 다니엘은 여전히 주의 사람으로 구별되이 충성하였다는 것이다. 곧 주님은 말씀하시되,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 24:45-46).”
이는,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시 101:6-8).
하는 다윗의 시에서 이미 밝혀진 바이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더욱 그를 가까이 하신다. 오늘 1절에서도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환상 후 벨사살 왕 제삼년에 다시 한 환상이 나타나니라(단 8:1).” 곧 저에게 이와 같은 환상을 보이신 것은 이미 바벨론의 국운이 기울었고, 이는 벨사살이 점점 더 타락하고 교만하여 허영을 일삼을 때였다(5장). 실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 중에 처하였을 때, 신앙으로 인해 시련과 고난에 직면해 있을 때, 점점 더 상황이 절망적으로 변모하고 암울해질 때, 더욱 더 친밀하게 가까이하신다는 것응 알게 한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 43:2-3).”
하시는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 1:9-10).” 하는 신앙으로 성장하게 하신다. 가령 어제는 예배 후에 교회를 이전하기로 가계약을 한 장소에 가서 좀 더 꼼꼼하게 실내를 살피고 구조를 구상하였다. 생각보다 작았고 막상 그 애매한 크기에 비해 월세와 관리비를 감당해야 할 것을 생각하며 걱정부터 들었다. 물론 교회로 하나님이 세우시고 이루실 것을 믿으면서도 현실에서는 늘 또 같은 염려와 근심이 먼저 든다. 사람 왕래가 잦은 주상복합건물이라 나의 남은 생에 있어 한 영혼이라도 주께서 뜻하신 바가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가 과연 이 협소한 곳에서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또 엄습하기도 했다.
이렇듯 나는 쉼 없이 갈등하고 회의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면서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오늘도 산다. 해놓은 것도 없고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서 더러는 불안하고 송구할 따름이라 조바심만 들다가도, 그래서도 나의 눈을 이 땅이 아닌 하늘에 두게 하신다는 것을 느낀다. 이번에는 아들이 나서서 적금을 깨고 앞장서 가계약을 걸어서, 나의 엉거주춤하던 태도에 발동을 걸었고, 형편을 생각하며 늘 그렇듯 그냥 쓰던 것, 남이 준 것, 주운 것들을 끌고 가려하자 제동을 걸었다. 2층이라 크게 돈이 드는 외벽의 간판이나 내부의 정문도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그 돈으로 예배 처소로 적합하게 내부 기물을 모두 새로 하라고 하였다. 옳은 말이라 반박은 못하고 나는 이런저런 염려와 동시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심정도 같이 들었다. 주가 하실 것이다. 하늘을 향해 시선을 두어야 산다.
우리를 가장 정직하게 하는 것은 '돈과 몸'이란 말이 있다. 하여 야고보 사도도 믿음이 있다면 행함은 당연한 것이하 했고, 행함에는 현실적으로 돈이 든다. 하물며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 일'에도 돈과 몸이 따르게 돼 있는데, 주의 일을 하면서는 돈과 몸을 사리면 어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마음으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하여 우리의 열심은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11:33-38).”
남들 보기에는 처량한 일일지 모르나(마침 저쪽 공실에서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대충 살펴도 수천만 원은 족히 들여 실내를 꾸미는 것 같아서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다), 주가 하실 일이라. 주의 교회다. 내 것이 아니다. 앞서 이 모든 역사의 주인 되시는 이가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데 하물며 주의 교회에 대하여, 이 부족한 종에 대하여… 주가 감당하고 책임지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이는 주가 하신 일이고, 주가 말씀하신 것이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사 45:23).”
하심을 붙들고,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하는 말씀으로 나는 아멘, 한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 135:1-3).
그렇게 나는 오늘도 주를 찬양할 뿐, 현실이 나로 이런저런 염려로 시달리게 하나,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6).
주는 주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실 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13-14).
그러할 때,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시는 말씀을 되뇌며,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
(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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