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단 10:19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오늘 본문은 다니엘서 마지막까지 이어질 마지막 환상의 시작이다. 이 환상을 통한 계시는 8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곧 바사 제국의 통치 때부터 세상 끝 날까지 세계 역사와 이스라엘의 미래가 예언된다. 그 전체 계시의 서막인 본장은 다니엘 환상의 배경과 메시야를 통한 환상의 전개로 이어진다. 바사 왕 고레스 삼 년의 일이다. 고레스는 옛 바사 지역의 왕 캄비세스 1세(B.C. 600-559)와 메대 왕 아스투아게스의 딸 만데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메대와 바사 제국을 통합해 강력한 페르시아 제국을 건립한 고레스 2세(B.C. 559-529)를 가리킨다.
그의 즉위 삼 년은 메대와 바사를 병합시켜 페르시아 제국의 공식적인 왕으로 즉위한 해(B.C. 536)로부터 3년이다. 곧 주전 534년 다니엘은 노령의 나이에 지방 한직으로 물러나 있었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1:21).” 이러한 배경에서 즉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10:1).” 하면서 한 ‘일’에 대하여 다니엘에게 드러나고 확실하게 알리어졌다는 것을 먼저 언급한다. 이어서 ‘한 사람’을 직접 대면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든다.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5).”
이 일, ‘큰 전쟁에 관한 것’으로 특별히 천사들의 사역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13, 21).” 곧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신속한 응답’이 지체된 이유가 설명된다. 바사국 군이 막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군(君)은 일반적인 왕을 가리키는 것과 달리 통치자, 지배자란 뜻으로 천사 미가엘에 대한 ‘군장(軍長)’이란 표현과 함께 영적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바사국 군은 페르시아 제국의 수호신에 해당하는 ‘악령의 세력’을 상징한다.
이를 바울 사도는 후에 에베소교회에 편지하여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하며 우리의 현실은 단순히 이 땅의 삶으로 규정되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이러한 사실은 신실한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수 있는 경우를 보여주며, 지속적이고 낙심치 않는 기도만이 확고한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중요한 원리를 제시해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 18:1).”
곧 모든 악의 세력은 동시에 하나님의 세력 아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악의 세력들이 잠시 동안 제한된 범위 내에서 활동하도록 허락하셨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욥 1:12, 2:6).” 곧 오늘 우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낙심하게 하는 권세가 아무리 악한 영에 의한 것이라 해도 이는 결국 하나님의 뜻 안에서일 뿐이다. 그렇듯 오늘 우리는 다니엘과 같이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하는 것 같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산다.
그럴 때면 우린 더욱 선명하게 ‘미가엘 천사의 도움’ 곧 성령으로 함께 하심을 누릴 수 있다. 곧 악한 영의 세력을 이긴 다음 바사 왕 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다니엘과 같다. 특별히 ‘바사국 왕들’이란 복수형의 표현을 통해 그 영향력이 당시 바사의 왕 고레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묵상할 수 있다. 곧 오늘의 어떤 일, 우리 영혼으로 상심하게 하는 것들은 이 땅에서 권세 잡은 것으로 전역사속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이 땅의 권세이다. 가령 우리의 늙음과 병듦도 그러하고 약함과 그때마다 드는 악한 마음도 그러하다. 이럴 때면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우므로’ 우리가 새 힘을 얻는다. 저는 천사장 미가엘이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유 1:9, 계 12:7).”
이에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단 10:21).” 하는데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온전하게 성취되는, 하나님의 포괄적이고 완전한 섭리와 계획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시편은,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 139:16-18).
이와 같이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오늘에 이르러 새로운 주의 일을 구상하며 교회 이전을 앞두고 있을 때에 새삼 감회가 새롭다. 여기에 나오는 ‘기록된 것’은 이미 확정된 것으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하여 오늘의 나에 대한 확고한 정체성이 드러난다. 오늘 이 본문은 앞으로 11장 이하에 기록되는 주의 섭리와 계획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먼저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다 이해가 된다. 나의 삶이 직선으로 그어져 여기까지 이어진 것 같으나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있었을 계획들이라, 오늘 여기 다니엘의 시대가 앞서 모세나 아브라함의 시대와도 중복되면서 ‘뫼비우스의 띠’ 같이 각각의 시대와 역사가 다른 듯하지만 같다. 이어서 다니엘의 슬픔과 그에 따른 행동은 그의 동족 유대 민족이 당할 고난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된다. 여기서 ‘세 이레’라는 시간적 범주의 ‘삼 주’는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2).”
곧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9:24).”
하심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국가적, 영적 구속을 이루실 기간인 ‘칠십 이레’ 곧 490년의 기간에 관한 언급의 한 축이다. 이 ‘칠십 이레의 환상’은 포로 귀환과 성전 중건, 그리스도의 성육신,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시되는 것이다. 여기서 일곱의 의미는 ‘한 주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늘 본문처럼(10:2), 때로는 1년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창 29:27).” 따라서 이 기간은 세계 역사와 종말론적인 사건들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하나님 나라로 성취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결될 나라의 비밀이다.
이때에,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이와 같이 당시 다니엘의 신분상 다니엘이 그의 일상의 음식들을 삼가 했다는 의미는 동족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가 거의 금식 상태에서 행해진 것으로 이해된다.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단 10:3).” 곧 자신의 안락과 일상을 포기하고 간절한 중보의 자세에서 ‘고난 떡’을 자처했다는 의미다. 이에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신 16:3).” 하신 말씀과 병행한다. 그래서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다니엘 기도회’를 열고 7일씩 세 이래 동안 각각의 기도회를 갖기도 한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삶이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갈등의 연속으로 그 원인과 성격은 늘 같다. 서로가 거스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하신 데 따른 결과이다. 곧 이 시대를 살면서 신앙적으로 아무런 갈등도 찔림도 망설임도 없이 살고 있다면 그것이 이상하다. 하여서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하시는 목적에 따른 것이다.
실상 우리가 어려운 일 없이 주를 찾기는 하던가? 어제도 통화 중에 교회가 너무 작은 게 아닌가? 하는 누구의 지적에 나는 순간 의기소침해지면서 불안도 들었다. 지금보다 작은 공간으로 옮기는 것인데 이곳에서보다 임대료나 관리비가 3, 40만원은 더 추가되는 셈이니까 부담이 아닌 게 아니다. 곧 저의 현실적인 지적에 나는 특유의 우유부단함으로 공연히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저에게 이어서 말하다 확신을 얻었다. 그곳은 역사(驛舍)로 연결되어 유동인구가 많고, 주상복합아파트 건물이라… 아침 6시에 새벽예배를 할 작정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 말이란 힘이 있어서 생각으로 가지고 있을 때와 달리 말이 되어 나오는 동시에 책임이 따른다. 나의 목회에 있어 이제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10여 년의 시간을 두고서 주께 기도하며 준비한다.
주는 나의 뭉그적거리는 성격을 아시고 미연에 이를 붙드시려 했던 것인지, 2주 전에 덜컥, 가계약으로 백만 원을 걸어놓게 하셨다. 그것도 내 능력이나 의지로가 아니라 같이 동행한 아들이 여전히 망설이는 나를 대신해서 그리 저지른 일이다. 그런 거 보면 이번에도 주가 강권하심으로 이끄시는 것을 알겠다. 늘 그렇게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다. 글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고 교회로 등록하는 데 있어서도 부끄럽지만 그야말로 얼결에 그리 된 것이다. 누구처럼 깊은 기도와 놀라운 응답으로 이뤄진 것이라기보다, 학기 중에 목회활동보고서를 제출해야 해서 그리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글방에서 예배를 시작하고 교회로 등록하는 데 있어 그 아이들이 등록교인으로 이름을 올렸었고, 이듬해에 우리 교회의 첫 세례교인들이 되었다. 다들 성인이 되고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는 그게 또 그리 되었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기까지도, 목사가 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나는 솔직히 내가 한 게 없는데 교회가 유지되고 그러는 동안 지나가는 영혼들이었다 해도 그때마다 필요로 했던 상한 영혼들이 다녀갔고 각자의 섬기는 교회에서 여전히 교제하기도 한다. 늘 상기하는 것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나는 족하다는 것이다. 누가 그 좁은 공간에서 교회로 오겠나? 하는 지적에도 나는 모른다, 하는 답으로 하나님이 하실 것을 의뢰할 뿐이다.
이에 어제오늘 다니엘의 기도에서,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단 10:19).”
하는 응답과 나의 자세를 생각한다. 매일 6시 새벽예배로 같이 묵상하고, 주일을 지키며, 상담하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곳으로는 공간이 채 10평도 안 되는 곳이라 해도 적당하였다. 한 영혼으로 주 앞에 돌이켜 바로 설 수 있다면…. 어제 정오쯤 전에 모 교회 이단에서 놓여나 바른 교회로 옮긴이가 있다. 저는 그곳에서 나온 지도 10년이 다 되는데도 여전히 다니는 교회 등록을 꺼리면서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집이 멀어서 인천까지는 못 온다 해도 나는 그때마다 저를 권면하고 어느 교회로 나간다, 하면 그 교회를 검색하여 혹시 어떠한가 하고 살핀 후에 그를 지도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우리 교회로 오란 말은 하지 않는다.
주어진 현실에서 그 상황에 따라 주가 인도하심을 믿는다. 우리가 힘들고 지쳐 쓰러졌을 때,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9).” 우리는 주 안에서의 안식이다. 쉼이 있을 때,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10-11).” 이로써 오늘도 새 힘을 얻고,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16).” 말씀으로 말씀을 듣고 전할 뿐이다.
기도로 기도함으로 새 힘을 얻는 것과 같다.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와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하니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17-19).” 그러는 동안 우리는 이 땅의 경로를 모두 완주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것이라,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21).” 하여 오늘도 이 말씀 앞에서 나의 갈 길을 바로 잡는다. 그러할 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19).” 주 앞에 엎드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비록 오늘도 우리 가는 길이 어렵고 힘이 들다 해도,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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