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하현. 2026. 3. 26. 04:02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단 11:31-32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시 138:7-8

 

 

우리가 사는 삶이란 늘 전운이 감돈다.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라 해도 자신들의 뜻과 다를 때 그 안에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로를 증오한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우리의 본질이 전쟁으로 이어질 때 어디까지 악하고 추할 수 있는가를 보게 한다. 특히 이 전쟁은 역사상 구체적으로 일어날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실제 국가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2).”

 

이스라엘 주변 페르시아와 헬라 제국의 여러 왕조들과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기술되고 있다. 또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유대 민족 핍박과 그의 비참한 최후가 간략하게 예언되고 있다. 이는 상징적으로 종말에 있을 영적 이스라엘 된 성도들에게 일어날 일에 관한 예언이기도 하다. 특히 4절까지는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과 헬라 제국의 분열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먼저 ‘바사에서 또 세 왕이 일어날 것이요’ 하는데 여기서 세 왕은 초대 왕으로 고레스 이후에 등장할 캄비세스(B.C. 529-522), 스멜디스(B.C. 522-521), 다리오 히스타스피스(B.C. 521-486)를 가리킨다.

 

그 후의 넷째는 헬라국을 칠 것이라 하는데, 위에 언급된 ‘세 왕’에 이어 등장할 넷째 왕은 곧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언급된 크세르크세스(B.C. 486-465)이다. 그는 즉위 후 그의 부왕 다리오가 실패한 헬라 정복을 물려받아 막강한 경제적, 군사적 힘을 바탕으로 마게도냐를 침공했다. 그의 이러한 정복 사역은 초기에 성공한 듯 하였으나 ‘살라미스 전투’에서 헬라의 알렉산더에게 패배를 당하였다. 후에 플라타이아 전투를 끝으로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한 능력 있는 왕’으로 호칭되는 자는 알렉산더 대왕으로 헬라 제국의 발흥과 그의 죽음으로 발생할 제국의 분열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 하는데, 알렉산더 사후에 헬라 제국에 대한 예언이 세 가지 측면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구체적이다. 이는 그 예언의 역사적 성취를 통한 하나님 계시의 신실하심과 확고한 성취가 증명되는 것이다.

 

먼저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4).” 하심은 알렉산더 왕과 바사의 공주 록산나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4세는 카산더에 의해 살해되고,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형제로 정신이상자였던 필립 아르히다우스 역시 암살되었다. 이로써 알렉산더의 혈통은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자기가 주장하던’ 대로 ‘되지 아니하리니’ 하심은 전세를 자신의 수하에 두겠다던 알렉산더의 교만과 정복의 야욕이 죽음 앞에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 하는 것도 알렉산더의 막료였던 4명의 장군에 의해 분할되는 역사적 사실로 남게 되었다. 이처럼 헬라 제국에서 분열된 네 왕조 중 남방 왕조인 ‘톨레미 왕조’와 북방 왕조인 ‘셀류쿠스 왕조’ 사이의 전쟁과 그에 부가되는 여러 사건의 예언이 20절까지 상세하게 예언된다.

 

한편 이 예언은 주전 250-190년 사이에 실제 성취되었다. 남방의 왕은 권세를 떨치리니, ‘남방의 왕’은 이집트 지역을 통치하던 톨레미 1세로 그가 강하다는 것은 이 톨레미 왕조가 주전 3세기 내내 팔레스틴에 대한 치리권을 가졌던 사실을 염두에 둔다. 또한 ‘그 군들 중의 하나’는 분열된 네 왕조 중의 하나를 지시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시리아 왕국의 초대 왕인 셀류쿠스 니카토르를 가리킨다. 한편 그의 권세가 심히 커진다는 것은 본래 톨레미 왕조보다 미약한 세력으로 출발한 이후 지속적인 정복으로 주전 200년경 톨레미 왕조의 통치 하에 있던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인도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며 막강한 세력으로 군림하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

 

이처럼 셀류쿠스 왕조와 톨레미 왕조가 서로 동맹을 맺기 위해 시도했던 정략결혼이 실패할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6).” 이 사건은 주전 250년 톨레미 2세인 필라델푸스가 그의 딸 베레네스(남방 왕의 딸)를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인 데오스(북방 왕)와 결혼시켰으나 데오스의 전처인 라오디스가 베레네스와 그녀의 아이를 살해하고 결국 안티오쿠스 2세마저 독살시킴으로 이 정략결혼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을 말한다.

 

이후 실권을 장악한 라오디스가 베레네스의 동조자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켰던 바, 그가 바로 셀류쿠스 2세인 셀류쿠스 칼리니쿠스이다.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7-8).” 이와 같이 성경은 역사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곧 부왕 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톨레미 3세 유엘게테스(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의 하나)가 주전 246년에 그의 누이 베레네스의 복수를 위해 북방 왕조 곧 시리아의 셀류쿠스 칼리니쿠스를 공격하여 6년간(B.C. 246-241) 전쟁을 수행한 사실을 언급한다. 이 전쟁에서 그는 자기 누이를 살해한 라오디스를 죽여 누이의 원수를 갚고 수많은 전리품 곧 4,000달란트의 금과 2500여개의 우상들을 이집트로 탈취해 갔다. 한편 이러한 전리품은 이미 바사의 캄비세스가 주전 524년에 애굽에서 탈취해갔던 것들로 보여진다.

 

특별히 우상(신상)의 탈취는 고대에 있어 정복자들의 일반적인 관습으로 자기들 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의도이다.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은 주전 240년 톨레미 3세가 셀류쿠스 2세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그렇게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9).” 하는 것은 북방 곧 시리아의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가 7, 8절에 언급된 톨레미 3세 유엘게테스의 시리아 침공을 보복하기 위해 평화 조약을 파기하고 남방의 애굽을 침공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셀류쿠스 2세는 오히려 톨레미 3세에게 대패한 후 소수의 남은 군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퇴각했다.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이 성경에 예언되고 다니엘의 환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만이 참된 평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래서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미 3:2-3).” 하는 이 끔찍한 말씀과 같이 인간의 역사는 잔혹하고 비현실적이다.

 

오늘에도 펼쳐지는 중동전쟁을 보면서 서로가 입씨름하는 것이나 전략적 무기들로 어디를 폭격하고 공격하고 반격하는 보도 사이에서 사람들의 목숨은 가차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학교가 폭격되면서 학생들이 수백 명 죽었다는 보도 같이, 실제 그 현장에 가 닿기까지 몇 줄의 기사는 막연하여 실상을 알 수 없는 소문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하시는 말씀으로 축약된다. 오늘도 뉴스를 틀고 운전하면서 오는데 이 와중에도 정보를 빼돌려 주식을 사서 폭리를 취하거나 인척이나 측근들이 무기를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는 것에 누구는 반역이라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현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다들 눈치껏 주식 이것저것에 투자하여 이와 같은 난리통에도 수익을 바라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보면서 다시 느끼지만 사람은 사랑과 용서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국가와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런 와중에도 어느 국가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 전쟁이 더 지속되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서(5-6) 서로가 정략적으로 결혼도 불사하고 그 사이에서 배신과 살인이 뒤섞여 인간에 대한 신뢰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성경도 이르시길 “네 형제와 아버지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렘 12:6).” 하심은 결국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미 7:5).”

 

그러니 이 얼마나 추하고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인가? 그런 가운데 오히려 우리가 소망을 갖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관용을 보게 된다. 복수의 악순환을 보고, 앞에서 언급한 시리아 왕은 애굽 왕이 죽자 그의 딸이자 자신과 정략결혼을 한 베르니스를 폐위시키고 자신의 본처였던 라오디스를 다시 복위시켰다. 다시 복위된 라오디스는 당연히 자기를 폐위시킨 남편에 대해 한을 품고 남편 테오스를 독살하고 자기 아들 셀류쿠스 칼리니쿠스를 왕위에 앉힌 것이다.

 

오늘 본문으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계시는 구체적이고 세상 이치는 말씀에 따라 실현된다. 본문은 바사와 헬라의 등장을 예언하고(1-4), 남방 왕과 북방 왕 간의 분쟁을 묘사하며(5-19), 북방 왕의 승리와 패배를 예언하고 있다(20-45). 이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압제하는 주변국들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도 알게 한다. 이는 단지 역사적인 사실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 예언이 실제 우리의 역사 속에 성취되는 것처럼, 이제까지 전개되었던 환상의 성격이 단순히 상징적 의미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로 오늘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세상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과 맞서 대적한다. 이는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룰 것임이라(36).” 하는 데서 오늘도 강대국 미국의 교만과 이스라엘의 오만으로 시작한 패권다툼이 얼마나 끔찍하게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지를 보게 한다. 이러한 역사적 해석과 아울러 사탄의 종말론적 핍박을 우리는 미리 알 수 있다. 이는 본문에서 ‘서 있다’ 또는 ‘일어나다’를 의미하는 ‘아마드’라는 표현이 16번, ‘오다’ 또는 ‘공격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는 ‘바아’라는 단어가 12번, ‘돌아오다’, ‘다시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슈브’라는 단어가 12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동사들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서로의 권력을 뺏고 빼앗기는 악순환의 현장인 것을 보게 한다.

 

곧 있을 바사 제국의 쇠퇴와 헬라의 등장을 알린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득세를 자세히 예언하고, 특히 안티오쿠스가 유대인을 핍박하고 성전제사를 금지하여 우상을 숭배하도록 압력을 가하게 되는 것을 알린다. “그가 모든 것보다 스스로 크다 하고 그의 조상들의 신들과 여자들이 흠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어떤 신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강한 신을 공경할 것이요 또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에게 금 은 보석과 보물을 드려 공경할 것이며 그는 이방신을 힘입어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점령할 것이요 무릇 그를 안다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여 여러 백성을 다스리게도 하며 그에게서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 주기도 하리라(37-39).”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사탄의 종말론적 핍박을 예표한다. 동시에 극심한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한다.

 

먼저는 교만에 빠질 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것을 본다(10-19). 이에 성경은 교훈하길,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 16:5).” 하심으로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그렇듯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 21:4).” 하신 것으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이것이 성경의 원리다.

 

곧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역사는 곧 하나님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10).” 하심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19-20).

 

하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15:11).

 

하여 오늘도,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138:1-2).

 

하는 고백으로 올려드린다.

 

우리가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6).

 

당장 오늘은 어떤 것 같아서 그에 따른 승리나 성공이 오래갈 줄 알지만, 주가 보호하심으로 한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7).

 

그리하여 오늘을 주께 맡김으로 살 때,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