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호 2:23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시 141:1-2
우리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자인데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오늘에까지 산다. 이 죄악 된 세상에서 우리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이나, 우리로 자녀 삼아주셨다. 이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23).” 먼저는 ‘내가 나를 위하여’ 곧 우리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주의 일꾼으로 삼으셨다.
이 한 구절의 위로와 축복의 말씀이 없었다면 나는 무엇으로 위로를 얻고 평안을 구할까? 며칠째 감기 기운에서 조금 나아진 아버지는 친구 목사님과 함께 낚시를 갔다. 점심께 좀 어떠신지, 통화를 하고 날이 차니까 일찍 들어가시라 일렀다. 그리고 늦은 오후 동생이 구리 한양대병원 중환자실이라며, 아버지가 낚시 다녀와 집 앞 계단을 오르다 쓰러지셨다고 했다. 위독한 상황이라서 부랴부랴 가 뵙고, 나는 잠깐의 면회를 얻어 아들과 함께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부친을 뵈었다. 부친의 생애는 참 귀하고 복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께 속삭였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던 자를 긍휼히 여기셨다. 일찍이 나는 부친의 사역을 전투적이라고 자주 표현하였듯 이 땅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전투였다. 그런 가운데 우리 네 자녀들을 모두 주의 사역의 길에 세우셨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이처럼 열매를 맺은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나오는데 아들이 조부의 소천 소식을 알렸다. 나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교회로 왔다. 그리고 이렇듯 말씀의 위로를 구하고 있다.
오늘 이 구절의 말씀은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1).” 하시는 말씀에서 호응을 이룬다. 이는 1장 10-11절의 말씀에 대한 결론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하여 본래는 '로암미'와 '로루하마'라 하여, 내 백성이 아니고 긍휼을 입지 못한 자이었는데 이처럼 긍휼하심으로 '암미'라 '루하마'라 하심으로 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주의 사랑하는 자라 일컬으셨다.
서로가 여호와의 언약 관계로 새롭게 회복할 것을 선포한다. 그것이 ‘암미’와 ‘루하마’가 되는 것이다. 곧 ‘나의 백성’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라 하심이다. 이는 호세아의 자녀들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와 죄악이 풀리고 회복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날에 ‘축복과 화해’로 저들이 세움 받았다. 곧 우리의 죄악 중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기어이 나의 부친을 통해 대반전을 이뤄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증거되게 하셨다.
우리 자녀들은 중환실에 모여 있었고 면회 인원은 직계 가족으로 한정되었다. 부모님과 우리들은 앞서 시신과 장기를 기증하였고, 인위적인 연명치료를 거절하고 살았다. 모친은 부친의 일에 황망함을 표현했으나 우리는 서로 말을 아끼며 위로하였다. 시신은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져 장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남은 장기와 시신은 기증되어 한 동한 더 쓰임을 받을 것이다. 나는 면회할 수 있는 시간에 아들이 나를 부축하게 하여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한 영혼을 마주하듯 내 아버지의 삶이 복되었고 귀하였음을 감사하였다. 남은 자는 슬픔으로 애도하나, 부친은 부친답게 가셨다. 생전에 좋아하던 낚시도 다녀오고, 순간 고통 없이 주의 부르심에 따랐다. 나는 아직 느껴지는 숨결에 아버지를 부르며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하고 되뇌었다. 떨리는 손을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한 것은 아버지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하고 영혼을 맡기었다.
살아서 아직 생을 다해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이러한 슬픔 또한 위로요 축복이 될 것을 믿는다. 모두가 사역을 담당해야 해서 주일 예배를 섬기고 장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눈물이 흐르면서도 의외로 덤덤하여서 나도 나 자신에 놀랐다. 오히려 운전을 하고 평소 같이 새벽에 교회로 오면서는 감사가 나왔고, 이 또한 귀한 은혜인 것을 인정하였다. 여든 셋까지 부친의 의식은 뚜렷하였고 건강하여서, 큰 질병없이 돌아가심이 감사하다. 모친의 마음은 황망하여 서러웠으나, 산 자들은 살아서 주의 긍휼하심으로 이 시간을 견디며 주를 찬양할 것이다.
아들이 운전을 하고, 오며 가며 나는 눈을 꼭 감은 채 어릴 적 아주 가난하고 몹쓸 지경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주의 길을 걸어갔던 부친의 날들을 생각했다. 강원도 정선, 오지에서 온갖 우상의 집안 장손으로 태어나 대대로 이어오던 죄악의 끈을 끊게 하셨다. 일찍이 일가를 이뤄 사업가로 성공하려다 그 길이 틀어져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몰아세우시는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오늘까지 살았다. 어릴 적 나는 부친이 개척교회로 전전긍긍할 때 또는 나환자촌교회라는 목회현장에서, 지긋지긋한 가난과 곱지 않은 시선으로 힘들어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바로 그 역설의 현장, 대반전의 날들을 체험했다. 가난의 넉넉함과 궁핍의 풍성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은연중에 인정하며 자랐다. 그 증거로는 모두가 그렇듯 주의 사역은 맡지 않겠다고 거부하다, 하나둘 넷 다 이 땅에서의 가장 값지고 소중한 일에 부르심을 받아서 오늘을 살아간다.
가장 뒤늦게 ‘만삭되지 못한 나’ 같은 자도 주가 불러 세워 이와 같은 사명자로 살게 하셨다. 새벽에 나오는데 딸애가 걱정이 됐는지 전화를 해서 위로하였다. 아이의 내달 결혼은 나의 늙으신 부친에게 큰 선물이 되었고, 나의 부친의 이러한 소천(召天)으로 결혼 전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순간의 값어치를 인정하기를 바란다. 비록 이 날은 슬프고 서러울 테지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우리들로 하여금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신 것이다. 죄악 된 세상에서 정죄함을 받아 마땅하였을 우리들로,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사 24:6).” 오늘 이처럼 우리의 감사와 찬송으로,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7).”
하셨으니, 오늘은 더러 징계 같이 어렵고 아플지라도,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하신 이 놀라운 은총의 수혜자로들 살게 하셨다.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자이나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호 2:6).” 그런 세상에서 모든 게 막힌 담 같을 때도 이를 헐게 하신다. 오늘 이렇게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하심으로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롬 11:30).”
나는 자꾸 흐르는 눈물로 주께 감사한다. 이제 평안히 저 안식의 나라에 들어가 주의 품에 안겨서 내려다보고 있을 나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의 부친은 그렇듯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어느 것도 주의 은혜가 아니었던 게 없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모든 게 다 주의 긍휼하심이었음을 깨달아 안다. 나의 부친의 목회 현장은 여전하여서 오늘 우리들로 이 길을 가게 한다.
지금 이렇게 묵상하고 글을 쓰면서 나는 새삼 우리들로 하여금 ‘암미’라 ‘루하마’라 하시며,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호 2:1).” 하심으로 ‘주의 백성’이 되고 ‘주의 사랑하는 자’로 살게 하심을 감사하며,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23).” 하여 다들 저마다에게 맡기신 주일에 주를 경배하며 찬송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시 141:1-2).
그리하여,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3, 5).
그러므로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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