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부친이 소천하시던 날 새벽에 묵상한 호세아서를 발췌, 수정하였다.
나의 아버지, 전동진 목사님의 입관예배
찬송: 314장
말씀: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 2:23)”
우리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자인데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긍휼히 여기심을 받으며 오늘에까지 산다. 이 죄악 된 세상에서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이나, 우리로 자녀 삼아서 아버지가 되어주셨다. 이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23).” 여기서 먼저, ‘내가 나를 위하여’ 하시는 말씀에 주목한다. 곧 우리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주의 일꾼으로 삼아주셨다.
우리는 한 구절의 말씀에서, 성경으로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던 자를, 곧 전씨 가문에 복음이 듣게 하셨다. 부친은 고등학교 때, 강원도 평창군 노론리 작은 고향마을 예배당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했고 주를 영접했다. 그 작은 복음의 불씨가 전에 알고 지내던 온갖 ‘우상과 미신들’을 물리치게 하였다. 일찍이 나는 부친의 사역을 두고 나는 ‘전투적이었다’고 느낀다. 이 땅에서 주의 길을 가는 것은 그야말로 전투와 같다. 그렇게 해서 오늘에 이르러 우리 사남매의 형제들은 모두 부친을 따라 주의 길을 가는 사역자들이 되었다.
오늘 말씀을 보면 1절에서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1).” 하시는데, 이는 앞서 1장 10-11절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이는 본래 저들을 1장에서 ‘로암미’와 ‘로루하마’라 하였다.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6).”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기지 않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다시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8-9).” 하였는데 아는 ‘내 백성이 아니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 하는 의미다.
곧 ‘로루하마’와 ‘로암미’를 향해 하나님은 저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긍휼을 입지도 못한 자이었다고 하셨는데, 오늘 말씀은 이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암미’라 하고 ‘루하마’라 하심으로, 호세아의 자녀들을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주의 사랑하는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다. 이는 여호와의 언약 관계를 새롭게 회복함을 선포하는 것이다. 곧 ‘나의 백성’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로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사역자가 되어 살아간다. 이는 ‘호세아의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와 죄악이 풀리게 하시고 회복되게 하심을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 언약이 성취되는 날에 ‘축복과 화해’로 저들은 세움을 받았다. 오늘 우리 형제들은 주의 사역자로 각자 그 사명의 길을 간다. 이는 전씨 가문의 한 사람, 나의 부친의 ‘한 알의 씨앗’이 뿌려놓은 열매요, 상급이다. 우리가 죄악 중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산다는 길은 마치 부친을 사역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증거가 되는 생이다.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부친의 뜻에 따라 시신과 장기기증으로 ‘이 병원 장례식장’에 오게 된 것이다. 나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온 가족들이 부친의 일을 두고 황망해하나 동시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주께 영광을 올린다. 이는 또한 부친의 남은 장기와 시신을 기증하여 한 동한 더 이 땅에서 쓰임을 더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서 사는 동안에 이러한 슬픔을 견디며 감당하지만 동시에 말씀으로의 위로와 축복을 받을 것이다. 강원도 정선, 한 작은 오지 마을에서 우상으로 대대손손 내려오던 가정에서 그 죄악의 끈을 끊고,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일생을 주의 종으로 살았던 나의 부친의 길은 우리들에게 산교육의 현장이었다. 징글맞게 가난하던 개척교회 생활과 늘 찌든 가난으로 전전긍긍하며 수십 번씩 이상와 전학을 반복하고, 심지어 생경하기까지 한 나환자촌의 교회에서 유년생활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경험이 된다. 우리들은 바로 그 역설의 현장에서 대반전의 날들로 살아간다. 가난과 궁핍으로 고통스러웠으나 동시에 넉넉함과 풍성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며 자랐다. 그 증거로 오늘 우리 모두는 주의 길을 가는 자들로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오늘의 이별과 슬픔은 마치 ‘징계 같이’ 괴롭고 아프지만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하신 놀라운 은총과 긍휼히 여기심을 받은 자들로 사는 것이다. 오늘 호세아 2장에서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6).” 하셨던 것을 주의 긍휼하심으로 허물어서, 오늘 이렇게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하심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롬 11:30).” 하는 삶으로 남은 자녀들이 부친의 뒤를 이어 증인 되는 삶을 산다. 그리하여 나의 부친의 목회는 끝난 게 아니라 여전하여, 오늘 우리의 길로 이어진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호 2:1).” 곧 우리 형제들은 ‘주의 백성’이 되고, ‘주의 사랑하는 자’들로 살아갈 것이다. 이는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23).”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0) | 2026.03.31 |
|---|---|
|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0) | 2026.03.30 |
|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0) | 2026.03.29 |
|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0) | 2026.03.28 |
|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0) | 202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