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하현. 2026. 3. 31. 08:07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호 4:12-13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시 143:7-8

 

이어서 오늘부터(4:1-14:9) 모두 9개의 설교가 이루어진다. 먼저 이를 살피면,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4:1-5:4).

2) 인간의 교만이 어떠한가(5:5-6:3).

3) 인애가 없으므로 망한다(6:4-7:7).

4) 세속과 혼합된 죄를 책망하다(7:8-8:14).

5) 부패의 죄로 징벌을 받는다(9:1-17).

6) 이스라엘의 두 가지 큰 죄가 무엇인가(10:1-15).

7) 인간적인 계책을 책망하다(11:1-16).

8) 우상 숭배의 죄악을 다시 책망하다(13:1-16).

9) 회복에 대해 약속하신다(14:1-9).

 

등이다. 하나님은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무궁한 은혜 속에 거하도록 촉구하시고 이를 이행하신다. 오늘 그 문제로 하나님은 비하하여 우리로 논쟁하신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1-2).” 하는 데서 새삼 나의 부친의 수고와 인내를 감사한다.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대대로 이어져 오던 우상을 타파하고 온 가족이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포항에서 삼촌들이 상경하였는데 두 분 모두 교회 장로로 섬기며 자녀들 역시 교회에서 서로 짝을 만나 일가를 이뤄 어엿한 믿음의 족속이 되었다. 나는 저들과 앉아 놀랍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였다. 오늘로 발인예배를 끝으로 장례절차는 마친다. 부친은 시신기증으로 어제 오전에 이미 학교 측에서 시신을 인계해갔다. 나의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우리 부부도 모두 시신과 장기기증을 해놓은 터라 앞서 나의 조모도 그리 행하였다.

 

하나님은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그 이유는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하는 말씀으로 우리의 선조가 어떠했는지 짐작을 한다. ‘이 땅 거민’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논쟁하시겠다고 한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우리의 생각과 주장에 대해 논쟁, 곧 다투고자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과 계약을 파괴한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을 고소한다’는 의미도 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12:2).”

 

하실 때 두려운 마음과 동시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앞서 조상의 길은 차치하고 부친의 수고와 인내로 그와 같은 순종의 길은 복되고 감사하여 오늘 우리 자녀들의 길이 되었다. 삼촌들과 그 가족들의 짧은 만남에서 나는 진한 감사를 느꼈다.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미 6:2).”

 

오늘에 이르러는 ‘이 땅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는 데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곧 하나님의 이 말씀의 언약을 저버리면 그 죄악은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으로 말과 행동의 신실함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에 충실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인애는 언약에 기초한 사랑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은총과 긍휼하심이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2:19-20).” 그리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23).”

 

나는 어제 오전 이 구절의 말씀으로 입관예배를 드리며 우리가 받은 이 긍휼하심에 대해 나누었다. 나의 부친의 생애는 그 자체로 그러하여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갔으며,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으로 얻게 되는 삶의 현장은 고스란히 그 자녀들과 곁의 형제들에게 전파되었다. 곧 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이뤘으나 우리의 이 지식은 체험적인 지식이다. 나의 삶이 증거다. 모두 다섯 번의 예배가 드려졌는데 그때마다 나는 찬양으로 은혜 받고 말씀에서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이루어진 사실이다. 누가 일러 이런 장례는 처음이라고 했다. 모두가 슬픔 가운데 기쁨을, 애통해하는 가운데 감사로, 오히려 문상을 온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가는 셈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면 교제도 없다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짓 신들을 섬기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치도 않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게다가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도외시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주는 것은 심판과 멸망이 선포된다.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 4:2).” 이에 우리로 부도덕한 죄악들이 열거되는 세상에서 타락과 죄악의 현실을 생생하고 알아보고 주 앞에서 경계하고 경외해야 할 것이다. 먼저는 ‘저주’와 ‘속임’이 있고,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이 열거된다. 남을 저주하는 것은 거짓 맹세하는 것과 같고, 속이는 것은 제 9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도둑질은 8계명을, 살인은 6계명을 간음은 제 7계명을 어김이다.

 

이에 ‘강포하여’ 찢는다. 깨뜨린다. 강도와 살인을 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피를 흘린다. 만지고, 치고, 하는 피 흘리는 행위에는 또 다른 피 흘림이 뒤따른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 그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주를 아는 지식으로 바른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여 ‘이 땅이 슬퍼하며’ 곧 죽은 자를 위한 애곡을 의미하나 실은 남은 자의 황폐한 영혼을 연상하게 된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사 24:4, 7).”

 

이러한 현상으로 우리 영혼은 혼탁하여 쓰러질 것이고, 땅이 황무하고 땅의 소산인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없어지며, 초목이 시들고 메말라 동물들까지 굶어 죽게 된다.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욜 1:10).” 이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았다. 곧 우리 인간의 타락이 자연계의 파멸과 피조물의 멸망을 가져오게 온다. 이틀이 멀다하고 미세먼지가 위협하고, 이상기후가 뜻하지 않은 현상을 일으키고,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까지도 말라버린 물처럼 쇠잔하여져 간다. 이에,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사 50:2).”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면 온갖 전염병과 기근과 한재를 통해 땅과 그 안에 있는 피조물들을 황폐케 함으로써 저주를 내리신다는 것이 이치다.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 마침내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마침내 너를 멸절시키리라(신 28:23-24, 51).” 이렇듯 부친의 장례를 치르면서 나의 감사는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를 건지신 데 따른 감사였다. 모두가 주를 찬송하는 데 따른 영광이었다.

 

고로 말씀을 듣는 자, 우리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이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심은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24).” 하신 데서 은혜를 구한다.

 

뜻하지 않게 찾아와준 조문객 가운데 몇몇은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고 갔고, 각각의 문제를 들으며 그 답은 오직 하나뿐인 것을 알았다. 곧 하나님을 알자, 진심을 다해 하나님을 알자, 하는 것으로 그 앞에서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을 묵상할 수 있었다. 곧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눅 12:56-57).” 하실 때, 우리로서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2-13).” 하신 데서 하나 된다.

 

하여,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21-23).”

 

하는 바울 사도의 뒤이은 말씀으로 은총을 구한다. 오늘은 발인예배를 뒤로 하고 부친의 생전 생활하였던 집으로 가서 애도하며 예배하고, 몇 가지 것들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이 모든 일정이 또한 남은 자의 몫이고 이를 통해서도 우리가 주를 향한 감상와 찬송으로 드려질 수 있음을 믿는다. 모두에게 부친의 족적은 귀한 모범이었고, 이어지는 설교자들의 말씀 가운데서도 순종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귀범이 되어주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바로 살기 위하여도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으로 참 생명이 이어질 것을 안다.

 

그러므로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시 26:4-5).

 

할 때에, 설상가상 우리의 ‘길갈’은 한때 선지 학교의 자리였으나(왕하 2:1, 4:38), 호세아와 아모스 시대에 우상을 숭배하는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호 9:15).”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암 4:4, 5:5).”

 

벧아웬은 벧엘 남동쪽에 위치한 성읍으로(수 7:2), 여기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웠던 ‘벧엘’을 다르게 부른 이름이 벧아웬이다. 즉 ‘하나님의 집’이었던 벧엘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자 선지자는 이곳을 벧아웬, 곧 ‘사악한 집’이라고 언급하였다.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10:5).” 이러한 계대를 끊고 오늘 우리로 주의 길을 가게 한 것이어서 나는 슬프나 감사하고, 황망하나 귀하다.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시 143:7-8).

 

그렇게 오늘도 기도한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1).

 

그리하여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