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 6:1, 3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 145:8-9
‘돌아가다’ 하는 표현이 요 며칠 매우 친밀하게 다가온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감정은 널뛰듯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주신 삶을 산다. 우리는 교회 이전에 따른 남은 집기를 ‘당근’에 내놓고 이번 주말까지 비워주기로 하여 정신이 없다. 그런 가운데 문득 마음은 저 혼자 휑하여서 어제는 혼자서 멀리까지 걷다가 돌아가야 할 길이 멀어서 돌아섰다. 그런 거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포문을 연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
먼저는 “오라!” 하고 부른다. 어디로 가고 있었든지 멈춰서야 한다. 오라, 하는 부름에 응하려면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하고 권한다. 이는 위로의 의미로 다가온다. 혼자 서서 울고 있을 때 누가 등을 쓸어주며 이끄는 말 같이 들린다. 이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고 오늘의 어려움, 고통, 낙심과 우울 가운데서 일으켜 주실 것을 알린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호세아 선지자의 권면이다. 회개의 날에 백성들이 서로가 뉘우치며 권면하는 것이다. 이것은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독백이거나 대화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미래에 있을 백성들의 회개에 따른 권함이다. 덧붙여 ‘우리를 찢으셨으나’ 할 때 오늘의 슬픔과 힘겨운 일이 중첩된다. 이는 하나님의 의도다. 그리 설명하신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5:14).”
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시 50:22).
하는 말씀으로 오늘 나의 이 슬픔이 작동하는 원리를 묵상하게 된다. 이에 ‘낫게 하실 것이요’ 하심으로 증거가 된다. 진정한 회개가 있을 경우 심판의 자리에서 고침도 선언된다. 이는 치료하고 낫게 하는 원리와 같이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적 섭리를 연상하게 한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곧 오늘의 이 모든 슬픔과 어려움도 주의 사랑이라.
서로가 돌아가며 전화를 하고 위로하였다. 포항에 있는 작은 아버지들에게 전화를 드려 다녀가심을 감사하자, 막내 삼촌이 또 울어서 덩달아서 같이 울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백성들의 참된 회개는 슬픔으로 단련되어 나온다. 하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그러면서도 감사한 것은 아버지가 단걸음에 주의 품에 안기신 것이다. 지난달에 오셨을 때 예배를 마치고 같이 식사를 하며 어디가 좀 괜찮은지, 아픈지, 서로 묻다 고통 없이 하늘나라 갈 수 있으면 제일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러 병마가 같이 든다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에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심은 ‘그의 얼굴 앞에서’이다.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을 뵈옵고 그의 주권 아래 섭리와 보호하심으로 안식한다는 것을 뜻한다. 곧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렘 30:20).” 하심 같이 산 자는 사는 동안에 주의 선하심을 알고 돌아가신 자는 돌아가 아버지 집에서 편히 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3).” 하고 오늘 말씀은 힘써 외친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 곧 오늘의 이 마음과 같이 감정은 저 혼자 들썽거리며 널뛰듯 하나 여호와를 아는 것으로 오늘의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인정할 수 있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인정하면서, 그러기 위해 우리로 힘써 알라고 한다. 이를 위하여는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왜냐하면 이 땅의 구조나 우리의 기질은 이와 반대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4:1).”
그러므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4:6).” 곧 오늘을 살면서 주를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앎을 버리면 그렇다. 이에 계명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 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힘써’야 한다. 힘쓴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추적하다’, ‘뒤따르다’ 하는 의미를 갖는다. 곧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열심히 좇아가는 것을 뜻한다.’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 30:1-4).”
이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할 때,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오늘도 이처럼 아침을 깨우고 주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자 하는 까닭도 ‘여호와의 임재가 새벽처럼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잘 알기 때문이다. 나타난다는 것은 나오심을 뜻하는 히브리어로 아침 해가 어김없이 떠오르는 것 같이,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사 48:8).” 하심과 같이 주가 먼저 다 아심이다.
하여,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2-3).”
그리하여 오늘 본문은 누차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비와 같이’ 비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이는 곧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할 때 여기서 ‘늦은 비’는 추수하기 전 곧 3-4월에 내리는 봄비로 곡물의 수확에 가장 중요한 비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마무리로 그 열매를 말한다. 곧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나의 아버지만큼 복이 많은 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감격한다.
홀연 단신으로 혼자서 갑자기 뜻하지 않게 예수를 영접하면서, 이 또한 주의 은혜였으나 이에 순종함으로 일생을 주의 부르심에 답하였다. 그리하게 하신 이가 어느 날 소풍 다녀온 것 같이 부르셨으니 단걸음에 달려가 평안히 안식을 누리실 터, 이제 우리에게는 ‘이른 비’가 따라오는데 이는 미완료형으로 ‘마른 땅을 적시는 비’이다. 만물을 소성케 하는 겨울비와 봄비처럼 여호와께서 자기를 힘써 아는 우리 남은 자녀들에게 풍요로운 은총과 축복을 내리신다는 사실로 일깨운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형제들의 생각은 같은 것이어서 슬프나 기쁘고, 황망하나 놀라움으로 감사하였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레 24:4).”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 11:14-15).”
곧 저마다 주어진 생을 다하는 동안 주를 알고 저를 인정하는 것으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는 말씀으로 다가가며 힘써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원한다. 이에 돌아감이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그렇게 우리는 오늘 더 단단하여진다. 곧 오늘 이 말씀과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참된 회개란 참된 생명으로의 인도하심인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그렇게 오늘도 주 앞에서 새 힘을 얻으며,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궁극적인 우리의 자리, 우리다 닿을 저 나라에서 우리가 살 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 2:4-8).”
그리하여,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에 오늘도 또 하루를 사는 동안 주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며,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시 145:1-2).
이 길이 우리의 사명으로 놓일 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8-9).
이에,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11-12).
곧 우리의 남은 사명은,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
(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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