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하현. 2026. 4. 5. 06:17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호 9:15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시 148:14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에 이르러 처음으로 예배드린 곳이다.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수 4:19-21).” 또한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왕하 4:38).”

 

그러나 이스라엘이 갈려 남북으로 나뉜 뒤 북이스라엘의 패역한 시대에는 ‘벧엘’과 함께 ‘길갈’이 우상을 숭배하는 숭배지가 되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호 4:15, 12:11).”

 

따라서 하나님은 그곳에서의 우상 숭배에 따른 죄를 지적하고 계신다.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9:15).” 하여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하심으로 북이스라엘에 대해 그 마음을 표현하셨다. 이는 단순히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쫓아내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곳, 하나님 앞에서 쫓아내시리라는 의미다.

 

이는 오늘 본문 서두에서 지도자들의 반역이라 규정한다. 곧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히 선지자들에 대하여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7-8).” 또한 제사장들과 방백들에 대하여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15).”

 

거기, 곧 ‘길갈’에서 비롯하는 타락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백성들을 신앙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저들이 더 타락하여 백성들의 멸망을 앞당겼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1).” 하실 때 ‘기뻐 뛰놀지 말라.’ 저들은 곡물을 수확할 때, 크게 기뻐하였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사 9:3).”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먹을 양식을 거둔다는 데 따른 기쁨이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의 절기를 지키기도 했는데, 맥추절(출 23:16)이라 하는 오순절(레 23:15-21)과 수장절(출 23:16)이라 하는 초막절(레 23:34-43)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런 추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신다. 이것은 그들이 모든 곡식과 양식, 은, 금을 주시는 하나님을 떠나 불의한 우상을 숭배했으며, 풍성한 소출이 바알과 같은 우상에 의해 주어졌다고 섬기며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호 2:5).”

 

이에,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2:9).”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은 저들에게 양식이 고갈 상태에 빠지도록 할 것이며 추수 때에 기뻐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는 ‘네가 행음하여’ 생긴 일이라고 하신다. 곧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겼고,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2:8).”

 

뿐만 아니라, 목상이나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4:12).” 다른 은금으로 자기를 위해 만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8:4).” 다른 신 곧 ‘참나무’나 ‘상수리나무’ 아래서 섬긴 것으로 ‘아세라 우상’도 숭배하였다.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4:13).”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상으로 우상을 숭배한 사실은 영적 음행이다.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4:14).”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15).”

 

이에 대하여는 예레미야 선지자도 지적하였고,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렘 2:20).” 에스겔 선지자도 지적하였다. “너희 중에서 살아 남은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들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겔 6:9).”

 

이에 ‘각 타작마당에서, 좋아하였느니라.’ 하심은 이스라엘인이 추수한 곡물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바알을 숭배한 사실을 가리킨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호 2:8).” 어쩌다 그리 되었는가 하면 가나안 원주민들이 ‘바알’을 토지의 신으로 섬기며 땅의 비옥함을 가져다주는 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저들은 농작물의 풍요가 바알에 의해 성취된다고 보았고, 이를 여호와 신앙의 이스라엘이 따랐던 것이다.

 

그런 거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한심할 정도로 세상 문화와 토속신앙에 무방비 상태로 젖어들고 좋아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야말로 요즘 같은 시대는 문화 콘텐츠가 그 어떤 산업보다 유망하다. 한 무리의 가수가 공연을 한 번 하는 것이 수천 대의 자동차를 수출하고, 농산물을 수확하는 것보다 많은 경제적 이윤을 창출한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가사나 음원이나 복장, 춤, 무대까지 모두 우리의 전통이랄 수 있는 무속 신앙에 기반을 둔 것들로 '어떤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이것을 우리들 또한 무분별하게 따라하고 좋아하는 일에 별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반응에 더 역감정이 들고 너무 예민하다거나 광적인 것이라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이러한 우상 숭배가 얼마나 사소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이스라엘의 영혼을 잠식시켰는지 보면 놀랍다. 곧 우리가 믿음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이 땅에서의 삶의 가치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의당 우리는 세상과 달라야 하고 그러한 가치 기준의 차이가 더러는 모순되어 갈등하고 다투어야 옳다. 오늘 우리 안에서도 말이다. 하여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이 이를 강조하시는 바,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하심은 왜 그런가 하면,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그로 인한 신앙의 여파가 그저 단순하고 사소한 결과를 초래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1). 이에 예수님도 이르시길,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결국 우리가 추구하고 따르는 가치가 이 땅에서의 풍요와 안락을 바라는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니겠나? 그러면서 우린 무의식적으로 좇아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 5:3).” 이는 아주 단순화해 봐도 한낱 상품광고에서도 성적으로 어필하여 음행을 연상시킴으로 사람의 감각을 자극한다. 어린 가수들의 춤과 그 몸짓에서는 더더욱 노골적이고, 의도적으로 각종 제례나 의식을 흉내 내며 은연중에 제의(祭儀)로 이끈다. 또한 각종 문양이나 액세서리도 말할 것 없다.

 

이에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추구하는 모든 가치는 허망한 결과를 가져온다.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향한 찬송과 경배가 사라지고 그 지역의 토속신앙인 바알과 각종 신상으로 대체하여 서로들 즐기며 음행하는 데 용감하였다. 이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 17:5).” 하시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함으로 그 믿음은 연속적이고 신앙은 지속적이다. 그러나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7-28).

 

하심으로 다시금 오늘의 나를 돌아보고 우리에게 맡기신 이 사명을 유념하게 된다. 어제는 그간 얼추 10년 이상 머물던 곳을 정리하고 새로운 각오로 떠났다. 염려하였던 것과 달리 모든 게 무난하게 잘 마무리 되었고 오늘 이제 남은 책들을 차에 실어오면 끝이다. 새로 들어갈 곳은 이미 예비하심으로 우리는 이사비용을 없이하고 새로운 기물로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나의 유약함과 우유부단함을 아시고, 아들의 결단에 가계약을 걸고 간판과 함께 교회 처소를 미리 확정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매일 6시 새벽예배를 드리기로 하였고, 상담목회로 남은 생의 십 수 년의 사역을 다짐하였다. 주가 이끄심은 내가 하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도 전의 보증금에 비해 5백을 더 올려줘야 하는데, 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시면서 나오는 사망 보험금 가운데, 어머니는 부친의 뜻이었다며 그것을 헌금으로 보내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데 이는 슬픔과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이뤄가는 데 있어 막힘이 없게 하신다는 데서 감격한다. 매번 이를 경험하면서도 그때마다 새롭다. 신대원 모든 등록금도, 앞서 신학부 편입에 따른 전학기의 것도 모두 주가 강권하심으로 채우셨다. 이번에 한 친구는 그간 기도하며 조금씩 모았다며 얼마간의 헌금을 조의금 대신 보냈다. 나는 오후 어머니와 통화하며 울었다. 여느 목회자들에 비해 너무 하는 게 없어서 늘 송구하고 부끄러운데 그럼에도 이토록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새삼 다시 고백하였다.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주가 하게 하신다. 교회를 이뤄가는 일이나 우리의 신앙을 지켜가는 일에나… 우리로 주를 인정하게 하시려고 주께서 행하신다. 하면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잠 1:28).”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아직 나의 건강이 허락되고, 이 마음으로 주를 바라게 하시는 일이어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5-36).”

 

그러므로 오늘도,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 148:1-4).

 

세상이 언제나 그렇듯 더더욱 그 가치를 세상에 두고 하나님과 멀어진다 해도, 우리는 믿음 지켜서 ‘길갈’을 길갈답게, ‘벧엘’을 벧엘답게 우리 안에 거룩히 보존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12-13).

 

이는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6).

 

그러므로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