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욜 3:2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시 6:1
믿는 자들이 장차 얻게 될 구원의 은혜를 언급하고, 이스라엘의 대적을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저들 대적을 하나님이 대적하시며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제로 말씀이 전개된다. 이 일은 ‘그 날 곧 그 때에’에 이루어졌다. ‘보라’ 하고 우리의 시선을 끌고 회복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게 한다.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1).” 주가 심판을 시작하신다. ‘그 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국문하실 것을 밝힌다.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2).”
여기서 ‘여호사밧 골짜기’는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압과 암몬, 에돔 연합군을 물리친 골짜기이다.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대하 20:26).” 이는 곧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증거 하는 지명으로, ‘거기에서 국문하리니’ 하고 말씀하신다. 국문한다는 것은 심판하다, 다스리다, 결정하다 하는 뜻을 가진다. 다시 말하면 논쟁을 벌이겠다고 하심이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며 살던 것을 놓고 겨루어서 여호와는 심판하신다. 거기는 ‘여호사밧 골짜기’다.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다스리시며 도우셨던 역사적인 현장에서 그럼에도 옳고 그름을 논하고자 한다면 그리 하자는 말씀이다.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가?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3).” 즉 ‘또 제비뽑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하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 나라를 심판하기 위해서이다. 이방 나라의 죄악상을 열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한 인신매매의 실상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로마의 침공을 받았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팔려갔다. 로마의 침략자들은 유대인 중에 크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남겨두었고, 그 나머지는 애굽의 광산으로 보내거나 노예로 팔아넘겼다. 곧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하고 그 지명을 불러 이르시는 것은 두로, 시돈, 블레셋 등이 베니게 지방의 온 땅을 대표하는 지명들로 고대에 이곳은 노예 상인이 활개 치며 가장 많았던 곳이라 한다. 즉 어떤 죄악보다 사람을 상품으로 여기는 것은 심각한 죄악이다. 오늘 날 이 사회도 이를 잘 알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상품화한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한다. 사람을 상품화하는 것이 음지에서의 일뿐 아니라 양지에서도 서로가 합의하에 연봉으로, 실력으로, 학식과 지식으로 값을 정한다.
이를 ‘용서받지 못할 죄악’으로 취급하여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하고 주가 맞서 다투시겠다는 것이다. ‘속속히’, ‘빠르고 급히’ 그리하시겠다고 한다. 이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사 58:8).”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 31:1, 37:2).
곧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 있는 우리 성도들을 ‘속히’ 건지시는 것을 우선하신다.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1:2).
그러나 악인은 상대적으로 속히 망하게 하신다.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수 23:16).”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도 징계하시고 그러나 저들로는 다시 회복하게 하신다. 곧 오늘 말씀은 앞서 선민에 대해 예언하고(2장 32절까지), 오늘은 선민의 원수인 대상을 향해 예언하신다(-3:17). 이 중심에는 ‘여호와의 날’이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선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시 30:3-4).
이를 우리로 알게 하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주께 감사하게 하신다. 상대적으로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렘 31:10).” 하심을 우리로 더욱 확실히 알게 하신다. 곧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하여 만국으로 퍼져간다. 앞서 1, 2장은 유다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요엘 시대에 임한 ‘메뚜기 습격’과 ‘가뭄 재앙’ 그리고 그러한 재앙이 장차 올 심판의 날로 ‘여호와의 날’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예언하였다.
예언서의 대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치 선민을 심판하지 못해 노심초사하시는 분 같다. 더 심하게는 선민을 괴롭게 하고 귀찮게 하는 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로 보호하시고, 오히려 그럴 수 없는 지경에서도 저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기회를 수 없이 주고 또 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또는 상대적으로 선민에 대해서는 사소한 잘못에도 분노하시고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신앙을 가지고 생활하는 가운데도 이와 같은 감정을 토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누구는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다들 평안하고 괜찮은데 자신만 유난히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를 시편에서도 토로하고 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2-3).
저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4-9).
한 마디로 저들은 뭘 해도 잘 되는 것 같고 하나님 없이도 잘만 살고 평온하게 죽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 땅의 결과가 전부가 아닌 것이다. 오늘의 낙관이 내일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즉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괴롭히기 위해 어려움을 더하시는 게 아니라, 결국은 그 사랑으로 사랑하심이 우리로 주께 더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사 10:12).”
하여,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그러므로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잠 16:22).” 하심을 다시금 묵상하여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5:29).” 곧 오늘 여기서 잘 되고 형통한 것으로 축복을 운운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것이다. 그것이 복일지 저주일지는 모른다.
누가 사업을 시작하며 신앙으로 바로 살고자 했다. 즉 저가 주 앞에서 신앙으로 열심이었던 것은 그리하여 사업이 잘 되길, 주께 바라는 마음에서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더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주의 종을 섬겼다. 그러다 한 사람은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듯 망하여서 주를 원망하다 돌이켜서 주의 종이 되었다. 사역자로 그 일생을 살았던 것이다. 또 한 사람은 그렇게 해서 사업이 번성하여지자 교회 위에 굴림하며 수석 장로가 되기도 하고, 성도들을 좌지우지하고 교회의 목회자들을 고르며 판단하여 세우는 결정권자가 되었다. 어느 훗날 주 앞에 설 때 저 두 사람의 입장은 어떠할까? 저 두 사람은 내 곁의 가까운 사람 둘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7-19).”
내가 알기로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듯 대단하지 못하다. 선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적당하면 늘어지고, 안이하여서 주의 뜻을 왜곡하기 일쑤이다. 하여 자신 뿐 아니라 곁의 사랑하는 이들부터 하나님을 멀어지게 한다. 곧 오늘 본문에서 대적들도 그러하여서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6).” 모름지기 오늘의 문화니 예술이니 각종 실용적인 삶이란 게 우리로 이 땅을 향유하고 누리게 하여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들은 원래 솔로몬 왕과 약조를 맺고, 상대국의 백성들을 노예로 사고팔지 않기로 하였다(왕상 5:1-12). 그러나 두로인들은 후에 이를 무시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헬라 족속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암 1:6).” 결국 그들은 이스라엘의 원수 상태로 머물러 있어, “인자야 너는 얼굴을 시돈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가운데에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그 가운데에서 심판을 행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지라(겔 28:21-22).”
그렇게 헬라에 팔려간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부터 격리되는 신세가 되고, 헬라 족속에 해당하여,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사 66:19).” 하고, 또한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사람과 놋그릇을 가지고 네 상품을 바꾸어 갔도다… 워단과 야완은 길쌈하는 실로 네 물품을 거래하였음이여 가공한 쇠와 계피와 대나무 제품이 네 상품 중에 있었도다(겔 27:13, 19).”
그런 가운데 있는 것을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욜 3:16).” 즉 여호와가 부르짖으시는 모습은 심판받을 사람들에게는 위협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주어질 은혜로 여겨진다. 심판이 그렇듯 저들에게는 두려운 판결이 되나 우리에게는 억울함을 벗고 주의 위로를 받는 일이다. 여기서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나라를 상징한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8-10).”
그러므로 “이제는 갚아 주리니” 하시는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확신을 더한다. 곧 오늘의 슬픔과 어떤 어려움이 결코 핫되지 않을 것을 안다.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 하심을 마치 확정된 도장을 찍는 느낌이 든다.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21).” 곧 우리 하나님이 임마누엘이 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내다보고 산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하나님의 임재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이루어졌고(마 1:23, 요 1:14), 마지막 날에 모든 원수들이 진멸되고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볼 것이다.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옵 1:21).” 그리하여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4, 27).” 하여 오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하늘의 예루살렘을 묵상하고 상상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히 12:28).”
할 때에,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시 6:1-2).
하고 주께 아뢰며,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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