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2:4-5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 8:9
하나님은 우리의 일에 관여하시고 주관하신다. 모압과 유다의 죄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심판하실 것을 이르신다(1-8). 또한 이스라엘에게 대한 충고도 잊지 않으신다(9-16).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다른 인접 국가 중에 하나인 모압에 대하여 저들의 서너 가지 죄악으로 결산하고 처벌받게 하신다. 모압의 네 번째 죄는 앞서 재판에 회부된 자들과 마찬가지로 잔인이었다. 여기서 언급되는 사례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지 않고 다른 이방인과 관계된 것이다. 모압 왕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에돔인과 모압인 간에 전쟁이 있었고 모압 왕은 고뇌와 분노 중에서 자기 신을 달래려고 자기 아들을 제물로 드렸다는 기사를 읽는다.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왕하 3:26-27).”
그러므로 나중에 그 모압 왕이나 그의 계승자들 중 누군가가 그토록 궁지로 몰아넣은 에돔인을 치고 왕을 사로잡아 화형시켰고 죽여서 그 뼈를 태워 이미 죽은 에돔 왕의 묘를 파헤쳐 그 뼈를 다시 불태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모압을 구박하던 에돔 왕의 뼈를 파내어 분노의 표시로 불살라 회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잔인하고 극렬한 죄악을 이른다. 그 뼈가루를 자기 궁전의 벽과 천장의 회칠에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복수의 기념물로 자기 눈을 즐기려 했던 것이다.
복수는 생명 그 자체보다 감미롭다. 인체를 학대하는 것은 야만스런 짓이다. 우리 자신도 몸으로 있기 때문이다. 시체를 학대하는 것은 무분별한 짓이다. 그것은 불경건한 짓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고 기대하는 까닭이다. 왕의 시신을 학대한다는 것은 위엄에 대한 모독이다. 왕의 몸과 이름은 특별히 존중하고 존경해야 할 대상이다. 죽은 사자를 짓밟는 자는 자기의 비열하고 비겁한 성품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가 살았을 때 그 앞에 벌벌 떨고 있었을 자신에 대한 모욕의 증거이다.
이러한 죄악으로 모압에 대하여 오늘 이르신다. “내가 모압에 불을 보내리니 그리욧 궁궐들을 사르리라 모압이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 중에서 죽을 것이라(2).” 곧 죽음의 심판으로 잔인하게 취급하는 자를 잔인하게 취급할 것이다. 모압은 죽을 것이다. 모압인들은 전쟁에서 칼로 멸절당할 것이다. 전쟁의 칼은 요란하고 그 외침과 나팔소리 중에 죽는다. 그런 상황은 사자의 포효가 그의 찢음을 더욱 악화시키듯 그 살육을 더욱 두렵게 할 것이다. 군인의 모든 싸움에는 어지러운 소리가 함께 한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사 9:5).” 그런 가운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6).”
모압에 그리욧 궁궐들은 중요한 성읍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이곳에 궁궐이 있는 것은 수도였을 것이다. ‘모압의 알’ 같은 도시일 것이다.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사 15:1).” 또한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는 물밀듯이 몰아닥치는 적군의 모습을 묘사한다. 적군의 침략으로 모압인들은 순식간에 초토화될 것이다. 그것은 모압의 재판관에게 대한 심판이다. 그들의 재판장은 에돔 왕의 뼈에 대해 불살라 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하여 “내가 그 중에서 재판장을 멸하며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죽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3).”
곧 재판장인 왕과 모든 하급 재판관인 방백들이 함께 멸망 받게 될 것이다. 백성이 통치자의 죄로 말미암아 수난 당하게 될 때에는 통치자들도 피하지 못하는 것을 안다. 유다도 이스라엘의 가까운 이웃이었다. 그러므로 공의가 순회하고 있는 이상 유다를 그저 지나치지 않을 터였다. 유다는 스스로 이방인과 다를 바 없이 되어 그들과 섞였다. 그러므로 기소 양식을 띠며 다른 민족의 경우와 같이 증거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4).”
저들의 죄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하신다. 유다의 죄는 다른 열방의 죄만큼 많았다. 우리는 유다가 열방과 같은 비난 속에 묶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렘 9:26).” 곧 그들이 모두 매한가지라는 판결은 여기에도 나온다.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암 2:5).” 이는 ‘비록 하나님이 알려진 땅이지만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비록 그것이 거룩한 도성이며 내가 그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을지라도 내가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하심이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시 48:3).
그러나 유다가 여기서 책망 받는 죄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다르다. 열방은 인간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그 심판을 치르지만 유다는 하나님께 대한 불의에 대해 추궁을 받고 죄를 치른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4).” 곧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무시하고 불복종하며 고집했다.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였다. 여호와의 율법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고 그 안에는 소중한 것이 없기라도 한 듯 이방인들과 같이 여겼다. 이 점에 대해 그들은 율법을 제정한 분의 권위와 주권을 무시했다.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와 선하심도 멸시했다.
그들이 율례를 지키지 않을 때는 사실상 양심에 거리낌도 없었고 전혀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곧 우상을 숭배하였다. 그 거짓 것은 그들을 미혹하여 거짓 스승이 되었다.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합 2:18).” 곧 우상 숭배의 미혹으로, 그 미혹 때문에 다른 무수한 미혹으로 빠져 들었다. 즉 한 가지 불합리한 처사로 천 가지 불합리한 처사를 끌고 왔다. 이는 마치 거짓말과 같아서 아주 사소한 거짓말 하나가 여러 개의 거짓말로 점점 더 강화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영원하신 영이시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거짓 것으로 바뀌게 될 때 그의 모든 진리도 거짓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단순한 미혹의 의미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 같은 미혹에 내어주셨다. 내버려두심으로 오늘 우리 사회의 현상도 다를 게 없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8-31).”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이 뚜렷해졌다. 다른 주변국 곧 모압에 대하여는 저들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저지른 끔찍한 죄악으로 인한 심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르다. 저들은 선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다른 우상을 섬긴 데 따른 형벌이다. 이를 두고 저들이 ‘열조가 따라가던’ 것이라 한다. 앞서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 숱하게도 원망하고 불순종하며 이방 신을 섬겼다. 그것이 출애굽 때 따라 나온 잡족들로 인한 것이라 해도 결과는 같다. 더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저들은 그곳의 족속들을 조금씩 살려두었고, 이내 저들의 우상을 받아들여 타락하였다. 곧 이스라엘의 선조들, 유다의 조상들은 그때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이방신을 따랐다.
곧 멸망당할 열조의 선례를 경고로 삼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대해 받은 말씀으로 견책하고 경고한다. 이스라엘에 집중하게 하면서도 다른 열방과 마찬가지로 서두를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6). 곧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불의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이스라엘인들도 다를 게 없었다. 여기서 그들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은 어떻게 따지려 하시는지 분명히 한다.
이것은 행정과 사법을 위탁받은 재판관과 행정관과 관계 당국자들의 죄다. 그들은 한 조각의 은을 위해 의인과 의인의 송사를 거짓으로 판결했다. 사건의 공과를 따라 내려지지 않았고 뇌물에 의해 금액에 따라 낙찰하듯 하였다. 이 또한 오늘도 다를 게 없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회자될 정도이다. 당시에도 신 한 켤레 때문에 가난한 자들은 최소한의 자비도 얻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의 생명과 생계를 아무렇지 않게 팔아넘겼다.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7-8).”
이는 결국 그 원인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함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4).” 그로 인해 얼마나 야비한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6).” 참으로 인간이라 하기 어려운 양심과 치사한 결정을 내리고 살았던 것이다.
이는 말씀을 무시하고 신앙을 가벼이 여길 때 생기는 인간의 가장 저질스럽고 치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성경은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1).” 하심 같이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 2:9-10).” 곧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일에서도 주를 의식하고 마음에 모심으로 두려워할 줄 아는 일이다.
이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 그러니 남을 탓하고 뭐라 할 게 아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하여,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시 50:20-21).
우리가 함부로 주를 판단하고 교회를 비난하거나 뭐라 일컫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비루하고 치사하고 가증스러운 죄에 취약한지를 알아야 한다. 이방인 중에 있을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전 5:1).” 하심이 믿는 자의 생활에서도 역력하여서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암 2:7).” 결국 이것이 하나님을 등돌린 자들의 면모이다. 안 믿는 자들의 압제와 늑탈로 획득한 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척했지만 실은 자기를 만족시키며 기쁘게 했다.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8).”
곧 우리가 믿는 자로 산다면서 자기 믿음으로 자기가 도취되어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은 불의와 부정에 우상 숭배를 덧보태면서도 우상 숭배로 자기들의 불의와 부정을 속하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베푸신 큰일을 상기시키신다.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9-10).”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고 사는 자들에 대하여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11-12).”
곧 주가 세우신 사역자에 대하여 요즘은 비난과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그것이 자업자득이라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노예 같은 세상’에서 이끌어 내셨다. 저들로 애굽 땅에서 구출하신 것 같이 세상에서 종살이하던 우리를 건지셨다. 또한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인도하셨고 먹이셨다. 오늘까지 인도하심을 저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나안을 예비하셨고, 이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셨다. 일련의 모든 과정과 그에 따른 일과에서 오늘의 나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다.
하면 우리는 오늘을 어찌 살아야 할까?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 24:14).” 이와 같은 말씀이 길이다. 교회를 이전하고 나의 동선은 그대로라, 새벽에 일어나 교회로 나아온다. 아침에 묵상하고 글을 쓰고, 이를 낮 동안에 준비하고 정리하기도 한다. 일주일 동안 설교원고를 작성하고 그러느라 성경을 찾아보는 게 일이다. 누가 오고 안 오고, 어떤 일을 맡고 안 맡고 하는 데는 전적으로 주의 뜻이라 나는 조급함을 물리치려 한다. 나서서 무얼 하려 애쓰지 않음으로 평안을 구한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 131:1-2).
그러면서도 동시에 오늘과 같은 말씀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렘 22:21).” 행여 나의 안일하고 나태함이 나로 주를 멀미하게 할까 하여, 오늘의 어려움과 약함을 사랑한다. 나의 약한 데서 강함이 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러므로 오늘도,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 8:1).
하고 주를 찬송함은,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3-4).
나 같은 게 뭐라고,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5).
그러므로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6, 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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