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7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 9:1, 10
하나님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리신다. 주의 사람들은 이를 듣고 선포한다. 이는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스스로에게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면 자기 안의 근심과 염려가 먼저 아우성친다. 더욱이 아침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말씀을 묵상하는 일은 그래서이다. 본능적으로 우리 의식은 이생의 염려와 근심으로 요동친다. 이런저런 일이 우릴 어지럽힌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도 어림없는 일이다. 이에 오늘 말씀은 ‘말해야 하는 것에 대해 여호와께서 그들을 쳐서라도 말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 이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7).”
이는 마치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2).” 곧 주의 관심은 주의 사람들이다. ‘너희만을 알았나니’ 하시는 데서 안도하며 위로를 얻는다. 나만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여러 아이가 놀고 있을 때도 부모의 눈에 그 자식만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에 따른 변론이 이어진다. 그렇듯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3).” 곧 주가 우릴 사랑하심 같이 우리도 주를 사랑하는 것은 마땅하다. 이는 마치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4-5).”
그렇듯 당연하게 이상한 게 아니어서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6).” 우리가 주를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사랑을 또한 잘 안다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았고 그 이름에 의해 부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쳐서라도 이를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쳐서라도 이르시는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가 말씀하신 대로 행동하실 것을 성경에서 누누이 재차 알리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이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시지만 그 때문에도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리신다. 곧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족속이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으로 내려갈 때는 하나의 가족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족을 애굽에서 건져내셨다. 거기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실 때 자기 가족이 되게 하셨다.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열 지파의 나라가 된 이스라엘뿐 아니라 유다 왕국도 그러하다. 말씀은 하나님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와 같은 말씀을 이르신다. 이들은 하나님의 남다른 은총을 특별히 받았고 이를 인정하는 족속이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너희만 알았노라.’ 하시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이는 은연중에 우리가 삶 가운데서 느낀다. 살아오는 동안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하나님의 남다른 관심과 사랑이 내게 집중되었음을 알았다. 어릴 때는 그것을 분간하지 못했어도 이제 더욱 주를 알면서 나에게 더하신 주의 은총이 단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가령 나의 부친의 경우 그 강원도 두메산골 예배당에서 복음을 받고 난 뒤, 부모와 문중의 끔찍한 반대에서 불구하고 신앙을 가지고 믿음을 지켰던 일. 일가를 이뤄 사업가로 성공하려 상경하였던 게 1974년도 서울 천호동 일대가 침수되는 대홍수를 겪으면서 당시 귀하던 손수건과 자개장에 붙이는 자개납품업체가 졸지에 물에 잠겨 떠내려갔다. 이어 기도원에 올라가 죽고자 할 때 주가 살리시고는 아이 넷에 가장인데 뜬금없이 목사로 부르셨다. 그때 내 나이 고작 일곱이었다.
이어지는 잦은 이사와 사람들과의 마찰 속에서도 그때마다 교회는 하나둘 새로 시작되었고, 그와 같은 전투적인 목회자의 생활이란 뭐라 말로 다 할 수 없는 가난과 여러 어려움을 선사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는데 돌아보면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생활 속에서의 생생한 하나님의 손길이 이제는 확실하다. 어려서 그 의미를 다 알지는 못했어도 주는 언제나 함께 하시며 길을 여시고 모든 게 부족함이 없도록 채우셨다. 그렇듯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들이 되었을 때 누나나 매형부터 하나둘 형제들이 모두 하나님의 강권하심 앞에 굴복하였고, 앞서 목회자들이 되었다. 이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에게도 주는 기어이 돌이켜 이 길에 세우셨다. 곧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7).”
묵상을 할 때마다 자주 언급하였던 일이지만 말씀은 생생하게 나의 삶에 비친다. 미처 몰랐던 일에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알게 된다. 내가 이처럼 필사적으로 새벽을 지키며 묵상의 시간을 갖고 이를 글로 쓰는 것도 그것을 알고부터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에도 우리는 한사코 이를 부정하려 든다. 본능이 그런 것인지, 세상에 있는 동안 교회는 땅위의 모든 삶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알려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그렇게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다. 유다는 다른 어느 민족보다 하나님께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살았다. 하나님은 그들을 아셨다. 그들을 택하셨고 그들과 언약을 세우셨으며 친밀한 관계로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그와 같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이 글을 본다는 것, 누가 함께 말씀을 나누며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확실히 알고자 하는 것, 이는 모두 아무나 어쩌다 그리 하게 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살려 주며 너희 허물을 묵과하고 너희를 용서해 주리라.’ 하신 데 따른 확신이 먼저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심도 따라온다. 이에 우린 스스로 죄인인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예수를 찾게 된다. 예수의 이름으로 용서와 구원을 바라게 된다. 예수밖에는 나의 죄를 감당하실 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곧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은총이 우리를 범죄로부터 방지하는 데 있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더 가깝게 그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더 인자하게 돌보실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음이 모인다. 마치 누구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확인하고 더욱 차지하려 드는 것과 같다. 그렇게 자신을 말씀 앞에 세우고자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주를 알게 되면서, 말씀이 나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말씀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3-34).” 할 때만 해도 저는 자신을 과신했다. 그러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가를 알면서부터 달라졌다. 예수를 판 유다나 세 번씩이나 부정하고 부인하여 저주까지 한 베드로나 다를 게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는 스스로 끝장을 냈고 하나는 주께 맡기었다. 이와 같은 바울도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그 특권이 남다른 만큼 책임도 따른다.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롬 2:20-21).” 하여 나는 아무도 안 오고, 안 듣고, 안 읽는다 해도… 한다. 내게 맡기신 일로 여긴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뜻을 같이 하는 일이다. 하여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말 2:6).” 이를 본받아 오늘을 사는 일이란 우선은 말씀을 묵상하는 데서다. 돌이켜 말씀에 자신을 세움으로 말씀에서 답을 구하는 일이다. 하여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속한 이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않는다. 오늘 3절을 다시 보면,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이는 곧 그리하여 틀어지고 마찰이 생겨 결국은 끝이 안 좋은 이유도 그래서이다. 한 친구가 십 수 년 가까이 같이하며 어떤 일에 쓰임을 받다 버려졌다. 어떤 과오나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면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겠는데 전혀 예상도 할 수 없는 가운데 업무에서 배제되고 가까이 했던 이들마저 멀어지게 되면서 결국은 자진하여 사직을 했다. 저는 말할 때마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답답해한다. 속된 말로 짤린 것도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관둔 것이지만 자발적으로 퇴사한 것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답답한 심정으로 저는 요즘 죽을 맛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 16).”
하신 말씀을 지금 저에게 한들, 부모는 장로로 권사로 일생을 교회에서 헌신하셨고 그로 인하여 두 형제가 목회자로 살면서 모든 자녀들이 주의 뜰에 거하는데, 저 역시 그 교회 재정집사로 섬기면서도 그리 안 믿는 자들고 스스럼없이 어울려 사업을 같이 하고 저들 문화를 거들며 살던 일이라….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3-14).” 그러니 다들 사는 데 따른 일들에서 이와 같은 말씀에 선뜻 경계하고 동조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하는 이 단순하고 놀라운 진리 앞에 수긍하는 것이 복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관여와 섭리로 이루어진다. 하여,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104:28-29).
스스로 알아서 잘 사는 것 같을 때가 위험하다. 스스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면서 말씀과 상관없이 판단하고 이를 따르려 할 때가 문제다. 완고함이란 순종함의 뒷면 같이 자신에겐 그렇듯 하다. 신념과 믿음이 같은 것이라 여기는 것과 명상과 묵상을 하나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하실 일을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알리신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단 9:23).” 하심과 같이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 하신 주의 말씀도 같다.
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 1:7).” 먼저 말하게 하실 때, 깨우치신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우리로 듣게 하시고 알게 하신 후에 일을 하신다. 더러는 우리의 그런저런 면이 사람들의 비판이 된다 해도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는 명령이다.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시 44:13-14).
그럼에도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시 9:1-3).
설령 오늘이 나를 속이듯 어려움이 겹겹으로 에워싼다 해도,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7-9).
그러므로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3-14).
오늘도 주 앞에 엎드려서,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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