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9 주일
히브리서 6장
영혼의 닻
히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 6: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 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히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들어가는 말
생을 다하고 영혼이 가 닿는 곳에 닻을 내린다. 그렇게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12).” 즉 죄로 인하여 이 땅의 누구도 장구하지 못하다. 곧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20).” 그렇다면 우리가 깨닫는 것, 곧 이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을 내릴 곳이다. 흔히 인생을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닻’은 헬라문학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뜻한다. 우리의 소망은 저 천국에 있다. ‘영혼의 닻’을 내릴 곳으로,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하는 말씀으로 증명이 된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다.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5).” 하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13-14).” 하신 데 따른 약속을 붙들고 저는 소망을 가졌다. 우리 ‘영혼의 닻’을 내리기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산다. 삶이 어떠하든지 우린 이와 같은 불가항력적인인 은혜,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믿음은 우리를 견인하신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9:15).” 하여서 우리로 영원한 기업, 저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하시려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이를 위하여 우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말씀이 이를 증거하신다.
1.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서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1-3)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1-2).” 여기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란 앞서 5장 11-14절에서 말한 것 같이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물면서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한심하다. 이는 마치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와 같은 성도이다. 이에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14).” 그렇다면 그리스도 도의 초보는 어떠한가?
1) 그리도의 도의 초보: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
첫째,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 율법의 조건 따라 사는 행실
둘째, 신앙을 바로 하라: 타종교와의 융화를 경계
셋째, 세례를 받으라: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라
넷째, 안수하라: 직분을 감당하라
다섯째, 죽은 자의 부활을 믿으라: 일상은 부활을 사는 것
여섯째, 영원한 심판에 교훈의 터: 성경의 무오성
2)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첫째, 유대의 관습과 율법에 따른 삶을 버려야 한다.
둘째, 회개함으로 죄를 인정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곧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넷째, ‘죽은 행실’은 구약의 율법에 따른 제사 의식, 형식주의와 기복적인 신앙이다.
이는 모두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해당한다. 온갖 악행을 더하며 우상숭배와 지난날의 행실을 유지하려 한다. 이에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막 3:28).”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모든 게 기만이고 교만이다. 믿음은 참된 신앙에 따른 것으로 구약 전체를 관통한다. 모든 성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으로 갔고(창 15:6),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하심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성경의 믿음의 영웅들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하는 말씀을 구약에서 이룬 자들이다. 이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이와 같이 오늘 우리도 믿음으로 우리가 항해하여 가 닿을 영혼이 닻을 내릴 곳으로 향한다.
2.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에 대하여(4-8)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5-6).” 우리가 ‘완전한 데로 나아감’은 그만큼 믿음의 연단이 필요한 길이다. 바울의 설교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곧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일이란 이 땅의 소망 괴리된다. 여기서 ‘세례들과 안수’는 회심과 사명을 뜻한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증표로 세례를 받는다. 안수는 교회의 사명자로 보내심을 받는 일이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살 수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러나 이전 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피조물이기를 거부할 때, ‘성령을 훼방하는 죄’로 이는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하는 자’들이다. 저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 이를 자기 의지대로 거부하는 자들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
3.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기를(9-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9, 12).” 우리가 ‘완전한 데로 나아가지 않을 때’ 소망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 이는 ‘타락한 자들로 성령을 훼방하여’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하는 자들이 된다. 곧 우리가 이 땅에서 복락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9).” 하심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2).” 이로써 우린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을 붙들어야 할 터,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전 1:8).” 한 것 같이,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그리하여 믿음은 인내함으로 주를 온전히 바랄 수 있게 한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1:1).”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과 이해할 수 없는 약속으로 천국을 바라는 데 있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곧 우리가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을 가지게 되고 구원에 이른다. 이에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5).” 하심 같이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11-12).” 하는 게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4. 이 소망은 영혼의 닻을 내리기까지(13-20)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19-20).” 소망이 없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할 수 없다. 곧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은 장차 도래할 영광의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하심을 붙들고 ‘완전’과 ‘성숙’을 이루어가는 일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인격적으로 순종함이다.
이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이것이 오늘 우리가 신앙으로 인내하며 가는 길이고, ‘더 좋은 것’으로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11:40).” 하신 데 따라 믿음의 영웅들이 나아갔던 순종과 인내의 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3).” 하는 오늘 말씀으로 귀결된다. 오늘 우린 어쩌다 믿음을 가진 게 아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5).” 하심을 이루려는 성경의 약속에 따른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가능한 일인데, 이미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그러므로 우린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이 될 수 없다. 그러한 믿음의 확신으로 오늘을 산다. ‘한 번 빛을 받았다’ 하는 것은 회개하여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그러므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 하는 말씀으로 산 것이지, 돈으로나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19-20).” 하여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 의외로 자아도취에 빠진 믿음으로는 영혼의 닻을 내릴 수 없다.
나오는 말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찬에 참여한 자들로, 예수의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로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즉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세상으로 돌아간 자들은 둘 중 하나다. 처음부터 저들은 마술사 시몬처럼 자기 필요에 따라 성령을 구했거나, 이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즉 회개를 자기 반성이나 후회쯤으로 여겨 더욱 완고하여진 자들이다. 그런 저들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이면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삶을 사는 안 믿는 자보다 못한 자들이다.
가룟인 유다에게 예수께서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저에게 더 좋았을 것이라’ 하신 것과 같다. 끝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은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7-8).” 하심 같이 본래 믿는다고 하면서 서로 다른 것을 믿는, 그런 자들도 있다. 이에 오늘 우리는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11-12).”
이에 환난 중에도 인내를, 인내로 연단을, 연단으로 소망을 이루는 줄 앎으로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18).” 아멘.
'[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히브리서 8장 / 새 언약 (0) | 2026.04.30 |
|---|---|
| 히브리서 7장 / 더 좋은 소망: 언약의 보증 (0) | 2026.04.23 |
| 히브리서 5장 / 하나님께 속한 일 (0) | 2026.04.09 |
| 히브리서 4장 / 창조할 때부터 이루어진 일 (0) | 2026.04.02 |
| 히브리서 3장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0) | 2026.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