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히브리서 7장 / 더 좋은 소망: 언약의 보증

하현. 2026. 4. 23. 14:33

260426 주일

 

 

히브리서 7장

더 좋은 소망: 언약의 보증

 

 

히 7: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히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히 7: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들어가는 말

 

‘멜기세덱은 복을 빈 자라.’ 곧 창세기 14장에서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19).” 할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주변국의 전쟁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가자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멜기세덱을 만나 전리품 가운데 ‘십일조’를 바쳤다. 제사장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곧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하심 같이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1-2).”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이에 대해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6:20).” 하여,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행하심을 보고 의아하여,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었고(요 8:53), 이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56).” 하고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의 기쁨,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을 전하셨다.

 

본문이해

 

오늘 본문(4-10)에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탁월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증거 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17).” 하는 말씀은 시편 110:4을 인용한 것이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즉 오늘 본문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19).” 하는 것으로 우리는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이 불완전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과 무관하다는 것을 설명하며, 곧 “의의 왕, 살렘 왕, 평강의 왕”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직임을 나타낸다. 곧 율법의 계명으로는 사람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율법이 혹시 사람의 외형적인 것은 정결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을 따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더 좋은 소망’을 알게 하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밝히는 바, ‘언약의 보증’되시는 예수시다.

 

1. 멜기세덱을 섬긴 아브라함의 십일조

 

1) 승리하는 성도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1).”

 

이를 히브리서는 9장에서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14).” 하고 역으로 묻는다. 곧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23).” 하면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의 의미를 강화한다. 이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2) 그리스도는 의와 평강으로 영원히 통치하실 만왕의 왕이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2).”

 

곧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19). 여기서 ‘온전하게’는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하고 물은 것도 그 이유다(11). 즉 율법은 단지 외형적인 것은 깨끗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적인 양심은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9:9, 14).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3) 성경이 감추신 비밀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3).”

 

우린 멜기세덱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성경은 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리라(19).” 하는 것은 ‘더 좋은 소망’으로 즉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우리가 레위적인 율법으로 이룰 수 없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고 증거 하는 것이다. 하여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20).” 즉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엄숙하신 맹세로 말미암아 제사장으로 지목된 것을 상기시킨다. 즉 이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28).” 하신 말씀의 것이다.

 

4) 우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4).”

 

곧 예수님의 제사장직 수행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맹세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다. 우리들은 그의 제사장직에 ‘소망’을 가지고 우리의 ‘영혼의 닻’을 드리울 수 있는 것이다(6:18-20). 하여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21).” 하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맹세다. 그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2.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1) 반드시 종말이 온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18-19).”

 

즉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 부여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맹세하신 약속에 신실하심으로 보증이 된 것이다. 반면 율법 하에 이루어진 레위인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맹세나 약속, 보증 없이 율법과 서열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의 법’으로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16).” 하는 말씀의 증거다. 이와 같이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22).”

 

2) 예수는 우리의 보증이시고, 중보시며, 대언자이시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22).”

 

언약은 유언, 서약,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은혜로운 의지를 가리킨다. 동시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함축되어 있다. 문맥적으로 이 언약은 제의적이다. 즉 구약의 제의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것만 정결케 할 수 있었지, 정작 저들의 내적인 양심은 정결케 할 수 없어 불완전하였다. 이는 의인이 없나니 사람으로 의인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18).” 오늘 이렇듯 새로운 언약의 ‘더 좋은 소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3) 썩어질 것에 미혹되지 말자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23-24).”

 

그리스도의 제사장직분은 하나님의 참고 기다리심으로, 그 인내와 긍휼하심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을 수립하셨다. “…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8:8-9).” 하여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10).” 하신 새 언약이다.

 

4) 타종교나 사이비, 미신을 구별하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2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9:15).” 고로 새 언약은 구약의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소망의 새 언약’이다. 이 ‘더 좋은 언약’은 보증으로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7:19).” 곧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의 구원에 대한 담보로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 되셨다. 하여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대언자란 우리 죄에 대하여 대신 변호하는 자이다.

 

나오는 말

 

이에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하는 오늘 말씀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25).” 여기서 간구하심이란,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내려달라고 우리를 위해 요청하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오늘도 알고 모르고 짓는 모든 죄에 대하여 변호하신다.

 

이는 예수의 사랑의 충만하심에 따라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이는 우리의 그 어떤 죄라 할지라도 능히 감당하지 못하실 게 없으므로 이를 두고 요한은 예수께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심’을 나타냈던 것이다. 곧 이러한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으로 인해 우리들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때면, 어떠하든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더 좋은 소망 곧 천국의 백성들로 ‘영혼의 닻’을 내릴 영원한 안식의 처소가 예비되었다. 이 언약의 보증이 우리 예수이시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이는 곧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19, 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