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히브리서 8장 / 새 언약

하현. 2026. 4. 30. 18:28

260504 주일

 

히브리서 8장

새 언약

 

 

히 8: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히 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 8: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금 히브리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좀 더 바르고 명확하게 알아가고 있다. 이는 막연하지 않고 추상적이지 않다. 1장에서 예수께서는 ‘만유의 상속자’가 되심을 두괄식으로 전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3).” 곧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다. 하나님의 본체이고,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셨다. 예수님은 죄를 정결하게 속죄의 사역을 감당하셨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다(1-3).

 

히브리서는 유난히 이를 논증하는 데 있어 구약을 인용하고, 모든 선지자이 증언하였듯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주제로 한다. 즉 예수는 그 어느 선지자보다 뛰어나시고, 천사보다 우월하심을 진술한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다. 히브리서는 그런 점에서 유난히 구약의 특히 시편의 말씀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렇듯 예수를 설명하며 오늘날에도 우리 신앙이 세태의 풍조에 표류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2장). 예수를 영접하고 믿었다가 복음에서 떠나 표류하는 <신앙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1-4).

 

첫째, 불신앙으로 인한 위험성(3:7-4:13)

둘째, 신앙의 미성숙함으로 인한 위험성(5:11-6:20)

셋째, 영적 침체에 빠지는 위험성(10:26-39)

넷째, 하나님을 거부하는 데 이를 수 있는 위험성(12:25-29)

 

3장으로 넘어오면서 우리에게 알린 이 위험성에 대비하여,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1).” 예수님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셨고, 이는 집을 지은 자가 그 집보다 존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동일하게 존귀하심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함으로, 4장으로 이어지면서 ‘영원한 안식의 약속’에 대해 언급한다. 하나님의 선민이면서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많다는 것을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를 통해 알게 한다.

 

‘안식’ 곧 우리의 영원한 본향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11장에서도 구약의 믿음의 영웅들을 통해 알게 한다. 곧 저들은 이 땅에서 약속을 받았으나 얻지 못하였으나 더 좋은 소망을 붙들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39-40).” 그런데 우리가 신앙의 침체에 머물거나 답보상태로 이탈자가 되어 낙오되는 일이 없도록 5장으로 넘어가면서는 이를 주의할 것을 외친다.

 

즉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 지 오래 되었으면서 여전히 초보상태로 머물면서 ‘어른아이’ 같은 신앙 상태의 성도들이 허다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곧 ‘이제 선생이 되어야 마땅한데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고 꾸짖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초보가 되는 것을 지적하였다. 남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 도리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인 것에 대해, 아이가 자라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젖병을 무는 ‘어른아이 같은 성도’를 지목한다.

 

이에 바울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롬 2:2).” 하고 경고하였고,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 하면서, 결국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그러는 동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는 6장에서 밝힌 바, 우리가 가 닿을 ‘영혼의 닻’을 내리기까지 그리하여 성장해야 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19-20).” 하고 증거하였다. 곧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은 반드시 도래할 영광이다. 우리가 ‘완전한 데로 나아’가기까지, ‘완전’과 ‘성숙’을 이루어가는 일은 순종에 있다. 그리하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신다.

 

그런데 여전히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머물고, 죽은 행실을 회개할 줄 모르고, 신앙을 바로 하지 못해 성장을 멈춘 상태라면 이는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곧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안수하라.’ 곧 그 직분을 받아 감당한다는 것이다. 그리므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면 보내심도 받은 것이다. 죽었던 우리 영혼이 살아난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때에는 영원한 심판이 있고, 동시에 안식이 있다. 이 심판의 때에 우리 앞에는 생명책과 행위책이 동시에 심판장 앞에 놓였다. 생명책에 있는 우리에게는 대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그러므로 우리의 행위에 따른 책임은 대언자 예수께서 대신하신다. 단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할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히 6:2).” 하심이다.

 

유대의 관습과 율법에 따른 삶을 버리고, 회개함으로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그것은 ‘죽은 행실’로 이루어지던 율법에 따른 신앙 곧 ‘형식주의’와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때 7장에서는 예수께서 우리의 보증이시고, 중보자이시며, 대언자가 되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22).” 하는 게 그 요점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은혜로운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의지다. 동시에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18)” 하는데, 구약의 율법이나 계명이 오류가 있다는 게 아니라, 이로써 우리가 준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우리가 새로운 언약, ‘더 좋은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 수 있음을 인정하게 하신다. 하여 예수님은 단호하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하고 오늘 우리에 대한 사랑을 강한 의지로 나타내신다.

 

본문이해

 

오늘은 이에 따른 새 언약을 선언한다. 먼저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분이다(8:1-5).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예가 되신다는 점에 주목하게 한다. 이에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1).” 즉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오늘도 우릴 위해 중보 하신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은 오늘도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이시다.

 

이를 오늘 세 가지로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6).”

 

첫째, 더 아름다운 직분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1-2).”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행하시는 곳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라 하늘처소에서이다. ‘직분’의 헬라어 뜻은 ‘아름다운’으로 ‘우월한’이란 의미를 지닌다. 곧 예수께서 얻으신 직분이 아름다운 이유는 대제사장의 본질적인 임무인 ‘속죄 사역’으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구원이시다.

 

둘째, 더 좋은 약속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①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②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③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④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0-12).”

 

① 내 법을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기록하겠다.

②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될 것이다.

③ 각각 다 나를 앎이라.

④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셋째,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중보의 헬라어 뜻은 ‘더 좋은 언약’으로 ‘새 중재자’ 곧 ‘더 좋은 약속’으로 연결되어 이어진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하신 데 대한 말씀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곧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2).” 하심으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3).” 하신 말씀으로 근거를 삼는다.

 

나오는 말

 

이처럼 모든 성경의 예언은 ‘새로운 언약’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 사역은 제사장의 직분과 동시에 하늘의 우편 보좌에 앉아 오늘도 우릴 위하여 중보하시는 것이다. 이에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3).” 곧 우리 구주 예수님은 우리 죄를 속죄하는 대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우리 죄를 위하여 사하심을 위한 예물이 되시었다. 이 모든 일의 목적은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2).” 곧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기 위함이다.

 

이는 엄연한 약속의 증거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어 오늘 본문은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하심으로 확증하셨다. 고로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