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여호와의 선민, 하나님의 백성, 자녀로 산다는 일은 ‘주목 받는 생으로 사는 일’이다. 사람에게는 물론 하나님에게는 더욱 확실하다. 주의 눈에 주의 백성만 보인다. 그렇듯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은 확실한 심판과 준엄한 재판으로 연결된다. 앞에서 그에 따른 심판 가운데 세 가지 환상을 보이셨다. ‘메뚜기 떼 환상’과 ‘불의 환상’에 이어 ‘다림줄 환상’과 오늘 네 번째 환상인 ‘여름 실과 환상’이 나타난다. 이는 악한 지배층을 대표로 한, 심판의 날에 대한 분명한 도래와 그 참상을 경고하고 있다. ‘여름 실과 환상’을 통하여 더 이상의 용서가 남겨지지 않은 것을 선언한다. 그 집행의 실례로 궁전에서의 살육을 예고하고 있다. 여름 실과 환상은 ‘다림줄 환상’과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유사하다. ‘다림줄 환상’이 단지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확정된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다면, ‘여름 실과 환상’은 그 심판의 시기가 임박하였음을 보여준다는 데서 차이점이 있다.
‘여름 실과’는 팔레스틴에서 마지막으로 수확하는 작물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여름 실과 환상을 보이신 것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나타낸다. 특별히 여름 실과가 수확 되어 광주리에 담겨졌다는 것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서 4-14절에서는 네 번째 환상에 이은 첨가 기사로 타락한 북이스라엘의 지배층을 대표로 한 심판 날의 분명한 도래와 그날의 참상에 대한 경고를 알린다. 선지자는 먼저 지배층을 향하여 여호와의 심판의 원인으로 저들의 악행을 지적하고 있는데, 여기서 지적하는 북이스라엘 지배층의 악행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 대한 압제(4),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경배해야 하는 날인 안식일과 월삭조차 귀찮아 하는 것(5a), 거짓을 통한 부당한 이득을 취득하는 것(5b), 힘없고 가난한 자를 노예로 삼는 행위(6a), 사기(6b) 등을 소상히 밝힌다.
이러한 죄목은 당시 북이스라엘의 지배층이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타락 상태에 있었는지 나타내고 있다. 선지자는 이러한 악행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경천동지의 대심판이 북이스라엘에 반드시 임하고 그 날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도 찾지 못하는 ‘영적 기갈 속’에서 그들이 숭배하던 우상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허무하게 단절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실 북이스라엘의 지배층이 갖고 있던 유일한 관심은 세속적인 부귀영화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일조차 번폐스럽게 여겼다. 물론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거짓을 일삼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재물을 모으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자신들이 택한 길, 자신들이 택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형통케 하려 애썼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허무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말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오직 현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나 육신의 만족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 역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 날에는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재차 보여준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이시고 말씀에서 우리가 보고 듣지 못함으로 깨닫지 않으면 다를 게 없다. 당연히 이 땅을 살면서 여러 이유에서도 돈은 필요하다. 이를 벌거나 간직하기 위해서도 여러 노력은 필요하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한다. 사람을 속이고 악랄하게 군다. 어쨌든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다. 그런 차원에서도 오늘 말씀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
이번에 아이의 결혼과 앞서 아버지의 소천으로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늘 도움이 못 되어서 내 이름으로 들어온 축의금이나 조의금에 일체 내 몫을 찾지 않았다. 더욱이 딸애에게는 그게 얼마가 됐든지 저 필요한 곳에 쓰라고 했다. 오히려 나는 저들의 빈자리로 쓸쓸하다. 아내는 어엿하고 덤덤한 줄 알았는데 요며칠 아프다. 감기가 심하게 온 줄만 알았는데 특히 딸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어제는 뜬금없이 손을 잡고 걷거나 슬그머니 힘들다는 소리도 하였다. 평소 그런 소릴 안 하는 사람이라 딸애 때문에 그렇겠다는 생각은 했다. 누구보다 친구처럼 서로 지지고 볶고 가장 가까운 사이로 지냈는데 막상 시집을 보내고 나니 허전한가보다. 며칠 째 딸애 방에 가서 잔다.
오히려 나는 휑하니 아버지의 부재가 크게 다가왔다. 누이와 매형, 동생들은 애쓰며 아버지의 사망신고와 살던 집이며 집기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청평이라 선뜻 같이 가보기도 그렇고, 간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도움도 없을 테지만 자꾸 울먹거려서 도움이 못 될 거였다. 아들애한테 같이 가자할까하다 공부하랴, 아들도 감기가 와서 어제는 병원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여하튼 그런저런 사정에 정신도 없고 마음도 어려운데 그에 따른 비용이 만만찮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크다는 게 그런 것 같다. 가끔씩 허공을 보다 혼자 흐르는 눈물에 얼른 마음을 추스른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하는 말씀은 3절에서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는 것으로 연계된다. 여름 실과 환상을 통해 북이스라엘에 내려질 심판을 전하는 내용으로, 이를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하는 것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는 것으로 주목하게 한다. 이를 보이고 말씀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아무리 하나님이 무언가를 보이시려 해도, 말씀하시려 해도, 보려 안 하고 들으려 안 하면 소용이 없다. 눈과 귀를 막고 있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이런 것이다.
이에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 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의식적으로 듣고 보는 것을 거절하는 데는 별 수 없다. 안 보이고 안 들려서 어쩔 수 없이, 모르고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속죄제가 드려지듯 용서를 빌며 회개하고 자복하면 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그리하여 알고도 싫은 것이라 듣고, 보지 않으려 귀 막고 눈을 감은 경우면 다르다.
진정 우리가 삶을 사는 동안 거룩한 삶, 순결하고 의롭고 복된 삶을 살길 원한다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과 들려주시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이게 말이 되겠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연인처럼 보기를 원하시며 듣기를 원하신다. 보고 듣는 눈과 귀를 구비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이목을 집중하게 되는 관심의 중심이기도 하다. 하여 시인은 구하기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시 119:33-34).
하고 우리도 구해야 한다. 곧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12).” 하심과 같이 사랑한다고 하면서 무관심하거나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 첫째 환상에서 ‘메뚜기 재 앙’에 관한 것도, 둘째 환상에서 ‘불의 재앙’에 관한 것도, 셋째 환상의 ‘다림줄 환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째와 둘째 환상은 직접적인 재앙에 관한 것이었으나 아모스의 중보 기도로 철회되었던 것을 보았다. 아직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셋째 환상인 ‘다림줄 환상’은 직접적인 재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렇듯 여러 번에 걸쳐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시며 언제든지 돌이킬 것인데도, 오늘 본문의 ‘여름 과일 환상’도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셋째 환상과 같다. 다만 다림줄 환상이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된 사실만 보여주고 있다면 ‘여름 실과 환상’은 그 심판이 매우 임박하였음을 알게 한다. 마치 자식이 잘못했을 때, 혼난다, 그러다 진짜 혼난다, 정말 혼낼 거야… 하는 식으로 재차 확신시키고 다시 돌이킬 수 있게 하는 부모와 같다. 그저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보았을 뿐 다른 특별한 것을 보지 않았다. 이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의 환상에는 중요한 의미는 여름 과일은 이스라엘 땅에서는 마지막 수확하는 작물이란 것이다. 그런데 여름 과일이 이미 수확되어 광주리에 담겨 있던 것은 북이스라엘의 끝 곧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끝에 다다랐음을 암시한다. 죄는 방치하면 필경 장성하여 사망의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세상적인 물욕은 그러해서 ‘거머리에게 있는 세 딸’ 같이 ‘다고다고하느니라.’ 하는 것이다. 만족함이란 없다. 누가 요즘 주식으로 어떤가? 하고 서로 말하는데 보면 다들 ‘다고다고하느라.’ 좋을 것 같은데 나쁘다. 그때마다 나 같으면 이윤을 덜겠는데 그럴 수 없는 모양이다. 손해 본 게 있으면 그걸 만회하려 그렇고, 이윤이 났으면 더 좀 더 기다리면 오를 것이라 여겨서… 인간은 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돈이라 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2-5).”
오늘을 사는 동안 이러한 것은 흔하여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하시는 말씀으로 귀 기울이고 눈을 떠야 하겠다. 그러나 그리 다짐하여도,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시 7:14).
그러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사 59:5).” 이에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름 과일의 때’가 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의 환상’을 통해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과일 나무가 그 열매를 맺고 열매를 거두어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그 마지막 때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새삼 밝견하게 된다. 동생들과 누나가 부친의 자리를 정리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남긴 게 없어서 서류 절차가 복잡할 뿐 서로 얼굴 붉힐 일도, 남겨진 것으로 그걸 싸안고 씨름해야 할 것도 없이 빈 몸으로 살다 가신 셈이다. 사용하던 물건들은 ‘당근’을 통해 나눔으로 거의 처분하고 집은 비워주고 얼마를 받으면 끝이다.
상조나 보험 등 필요한 것을 남겨두어 장례를 준비하는데 모자람이 없었고 어머니 혼자 남겨졌을 때 사용하고 쓸 수 있는 그때마다의 몫이 또한 자식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내의 존재란 참으로 위대하여서 나는 요즘 이 두 여자에게 자주 감탄한다.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은 일면은 과일나무에 빗댈 수 있어서, 어떤 사람은 선한 열매를 맺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는다. 사람은 자기 의지에 따라 선한 열매를 맺거나 악한 열매를 맺는다. 중요한 것은 다 어떤 종류의 열매든지 맺게 마련이고, 그 열매를 거둘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이에,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전 8:12-13).” 곧 오늘의 성공이나 모면하는 여러 결정적인 위기나 회생이 전부는 아니다. 종종 보이는 것이,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14).” 하나 결정적인 때가 오나니,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하는 너희의 이 속담이 어찌 됨이냐(겔 12:22).” 우리는 이러한 풍조나 사람들의 관심에 주의해야 한다.
하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 2:34-35).”
이에 오늘도 주 앞에 엎드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1-3).
그러한 세상에서,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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