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히브리서 10장 /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하현. 2026. 5. 14. 09:31

260517 주일

 

히브리서 10장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히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들어가는 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심으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하신 것이다. 이에 율법으로는 의로울 수 있는 ‘장차’가 없다. 해마다 드리는 제사로는 온전하게 될 수 없다.

 

만약 제사나 율법으로 온전할 수 있었다면, 단번에 정결하게 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제사는 해마다 되풀이해야 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할 뿐,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깨끗하게 할 수 없었다. 이를 깨닫고 ‘황소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죄 씻음을 받고자 회개하였으나 죄를 없이 하지는 못했다. 죄를 더 실감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다. 그래서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예수께서는 두루마리 책 곧 성경에 기록된 것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다.

 

그렇다고 율법과 규례를 그르거나 틀렸다고 하는 게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하심과 필연적임을 인정하게 한다. 이에 첫째 것 곧 율법을 폐하시고, 둘째 것 곧 새 언약을 세우셨다.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도 거룩하게 된다는 언약이다.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였다. 이 죄 때문에 영원한 제사로 드려지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으로 우릴 위해 중보하신다.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신다. 이는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와 맺으신 새 언약은,

 

첫째,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겠다.

둘째, 그들의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겠다.

셋째,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

 

이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죽으심으로 가로막았던 휘장이 갈라지고,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 살 길이 되었다. 휘장은 예수의 몸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나음을 입었다. 이에 하나님의 집에는 큰 제사장이 계시는데, 우리의 대언자 예수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하여 우리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다.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다. 이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약속을 하신 이는 미쁘시다. 우리가 믿는 이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아야 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해야 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지 말아야 한다.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해야 한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도 짐짓 죄를 범하기는 하지만 다시 속죄하는 제사는 필요 없다.

 

모세의 법을 범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면 어떻겠나?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나?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원수 갚는 것이 주께 있다.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다. 이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고 묻는다.

 

우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해야 한다. 비방과 환난으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형편, 곤고하고 연약한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갇힌 자를 동정하고,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다. 그것이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담대함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에게 인내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 잠깐 후면 오실 이를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본문이해

 

지난 주일에 이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구속 사역’에 초점을 두고 시작한다. 이는 ‘속죄의 성질’과 ‘속죄의 범위’와 ‘속죄의 특별한 가치’에 대한 말씀이다. 앞서 9장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9:27-28).” 이는 재림 주 예수를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사실 모든 피조물은 그러하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 8:19-20).”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속죄함은 단번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함이고, 이 구속의 사역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으로 우리도 이 은혜를 감당하며 산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구속 사역>

 

1. 속죄의 성질(11-12)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 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시고, 동시에 속죄제물이 되심으로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 전에 제사장들은 매일 섬기며 자주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로는 우리 죄를 없게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우릴 위해 중보하신다.

 

2. 속죄의 범위(28)

 

우리의 속죄의 범위는 영혼의 죽음에서 사함을 받은 것이다. 율법을 범하고도 두세 증인을 세워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하심을 거절한다면? 우리를 거룩하게 한 이 언약의 피를 부정한다면? 이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형벌은 어떠할까? 그러나 우리 죄가 아무리 크고, 넓고, 높고, 깊다 해도 예수의 사랑이 더 충만하시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3. 속죄의 특별한 가치(4, 10)

 

이는 구약에서 황소와 염소의 피로 능히 감당하지 못한 것을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모두 사하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대속의 목적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 순종이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우리는 더 이상 ‘죄 없다 하심’을 인정받았다.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

 

1. 그리스도의 재림(1-6)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에 속한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신성의 실체들’이 되었다.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이다. 구약의 모든 메시지는 이와 같이 ‘장차 올 것’을 예언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좋은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율법과 계명으로 자신의 의를 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1) 율법의 제물로 죄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4).”

 

2) 율법에 의한 제물이 하나님의 공의를 속죄할 가치가 못 된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시 40:6-7).”

 

2. 그리스도의 제사장직(7-18)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 목적을 분명히 한다. 곧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7).” 이는 전적인 순종이다. 하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스도가 오셔서 교회의 큰 대제사장이 되실 것과 온전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실 것임을 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와 중보자로 자격을 갖추게 하기 위해 그에게 육신(인성)을 입히셨다. 그리스도는 말씀을 따라 순종하셨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

 

1)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셨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2).”

 

2) 예수의 제사장직분으로 은혜의 계약이 세워졌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14).”

 

3) 그리스도는 이 영광을 기뻐하신다.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16-18).”

 

3. 그리스도의 섬김(19-39)

 

몸을 입고 죽으심으로 그리스도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막힌 휘장을 찢어 새 길을 열었다. 휘장은 예수의 몸이다. 이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1).” 하심을 이루셨다. 그렇다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 11:27).” 곧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의 ‘살과 피’를 먹음 같이 복음을 듣고 순종함으로 새 힘을 얻는다. 그리고 마음껏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이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창세기에서 ‘생명 나무’로 가는 길은 폐쇄되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이는 사람의 어떤 노력으로도 하나님 앞에 임의로 나올 수 없게 하셨다. 고로 오늘도 항상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 먼저 만나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이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눅 8:5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