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나훔 3:2-4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시 30:5-7
악을 대표하는 것으로 앗수르의 성읍 니느웨에 대한 경고와 그에 따른 말씀을 나훔은 이처럼 공을 들였다. 여기에 그 큰 성읍에 대한 준엄한 책망이 있다. 성읍의 인원수나 위엄도 그 성읍을 구해낼 수 없다. 무죄한 피가 불의의 전쟁이 공의의 깃발과 가면 아래 흘려진다. 벌하지 않고 놔둔 야만스러운 학살에 흘려진 ‘피의 성’ 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문하실 것을 알린다. ‘그 속에 궤휼이 가득하다.’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다. 정직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를 신뢰할 지 모르고, 온통 강포와 약탈로 가득하다. 아무도 누구에게도 개의하지 않는다.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니, 그들은 약탈과 핍박을 언제까지고 계속한다.
이는 미모의 음녀로 인한 것이다. 그 속에 많은 음행이 있다. 자신을 더럽히며 이웃을 유혹하고,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파멸시키면서 영적인 우상 숭배가 있어진다. 곧 니느웨를 한 음녀의 마술로 보고, 여러 족속이 미혹당함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4).” 이에 대하여 묘사하기를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2-3).” 그 형국이 어떠한지 가히 짐작이 간다. 이에 대하여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1).” 하는 데 따른 묘사이다.
‘화 있을진저’ 하는 것은 강포와 늑탈과 이에 따른 형상을 묘사한다. 곧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하는 데 따른 외마디 경고는 ‘화 있을진저’, 자기 혼자 독차지하려는 부(富)에 대하여,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5:8).” 깊은 중독에 대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11).”
더하여지는 거짓에 대하여,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18).” 무분별한 정의에 대하여,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0).” 교만함에 대하여,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1).” 객기에 대하여,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2).” 경고한다.
곧 이 모든 늑탈에 대하여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렘 30:7).” 하시는 경고와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47:6-7).” 하신 데 대한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모두가 갑작스런 전투장면으로 시작되는 죽음과 정죄 받은 범죄 현장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는 파괴하는 자의 맹공격이 그려진다. 헛된 방어도 보인다. 이는 모두 여호와의 심판인 것을 알게 한다. 그와 같은 선포가 평결되는 현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형벌의 원인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나 2:11-12).” 이는 곧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 하심으로 그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알게 한다.
그에 대한 형벌은 오늘 본문으로 연결된다(3-10). 앞서(2:3-13) 그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여 군사들의 신속한 동작을 연상하게 하는 소리, 돌격하는 모습, 그때 나는 굉음,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전투 모습을 연상시킨다(3:2-3). 이어서 그로 인한 참혹한 광경을 숨 가쁘게 연결시킨다. 이로써 앞의 장면이 되풀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 그가 그의 존귀한 자들을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준비하도다(2:3-5).”
실상 앗수르의 니느웨는 그 목표가 세계적인 군주국이었다. 세계적으로 큰 도시였고, 모든 이웃을 자기 발아래 두려 했다. ‘그녀’는 이를 달성하려 무기뿐 아니라, 사람 사람을 강요하고 속여서 자기에게 굴복시키는 창부다. 그들의 목을 유혹하여 매혹적인 자태로 그들에게 이익이 될 것처럼 꼬드겼다. 그들을 달콤한 말로 속이는 기술이 있었다. ‘그녀’의 외모나 성적인 유혹으로 사람들은 혼미하여졌고 그 영혼은 기꺼이 우상 숭배에 합류했다. 그렇게 함께 하게 됐고 ‘그녀’의 이익에 더욱 굳게 매여 사람들은 그녀와 더욱 더 연합하려 재물과 권세와 위엄을 얻고자 했다.
이런 것을 니느웨를 ‘음녀’ 또는 미녀의 마술사로 진술하며 그녀의 음행을 두로의 그것과 같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사 23:15, 17).” 이런 것이 ‘그녀’ 곧 ‘니느웨의 마술’이었다. 이것으로 그녀는 지배권을 얻는다. 동시에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녀와 다투게 되었다!
즉 그녀는 ‘모든 나라의 백성들을 한 피로 만들고’, 한 나라는 폭군의 나라로 또한 종의 나라로 하여, 자기가 전 세계의 군주가 되는 것이 그 자신의 특권이라고 떠벌이는 것이다. 나는 이를 묵상할 때면 오늘의 문화나 세태의 반영이라 여겨진다. 내남없이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오늘 날 모든 문화의 소재가 성적문란함과 온갖 귀신이나 토속신앙을 소재로 흐른다. 이를 상품화하여 영화로든지 노래로든지 어떤 식으로든지 녹여내어 사람들의 관심과 그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은연중에 교회도 이를 따라하거나 별 거 아닌 것처럼 여겨 대수로워하지 않는다. 어떤 문양이나 액세서리가 상품이 된다.
그러나 이에 따른 고소가 일어나고, ‘니느웨의 파멸’이 내려진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하고 크게 외치며 나훔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니느웨’는 우리의 심성이 점점 그러하듯이 ‘그녀의 잔인성’으로 다른 성읍에 공포와 멸망이 되어간다. 이러한 현상을 묘사하고 있는 현장이 그야말로 실감한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2)” 이것은 니느웨를 치러 나오는 무서운 군대의 소리와 형상이다. 너는 멀리에서 들리는 그들의 소리, 곧 맹렬하게 병거를 모는 장면을 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채찍 소리,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고 달리는 병거를 열거하는데, 마치 죽기 살기로 사는 데 급급한 우리의 모습 같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문제도 안 될 것 같은데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하나같이 이러하다. 악다구니하는 소리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옳다고 하는 외침은 악귀의 울부짖음 같다. 나름은 논리적으로 냉철하게 말하는 듯 하나 그 의중에 숨겨진 뒷모습을 연상하면 악귀의 날갯짓까지 보이는 것 같다. 이 모든 힘이 전속력으로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다. 모두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듯 떠들지만 그리하여 사방에 증오와 원망이 튀고 대항할 수 없는 더 큰 어떤 유혹이 뒤를 이어 밀려온다.
이에 ‘니느웨’ 곧 오늘 우리를 황무케 할 학살을 주목하게 한다.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3)” 살육을 수행하려고 뽑힌 칼은 사방에서 들려져 번쩍거리며 이글거리는 것 같다. 칼과 번개 같은 창이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게 하면서 그러한 광채는 착시현상과 함께 즐거운 축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칼과 창이 향하여진 곳은 매우 두려운 것이다. 그들에게 살육이 위임되었을 때, 이 병기들이 이룰 큰 황폐함은 아무도 상상도 못한다.
주식이 고공행진을 하고 집값은 치솟고, 있는 자들은 ‘가옥에 가옥을 이어’ 부를 축적하는 데 급급하다. 가까운 훗날에 그 땅은 살육되어 ‘큰 무더기의 주검’이 될 것이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다. 오늘 본문은 이를 연상시킨다. ‘무수한 시체가 있다.’ ‘살육당한 떼’가 있다. 그들의 수를 세러 다니는 것은 소용이 없을 정도이다. 시체가 즐비하게 널리고, 지나가는 자들은 발걸음을 뗄 때마다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업종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느라, 같은 층에서 연일 공사가 이어진다. 여기저기 자신들을 홍보하려는 광고가 사람을 현혹하려는 듯 점점 더 현란스러워진다.
이는 마치 ‘음녀의 음행’과 마술 같다. 다른 성읍들을 수치스러운 사악으로 이끌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수치와 모욕을 씌우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5-7).”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아, 누가 이를 두고 ‘애곡’할까? ‘그녀’의 환난은 너무 심하며 그 환난에 대한 고민이 매우 심한데도 동정을 받아 구조됨을 원치 않는다. 위로하는 손길을 거절한다. 이러한 ‘집단지성’의 결과로 ‘그녀의 멸망’ 중에는 그녀에 속한 사람들은 별로 그 심각성을 모른다. ‘내가 너로 본보기를 삼으리라.’ 하시는 말씀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당장은 아무렇지 않으니까, 됐다. 과연 교만한 죄인들이 낮아져 비천하게 되어 본보기가 되면 사람들은 알까? 세상에 더 이상 자기반성이란 없는 것 같고, 다만 오늘의 안락과 무례만이 살길인 것처럼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에 결국 몰락이다(8-19). 니느웨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대적한다는 말을 이미 들었다! 요나가 외쳤고 그로 인해 잠시 돌이켜 회개한 게 100여 년 전이다. 아무도 더는 관심이 없다. 더욱 완고하여져서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악에 악을 더한 꼴이 되었다. ‘그녀’를 편들고 두둔하는 것은 당장의 쾌락 때문이다. ‘그녀’는 오히려 교회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도전하여 그의 권능과 공의를 더욱 거역하게 한다고 정당화한다. 그리고 스스로들 ‘내가 평화를 누리리라.’ 한다. 경고를 받고 두려워하는 자들만 바보 같다. 얼마나 튼튼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8).” 오늘의 ‘그녀’ 곧 ‘노아몬’은 자연적으로나 인공적으로나 강한 요새였다. 강들 사이에 있었다. 나일 강이 몇몇 지류로 그 평야를 적셨을 뿐더러, 성벽을 수비해 주었다. 바다가 성루가 되었다. 애굽의 바다라 할 마레오피스 호수가 마치 리베랴 바다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곳의 성벽은 바다로부터 시작되어 둘렸다. 그래서 그 처소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외부의 권세와 동맹국들에 의해 지원되었다. “구스와 애굽은 그의 힘이 강하여 끝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9).”
그러니 점점 더 승승장구하는 것 같을 때에 누가 발을 빼겠나? 문화는 음녀의 여왕처럼 좌정하고, 어떤 슬픔도 맛보지 않을 것처럼 화려하고 당당하다. 늘 우리 자신을 쥐고 흔드는 악의 형체는 그러하다.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어느 다리 위에서 경찰수뇌부를 지휘하던 아무개 여사가 법정에 들어서서 헝클어진 몰골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앉은 모습이 상징적이었다. 그녀의 힘이 그녀를 멸망시켰다. 실제 한 개인의 모습도 그러하고, 나라의 부강함도 그러하다. 그렇게 강하고 안전하던 그녀조차 사로잡혀 갔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이 성읍의 멸망은 곧 이뤄질 것을 안다. 알면서 오늘 이런 내용을 접하고 있자니까 가까운 훗날의 우리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듯하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잠 18:11).” 그러니 그들의 산성을 최대한으로 견고하게 만들려고 더욱 요새화한다. 그 어떤 침략에도 대항할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14).” 하는 지혜자의 말씀이 오늘 본문에서도 같다.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나 3:14).” 그렇게 매년 국방비를 늘리고 자력으로 살 수 있는 ‘물길을 예비한다.’ 많은 물을 모아 생활에 필요한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려고 기를 쓰고 산다. 그러나 곧 “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15).”
이를 통한이 여겨 오늘 우린 애곡해야 한다. 주 앞에 아뢰야 한다. 이와 같은 말씀에서 오늘을 읽고 자신을 정비해야 한다. 곧 이르면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19).” 이를 두려워할 줄 알 때,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시 30:1-2).
오늘을 사는 동안 주 앞에 바로 서는 일이란,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4-6).
주가 함께 하실 것을,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10-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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