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하현. 2026. 5. 11. 06:00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

습 1:7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 34:2, 8-9

 

 

앞서 스바냐 선지자는 자신을 소개하는 가운데서 이 글의 권위를 고한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1).” 곧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의 선지자 스바냐가 사역을 시작하며 이 말씀이 하나님의 것임을 강조한다. 교회사에서 보면 부흥의 때에는 암울했고 난감하였으나 말씀만이 살았다. 반대로 쇠퇴기 때는 흥청거렸고 온갖 이벤트가 난무했다. 시대마다 선지자들이 일어날 때에 말씀으로 무장하였다.

 

때는 요시아 왕 시대이다. 당시는 국제적으로 강대국 앗수르가 본국 사정으로 인해 서쪽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유대의 국내 정세는 요시아 왕이 철저한 개혁을 시행하고 국토를 넓혀가려 하던 때였다(왕하 22:1-23:20).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라 밝힌다. 다른 선지서와 달리 본 구절에는 선지자의 조상이 사 대까지 언급되어 있다. 다른 선지서와 달리 이토록 조상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한 것은 스바냐의 사 대째 조상인 ‘히스기야’ 왕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한 왕 중의 하나였다.

 

한편 스바냐의 아버지 ‘구시’는 그 이름 자체로는 성경에서 종종 에디오피아 사람과 연관된다. 그렇다고 스바냐의 아버지가 에디오피아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조부와 증조부 그리고 현조부의 이름들이 모두 유대인으로 이를 밝힌 이유도 그래서이다. 이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2-3).” 하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선언된다.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여기서 ‘지면에서’는 노아 홍수 때를 상기시킨다. 특별한 수식어가 붙지 않은 것으로 그 한계를 특정하지 않아 종말을 연상하게 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하며, 심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심판의 대상을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로 설정하고 계심을 알게 한다. 여기서 또한 ‘거치게 하는 것’은 우상을 가리킨다. 이에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등을 우상을 숭배하는 악인들과 더불어 파멸시키실 것이라 선언한다. 특별히 저자는 ‘진멸하고’를 반복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엄격하며 심할 것을 알게 한다. 이러한 경고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선지자 스바냐의 심정도 알 수 있겠다. 스바냐는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의 종’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종’에게 비밀을 알리셨다.

 

우리가 아는 바, 그 가계가 나와 있는 예언자들 중 다른 예언자들의 가계보다 상세한 것을 보았다. 고로 스바냐는 경건한 군왕의 후손이요 왕가의 후손으로, 8절에 나와 있듯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하는 데서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 심판의 형국을 짐작하게 된다. 이에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7).” 하심을 주목하게 된다. 시대가 어지러울 때 혹은 흥왕하여 여러 유행의 정도가 현란할 때 우리는 믿음 안에서 자중한다. 근신하게 된다. 잠잠히 준비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심판의 손을 펴실 하나님의 선언을 알기 때문이다. ‘손을 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실 것이라는 걸 시사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사 5:25).” 여기서는 ‘손을 들어’ 하였고,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9:12).” 여기서는 그 손이 펴져 있음을 알린다.

 

이렇듯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뉘어진다. 먼저는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이다. ‘바알’은 가나안 사람들의 신이다. ‘주인’이란 의미다. 바알은 농경의 신으로 다산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이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금지하셨음에도 가나안의 신 바알을 섬겼다. 여기서 ‘바알의 남아있는 것’은 개혁을 추구했던 요시아가 많은 바알 숭배 사상이 남아 있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바알 우상을 파괴하실 것이라 이를 알리신다.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4).”

 

다음은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할 것을 알게 한다. ‘그마림’은 히브리어을 음역한 것으로 바알을 숭배하는 가나안의 제사장을 가리키는 명예로운 칭호다. ‘그마림’에 이어 기술된 ‘그 제사장들을’은 이를 숭상하는 데 있어 제사장 같은 이들이다. 하나님은 ‘바알의 남은 것들’만 파괴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민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이방 제사장들’조차 모조리 파멸시키실 것이라 한다. 이에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5).”

 

곧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모두 일컬어 이를 숭배하는 자들도 포함이다. 별과 달을 숭배하는 자들, 이러한 의식은 가나안과 바벨론에서 흔히 행해졌다. 사실 오늘 날에도 여전하여 현대 사회라지만 다를 게 없이 이를 바탕으로 문화나 새로운 관심이 퍼져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바벨론의 영향을 받아 왕정 시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별과 달을 숭배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신 4:19).”

 

이러한 경고의 말씀은 수두룩할 정도로 많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왕하 21:3-5).” 그러니 마치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하는 것 같다.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렘 8:2)” 하여도,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19:13).”

 

하나님은 선지자 스바냐를 통해 ‘별과 달을 숭배하는 자’들도 예외 없이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이는 또한 세 번째로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도 같다.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습 1:5).” 여기서 ‘말감’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왕’을 의미한다. 왕이 곧 바알이라 여겨질 정도 그를 숭상하는 것이 신성하였다.

 

본문의 ‘말감’은 바알을 지칭하기 보다 암몬 족속의 신인 ‘밀곰’으로 이해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러한 ‘말감’은 솔로몬이 후궁들을 위해 산당을 지은 것에서 시작되었다(왕상 11:5-8, 3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왕하 23:13).” 곧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악에 빠지게 했던 우상 중의 하나가 밀곰, 말감이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맹세한 후에도 말감을 섬기는 종교적 혼합주의를 행하였다!

 

이러한 말씀에서 오늘 날도 그러한 것에 놀랍기도 하다. 이러한 종교적 혼합주의는 아하스 왕과 므낫세 왕 때 극심하여서 예루살렘에서 흔히 자행되던 죄악이다.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왕하 16:3).” 이처럼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에게 오늘 이 심판의 경고는 주어진다. 즉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로 결정하신 대상은 배교자들과 불신앙자이다. 저들은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않으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섬기면서 살았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 4:29).”

 

오늘 우리의 암울한 현실은 신앙적으로 그 믿음을 지켜가는 데 있어 매우 필요한 것이 경건하고 자숙하는 마음인 것을 알게 한다. 하여 성경의 여러 관측은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잠 1:4, 2:11, 3:21).” 하며 지혜자는 여러 차례 근신을 강조하였다.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5:2, 8:12-13).”

 

이를 베드로 사도 역시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였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4:7).” 근신은 곧 기도로 이어지고, 그리 경계함은 사탄 마귀의 손길을 피하기 위함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5:8).” 그러한 가운데 교회를 이뤄간다는 것은 놀랍다.

 

어제는 형제들이 모두 주일을 지키고 인천으로 와서 우리 교회의 이전으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부친이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어떤 슬픔이 똬리처럼 그 속에 있었다. 연장자로서 매형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였고 동생 둘이 기도로 축도로 예배를 드렸다. 아이들의 객쩍은 소리가 웃음으로 이어졌고, 다들 피곤한 가운데도 무사히 다녀갔다. 말씀 중에 교회의 부흥과 쇠퇴는 말씀이 중심에 있고 없음을 기준으로 한다는 데서 새삼 나의 중심이 어떠한가를 살필 수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빈자리로 여전히 벙벙하였고, 모두가 늙으신 모친을 건사하느라 마음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남은 길을 가야하고, 맡겨진 사역을 완주해야 한다. 이때의 중심은 역시 말씀뿐이다.

 

이에, 오늘은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습 1:7).” 하신 데서 다시금 되새긴다. 우리가 잠잠해야 하는데, ‘주 여호와 앞에서’이다. 슬픔으로 요란하고 즐거움으로 시끄러울 수 있는 시대이다. ‘잠잠할지어다.’ 하고 오늘 스바냐는 외친다. 이는 심판의 날을 선언하기 전에 먼저 ‘침묵’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루살렘과 유다 거민들이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분노와 파괴가 시행될 ‘여호와의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날들은 언제든지 ‘여호와의 날’이 도래할 것을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침묵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하는 침묵이다. 주를 경외함은 동시에 주를 두려워할 줄 아는 지혜이기도 하다.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하실 때 곧 ‘여호와의 날’에 치러질 제사의 희생은 유다이다. 반면에 ‘청할 자’는 제사에 초청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어 유다 거민들을 멸망시킬 이방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에 따라 전한 바 있다.

 

“너희는 민둥산 위에 기치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을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사 13:2).”

 

이처럼 군대가 소집된다. 나무 없는 민둥산에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깃발이 세워진 것 같다. 큰소리로 사람들을 부른다. 손을 흔들어 서둘러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군대를 소집하는 이가 누구인지, 소집된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바벨론을 대적하기 위해 모였으며, 그 운명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하심은 바로 이 목적 때문에 군대를 소집하셨다. 곧 앞서 ‘존귀한 자들로 문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곧 우리들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에서 무던히 주의 길을 더하며 남은 길, 곧은 길을 가는 자들로 세우심은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하심으로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이다(1:7).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14).”

 

오늘 이 땅의 절규를 들을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교회에 모이고 주의 뜻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하여 오늘도 주 앞에 나아와…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 34:1).

 

하는 찬송으로 마음의 다짐을 더한다. 이러한 찬송이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것이라는 데서 더욱 놀란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이와 같은 기도와 찬송과 말씀으로 자신을 잠잠히 놓아둘 수 있었을까?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2-3).

 

자신의 이 끔찍한 처지에서 주를 바람이 오히려 곤고한 자들로 이를 보고 기뻐하며 함께 주는 광대하시다 하고 찬양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다윗의 확신이 어두울수록 빛이 나는 것과 같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4).

 

어제 저녁, 다 같이 모여 형제들이 찬송하고 기도할 때… 얼마 전의 장례와 결혼을 두고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을 보았다. 이에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8-9).

 

이를 알면서,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0).

 

하는 것을 확신하고,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1, 13).

 

침묵으로 묵상과 찬송이 깊어진다. 이때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18-19).

 

이와 같은 실질적인 주의 손길을 경험하였다. 고로,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