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히브리서 12장 / 예수를 바라보자

하현. 2026. 5. 28. 18:24

260531 주일

 

히브리서 12장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들어가는 말

 

‘이러므로’ 하고 앞의 11장, <믿음의 장>에서 언급한 성경의 영웅들을 근거하여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곡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종종 ‘왜 나만 이런가?’ 하는 영적 침체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증인들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한다. 그래야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예수를 바라보자.” 하고 이끈다. 우리 예수님은 그의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 그 결과 오늘에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즉 이는 우릴 위해 중보하시며 오실 날을 준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의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하는 것이다. 우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데 있어, 주의 징계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그의 꾸지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와 같은 꾸지람으로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하심과 같이 이 세상과 함께 멸망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마치 예방주사와 같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은 채찍질하신다. 우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우리를 대우하시는 증거다.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하고 오늘 말씀은 묻는다.

 

결국 ‘징계는 다 받는 것’인데 그 목적은 벌을 주기 위한 게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곧 신앙으로 얻는 어려움과 고통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신다.’ 이와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11).” 하심은 바울의 고난에 대한 정의에서도 알 수 있다. 즉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오늘의 어떤 어려움이 나로 힘들게 한다면 이것으로 또한 우리에게 더 나은 소망을 바라게 하시려는 게 있다.

 

첫째,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

둘째,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라.

셋째, 저는 다리로 어그러지지 않게 고침을 받게 하라.

넷째,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로써 우리는 설마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즉 좁은 길로 가려는 자는 당연히 드물다. 하나 곧 이 길이 복된 것을 알고 따르려 해도 따를 수 없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다들 그렇게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설마, 하고 자신을 방치하다가는 그릇행하기 십상이다. 정녕 그러다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두려워할 줄 알면 동시에 우리가 ‘이른 곳’이 어딘 줄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른 곳은,

 

첫째,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다.

둘째,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셋째,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이 있다.

넷째, 교회와 만민이 있다.

다섯째,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이 있다.

 

이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의 ‘뿌린 피’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는 어떻겠나?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곧 은혜를 받아야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 있다. ‘감사하자.’ 주를 경외함이란,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하는 것을 아는 일이다.

 

1. 우리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1-3)

 

먼저 우리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첫째는 있어야 할 일들이고, 둘째는 완전을 위해 있어야 할 일이다.

 

1) 모든 무거운 것과 죄를 벗어 버리라.

 

‘모든 무거운 것’이란 현재의 생활에 얽매이는 것들로 세속에 대한 애정과 염려다. 즉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의 잘못된 애착이나 또한 그를 위하는 염려이다. 현재 생활에 지나친 염려가 우리를 억누른다. 뿐만 아니라 지나친 사랑도 우리 영혼에 무거운 짐이다. 가령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돈, 명예, 자기 성취에 따른 욕구를 모두 포함한다. 이것들이 우리 영혼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끌어내린다. 영혼이 앞으로 나가려 할 때 뒤로 잡아당긴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의무와 극복에 어려움을 더한다.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지운다.

 

‘우리를 얽어매는 죄’란 쉽게 죄에 빠지는 환경적 요인이나 우리의 습관이다.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의 무가치한 관계도 그러하다. 서로 너무 쓸데없는 관심으로 집착하게 하는데 이를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다 보면 무심히도 저들의 죄에 동조한다. 그렇게 하여 ‘완전을 위해 이루어야 할 의무’를 저버리게 된다. 이 의무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것’이다.

 

2)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시작과 끝이며 보상자이다. 그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고 근원이다. 그는 우리의 믿음의 목적이다. 그는 우리의 믿음의 지도자고, 선조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셨고, 믿음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 곧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이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리스도께서 경주하실 때 만난 고난>

 

(1)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셨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3).”

 

(2) 이 세상에서 만난 모든 고통을 견뎌내셨다.

“십자가를 참으사”

 

(3)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다. 살아계실 때나 죽으신 후에도 그는 자신에게 던져지는 모든 욕을 참으셨다. 그리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2).”

 

오늘 우리도 고통 중에 우리 영혼을 지켜주는 것은 예수께서 그의 앞에 놓인 기쁨을 붙드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고통을 겪음으로 하나님의 상처받은 공의를 만족케 하셨다. 하나님의 영예와 통치를 보증할 수 있었다. 자신이 고통을 겪음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은혜의 언약’을 보증이 되셨다. 이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며 우리의 대언자가 되셨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와 같이 예수의 고난으로 우리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2. 고난의 이유와 목적(4-17)

 

우리가 고난을 인내할 것과 믿음이 흔들리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있어, 이는 장차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1) 고난의 이유

 

고난의 원인은 죄 때문이다. 죄와 대항해 싸우는 것은 선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았다. 죄와 싸우기 위해서는 고난이 따른다.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기 마련이다. 성령은 우리의 욕구를 가로막는다. 세상의 죄 된 가르침과 행실과 습관이나 관습은 신앙을 뒷걸음치게 한다.

 

2) 고난의 목적

 

우리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게 한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5).” 이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 고난은 우리의 염려를 주께 맡기게 한다.

(2) 고난은 더욱 굳건한 신앙을 가지게 한다.

(3) 고난을 멸시하면 죄를 가볍게 여기게 된다.

(4)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한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6-7).”

 

3.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18-29)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달려갈 길과 투쟁으로 인내하여 들어가게 되는 하늘나라는 근면과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하여 ‘구약 교회’가 볼 수 있는 것은 산이었다(18). 오늘 날 그 시온산에 세워진 ‘신약 교회’는 ‘심히 두렵고 떨’리던 구약의 교회에서 평안과 화평으로 모두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복음의 계약’은 행위의 계약이 아니라, 새 언약의 중보자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다. 이 언약은 구약의 제물의 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그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가 섬기는 것이다. 곧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더 나은 영광으로 부활할 것이다. 곧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1).”

 

이에,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권면한다. 예수를 바라보자. 생각하자. 낙심하지 말자. 거룩하게 참여하는 자가 되자. 이를 위해 고침을 받자.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자. 망령된 자가 없는지 살피자.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향해 달려가자. 은혜를 받자. 감사하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