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4 주일
히브리서 11장
더 좋은 것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의 단번에 죽으심은 우리의 영원한 구속이 완성되었다. 오늘 본문은 <믿음장>으로 불리며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믿음의 영웅들을 간추려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다음 장(12장)에서 언급될 ‘소망의 선포’에 대한 예고한다. 이는 믿음으로 ‘더 좋은 것’을 붙들었던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들도 소망으로 ‘더 좋은 것’을 바라는 믿음으로 살기를 전달하고 있다.
믿음을 지키며 사는 일이란 ‘큰 싸움을 견디는 일’과 같다. 이를 앞서 10장에서 그렇게 견딘 것을 생각하라고 하였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32).” 특히 안 믿는 가족이나 사회에서 직접, 간접적으로 겪을 어려운 일을 생각하게 된다. 이에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33-34).” 이는 오늘 날 같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타협의 여지가 없이 복음으로 산다는 일은 점점 더 불가해한 일이 된다.
교회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고, 다수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고 있는 시점에서 대놓고 누구 때문에, 또는 어떤 주장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바라며 담대하게 나아가는 신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언급되는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죽음과 절망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였다. 현재의 고난으로 장래의 축복을 더욱 확신했다. 이에 오늘 우리는 먼저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믿음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몇몇 대표적인 인물들을 통해 바른 믿음의 결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믿음이란 무엇인가?
1) 바라는 것의 실상(實狀)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 실상(實狀)은 실제의 상태나 내용으로 이는 바라는 것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인데, 이미 그 ‘아래에 가서 서게 하는 것이다.’ 곧 믿음이란,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 대해 ‘확립하여 서다’ 하는 의미다. 곧 실체가 확증으로 이룬 것 같은 ‘객관적 실체’다. 이것은 생각에 치우치는 ‘주관적-관념적인 실체’라는 게 아니라, 굳건한 ‘객관적 실체-실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더욱 확신을 주는 세계이다. 이 믿음의 특성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더욱 진리의 말씀을 붙들게 한다. 곧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게 한다. 그 믿음으로 소망을 이룬다.
2)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證據)
보지 못하는 것들을 이미 ‘된 것’, ‘사실’로 받아들이는 증거다. 산 자의 시간으로 아직 살아보지 못한 것을 사는 것과 같게 한다. 보지 못한 것인데 믿음이 증거가 된다. ‘보지 못하는 것들’은 당시 플라톤의 철학에서도 설명하길,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나라의 것들이 아니라, 보지 않은 것에 대한 종말론적인 사실이다.’ 즉 미래에 나타날 사건을 믿음은 이미 알게 한다. 그러한 믿음의 능력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여기서 증거란 ‘객관적인 증거’로 ‘증명’된다는 의미다.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 믿음은 설명할 수 없으나 우리의 삶으로 증명한다.
3)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아나니
‘믿음으로 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믿음으로 안다.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를 알지 못한다. ‘믿음으로’는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옛 선진들의 ‘믿음의 삶’으로 증명한다. 곧 구약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들을 통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믿음으로… 우리가 아나니’ 곧 진리에 대한 인식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가령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는 말씀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하는 부분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를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이 우주만물의 창조에 대해 과학자들도 입증하지 못하면서,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반박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다. 하나님의 이 모든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이는 오직 믿음으로만이 인식이 가능하다.
4)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것’은 ‘가시적인 우주’를 가리킨다. ‘나타난 것’은 오랜 철학적 전통에 기인한다. 유대주의 전통과 헬라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오늘 본문은 일부러 구사하고 있다. 이 본문 당시에 영향을 끼치던 플라톤과 필로의 우주론과 태초에는 혼돈 상태에 있었다는 가시적인 물질들을 ‘창조자’가 ‘이데아’나 ‘원형’을 사용하여 질서를 부여함으로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이론을 펼쳤다.
‘보이는 것’은 물질세계이고, ‘나타난 것’은 창조 이전의 관념의 세계이다. 어떤 물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無)에서 창조된 것을 강조한다. 무(無)로부터 창조의 교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기이하고 신기하고 놀랍고도 희한하다. 그것을 우리는 아무런 대가없이 거저 받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사 52:3).” 하심 같이 신약의 바울은 우리의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하고 오늘 우리 믿음의 가치를 값어치 이상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는 정의가 성립된다.
2. 믿음의 사례
믿음은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증명할 수는 있다. 오늘 본문에서 1-3절은 믿음에 대한 총론이라면 4절 이후에는 믿음에 대한 강론으로 구약의 믿음의 조상들을 근거로 증명한다. 이후 39-40절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결론에 해당한다. 곧 믿음의 개념(1-3)과 믿음의 선진들을 증거로 하여(4-38), 믿음이 주는 그 이상의 것을 증명한다. 곧 믿음의 개념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우선되는 선행으로, 요한과 바울은 예수를 인격적으로 믿고 의지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근거로 믿음을 들었다. 곧 이를 본문에서 ‘믿음의 성도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현실로 실천하며 살았던 증거를 나열하고 있다.
곧 믿음의 사람들이 경험했던 현상은 ‘저들의 실상’에서 ‘증거’로 작용하였다. 본문에 예시된 믿음의 사람들은 그러므로 ‘현실적인 상황’을 초월하여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바랐다. 곧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뿐 아니라(4-16) 족장들과 사사들, 선지자들을 살펴보고 있다(17-32). 여기서 우리는 이들 가운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극한의 역경 속에서도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믿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이 땅에서 죽은 뒤에라도 성취 받았다는 것을 우린 또한 믿는다.
곧 믿음의 특징은 단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진술하기보다 고통과 죽임을 당했던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해 놓고, 이 세상에서 외부적인 축복으로 주어지든, 고난으로 주어지든 간에 ‘궁극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러므로 본문의 성도들은 그 어떤 핍박이 있더라도 믿음 안에서 진실 되게 살았다. 이를 기초로 믿음을 정의하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하여, ①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창 4:3-5), ②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5:22-24), ③노아는 방주를 예비함으로(6:9, 22), ④아브라함은 순종과 함께 본향을 바라봄으로(22:1-14), ⑤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함으로, ⑥야곱은 요셉의 각 아들들을 축복함으로(48:15-21), ⑦요셉은 해골을 언약의 땅에 메고 가라고 명함으로(50:24-26), ⑧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함으로(출 2:11-15), ⑨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영접함으로(수 2:1-24), 그렇듯이 무명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생생한 신앙의 공적을 쌓았고(왕상 18:4, 13), 성도들은 약속을 받지 못했음에도 기다림으로(단 3:23-28), 다들 그런 와중에도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바랐다(히 11:39-40).
나오는 말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삶으로 증명된다. 믿음이 없이는 이 삶이 불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미래에 성취될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고통스러운 일과 시련이 삶 가운데 장애로 가해진다 해도 우리의 이 믿음을 꺾을 수는 없다. 곧 우리의 믿음의 정의는 실상(實狀)과 증거(證據)다. ‘바라는 것의 실상’과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실상은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 믿음으로 나타나는 실체다. 곧 마음으로 굳게 믿고 주어진 현실을 인내한다.
가령 찬송가의 주역들을 보면 일가족을 한 날 한 시에 모두 잃고도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하고 찬송하였던 호레이쇼 스패포드(새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가 있다. 또는 일생을 정신질환을 앓으며 심한 우울과 자살 충동으로 시달리면서도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하고 찬송하였던 윌리엄 쿠퍼(258장)과 노예무역선 선장이었던 존 뉴턴은 회개하고 돌이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하며 찬송하였다(305장). 이렇듯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실체들이 존재함을 알게 하고 확신을 갖게 한다.
믿음은 대상에 대한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지식 이상으로 확신을 갖게 하는 초이성적인 세계이다. ‘증거’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증거로는 우리 안에 아로새겨진 믿음으로 ‘삶의 또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역동적인 힘이 있다. 즉 어떻게 그런 삶을 견디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의 역경과 고통 가운데서도 주를 향한 믿음으로 일생을 나환자로 살았던 양 장로와 두 아들을 잃고도 그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은 아버지, 손양원 목사도 있다. 느닷없이 소경이 되었는데도 믿음으로 살아서 UN에서 세계장애인인권위원으로 살았던 강영우 박사도 있다.
이 외의 무수히 많은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성령께서 더하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았고, 오늘은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증거가 되었다.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흔들림이 없는 확신 가운데서 살도록 한다. 오늘도 낙심되는 현실에서도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우리 곁의 누군가에게 믿음을 증명하는 삶이 된다. 이로써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하고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 시간에 우리를 독려한다.
하여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늘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실감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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