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하현. 2026. 5. 21. 05:44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슥 6:12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시 47:6-7

 

 

오늘도 스가랴는 말씀을 기다린다. 이 환상을 ‘눈을 들어 보았다.’ 이제 7번째의 환상이다.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더 알고 싶고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가지기를 원한다.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1).” ‘네 병거’가 보인다. 하나님의 섭리를 집행하는 천사들, 바람이다. 그들이 두 산 사이로 나온다. 구리 산이다. 산 같이 변함없고 구리 같이 변동이 없는 섭리다. 심판의 진행자로 두 산 사이에서 나온다. 산 사이는 ‘시온과 감람산’ 사이다. 그곳은 하나님의 심판 좌소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14:4).” 또한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욜 3:16).” 하심도 모두 시온과 감람산에서이다. 이어서 스가랴는 주께 묻는다.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슥 6:4).” 그러자 천사 곧 하나님이 이르신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5).”

 

바람은 여기서 ‘영’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섭리를 수종 드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주의 지시를 받아 가지고 나온다. 이들을 네 가지 색깔로 구별하여 흑마는 북편 땅으로,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홍마들이 메인 첫째 병거가 나가는 방면에 대하여는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스가랴가 이 계시를 볼 때에 그것이 상징하는 시대는 벌써 지나간 까닭이다. 즉 이 말들이 병거를 메인 것을 보니(2), 전쟁으로 정복하는 군사 행동을 상징하고 다른 재앙을 상징하지 않았다.

 

흑마의 뒤를 백마가 따른다고 했다. 이것들이 각기 뒤이어 한 시대씩 차지하고 활동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 말들이 나가는 방위(북쪽 땅, 남쪽 땅)에 말한다.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6-7).” 곧 건장한 말들로 특정한 방향에 얽매이지 않고 온 세상을 두루 다니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보호하심이 온 땅에 빠짐없이 미친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이 환상의 뜻은 모호하다. 혹자는 네 병거가 네 군주국이라 이해한다.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읽고(5), 그 안에 다니엘 7장 2절, 즉 다니엘이 이상 중에 네 군주국을 대표하는 ‘큰 바다로 몰려 부는 하늘이 네 바람’을 본 것과 연관시켜 생각한다.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단 7:2).” 즉 바벨론 제국은 여기서 그 후 언급되지 않는 ‘홍마들’로 상징되고, 그 까닭은 그 제국이 이제 멸절했기 때문이다. 둘째 병거 ‘흑마’는 바벨론인들을 대하여 북쪽으로 갔으며,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고 유대인들을 포로 됨에서 자유하게 함으로 ‘북편 땅에서 하나님의 신을 잠잠케 했던’ 바사제국이라 한다.

 

또한 ‘흰말’은 희랍인들인데, 그들이 바사를 전복하였고, 북쪽으로 그 뒤를 따른다. ‘아롱진말’은 로마인들로 희랍을 정복하고 남쪽 땅으로 간다. 그 까닭은 남쪽에 있던 애굽이 로마인들에 의해 정복된 희랍 제국의 마지막 가지였다. 건장한 말들은 아롱진 말들 과 함께 했으나, 후에 스스로 나갔다고 하였는데, 이들을 고트족과 반달족이라고 이해한다. 이들은 승전하는 군대와 함께 지구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 환상을 더 일반적으로, 낮은 세상 속에서 섭리하신 왕국의 행정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천사들은 흔히 ‘하나님의 병거’로 불린다.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시 18:10, 68:17).

 

민족들과 교회들에 관한 하나님의 다양한 섭리들은 말들의 여러 색으로 대표되곤 하였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계 6:2, 4, 5, 8).” 이를 다 의미를 부여하여 일일이 역사 속의 일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다만 하나님의 생각과 섭리는 모든 사건의 원천이기는 하다. 그들은 구리 산처럼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 병거들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정하신 일을 완수하시기까지 변함이 없음을 알게 한다. 모든 것을 그의 뜻의 생각에 따라 행하신다. 우리는 이로써 찬송하게 하신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이에 우리가 산을 붙들 수 없듯이 우리의 이해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파악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의도를 변경시킬 수도 없다. 그 뜻을 행하시는 일을 바꿀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뜻을 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기도가 힘이 없는 까닭은 자기 생각만 구하고 마는 것이다. 요구나 바라는 것을 실컷 아뢸 뿐 정작 하나님의 뜻에 맡기거나 의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기형적인 장애 아이를 낳고 울며 고쳐주시기를 기도하다 교회를 떠났다. 저는 평생을 그 일로 교회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고 있다. 똑같이 누구는 기형 아이를 낳고 울며 기도하다 하나님의 뜻에 맡김으로 더욱 신뢰하였다. 그들 부부는 아이로 인해 일생을 교회에 더 가까이 주와 함께 살았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하는 고백이 주의 섭리를 다 알 수 없음에도 주를 더욱 신뢰하게 한다. 성경의 많은 영웅들은 그러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이번 주간 내내 이 구절을 이리저리 붙들고 설교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믿음은 그리하여 신기하고 조용하면서 요란하고 놀랍다. 어찌 우리 안에 이와 같은 확신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섭리가 공적이나 사적인 일에 관해 우리들이 관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는 모두가 구리 산 사이에서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어리석음으로 논쟁할 일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324).” 주는 주의 일을 거침없이 행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4:28).” 하고 오늘도 여기에서 본다. 하나님은 행함에 있어 크고 두려우신 분이다.

 

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

(시 66:3-4).

 

우리는 이를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이여 그들이 주께서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시는 것이라

(68:24).

 

그렇듯 하나님의 섭리의 사건들은 다양한 양상을 가지고, 시간의 얼굴은 바뀐다. 첫째 병거에 매단 말들은 붉었다. 전쟁과 피흘림을 짐작하게 한다. 즉 ‘말굴레에까지 닿은 피’를 떠올리게 한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 14:20).” 둘째 병거에 매단 말들은 검었다. 전쟁의 음울하고 서글픈 결과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모두 애통으로 몰아넣고,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하고, 기근과 역병과 황폐를 초래한다. 온 땅을 시들게 하는 검은 색을 생각하게 한다.

 

셋째 병거에 매단 말들은 흰 말이다. 평안과 평화 그리고 번영이 이 비로소 어둡고 우울한 시대 후에 돌아올 것을 상상하게 한다. 비록 하나님께서 사람의 아들들에게 슬픔을 일으키시지만, 하나님은 또한 동정하신다. 넷째 병거에 매단 말들은 혼합된 색으로 아롱지고 건장한 말들이다. 얼룩지고, 점박이며, 회색인데 조합되고 교착되는… 다양하고 복합된 사건들을 연상하게 한다. 번영의 날과 역경의 날이 서로 엇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여호와의 손에 놓인 섭리의 잔은 섞은 것이 가득하다고 하신 말씀이 동시에 떠오른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시 75:8).

 

이와 같이 섭리의 모든 의미와 그 쓰임의 도구들과 사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로부터 그들은 명령과 지도를 받는다(5). 이는 하늘의 네 영들, 네 바람, 네 말들인데 이는 사방으로부터 임의로 부는 듯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의 손 안에 두시고, 그들을 그의 보고로부터 꺼내시고 사용하신다. 그와 같은 섭리 가운데는 경탄할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 한 사건이 다른 것에 대한 균형을 위해 봉사한다. 오늘 본문 6절에서,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할 때, 하는 것으로 보아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우면서 신비롭게 질서정연하다. 그 하나님의 섭리는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국면이 섞이고 복합적이다.

 

돌아보면 나의 짧은 인생에서도 그때마다 만났던 사람들부터 사건과 그때 그 상황들이 느닷없다가도 일치하고, 일치하다가도 난데없다. 곧 한 가지 일이 일어나기까지 숱한 일들이 서로 뒤엉키고 뒤섞여서 뒤죽박죽인 듯한데 그 뜻을 이루기까지 그리하였다. 가령 나는 친구의 권유로 어느 날 모 통신 동호회 활동을 했다. 문학방에 글을 올리거나 어릴 적 이야기를 수필로 적어 읽혀졌다. 누가 그 글을 읽고 어떤 의미에서 감동을 받았고, 어떤 날 우연 같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만났을 때 인사를 나눈 게… 저는 나를 권면하여 설득하여 대학 편입을 종용하였다. 신학을 하라는 거였는데 우린 서로 그럴 사이가 아니었다. 그의 권유는 강경하고 끈질겼고 나는 여러 번 사양이다 받아들였고, 저는 또 희한하게 나의 학비 전액을 후원하였다.

 

아주 특징적인 사례다. 그렇게 다시 10여 년 후에 신대원을, 이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그때마다 이상한 연관으로 후원을 받고 3년, 6학기를 마쳤다. 그러는 동안 나는 자주 울면서 하기 싫다고 하나님과 씨름하듯 하면서도 그때마다 이 신기하고 조용하게, 놀랍고도 희한하게 일어나는 일들로 어찌 더는 도망칠 수도 없이 붙들렸다. 나는 종종 아내와 걷다 어릴 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의 이런 맥락 없는 인연과 다양한 상황들로 아내는 늘 신기하게 듣는다. 그렇게 말하다보면 나 역시 복잡하고 다난했던 시절들이 거짓말 같이 여겨질 정도이다. 누가 오늘 이 본문을 여러 각도로 이해하고 해석하여 놀라워한다면 그 또한 당연한 일이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사건들이 모두 검거나 전부 희지 않다는 것을 이제 안다. 때로는 잿빛이었다가 회색이거나 검정과 흰색의 혼합임을 발견할 때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그러하다. 개인의 얽힌 사연들도 다채롭다. 긍휼과 심판을 노래하다, 하나님에게 노래하며 우리 자신을 혼합적인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적응하기 시작할 때 더욱 더 그 신비의 하나님을 알고 싶어진다.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시 101:1).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의 모든 결과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슥 6:8).” 그리하여 “먼 데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15).”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과 결과를 모아놓은 게 인생인 듯하다. 내가 아내를 만난 것도, 그 무속의 가정에서 온갖 이교도의 종교가 혼합되어 무속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손위 처남과 장모가 어느 순간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딸애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것이 저들 역시 여러 사연이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믿는 가정들로 우리가 서로 하나 되게 하심도….

 

즉 인생이란 이 이상한 모양과 섭리의 행위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기어이 산을 이루고 변함이 없으신 것을 본다. 기필코 그의 말씀을 성취하사, 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사 1:24).” 하심으로 온 땅을 평정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시 47:1-2).

 

오늘 시편의 찬송과 같이,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

(3-4).

 

우리로 인생에 굴하지 않게 하시면서 주가 이루심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5).

 

저는 예수시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