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 3:16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시 58:11
삶에 있어 십의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물질에 속한 모든 것이 그러하고 무형의 것도 그러하여서 나의 시간과 마음도 모두 주의 것으로 여겨 이를 인정하는 데서 십일조는 온전하여진다. 이에 오늘 말씀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10).” 하고 유일하게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하였다. 이는 참으로 귀하고 복되며 두려운 일이다.
앞서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약속이 서술되었다(1-6). 비방하는 자들의 불경한 요청에 대해 단도직입적 답이다. 비방하는 자들은 ‘심판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여기에 그분이 있다. 바로 문 앞에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야가 등장할 준비가 되었다. 그분이 말하여 내가 심판을 위해 세상에 왔다고 하셨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5).”
이사야 선지자가 미리 말한 바,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3-5).” 그러므로 ‘주의 길의 준비하자’고 세례 요한은 앞서 메시야의 출현을 예언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사자이다. ‘하늘로부터’ 온 자로서 사명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을 예언자로 여겼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와 회심을 촉구하였다.
그를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셨다. ‘그가 내 앞에 길을 마련할 것이니’ 하고, 사람들이 아브라함과의 혈연관계를 의지하는 신뢰를 제거하고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알림으로 그 길을 예비하였다. 메시야는 자신의 출현에 대해 예언하셨다. ‘너희가 구하는 바 주(主)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리니’ 너희가 땅을 저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하던 ‘심판의 하나님’ 그분이니라. 곧 ‘메시야는 오랫동안 오실 분으로 일컬어져 왔으나 이제 곧 그가 오리라.’ 하고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를 주목하게 한다. 그는 ‘주님’ 곧 ‘아도나이’다. 세상이 기초한 기반이요, 모든 권세들을 자기에게 굴복시키는 ‘만유의 주님’이시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6-38).” 이는 곧 ‘영원토록 야곱의 집을 다스릴 분’이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주님에 의해 이 말씀이 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모두의 ‘구원’ 이시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3-4).” 곧 그는 ‘너희가 구하는 자, 너희가 기뻐하는 자’로, 우리의 기다림의 대상이시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 2:25).” 하여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28-29).”
예수를 구하는 자들은 그를 즐거워하게 되리라. 우리 마음의 소망이 바로 그라면, 그는 또한 우리의 기쁨이 되실 것이다. 하는 게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이에 그는 장래에도 ‘홀연히 오실 것이다.’ 그의 도래는 임박하고 있다. 족장들의 경우처럼 지금은 그의 도래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이를 오늘 말씀은 알게 한다. 그의 먹적은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2).”
곧 그의 도래는 세상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함이다. ‘누가 그의 도래의 날을 당하리요?’ 하고 묻는 것 같다. 그는 금을 연단하는 불과 같이 불순물을 구별한다. 그는 표백하는 잿물 같이 죄로 오염된 것을 씻겨낼 것이다. 그때에 많은 심령의 생각이 드러날 것이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5).” 그의 손에 타작하는 키가 놓여 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이때에 오늘 우리로 당당히 하나님을 시험하여 볼 것을 제안하는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곧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우리는 십일조로 증명한다.
나는 히브리서를 설교하면서 ‘우리의 믿음은 설명될 수 없지만 증명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 앞에 살아갔던 믿음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도 그러하셨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2).”
곧 십일조는 단순히 우리 수입의 십분의 일을 떼는 세금 같은 게 아니다. 우리의 전부가 주의 은혜로 주가 더하신 주의 것임을 인정하는 증명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는 무형의 것도 포함하여 시간의 십일조, 마음의 십일조, 나의 모든 일상에서의 십일조를 모두 내포한다.
복음이 선한 것은 주께 향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선(복)을 내릴 것이고, 그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가 금을 연단하는 자 같을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제시하는 것이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3).” 더러는 이게 어찌 선할까? 싶지만 많은 찬송의 저자들이 그 신앙을 고백한 것으로 찬송하였다. 내가 아는 소경장로님과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오늘도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들 학벌이고 인맥이면 어디서 뭘 해도 그보다 낫게 살겠는데, 저들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다. 교회를 섬기는 데 있어 병든 몸을 이끌고, 가난을 딛고, 장애를 넘어 주를 사랑함을 삶으로 증명한다.그들에게 연단은 금과 은 같이 저들로 깨끗하게 하였다.
곧 그들을 내적으로 성화(聖化)시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하는 산 증인들이다. 고로 우리의 십일조는 우리로 사나 죽으나 하나님 것임을 인정하는 증명이고, 동시에 이를 거절하거나 미심쩍어 아까워하는 것은 의심이다.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게 돌아오라. 너희의 의무로 돌아오라. 너희 충성을 다시 하라. 길을 잃은 여행자처럼, 군진을 떠난 군인처럼, 남편을 도망친 불량한 아내처럼 곁길로 가지 말고 돌아오라. 내게 돌아오라.’ 하고 부르시는 내용이다. 이에,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하는 것으로 그럴 수 있는 자와 그럴 수 없는 자가 확연히 구분되었음을 알리신다. 곧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16-18).” 곧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주를 따르고 믿는다는 삶은 증명하는 신앙과 같다. 마치 아직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고통을 느끼며 힘듦으로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움직이는 것과 같다. 죽은 자는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 심령에 찔림도 없다. 우리가 주를 인정함으로 ‘하늘의 문을 연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희망이 이 세상에서의 삶만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자들이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건 나의 모든 것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일과 같다. 오늘 본문 15절,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세상은 이러한 구조로 흘러서 모든 자들이 우리의 신앙을 조롱할 수 있다. 누가 이 현상을 보고 동조하겠나? 그러므로 사람의 언어나 이해와 상식으로는 설명도 설득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린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불의가 번영의 길이라’고 하는 세상에서(15), 악인들의 외부적 성공이 경건한 자들의 일손을 약화시키듯이,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 73:13).
그때에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일조의 삶을 산다. 나의 하루가 전부 주을 향해 있음을 최소한 24시간의 십의일조로, 나의 마음이 온통 주로 가득하다는 것을 작은 선행과 사랑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악인들의 손을 약화시킨다. ‘잠시 기다려라. 그러면 악을 행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표적이 될 것이다.’ 하는 데 따른 증거로 말이다. 이때에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애통하는 자들의 한숨과 눈물을 담은 병과 기록해 두신 책을 가지고 계신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 56:8).
이에 하나님은 자기의 기쁨에 참예하라고 약속해 주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 3:17).” 이는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다.’ 하는 것이다. 누누이 성경은 이를 강조하고 약속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그러므로 오늘도 믿고 안 믿고는 삶으로 증명된다. 주신 상황에서도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시 58:1-2).
오늘의 현상을 지적하고, 그 끝을 예고하신다.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든지
불 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가게 하소서
(6-9).
그때에,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10-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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