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시 60:1
구약을 지나 신약 성경으로 왔다. 하루에 한 장씩 묵상하면서 오다보니 긴 여정이었다. 오늘 본문은 주일학교 때 성탄절 성극에서 암송하였던 기억이 있다. 앞으로 사복음서를 대하기 전에 각각의 특징을 알고 간다. ‘마가복음’은 로마인들을 위해 기록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행동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누가복음’은 이방인의 관점에서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기록했다. ‘예수님을 인자와 구세주 그리고 인류의 친구로 제시하였다.’ 구원의 보편성은 누가복음이 강조하는 주제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말씀이요, 창조주요, 하나님의 아들’로 등장한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을 위해 기록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대한 교사요 예언의 성취자, 유대인의 왕 메시아’로 제시했다.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믿고 소개한다. 저자 마태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혈통적, 법적 자격에 있어 다윗 왕가의 계승자이심을 분명히 한다. 다윗 왕권이 주전 586년 예루살렘 함락이후 근 6세기가 흐르는 동안 단절되다시피 했다. 때문에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다윗의 왕권을 이을 자라는 법적 근거 곧 그분의 정통성을 증명하지 않는 한, 절망 속의 유대인들은 아무도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마태는 혈통과 족보를 중시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진정한 이스라엘인이자 다윗 가문에 오실 메시아이심을 확신시키려 했다. 그 필요성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첫 구절의 ‘두 사람’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첫머리에 기록한 마태의 의도는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언약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당초 유대 백성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1-3).” 하신 언약은 한 번 더 확실하게 하여,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17:7).”
곧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께 받았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8).” 이를 바울도 설교하며 증거하였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또한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히 그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자손 중 하나를 택하여 그의 나라를 계승하게 하고 나아가 그 계승한 왕에 의하여 왕위와 나라가 영원토록 견고히 보전되게 할 것이라는 ‘메시아 언약’을 주셨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2-16).” 이에,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그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시 89:27-29).
한편 이와 더불어 선지자 이사야는 ‘한 아기’ 즉 인간으로서 생각지 못할 기이한 칭호를 덧붙여 예수님을 묘사하였다. 즉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등으로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아기가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것인데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룰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예언한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이 예언에 따라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더욱 확증 짓게 되었다.
이는 초대교회 시대로 접어들면서 확정적으로 인정되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 13:23).” 하여 바울은 이를 신학적으로 재조명하며 자신을 소개할 때나 복음을 증거할 때 이를 기반으로 삼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1-4).”
이를 요한은 계시록에서 대언하는 바,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6-17).”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오랫동안 이어져서 이제 예수는 ‘다윗에게 주어진 나라에 대한 약속’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이방의 모든 세계에 대한 축복의 약속의 성취자’로서 다윗의 그루터기에서 순으로 그 뿌리의 새싹으로 돋아났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1-5).”
곧 이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절대적 권위를 지니신 이상적인 왕이심을 밝히기 위해 기록되었다. 사실 이스라엘의 실질적 시조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요, 히브리 신앙 공동체의 창시자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또한 다윗은 히브리 왕국의 실제적인 창시자라 하겠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2-16).”
곧 유대 역사상 가장 모범적이며 위대한 왕으로 다윗을 꼽고,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꼽는다. 마태는 바로 그러한 두 사람을 조상의 우선으로 세워 그들의 혈통을 이은 예수야말로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절대적 통치자요, 진정한 왕이요, 곧 메시아라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했다. 이를 가지고 초대 신약 교회의 중심 화두로 삼았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0-32).” 이제 다윗의 왕권은 근 6세기만에 영원히 회복된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자임을 밝히기 위해 아브라함과 다윗을 먼저 거론하였다. 마태는 이들 믿음의 조상들이 유대 백성들을 대표하여 불리워진 바 있듯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 18:18).” 신약의 신학은 이를 토대로 정립되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1-3).” 이것이 오늘 날 우리 믿음의 근간이 된다. 믿음으로 의로 여기시는 구원의 원리도 여기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영적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구속 사역을 통해 영영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셨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더욱이 돌아오는 주일에 히브리서 마지막 장을 준비하면서 더더욱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가를 새삼 묵상하고 있다. 흔히 믿는 자들로는 믿음보다 쉬운 게 없어서 그저 선물로 받은 것이나, 믿음이 없는 자들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믿음이었다.
하여 <믿음은 설명되지 않고 증명된다.> 히브리서는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그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한다. 저는 만유의 상속자로 천사보다 우월하시고, 그 어떤 선지자보다 확실하시다. 이를 유념하기 위해 우리는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1)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2) 이를 위해 서로가 권면하라는 것: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13).” 3) 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4:12-13).”
4) 우리로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자라가라는 것: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5:4).” 그렇지 못할 때 믿음은 성장을 멈추고 초보에 머물며 심지어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4-6).”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5) 우리에게는 예수께서 보증이 되셨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7:22).” 이후에 심판대에서 대언자가 되신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6) 예수의 사랑으로 율법의 완성이 되어,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8:6).” 7) 이는 예수의 피흘림으로 이루신 것이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2).” 8) 하여 우리 안에 주의 법을 두셨다: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10:16).” 9) 구약의 성도들인 믿음의 선친들이 증명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11:39-40).”
10) 우리 믿음의 증거는 허다하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1-2).” 하는 내용으로 어제까지 설교원고로 정리하고 있는 내용이다. 매 주일에 한 장씩으로 설교하기란 그 내용의 깊이나 의미의 강도가 너무 세다. 그럼에도 나의 수고는 부디 함께 공개하는 설교원고로 각자의 묵상이 더해지기를 기도한다.
가끔은 누가 하겠나? 싶지만 한다! 한 영혼으로도 충분하였다. 이번에 놀라운 사실 또 하나는 아들이 나서서 교회 책상을 바꾸며 나란히 앞을 바라보는 구도로 재조정하였다. 그러느라 교회 기물을 새로 들이는데, 형편상 교회가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본인이 백만 원을 선뜻 바치며 이 일이 이루어졌다. 나는 가만히 보고만 있고 하는 대로 놓아둔다. 그와 같은 마음을 주시는 이는 분명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설교원고나 묵상글이 무슨 힘이 있겠나, 생각될 때 오늘 말씀은 이를 증명하는 것과 같다. 곧 우리의 일상은 이런저런 형태로 기록되고 이를 보고 누군가는 그 영혼에 감화가 있다. 나는 알 수 없는 영역으로 하나님이 전방위적으로 일을 행하신다.
오늘 여기 ‘예수 그리스도’. 역사적으로나 사명적으로 그 명칭 ‘예수’와 직능적으로 그 명칭 ‘그리스도’가 결합된 우리 구세주의 공식적인 호칭이다. ‘예수야말로 구약의 예언에 따라 오신 메시아이시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을 담은 명칭이다. 이 복합 명칭은 복음서에서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1, 18, 16:21).” 또 한 곳에서만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이것이 변증적, 교리적 입장에서 기술된 서신서들에서 비로소 자주 사용된 것은 하나의 특징이다. 여기서 ‘예수’란 이름은 천사의 수태 고지(受胎告知) 때 마리아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이는 구세주로서 인류 구속을 위한 사명이 내포된 이름이다. ‘그리스도’은 헬라어로서 히브리어의 ‘메시아’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란 용어가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언제나 ‘메시아’란 말과 동일한 의미로 간주되고 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뿐만 아니라 계보에 오른 이름들의 면면은 더러 의이하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과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과 모압 땅의 여인 ‘룻’과 함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이 언급된 것이다. 족보에 그 이름이 오른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포괄적이며 모든 대상을 상대로 하시는가를 알게 한다. 더욱 유대의 가장 악한 왕으로 알려지는 ‘므낫세’의 이름도 의아하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메시아’란 말은 어떤 특별한 직무 수행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된 자를 가리키는 데 그렇게 기름부음은 받는 자는 대체로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였다. 고로 ‘그리스도’는 이 모든 직무에 임명된 것을 의미한다. 드물게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시 105:15), 이방의 왕 고레스(사 45:1) 등을 의미하는데도 사용되었다. 여하튼 다윗의 후손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의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메시아’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자, 그리고 약속된 종말론적 통치를 이 땅에 전파할 자로 고유 명사가 된다.
오늘 본문 1장에서만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한 것은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에 따라 메시아가 되신 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마태복음 전체에서는 약 18회 정도 ‘그리스도’란 명칭이 등장한다. 거의 대부분이 직분을 나타내는 칭호가 아닌 단순한 이름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는 예수의 부활을 생동감 있게 체험했던 자들에게 당연한 현상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구약의 예언에 따라 오실 ‘그 분’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오셔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음을 확신한다. 또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실존적 존재로서 이해된다. 예수를 언급할 때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혹은 ‘그리스도’로 점점 그 빈도 높게 사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18-20).” 이 안에 모든 출생의 오묘하신 섭리가 담겨 있다. 이에 결론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21-22).” 고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3).”
하여 오늘도 말씀을 정리하고 묵상하면서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시 60:1).
죄로 영영 죽어 마땅하였을 것을,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3-4).
그러므로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1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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