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2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
시 59:9-10
‘정해진 한 날’이 온다(1-3).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가공할 수 없는 날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구름기둥, 불기둥 같이,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로부터 주의 자녀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그날이 오리라. 여호와의 날이 오시리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모두 가리킨다. 이 두 날이 정해져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1-2).”
그 날은 선명하게 나뉘어 하나는 용광로 불같은 날에 남기지 않고 하나는 치료의 광선을 비추어 뛰놀게 하실 것이다. 이른바 극렬한 용광로 같은 날은 주님의 재림 시 심판이 어떠할지 상상하게 한다. 동시에 아기 예수가 오신, 그리스도의 초림 시기를 주목하게 한다. 그것은 5절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5).” 하심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의미하며 신약 시대를 여신 것을 뜻한다. 곧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 하였다. 그때에 선지자 엘리야로 불리던 세례 요한이 먼저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시대를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전개시킴으로 신약 시대는 ‘은혜로 사람들을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날을 어떻게 극렬한 용광로 같은 날이라고 할까? 늘 이후 우리 시대를 은혜의 시대로 놓고 평화와 화평을 부르짖는데, 이 신약의 시대를 ‘두려운 날’로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이유가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패하고, 많은 사람이 흥함을 동시에 보게 되는 것이다. 이를 평생에 기다리다 노인이 된 시므온의 입으로 증언하게 하셨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4-35).”
곧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에는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 곧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5-17).” 이렇듯 확연하게 갈리는 날들로 오늘을 우린 목격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 자는 영생을 얻으나 그것을 받지 않는 자들은 멸망을 당한다. 이 멸망당하는 자들에 대하여 신약은 ‘극렬한 용광로 같은 날들’로, 교만하여 복음을 받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와 같이 불타 멸망을 당할 것이다.
이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다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신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로 살면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로 이 모든 상황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신앙’을 ‘경외’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보통이었다. 하여 그런 우리들에게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하는 뜻은, ‘그리스도 예수의 오실 것’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78-79).”
곧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1).
그렇듯 태양이 만물을 살리는 것 같이 그리스도께서 만민을 구원하시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가리켜 ‘치료하는 광선’이라 하셨다. ‘치료’는 ‘구원’을 가리킨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겔 47:12).” 하신 것 같이 우리 성도들은 늘 하루의 날들이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는 말씀처럼 산다. 다들 사는 게 지옥이라는 시대에도 우리 신자들은 구원의 즐거움으로 인하여 극도로 기쁨을 누리며 찬송하게 되는 것을 비유한다. 이 두 날에 그리스도가 자기를 거역한 자들에 대해 ‘사르는 불’이 되신다. 그의 오심은 ‘풀무’ 곧 용광로와 같다. 진노의 날은 ‘맹렬한 분노’ 의 날이다.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
(시 21:9).
하신 것과 같이 ‘주의 손은 주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내실 것이다.’ 또한 그들을 주의 분노의 시각에서 타는 풀무 같게 하실 것이다. 이 날은 공포의 날이고, 도시는 파괴의 날과 같다. 말라 시든 나무들이 타는 숲의 파멸 같을 것이다. 이는 은유다. 오늘 날 우리의 심령을 가리킨다. 저마다 상한 마음으로 독을 품고 사는 것 같다. 운전을 하다 배달 오토바이의 진로를 방해하자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큰일 날 뻔 했다. 아무리 미안하다고 창을 내려 손을 흔들고 고개를 굽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욕설을 해댔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로 토론이랍시고 하는 걸 봐도, 어찌 같은 하늘에서 살겠나? 싶을 정도로 독설과 야유와 거짓이 난무하다.
가정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들어보면 안 그런 집이 없을 정도로 서로의 반목이나 어떤 갈등으로 식구가 원수다. 촉법소년법을 악용하여 아이들이 부모의 훈계를 고소한다. 훈훈한 부모자식간의 정이란 낭만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버릴 수도 주울 수도 없는 사이로 살아간다. 오늘 말씀은 은유다.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사 10:17-18).” 이때에 광명이 불을 내고, 그의 거룩한 불꽃이 그의 숲, 그의 열매 맺는 들판의 영광을 소멸하실 것이다.
심령이 교만한 모든 자들이 대상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비방하여 말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지 않으려 목을 빳빳하던 자들이다. 얼굴에 교만이 가득하여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다. 예수의 은총과 통치에 굴하지 않은 자들이다. 자신의 판단과 의지로만 세상을 사는 자들이다. 주를 멀리하며 사는 자들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리라.’ 하고 이를 거부하는 세상이다. 행실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이며, 고의로 죄를 가리고 거짓으로 꾸며 모르는 척 아닌 척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오늘에 자신을 끝끝내 옳다고 여기는 자들이다.
남의 약점과 어떤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져 엄청난 이익을 보는 유튜버들이 있다. 직업도 다양하여 저마다 지지세로 먹고 산다. 누구는 어느 연예인의 기사를 과장하고 비틀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저의 태도나 그 악랄한 짓거리에 치가 떨린다. 그것으로 자신들은 부를 축적하고, 그렇게 돈의 맛을 본 승냥이 떼 같이 먹잇감이 생기면 가차 없이 물어뜯어 사람들을 자극한다. 모 연애프로에서 누가 누굴 어찌 했네, 마네, 하며 시청자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졸지에 이 사람이 표적이 됐다 저 사람이 표적이 되고 하면서, 이러다 어느 한 사람 죽어나야 끝이 나려는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극성은 식을 줄 모른다. 요즘은 그런 때라,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사는 것 같다. 자신이 살고자 남을 죽여야 하는 시대 말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과 악행 하는 자들을 불사르실 것이다. 저들이 잠시 동안은 뭐라도 이룬 듯 잘 되는 것 같지만 곧 초개와 같이 사르리라고 하신다. 그렇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저들 탓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시 등판하여 본인들의 과오에 대해 반성이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절이다. 이를 또 열광하고 응원한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람은 뭐가 어떻다 해도 영웅이다. 마치 투견장을 보며 환호하는 세상 같다. 그러나 그들이 나무, 건초, 초개 같이 소멸될 것이다. 이와 같은 불속에서 남을 것은, 정결한 성도의 믿음뿐이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3-15).”
그러므로 불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한 자들은 ‘삼켜버리는 불’ 에 찔레와 가지나무같이 탈 것이다.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사 27:4-5).” 이 불의 위력은 뿌리든 가지든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다. ‘아들이든, 조카든’ 남겨두지 아니할 것이다. 본인과 그들 후손까지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완전히 진멸될 것이다. ‘누가 여호와의 분노의 위력을 알리요?’ 하고 오늘 본문은 경계하게 한다. ‘교만한 자와 행악자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만한 자들이 행복한 세상이다. 돈벌이도 좋다. 그렇게 사는 것으로 이 땅의 삶으로 전부라면 말이다.
마침내 철저한 불행이 닥칠 것이다. 누리던 행복의 어떤 가치나 그 행복을 다시 소생케 할 어떤 뿌리도 남지 못하고 불에 탈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교만한 바리새인들과 그 밖의 행악자들, 유대인들은 복음을 비판하고 조롱하고 부끄러워하였다.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대 민족의 그루터기부터 가지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사라져버렸을 때에야 알았을까? ‘복수의 날’이 오리니, 그러한 취지로 기록된 모든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눅 21:22).” 이를 맞이하기 전에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경외함이다. 우리의 경외심이 신앙이다. 신약의 신앙은 구약의 경외와 같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였던 믿음의 사람들을 붙들어야 한다. 그 길을 따라야 한다.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 11:6).
진정 하나님이 악인들에게 불과 유황을, 무서운 역병을 비같이 내릴 날이 올 것이다. 마치 구름과 짙은 흑암의 날과 같을 것이다.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암 5:18-20).” 그러므로 오늘을 살면서 이 땅의 여러 현상으로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주의 날이 가까운 것을 우리는 몸으로, 가정에서, 사회에서, 이웃을 보며 알 것이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앞서는 세례요한이 왔고 뒤에는 여러 사도들의 복음이 있다. 예수께서 직접 오심으로 모든 율법은 완성되었고, 이를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은 올곧은 길을 가게 되었다. 바로 그 날이,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의’ 날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청명하고 찬란한 날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 넘어지는 때에, 우리는 즐거워 머리를 들게 된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눅 21:28).” 그리스도는 그렇게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 참 빛이요, 태양처럼 낮을 만들고 날을 다스리는 광명이시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이러한 때에 설령 우리가 어떤 어려움으로 힘에 겨울 때도 이와 같은 어려움으로 주를 찾은 사람들이라, 우리에게 예수는 빛이시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4).” 하면, 그를 통해서 우리가 의화(義化)되고 성화(聖化)되며, 기어이 빛을 볼 수 있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그리하여,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시 59:1).
오늘도 주 앞에 엎드려 고한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2-3).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
(9-10).
할 때에,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15-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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