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마 2:16-18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
시 61:1-4
앞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비롯하여 예수님, 그리스도의 혈통과 탄생을 묵상하였다. 이후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까지 약 30년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늘은 동방 박사들이 와서 아기 예수께 절하고 경배하는 내용과 헤롯의 학살이 이어지고 있다. 박사들에게 경배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신비한 일이다. 저들은 동방 곧 이방에서 별을 보고 온 것이다. 또한 그 지위나 이국적인 이유 때문이었을까? 헤롯 왕에게 인도되었고, 이는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리한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이들의 길을 수정하듯 ‘만왕의 왕’으로서 온 메시야에게로 인도하였다.
아기 예수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 출신의 박사들에 의해 맨 먼저 경배함을 받으셨다. 왕궁이 아닌 구유에서 태나셨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10-11).” 또한 이때 드린 세 가지 예물의 의미도 주목하게 한다.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나신 곳’이 마구간으로 되어 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그에 비해 본문에는 ‘아기가 있는 곳’이 집으로 표현되어 있어, 동방 박사들이 방문한 시기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주전 27년- 주후 14년)의 명(命)에 의해 호적 곧 인구 조사(눅 2:1)가 금방 끝난 후에 요셉이 거처를 마련한 다음으로 기록한 것 같다.
저들은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였다. 경배는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이다(2).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 뿐이었다. 다시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11).”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않았다. 경배의 대상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한 분을 의식하고 드린 것이다. 이는 공생애를 앞두고 사탄이 예수께 경배하기를 권할 때,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4:8-9).” 예수께서는 분명히 이르시길,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 하심으로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또한 ‘보배합’ 열어 예물을 바치는 것은 이방의 왕들이 메시야 앞에 예물을 드리고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을 이루게 하심이다.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사 60:6).” 이에,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 72:10).
곧 고대 동방의 풍습에서 왕을 알현할 때는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상례였다. 박사들이 올린 ‘세 가지 예물’ 중 ‘황금’은 동서 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로 여겨졌다.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 반질반질하고 향내 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었다. 몰약은 역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으로서 상당히 고가의 향기를 지닌 액체로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다. 곧 황금은 메시야 왕권을 나타낸다. 유향은 예수의 신성을 의미한다.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칼빈은 왕과 제사장과 그분의 장사(葬事)되심을 상징한다고 했다.
당시는 ‘헤롯왕 때’이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마 2:1).” 곧 마태복음은 예수의 탄생 시기가 헤롯이 통치하고 있던 기간이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 일자를 기산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왕통이 단절되고 이방인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실현됨으로 홀(笏)이 유다를 떠나, 치리자(治理者)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야곱이 예언한 것과 같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으로 안티파터의 아들로 주전 73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영웅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뜻으로 팔레스타인 인접 지역을 주전 55년경부터 주후 93년까지 통치한 왕조의 계통을 이어 실질적인 권세가였다. 헤롯은 25세에 이미 갈릴리의 총독을 역임했고, 탁월한 정치력으로 로마군의 도움을 받아 그의 반대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히 축출하였다. 그는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였고 계속되는 로마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였다. 각종 건축 사역을 꾸며 극장, 원형 경기, 기념비, 우상 제단, 성채 등을 건설하는데 백성들을 동원하여 고된 부역을 강요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런 와중에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주전 20년부터 시작하여 그가 죽은 뒤인 주후 68년에 완성시킴으로 주위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긍정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10명의 아내를 두었고, 그중 에돔 출신의 첫 아내 도리스에게서 안티파터라는 아들을 얻어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였으나 죽기 전에 과대망상으로 그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마카비가(家) 출신의 둘째 아내 마리암네에게서 두 아들을 얻었으나 그들 역시 그 어미와 더불어 살해당하고 말았다. 또한 대제사장 시므온의 딸이었던 마리암네 2세를 세 번째 아내로 맞아 이두메의 분봉왕이 된 빌립 1세를 낳았다. 한편 사마리아 출신의 넷째 아 마르다게에게서 아켈라오(2:22)와 안티파스(14:1)를 낳았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의 다섯 번째 아내 크레오파트라에게서 칼시스와 빌립 2세를 낳았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보아 예수의 탄생 연대는 주전 5년 후반기나 4년 초반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들 한다.
유대 베들레헴은 갈릴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스불론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과 구별된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방 8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메시야가 탄생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이곳은 유대의 실질적인 건국을 이룬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삼상 16:1).” 여기서 히브리어 지명 베들레헴은 ‘떡 집’이라는 의미다. 이 지역이 곡식과 과실이 풍성한 비옥한 곡창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명과 걸맞게 온 인류에게 풍족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곳에서 출생하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지명의 유래를 살피고 그 의미를 재해석할 때면 예수님의 출생이 어느 것도 의미 없는 사건이나 상황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앞서도 살핀 것처럼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왔다. 마태복음은 본문이 지니는 중요성과 그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를 앞서 기술하였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동방으로부터’였다. 다시 말해 동쪽으로부터는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특정한 땅 곧 페르시아, 바벨론, 메데, 아라비아, 또는 더 동쪽에 위치한 모든 곳이라 하면 소아시아, 애굽, 인도, 그리스 등지로까지 확대된다. 이 다양한 지명을 함축한 ‘동방에서’는 어디를 지칭하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대체로 ‘바벨론’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유다의 멸망 이후 바벨론에는 예루살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구약의 예언을 사전에 깊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이 유대인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자들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또한 본문에서 ‘박사’라고 그 신원을 칭하는데, 박사로 번역된 당시의 단어는 박수나 점쟁이 등 엉터리 마술사가 아니었고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메데, 바사, 또는 바벨론의 제사장을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 시대에 “왕이 그의 꿈을 자기에게 알려 주도록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라 말하매 그들이 들어가서 왕의 앞에 선지라(단 2:2).” 할 때, 꿈을 해석한 다니엘을 높였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후 600년이 지나서, 곧 오늘 예수께 경배하러 온 자들은 바벨론의 어른으로 높임 받던 박사들이었을 것이다.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5:7).”
메시야의 탄생 소식을 듣고도 전혀 기뻐하거나 경배하려 하지 않았던 유대인들과 그들의 왕으로 자처하던 헤롯은 오히려 메시야의 탄생 소식에 놀라며 공포에 사로잡혔다. 뿐만 아니라 끔찍한 유아살해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16).” 이 끔찍한 살육에 대해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언한 바 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18).” 예레미야는 특히 애가의 선지자, 눈물의 종이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하는 예언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렘 31:15).”
이는 여호야김 통치 초기로 주전 586년 멸망한 유다와 베냐민의 포로 장면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30:1-33:26). 여기서 라헬은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과 베냐민의 모친으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어머니로 묘사된다.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수 18:25).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가까우며 벧엘로 가는 도중에 위치한 곳이다. 바로 이 부근에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셀사가 있다.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삼상 10:2).”
이러한 정황으로 익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수를 바라보며 라헬이 그녀의 무덤 속에서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포로가 된 자손들 즉 그 자식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통곡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렘 40:1-3).” 당시의 그 일이 있은 지 600여 년이 지난 후에 또 같은 의미의 슬픈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은,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결국 라마에서 에브라다(베들레헴)로 가는 도중에 자식이 없어 슬퍼하였던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죽은 사실과 훗날에 저들이 결국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된 사실과 예수께서 오실 때에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 헤롯왕의 명령으로 어린 자식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이 중첩됨으로 애가다. 아주 슬픈 시 같다. 그리하여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어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창 35:19-20).” 마태는 이를 복음서에 다시 언급함으로 베들레헴의 유아 학살 사건에다 관련시킨 것이다. 왜 마태는 여기에 바벨론에 포로 되어 슬퍼하며 끌려가는 장면을 연결시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사건의 초점은 베들레헴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미들(라헬)이 흘리는 눈물에 맞춰져 있다. 곧 오늘 날 우리가 우리 죄로 흘려야 하는 회개의 눈물로도 연관이 된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때는 다윗의 혈통에서 이어지던 왕권이 물러나고 이방의 속박으로 흘리던 탄식의 눈물이었다. 또 다른 이방인으로 헤롯왕은 엄연히 에돔인이었고 그의 통치에 의한 학정으로 살해되는 베들레헴의 아이들로 인하여 어머니들이 흘리는 눈물로 그 절망과 탄식을 미뤄 짐작하게 한다. 곧 우린 얼마나 우리의 죄성에 대해 비통해하고 눈물지으며 애통하는지? 바울은 절규하였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24).”
이방의 땅 동방에서 박사들이 와서 제일 먼저 구세주께 경배하였다는 것과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 끌려가고, 어린 자식들이 헤롯에 의해 죽는 일이 그저 막연한 전개가 아니다. 오늘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이방의 문화’에 물들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운운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 61:1-2).
오늘도 주 앞에 비옵는 것은,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
(3-4).
오늘도 이 한 날의 수고 가운데서,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5, 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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