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하.현. 2026. 6. 12. 05:53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 10:27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시 69:33-34

 

 

주께서 따로 열둘을 부르셨다. 그리고 저들에게 특별한 권능을 주셨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 그 이전에 있었던 몇몇 예비적 단계가 결정을 이룬 것이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4:18-20).” 또한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22).”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산상수훈 이전, 곧 예수께서 밤새껏 기도하신 후 제자들은 택하셨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3-15).” 또 그들을 얼마 동안 훈련하셨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막 6:7-10).”

 

이와 같이 제자들을 곳곳으로 파송하셨다. 이 열 두 제자를 세우신 것은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 갑자기 탄생할 개척 교회를 책임질 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를 가만히 묵상하다보면 나로 주 앞에 돌이오기까지, 그래서 또 수년을 놓아두시고 제 갈 길로 가게 하셨다가 환멸가운데 있을 때 결정적으로 부르신 과정을 생각한다. 또한 돌이켜 주 앞에 승복하고 난 뒤 신학을 하기 전과 그 과정과 후에 오늘의 이 교회를 시작하기까지의 여정이 스쳐간다. 곧 우리 하나님은 어쩌다 갑자기 불러세우시는 게 아니라 그러기까지 숨겨진 여진이 있었다.

 

이로써 우리는 증인으로 그 역할이 부여된다. 나의 경우나 내 형제들과 부친의 때에도 가만히 돌이켜 보면 무질서했던 혼란의 시기를 끝내고 단순하고 명료한 길로 이끄시는 데 오래 참으심으로 그 길은 더러 잔혹하였고 어려웠으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들로 가득하게 채워진다. 오늘 여기 열두 명의 제자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같이 배운 사람들도 아니었으며 또 자기들의 재주로 이 종교를 전파할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다. 상당한 지위도 신분도 없었고 타인에게 이 종교를 강요할만한 능력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보고 들은 대로만 전달하는 정직하고 평범하고 단순하게 예수를 전하였을 뿐이다. 이에 ‘와서 보라!’ 하는 정도이면 족하였던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그리하셔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요 1:39).” 그리하심 같이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46).”

 

우리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때 또는 주의 뜻으로 저의 그릇됨을 알게 할 때 저로 강제할 수 없다. 억지로는 힘들다. 다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으로 ‘와서 보라’ 하는 정도이면 족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제자들을 부르셨고, 지혜로우신 필요에 따라 천국 일꾼을 삼으셨다. 그들에게 그 일을 맡기실 때는 합당한 권위와 힘을 부여하셨다. 예수께서 부여하신 권능에는 먼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귀신이란 문자적으로 더러운 영들이다. 악한 영들로 우리 속을 채우고 있는 온갖 욕심과 더러움과 자기 아집을 뜻한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에게 원수가 되며, 직간접으로 정신과 도덕과 육체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이를 애써 물리치고 좀 나아지려나 할 때 그저 비었으면 전보다 못한 결과가 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12:43-45).”

 

이것으로 우리의 아집과 자기 욕구가 얼마나 끈질긴 귀신같은지 알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 속의 더러운 영을 먼저 쫓는 능력을 주시고, 이를 ‘병 고치는 능력’과 구별하여 제공하신 것은 그 일이 병 고치는 일보다 중요하여,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다 저가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교회나 신앙에 대한 자신의 변명을 할 때 나는 모질게 오늘의 그 처지나 형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래놓고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그에게 있어 현실의 지금 그 문제가 얼마나 서럽고 고통스러울지 가늠할 수 있어 미안하였다. 그러니 좀 시간을 두고 서러움을 가라앉힌 후에 다시 말하자 하고 피하기는 하였는데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듯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자기 생살을 도려내는 일보다 어려운 것이다. 우리 안의 사탄의 왕국을 허물어뜨리는 일과 같다. 직접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그와 더불어 어떤 다른 권능을 행하는 것보다 소명 받은 제자들의 사도의 권위로 확증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자주 이 일로 부대낀다. 저마다 믿는 자들이면 더더욱이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판단이 있다. 말씀으로 이를 권면하고 또는 훈계하려 할 때 열에 열은 모두 싫어하고 반감도 크다. 아무리 목사라 해도 겸손히 듣지 않는다.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가까운 이가 여전히 술자리를 다닌다. 저의 말로는 별로 없다지만 어쨌든 마다하지 않고 허용한다. 이번 가을에 안수집사가 되려 훈련 중이다. 여름에는 인도 어디 교회로 선교도 다녀온다. 섬기는 교회에서 성가대로 교사로 봉사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직장을 다니고, 또 주식도 하고 집도 간수해야 하는 처지라….

 

현실과 신앙의 괴리는 영적인 영역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이처럼 악한 영을 정복하고 축출하는 일은 자신 안의 일에서부터 우리 주변의 여러 문화나 관습, 습관 들과 싸우는 일이다. 이는 대제사장적 메시야의 권능으로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오늘 본문은 일갈한다. 이 일은 메시야와 그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확실한 증표이다. 본문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은 본래 예수께서 친히 행하셨던 일이다(4:23, 9:35). 이제 당신의 권위를 덧입혀 열두 제자들에게 이러한 권능을 부여하셨다. 이 권능은 일반 성도에게 부여된 병 고치는 은사와 다르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전 12:9-10, 28).”

 

그리하여 우리는 한 교회의 지체가 된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18).” 이에 우리는 그의 지체이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엡 5:30).” 이에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은 두괄식으로 전체의 내용을 축약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

 

이에 우리의 모든 걸음을 책임지신다고 하셨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9-10).” 사실 목사가 되고 더욱이 개척교회로 열 명도 안 되는 성도로 교회를 유지하기란 오늘 같은 현실에서 밥벌이로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가 유지되고 주 앞에 온전할 수 있게 이루어져 가는 일은 산 증거와 같다.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살면서 어찌 ‘전대’에 대한 불안이 없을 수 있겠나?

 

‘전대’는 돈을 넣어 품속이나 허리춤에 넣고 다니는 돈주머니를 말한다. 전대는 의복의 일부로 귀중한 것을 휴대하기 위한 것이다. 곧 우리 품에 늘 간직하는 것으로, 더러는 목회를 떠나는 데 그 이유가 우선은 자녀들이 좀 더 자라고, 혹은 생활이 어찌 좀 유지가 되면 … 하는 식으로 여러 어려움이 동반되었다. 그래서 누구는 대리와 택시운전을 하다 잠시 쉰 것이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누구는 친구 정육점에서 평일에는 일을 돕다가 목사의 직분을 상실하고 살아간다. 일종의 지갑으로 전대가 비면 누구라도 먹고 사는 일에 고달프다. 총신대학원을 어찌 마치고 섬기던 교회를 떠안듯 작고 가난한 개척교회에서 저는 3년을 꼬박 사모만 앞에 두고 설교하였다. 그러는 내내 성경과 씨름하였고 한 달에 한 권씩을 수차례 읽고 또 읽으면서 주의 때를 기다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 월세가 밀린 적 없고 살독에 쌀이 떨어진 적이 없다.

 

같은 처지의 여러 목회자들이 내 곁에 있다. 누구는 그래서 어려움을 피하여 살 길을 찾고, 어떤 이는 그 자리를 지킴으로 지금도 여전히 교회가 세든 자리에 살림을 들여 오로지 말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한다. 상대적으로 아무개는 사업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어서 더는 목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확장하며 열심이다. 오늘 예수님은 너무하시다 싶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라고 하신다(마 10:9). 현실을 전혀 모르시는 말씀이다. 금, 은, 동은 당시 로마나 헬라의 화폐로 오늘 날에도 돈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시면 무엇으로 살라는 소릴까? 이는 한시적으로 그러하였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눅 22:35-36).”

 

물론 그렇다고 오늘 날의 복음 사역자가 돈을 탐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돈을 탐하여 마음에 두게 되면 죄의 유혹을 받게 되며 따라서 악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곧 목사는 복음 사역자로 이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강조하심이다. 보내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시면 하나님이 당연히 그 보냄을 책임지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부족함 없이 주시리라는 것을 또한 믿어 의심하지 않고, 실제 그 삶은 가득하였다. 매번 나의 충만함은 놀라울 정도로 모자람이 없었다.

 

신대원을 마치고 갑자기 글방의 아이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더는 개인적으로 돈벌이가 없을 때, 아니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은 모든 학비와 생활비를 채우시고 학부 때나 신대원 때나 동일하게 돌보셨던 것을 상기하게 하셨다. 이는 오늘에까지 이르러 나는 그 뒤로 개인적인 돈벌이에는 담을 쌓았다. 누구는 글쓰기나 독서 등 예전과 같이 요즘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을 권하였으나 나의 30여 년으로 그만하면 밥벌이 하고 사는 데 족하다. 더는 주가 책임지실 것을 믿고 맡김으로 때로는 교회가 속수무책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모자람이 없게 하셨다. 그렇다고 누가 추측하는 것처럼 교회 통장에 얼마쯤 쟁여놓고 그 비축한 것으로 유지가 되는가, 하는데 매 달 우리는 새로 시작이다. 그러면서도 모자람이 없다는 데서 나는 오히려 주의 돌보심, 한 성도 한 성도의 이름없이 빛도 없이 보내오는 후원헌금의 참 뜻을 되새기며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또한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내가 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하여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12-14).” 누가 내게 상담을 마저 마치고 실습까지, 그래서 자격증을 따고 정식으로 영업(?)을 권하기도 하는데 나로 그리 하지 못하게 하신다. 나는 안 믿는 자를 상대하는 일에 강한 두려움을 느낀다. 믿는다는 자들은 그나마 같이 기도도 하고 신앙으로 권면도 가능한데, 안 믿는 자들은 안하무인이라 더욱이 망상이나 조울증이 있는 자를 대하는 일은 두렵다!

 

누가 좋아라 하고 다가오는 것도 사실은 그 배면의 울증을 대비하게 한다. 망상은 대책이 없다. 좋은 관계일 때는 그런대로 잘 받아들이는가 하였는데 순간 틀어지면, 저의 망상이 현실이 된다. 그 이상의 강한 신념이 되고, 그 힘은 악령의 지배 아래 놓인다. 사람 안의 온갖 죄악성이 마상의 세계에서 발휘되어 사람을 터무니없이 고소하거나 죽기 살기로 일을 지어내는데, 그 세계가 현실보다 현실 같아서 누구도 상대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영접도 아니하거든’ 하시며,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복음을 거절하는 것에 대해 저주를 자초(自招)하는 일임으로 더는 관여하지 말 것을 이르신다. 이에 그 끝은 ‘소돔과 고모라 땅’ 같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들의 악독으로 불과 유황에 의해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창 19장). 이후 부패하여 주를 거절하는 자들에게 최후의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다.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신 29:23, 25-26).”

 

그런데 그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하여, 오히려 그 성이 ‘견디기 쉬우리라.’ 하심은 사역을 방해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11:20-21).” 이에 오늘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0:15).” 하심으로 우리는 순간 두려움이 든다.

 

하여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39-40).” 하신 말씀을 다시금 되새기며 주 앞에 겸손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거침이 없이,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42).” 하여 오늘도,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시 69:1-3).

 

주 앞에 아뢰고 고할 때,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13-14).

 

이에,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원하시며

내 원수로 말미암아 나를 속량하소서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18-19).

 

하면,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30-3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