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하현. 2026. 7. 11. 05:34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막 11:13-14, 20-22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시 98:2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곧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기다린다. 그 일주일간의 사건들이 묘사되기 시작한다. 시간적으로는 불과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이 날들이 엄청나 사건과 사실을 담아내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마가복음 전체의 1/3의 분량을 차지한다. 본문은 먼저 예수님과 유대교 지도자들 간의 공개적인 충돌이 일어난다. 이는 앞서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3:1).”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과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마찰은 필연적이다.

 

더욱이 오늘 본문에서는 성전에서의 일에 예수께서 공공연하게 책망하고 화를 내셨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15-18절).”

 

앞에서도 예수께서는 대적들의 비방과 궤계에 허다하게 부딪쳤지만, 정해진 때가 이르기 전에 불필요한 대립을 피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3:7, 8:13).” 그러나 이제 정해진 십자가의 수난의 때가 불과 며칠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예수께서 대적들과 정면으로 맞부딪쳐 그들의 허상과 죄악을 적나라하게 책망하시기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12:38-40).”

 

이를 마태는 ‘일곱 가지 화(禍)’로 정리한 바 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15).”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1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29).”

 

이처럼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시키신 격렬한 저주가 여기 무화나 나무의 예로 잘 드러나 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11:13-14, 20-22).”

 

이는 형식적으로는 수려하고 무성하나 열매가 없음으로 저주하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덧붙이기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하고 설명하는데, 이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무화과는 보통 잎과 열매가 함께 맺히는 과수이다. 따라서 잎이 무성하면 열매도 있어야 정상이다. 그래서 주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무엇이 있을까 하여 다가가신 것이다. 주님은 비록 무화과를 거둘 시기가 아닐지라도 설익은 무화과라도 얻고자 하셨던 것이다. 아니, 그 열매 없음을 아시고 이를 확인시키시려고 가신 것이다. 결국 주님은 무화과나무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셨고, 그것은 주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원인이 되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14).”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매우 ‘상정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곧 주님이 의도적으로 그리 하신 것인데, 마침 성전에 들어가시기 전의 일이다. 주님께서는 앞서 무화과나무에 아무 것도 맺히지 않은 사실을 알고 계셨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주님이 무엇을 구한 것은 다른 이유로 모두에게 알리고자 하신 뜻이 있었다. 곧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상실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실상을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당시 유대교의 실상을 보여준다. 단지 나무의 열매를 얻고자 하신 게 아니다. 종교의 본질인 생명과 선과 의는 함께 무성하고 열매가 맺힌다. 무수한 전통과 형식만 남은 교회, 외형적으로 비대해져 엄청난 규모의 크기나 화려한 건물양식과 이것에 끌려오는 수많은 사람들로는 열매라 할 수 없다. 전통과 형식만 남는 교회, 심지어 우리의 토속적 신앙과 접목하여 사람들을 충족시키는 교회는 참 열매가 없이 잎만 무성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이에 대해 경고하였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1-12).”

 

고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이에 따른 예수님의 엄한 경고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여 일곱 교회에 편지할 때에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1-3).” 이를 오늘 우리에게 향하신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그러니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 대대로 모든 권력과 향락을 즐기는 종교 지도자들로서 이러한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막 3:6).” 이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살해 계획은 더욱 분명해지고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할 위기감이 생겼다. 하여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하고 반감을 드러내며 묻는다(11:27-28).

 

더욱이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로마의 속국으로 있으면서 예민한 정치적인 이슈로 묻기도 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12:13-14).”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은 일주일 내내 연출된다. 상대적으로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여정은 극적이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7-10).” 지형적으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갈릴리와 유대 산지, 요단 건너편 그리고 여리고를 지나 감람산에 이른 후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당도하기까지의 길은 가파른 것처럼 역설적이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요 2:13, 5:1, 7:10).” 그와 달리 오늘은 예수의 생애와 구속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내포하고 있는 날이다.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마 21:10-11).” 여기서 예루살렘의 입성이 지니는 의미를 부각시켜 특히 입성 과정에 드러나는 특징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였다.

 

“나귀 새끼를 …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7-10).” 여기서 보면 공개적이고 요란하게 입성하셨다. 환호하는 수많은 무리들은 물론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과 유대교 지도자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공공연히 입성하셨다. 예수께서 공생애 중 많은 시간을 갈릴리의 외딴 지역에서 보내셨고 당신의 크신 권능을 베풀 때에도 그 일을 비밀로 하도록 당부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승리를 거두고 입성하듯 의도적으로 환호를 받아가며 당당하게 들어가신 것이다. 당시 예수의 입성을 환호하기 위해 늘어선 무리들의 환호는 예루살렘 곳곳을 울렸을 것이다. 또한 유월절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전국 각처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몰려 있었다.

 

예수님은 인류 대속을 위해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에 당도하셨다. 모든 사람이 알도록 시끌벅적하게 들어가셨다. 유대 군중들과 관원들, 유대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로마인들까지 포함한 많은 증인들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셨다. 당시 수많은 백성들은 예수를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야로 착각하고 열광하였다. 그러다 정작 주께서 사로잡혀 재판정에 섰을 때는 도리어 냉소와 조롱을 보내며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처럼 수많은 군중은 쓸려다니는 안개 같다. 결국 그렇게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처단함으로 자기들이 승리를 거둔 것이라 확신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며 당신의 부활을 증거하셨다. 그렇듯 진정한 승리의 영광을 밝히셨다(16장).

 

떠들썩하나 겸손하신 입성이었다. 시끌벅적하나 예수는 차분하셨다. 나귀 새끼를 타고, 그것도 빌린 나귀를 타고 안장도 없이 제자들이 깔아준 옷 위에 앉으셨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이를 앞서 수 백 년 전 선지자들의 입에서 주의 겸손과 평강의 왕이심을 나타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이는 몇 조각의 빵으로 수천 명을 먹이신 주께서 스스로는 이 초라한 행렬을 감수하신 것이다. 죽은 자를 소생시키기 위하여 권능의 주께서 스스로 죽음의 쓴 잔을 마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아무런 힘도 없이 겸손한 왕으로,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권능으로 이 무력을 감내하셨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하는 선지자의 찬송은 역설적이다. 기어이 성전에서 교회시대로 넘어오는 데 있어,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졌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1).” 이는 하나님께 우리가 직접 나아갈 새로운 길이 열렸음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우리는 본래 그럴 자격도 언약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1).” 이 놀라운 비밀에 대하여 이번 주간은 내 설교 준비로 마음이 벅찼다. 우리는 본래 이방인이다. 그런데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1, 6).”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12).” 우리는 이방인과 나그네 같아서 이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은혜의 역사,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비밀의 놀라운 사실로,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13).”

 

이러한 말씀을 준비하며 내내 나의 예전 모습을 생각하였고, 돌이켜 부끄러워하였으며 오늘의 모든 상황이 은혜인 것을 인정하였다. 더하여 나에게 이처럼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자로 삼으셨으니 이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을까? 엄연한 차별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뿐만 아니라 인종의 차이, 남여의 차별이 있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제사장과 백성 사이에도 엄격한 차별과 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무너지고 사라지고, 본래의 평화와 평등의 영광의 능력의 세상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6).” 이를 위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귀하다. 오늘도 이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시 98:1-2).

 

이를 인정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에,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4, 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