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하현. 2026. 7. 15. 05:58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막 15:2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 102:1-2

 

 

구레네 사람으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은 얼결에 지나다 예수의 십자가를 지었다. 로마의 관례에 의해 사형수는 처형 장소까지 약 70kg에 달하는 십자가 가로대를 직접 지고 가야 했다. 예수님은 밤새 모진 매질과 고문을 당하시며 육체적으로 심히 쇠약해져 있었다. 더는 십자가를 지고 걸을 수 없자, 마침 그 길을 지나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했다. 여기서 마가는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 소개한다. 이는 마가복음의 일차 독자였던 로마 교회 성도들이 알렉산더와 루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을 암시한다.

 

억지로 지게 된 비극적인 십자가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시몬과 그의 온 집안이 초대 교회의 위대한 믿음의 가정이 되었다. 훗날 바울은 문안의 글에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 16:13).” 할 정도로 친밀감과 존경을 표했다. 바울과 루포, 그리고 그의 가족 사이에는 영적인 유대감이 있었다. 루포는 바울이 인정한 영적인 동역자가 되었다. 바울은 루포를 가리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다. 이는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을 넘어, 로마 교회 내에서 훌륭한 신앙의 인격과 헌신으로 칭송받으며 복음의 사역에 앞장섰던 핵심 인물이었음을 바울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바울에게 있어 친어머니와 다름없었던 루포의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존경은 바울이 시몬의 가정과 맺었을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바울은 곧 루포의 어머니를 ‘곧 내 어머니’라고 표현하였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박해와 고난을 겪으며 영육간에 지쳐 있을 때, 루포의 어머니가 바울을 친아들처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영적으로 영양을 공급해 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곧 우리가 혈연관계를 넘어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진정한 신앙의 가족으로 지내는 일이 교회를 중심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바울에게서 느낄 수 있다.

 

비록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 이처럼 훗날에 바울의 동역자로 주의 일에 활동하는 것이 놀랍다. 더불어 그 온 가족이 믿음의 가족으로 나아가는 것도 말이다. 예루살렘 변방에서 일어난 십자가 사건 이후, 시몬의 가족은 온전히 변화되어 로마로 이주한 것 같다. 그곳에서 루포와 그의 어머니는 로마 교회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고,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마저 영적으로 깊이 의지하는 위대한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심을 받은 데 따른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엡 3:1-2).” 하며 당시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향해 편지하였다.

 

에베소교회는 초대 교회 역사에서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와 더불어 가장 비중 있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회이다. 사도 바울이 가장 정성을 들여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디모데가 목회하고, 사도 요한이 말년을 보내며 복음을 전했던 믿음의 요충지였기도 하였다.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의 수도이자 교통, 상업, 정치의 중심지였다. 상대적으로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던 거대한 아데미(다이아나) 신전이 그곳에 있었으며, 우상 숭배와 마술, 음란한 문화가 도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구레네 지방도 고대 그리스 로마의 도시로 지중해와 인접한 해발 약 550m의 고원에 위치하여 기후가 온화하고 토지가 비옥하였다. 학문과 무역의 중심지로 의학, 철학의 중심지로도 알려져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약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대규모 디아스포라(해외 거주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구레네는 신약성경에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 세계로 뻗어 나가는 전환점마다 중요한 인물들의 고향으로 등장한다. 먼저는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이 살았던 곳으로, 유대인 시몬은 유대교 최대 절기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왔다가 우연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다.

 

또한 구레네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목격자들이 모여 있던 곳이기도 하다.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10-11).” 즉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각국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모여든 경건한 유대인들 중에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등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고향인 구레네로 돌아가 복음의 씨앗을 뿌렸을 것이다.

 

또한 스데반 집사가 논쟁한 곳이 구레네 회당 사람들이었다.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6:9).” 곧 예루살렘에는 구레네 출신 유대인들이 세운 전용 회당인 ‘구레네인들의 회당’이 따로 있을 정도로 그 세력이 컸다. 스데반 집사가 지혜와 성령으로 복음을 전할 때, 이 구레네 회당 출신 유대인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또한 세계 선교에 있어 안디옥 교회의 숨은 개척자들이 구레네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11:20-21).”

 

이처럼 스데반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 중에 구레네와 구브로 몇 사람이 헬라인이 가득했던 수리아의 안디옥에 이르러 예수를 전파했고, 이들의 헌신으로 초대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인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다. 특히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루기오에 대하여는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13:1).” 하여, 안디옥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바울과 바나바를 최초의 세계 선교사로 파송한 그 교회의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언급되고 있다.

 

이렇듯 우연 같은 필연으로 우리의 복음은 오늘에 이르러 나로 주 앞에 앉게 하셨다. 몇 번 언급한 것 같이 강원도 두메산골 노론리라고 하는 아주 ‘깡촌’에 작은 예배당이 하나 있는데, 나의 부친은 어느 날 우연히 친구와 함께 그 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했다. 그 일을 계기로 예수를 영접한 뒤 고등학생이었던 부친은 부모와 일가친척의 모진 박해에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켜, 기어이 훗날에는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하여 죽고자 할 때 그와 같은 심정으로 기도원으로 올라간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런 지경에서 부르심이 가당치도 않았을 텐데 성령의 강권하심이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게 철저하게 순종하였던 목회는 여러 차례 개척 교회를 맡았고, 나환자촌 교회에서의 목회나 여수 애양원 교회에서의 ‘아가서 강해 설교’는 그곳의 소경 장로들을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였다. 더불어 저들의 중보로 우리 사남매 모두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게 된 셈이니….

 

나는 자주 이를 회상하고 묵상할 때면 하나님의 우연이란 필연의 만남을 귀히 여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개척교회 교사가 없어서 주일학교 보조선생으로 여름성경학교 교사로 투입됐고, 그때 맡았던 주일학교 아이들이 여전히 오늘도 왕래하며 이 교회를 이뤄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어느새 다들 쉰 줄이 넘어 각자 섬기는 교회가 다르고 사는 지역이 다른 데도 우리는 서로 기도와 문안으로 왕래하며 영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저들 사정을 잘 알고 늘 합하여 기도하게 되는 사명도 서로가 짊어지고 간다. 이런저런 우여곡절과 사연들이 있지만 서로는 그렇게 주 안에서 문안하고 위로가 된다. 오늘 여기 구레네 사람 시몬의 우연한 계기가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였지만, 그의 흘린 순종의 땀방울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바울과 루포의 아름다운 영적 가족 관계로의 열매도 여기 작은 우연의 씨앗이 발단이었고 그 결과로 맺은 열매이다.

 

어제는 나의 가장 오랜 친구와의 통화로 마음이 너무 어려웠다. 저는 중1 때 같은 반으로 나는 그때 여수 애양원 병원에 있다 일 년을 꿇고 들어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다, 이내 누적된 갈등과 회의로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다. 앞전에 성북구 어디 개척교회로 옥상에서 가건물로 함께 생활하던 친구의 형님이 관악산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다녔고 수재였다. 그러나 극심한 가난과 당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정치, 사회적 혼란의 갈등으로 그러했는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로서는 ‘그러한 죽음’이 새로운 출구나 희망으로까지 여겨져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름 나는 수면제를 모으느라 6개월을 준비하였고, 날을 정하여 그래도 이 친구에게는 말을 하고 죽어야 할 것 같아서 알린 게 나를 살렸다.

 

그는 돌아오는 가을에 안수집사가 될 것이고, 이번 여름에 인도로 선교여행도 나가야 한다. 어제는 모처럼 안부를 물으며 전화를 했던 것인데… 심히 아픈 사람 같아서 캐묻자 지난 가을부터 그것도 신용으로 대출을 끌어다 주식을 한 것이 이번 몇 주 사이 엄청난 손실을 낸 모양이었다. 하루 이자만 5백이 나간다고 하니, 왜 그랬는가? 하고 묻자, 돈을 많이 벌려고! 하고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심란하고 어지러운 탓에 뭐라 길게 말도 못했다. 내가 또 주식을 너무 몰라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설명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우선을 통화를 끊고 내심 마음이 어려워졌다. 하긴 요즘 주변에 그런저런 사연들 가운데 그 놈의 주식 이야기가 절반이 넘는다. 자나 깨나 그 얘기더니 결국은 이런 사달이 났다. 지금이라도 팔면 어떤가? 하고 묻자, 대출 원금은 갚을 수 있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게 또 그렇게 안 되는 모양이다.

 

이렇듯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우연과 우연’ 사이의 일에서 우리가 주의 뜻을 알기란, 얼마쯤의 시간과 고난과 역경으로 다져지는 일이다. 최종적으로 나는 09학번으로 신대원에 끌려오면서 닥친 몇 천 때문에 겪은 ‘개인회생’이 예방주사가 되었다. 이후 나는 일체의 대출이나 무슨 투자, 어디 돈 벌 궁리에서 놓여났다.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도 만들지 않고 살았다. 아니, 나로서는 그때의 몇 가지 우연 가운데 부모님의 미국 목회와 아들의 필리핀 생활과 파산 위기의 개인회생절차가 오롯이 주만 바라게 했다. 부모, 아들, 돈벌이 이 세 가지가 내 인생에 가장 귀중히 섬기고 의지하던 대상이지 않았던가? 그걸 일시에 막으시고 동시에 신대원으로 잡아다놓고 하나님이 일체 모든 학기의 학비며, 생활비를 책임지셨던 일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가 3년을 울면서 다녔다고 하면 별로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오죽하니 나는 강한 우울과 불안으로 3년 내내 과제 발표 한 번 할 수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 이유로도 그만두었을 것인데, 나는 매학기 마다 교수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그것으로 제지를 당하면 그만둘 거였다. 생활비나 당시 군포에 있던 글방 유지가 어려우면 그때도 그 핑계로 그만둘 거였다. 말할 것도 없이 학비 낼 돈이 없어도 그만둘 거였다. 그런데 그게 다 말도 안 되는 손길로 해결이 됐다. 곧 나는 오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십자가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데 확신한다. 돌아보면 내 모든 삶이 그러했고, 만났던 사람들이나 글방 운영도 그렇듯 말이 안 된다. 열 평 남짓한 글방에서 혼자서 하는 정도였는데, 아이들을 모여 팀을 이뤄 수업할 때 한 주에 수십 팀을 했고, 빈자리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팀이 여럿이었고, 혼자 하면서 한 달에 천이 웃도는 교육비가 들어왔다. 그것으로 함부로 굴다, 소비하는 데 겁이 없었던 것이 결국은 주 앞에 두 손 드는 결정타가 되었다.

 

우리의 우연과 우연의 연속은 하나님의 숨결이다. 우연 속에 하나님은 뜻을 감추신다. 느닷없는 병마나 손실이나 억울함이나 성공까지도… 급기야 결정적인 순간에 시몬과 그 가족을, 그의 아들 구포와 알렉산더를 바울의 영적인 동역자로 세우시기까지의 일을 놓고 묵상하다, 오늘의 모든 상황 속에서 주의 선하심과 그 뜻하신 바를 부디 내 친구나 내 곁의 사랑하는 이들로 알게 하시기를. 다만 그리하여 겪는 시련과 고난의 길에서 오늘 시편의 기도로 대신한다. 마침 또 우연 같이 오늘 시편의 표제가,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이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 102:1-2).

 

나는 누구의 어떤 사연을 두고, 친구의 일을 놓고, 나의 고단한 육신의 질병을 두고, “나의 괴로운 날에” 무얼하겠나?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하고 기도한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6-7).

 

현실은 더러 외롭고 괴로울 따름이나,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11-13).

 

그리하여,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8-21).

 

그러므로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26-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