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하현. 2026. 7. 16. 05:3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막 16:19-20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1-2

 

 

우리에게 부활 신앙이 없다면 믿음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허망할까? 오늘 마가는 복음서를 마치면서 예수의 부활을 증언한다. ‘안식일이 지나매’ 예수께서 무덤 속에서 살아나셨다. 이에 안식일은 예수께서 편히 누워 쉬실 수 있는 날이었고, 침묵 속에서 보낸 안식일이었다. 제자들로서는 눈물과 두려움 속에서 보낸 비참한 안식일이었다. 이때처럼 비통하고 슬픔에 잠긴 안식일 성전 예배도 없었을 것이다. 가증스러웠던 예배가 온전한 눈물로 드려진 안식일이었다.

 

이에,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1-2).” 새 날이 열렸다. 새벽에 무덤을 찾은 것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앞서 그들은 ‘향품을 사다 두었다.’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였다. 앞서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인 것을 많이 사가지고 와서 예수의 상처에 바르고 피를 닦았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 19:39-40).” 저는 저대로 오늘 이 여인들은 여인들대로 향품을 사가지고 왔고, 주님의 시신에라도 바르기 위해 향유를 준비하였다. 먼저는 저들의 준비다. 우리로 준비하게 하시는 이도 주님이시다.

 

헌금도 준비하여 연보답게,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후 9:5).” 말씀도 준비하고 가르쳐야 한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에스라 7:10).”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다고 하였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이와 같은 모든 계획과 섭리가 하나님의 경륜이다. 그러한 경륜에 따라 오늘 우리는 각자의 생을 다한다.

 

이로써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4).” 그러므로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9).” 하여 우리는 허튼 길로 빠지지 않는다. 이를 두고 나는 전하여야 할 말씀을 준비하고 그런 가운데 이 비밀, 하나님의 계획과 경영을 면밀하게 살필 수 있었다. 곧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이것은 ‘구약의 이방인들’이 깨닫지 못했을 비밀이다. 오늘 이 말씀에서와 같이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는, ‘이 복음으로 말미맘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알게 되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3:6).” 바울은 이를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고 자신을 증거하였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7).” 곧 자신의 ‘작음’이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알게 하였다고 한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8).”

 

곧 나는 이와 같은 말씀 곧 ‘나의 약한 데서 강하여진다’는 신앙의 원리를 사랑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어제도 이런저런 일로 누구의 전화도 있고, 어떤 이의 사연도 듣고 하면서, 나의 약함과 가난을 감사하였다. 남들 다 한다는 주식에 무지하고 더 나은 돈벌이를 궁리하지 않게 하심을 귀히 생각하였다. 저마다 다들 잘해보려고 하는 일이겠으나 그것으로 너무 바쁘고, 너무 정신을 빼앗기고 산다. 당장 여름 사역이 눈에 안 들어오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세에 온통 마음이 빼앗겼다. 심지어는 어려움을 호소하다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도 했다.

 

오죽하니 그럴까만 내게는 개인 소유란 게 없는 게 감사하다. 주 앞에 붙들리면서 그리 마음을 정했고, 그렇게 살고 있다. 하다못해 장애연금으로 들어오는 얼마의 적은 돈이지만 그것도 모두 교회의 것으로 바친다. 나로 주의 성전에서, 주의 문지기로나 사는 것이 좋사오니…. 누가 뭐라든지 이 모든 상황이 더하여져 오히려 이 복음의 비밀을 전하게 된다. 이는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9).” 이 비밀을 알면서, 마치 나는 자기 밭을 모두 팔아서 보화가 묻힌 땅을 사는 농부와 같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그러니 언제 주식 장세를 살피고, 어디 땅이나 집을 보러 임장을 다니며 시세를 파악하고 그곳에 투자하는 둥의 일에 몰두하겠나?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45).” 아는 것이 복이었다.

 

비록 우리는 미약하고 어리석어서 빈 무덤으로 달려가기도 하나,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5-6).” 오늘 이 여인들은 직접 그것을 보았고, 들었고, 확인하고 돌아가서 전하였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7).” 하여 나는 더 이상 누가 무엇으로 얼마를 발고, 누가 더 많이 가지고, 어떻게 누리며 산다는 둥의 현실에는 둔감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부럽지가 않다. 오히려 저의 부요함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안타까워한다.

 

이는 교회로 말미암아 ‘이 복음의 비밀’이 전파되어야 한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 3:10).” 왜냐하면 이 모든 게 곧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구원의 과정이다.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11).” 즉 믿고 구원 받았으니 된 게 아니다. 태어나 한 생명으로 났다는 게 전부가 아닌 것과 같다. 교회가 속해 있는 이 건물은 산부인과로 시작하여 준종합병원으로 발전한 곳을 두고 있어서 아이들을 자주 본다. 이제 막 태어난 간난아이부터, 엄마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으며 병원이나 쇼핑몰에 오는 아이들도 자주 본다. 한 생명은 태어난 것으로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인 것이다. 자라가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바울은 연거푸 기도하는 것이다.

 

먼저는 주가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기를. 둘째는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를. 셋째는 우리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기를. 넷째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그 능력의 크심이 어떠한지 우리가 바로 알기를.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6-19).”

 

이러한 말씀을 준비하고, 준비하느라 묵상하고, 묵상은 내 생활이 결부되어야 하는 것임으로… 나는 요즘 나의 육신의 고통-늘 어디가 아프고 이를 다독이며 사는 날들과 더불어 내 곁의 아흔 살 노모와 이런저런 별의 별 일들로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의 사연을 듣고 새기며 뭐라 위로를 전하거나 기도하다 깨닫는다. 이로써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12).” 외람되지만 고난이 없이는 주를 바라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생리가 그렇듯 죄의 기질 때문이다. 하나 ‘낙심하지 말라’고 이른다. 바울은 오히려 이를 영광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13).”

 

이에 이번 한 주간은 다시 또 바울의 기도에 주목하고 묵상하고, 설교 원고로 정리하느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중이다. 곧 저의 기도는,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4-19).”

 

먼저 기도의 대상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9).” 우리의 이름, 성도와 동일한 천국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힘은 그의 성령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였다. 곧 그의 기도는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를 위해 기도한다.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기를 빈다. 또한 우리가 그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흔들리지 않기를 구한다. 하여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구한다(3:14-19). 하여 그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충만하여서,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8-19).”

 

이 놀라운 진리는 오늘 여기, 부활하신 예수와 승천하여 하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이의 기도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의 자세는 겸손하고 경건하여야 한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4-15).” 바울은 이와 같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하는 것을 설교한다.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부여하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 기도이다. 곧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우리는 다 그리스도로부터 이제 이름을 부여받았다. 우리의 이름은 곧 <성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9).” 우리는 이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으로 이를 ‘그리스도인’이라 한다.

 

고로 오늘도 기도 제목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힘을 주시는 이의 능력에 따라 한다. 영적인 힘은 부름을 받고 종사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고로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하는 바울의 기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하는 놀라운 증거로 발전하였다. 고로 주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이 모든 일은 이루어진다. 곧 그의 영광스러운 풍성함에 의지하여 우리는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주식장세를 다시 회복시켜달라는, 필요한 돈이나 건강이나 직장을 놓고 아뢰는 것 이상으로, 그의 풍성함은 하나님 안에서 ‘권능과 자비와 은혜의 풍성함’을 무엇이든지 충만하다. 우리가 구하는 그 이상의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 당장의 요구가 아니라 해도 더 나은 것을 주시고자, 우리 성도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거하시길 기도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7-19).”

 

하여 나는 비록 가진 재물도 없고 건강도 약하고, 놀랍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사는 것으로도 이미 ‘우리는 뿌리가 박히고 굳어진 터 위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하게 자라간다.’ 나는 이를 어찌 들려주고 보여줄 수 있을까? 하고 마음이 온통 가득하였다. 내가 가진 것이 없으나 더 나은 것으로 줄 수 있는데,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0-21).” 이와 같이 축복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오늘 여기 마리아들과 제자들과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 사이에서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 16:19-20).” ‘그 따르는 표적’ 같은 날들로 오늘을 산다. 내가 어디가 아프다는 말, 그 일, 그것이 때론 나로 슬프게 하나 동시에는 주를 바라며 송축하게도 하는 것이었으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1-2).

 

오늘 내 영혼에 두고 선포한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5-6).

 

그러므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7-18).

 

하여 오늘 여기,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0-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