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0-11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 105:18-19
‘그 때’는 적당한 때였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1).” 그저 일정하게 흐르는 게 시간으로 그 때 같지만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하는 바로 ‘그 때’이다. 예수께서 태어난 때는 제 4의 군주 국가가 최고도에 달했을 때이다. 이전의 3군주 국가보다 제 4의 군주 국가야말로 세계적인 국가가 막 되었던 때이다. 이 때의 황제는 아구스도이다. 그 때는 로마 제국이 그 어느 때보다 영토를 확장하고, 페르샤와 영국에까지 그 힘이 뻗쳤을 때이다. 당시의 로마는 온 지상의 제국이라고 불렸다. 여기서도 로마를 ‘천하’라 칭했다(1).
로마에 부속되어 있는 나라를 빼놓고 문명이 개화된 곳이 별로 없었다. 다니엘의 예언에 따라 지금이야말로 메시야가 탄생할 시기였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 2:44).” 곧 ‘이 왕들의 시대에’ 즉 제 4의 군주 국가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코 파괴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시리라’고 했다. 바로 그 때, 유대가 로마제국의 부속국으로 되어 버린 때에 탄생하셨다. 로마제국 전체가 국세 조사를 받을 때에 유대인들도 역시 국세 조사를 받은 것이 그러해서다.
예루살렘은 로마의 장군 폼페이에 의해 이 일이 있기 전, 약 60년 전에 점령되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교회의 치리권은 힐가누스(대제사장)에게 맡겼다. 물론 국가의 치리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대의 치리권은 점점 약화되어 마침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유대는 수리아의 로마인 총독 구레뇨가 다스리고 있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2).” 그 때에 메시야가 탄생하였다. 야곱의 예언이 바로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 즉 실로가 오실 터인데, 그가 오시면, 규(왕권의 상징)가 유다를 떠나지 않으며, 율법 수여자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
이 호적 조사는 유대에 처음 있는 호적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노예성을 말해 주는 첫 신호였다. 이제 실로가 와서 자기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바로 그 때가 되었다. 로마의 시민 전체가 등록을 했고, 그 제국에 현재로서 세계적인 평화가 존립해 있었다. 야누스의 성전은 이제 닫혔는데, 지금까지는 어떤 전쟁이 발발했더라도 결코 문이 닫힌 적이 없었던 성전이다. 그리고 이제 ‘검을 쳐 쟁기를 만들어야 할’ 때를 초래할 평화의 임금이 나실 적합한 시기가 된 때이다. 여기서 예수의 탄생 장소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그렇게 예언되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서기관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5-6).” 또 일반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요 7:42).” 곧 이 지명에는 의미 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 우리의 구세주 예수의 출생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또한 베들레헴은 다윗 성이었다. 즉 다윗이 태어난 곳이다. 다윗의 자손인 예수께서는 거기서 출생하시는 게 적합하였다.
시온도 역시 다윗 성이라고 불렸다.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미 4:8).” 그리스도는 목자로서 다윗이 태어난 다윗 성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고로 ‘그 때에’는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1:80).” 하는 말씀에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 당시 가이사 아구스도는 가이사 황제라는 뜻으로 아구스도 황제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이다. 그는 주전 27년에 태어나 주후 14년까지 로마의 황제로 있었고, 그 후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의 이름을 따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이저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주전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위대하고 고귀하며 지극히 숭배받는 이란 뜻의 칭호를 부여받으며 그 후 시이저 아우구스투스로 명명되어 최고의 권위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탁월한 통치 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 행정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점령지에 대한 정책의 일환으로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 생활 풍습 등을 인정해 주어, 그 나라의 법률까지 로마법에 비추어 무리가 크지 않은 범위에서 인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건축 등을 장려하고, 자신이 또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의 정책과 통치로 인해 오랜 세월 평화가 지속되었고 그는 자비로운 정치가, 로마의 대부(代父)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말씀의 성취가 되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이에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막 2:1).” 영은 곧 옳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원리, 법령 등의 뜻이다. 동사로는 ‘법령을 제정하다’는 것으로 칙령을 공포하였다. 황제의 포고령은 그런 것이다. 이에 천하에 거주하는 자들이 호적을 하러 모였다. 황제의 칙령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인구 조사가 실시된 것이다. 이에 훗날 예수께서는 세금에 대한 의도적인 질문에 답하실 때,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20:25).”
고로,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3-24).”
이처럼 ‘그 때’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다 그 때가 있음을 새삼 묵상하게 되면서이다. ‘그 때’에 동정녀 마리아는 임신을 했다. 그 때에, 해산의 때가 가까워 오자, 로마 황제의 칙령에 따라 호적하러 베들레헴에 오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름을 정해진 관서에다 등록하고 기록해야 했다. 이와 같은 국세 조사를 목적으로 하여 모든 사람은 로마 제국에서 신하라는 것을 공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하신 목적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이미 잉태하고 있던 동정녀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 예언에 따라 거기서 아기를 낳게 되었다.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아이를 낳으려 했다. 그러나 ‘계획은 사람이 하나 성사는 하나님께 있다.’
섭리 가운데 만물을 말씀으로 이루시도록 명령하신다.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도 율법 아래 있는 자로 태어나셨다. 나자마자 로마 제국의 신하, 관원들의 종이 되었던 것이다. 말씀이 예언한 것 같이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사 49:7).” 이처럼 섭리 가운데 성경은 우리의 날들을 ‘그 때에’ 이루어 가신다. 이에 영원하신 이가 ‘시간의 아기’로 오셨다. 인간의 시간은 제한적으로 처음과 끝이 있다.
이에 사람들은 ‘시간의 아이’로 태어나신 예수를 알 뿐,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요 7:27).”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감당하러 오신 이는 알지 못하였다. 하여 예수는 또한 먹고 사는 게 문제인 땅에 오셨다. 이를 상징하듯 ‘구유에서 나셨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구유는 가축이 들어가서 먹이를 먹는 장소를 가리킨다. 사관에는 방이 없었다. 그리스도는 요람에 눕는 대신 구유에 누웠다. 여기서 누가는 또 주목하기를 ‘맏아들’ 곧 ‘첫아들’이라는 것을 밝힌다. 물론 모친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뒤 계속해서 자녀들을 낳았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계속해서 동정을 지키며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주장은 성경과 배치한다.
시간의 아이 예수에게는 여러 형제와 여동생들이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8:19-20).” 이 외에도 마 12:46-47, 13:55-56, 막 3:31-32, 요 2:12, 7:3, 5, 10, 행 1:14 등 여러 곳에서 언급한다. 동시에 예수는 우리의 맏아들이 되셨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곧 우리로 성도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심도 그러해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이에 재림 예수로 오실 때도,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히 1:6).”
이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하심은 진정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이 오신 일은 두려운 일이어서,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하고 천사들이 말한다. 이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으로 설명한다. 물론은 유대 백성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고, 온 인류에게 전해지게끔 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소식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접할 대상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게 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14).”
이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선은 그러하여 이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루는 말씀이다. 곧 그리스도의 등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그 충만한 사랑을 우리로 알게 하시고자 한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곧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렇게 해서 오늘 우리로 충만한 삶으로 살게 하신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만 감사하고 의뢰할 때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더러는 삶이 어떠하든지, 설령 그것이 너무나 힘들어 죽고 싶은 심정일 때도,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와 같이 나는 내 곁의 사랑하는 이들이 주를 바라기를… 주식으로 1억의 손실을 입고 그 이상의 이자로 힘에 겨워하는 이에게나, 홀로 버려진 채 살다 중한 병이 들어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이나, 당장의 돈 때문에 혹은 사느라 사는 일에 지쳐 죽을 지경인 이에게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저들의 의지가 되어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함으로 오늘의 현실을 초월하여 주를 바라기를. 이를 위해 오늘 예수께서 나셨고, 그리스도의 중재와 대속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막혔던 벽이 허물어져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고단하였던 삶을 이제 내려놓으며 감사하는 시므온 같이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 2:28-31).” 또한 마지막 여 선지자 안나에게도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38).” 그리하여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40).”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시간의 아이로 태어나신 이가 장성하기까지, 예수께서 성전에 계심을 자연스러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49).” 오늘도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고,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시 105:1-3).
이를 살면서 삶으로 누리고 사는 이가 복이 있다. 이는,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18-19).
이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시간의 아이 예수를 바라보며,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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