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스크랩] 책 읽기의 즐거움

전봉석 2006. 8. 6. 18:29








책 읽기의 즐거움

-루이스 세풀베다의『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을 중심으로







사실, 책을 읽는다는 건 고역이다. 대단한 중노

동으로, 흐트러짐 없는 몰입에까지는 여간한 수

련이 아니고선 감내하기 어렵다. 흔히, 책읽기의

즐거움을 말할 때에도 그러한 몰입의 내수를 체

험하기란 쉽지 않다. 기껏 손에 쥔 책이라 해도

중도에서 포기하기 일쑤고, 심지어는 징검다리

밟듯 껑충껑충 건너뛰는 독법이기 다반사다.





'책 값이 너무 올랐어' 라든가, '비싸서 선뜻

살 수가 없어'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괜시리 안타까움에 젖곤 하는데, 그 정도의 값으

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란 게 우리 생활에선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5000원의 값으

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용도를 떠올려본다면,

책 값은 결코 그 이상의 즐거움으로도 비교 할

수 없다. 거기다 <연애소설을..>과 같이 몇 날

며칠을 따라 다니는 즐거움이라면, 더욱 그렇다.

책읽기의 즐거움은 값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일흔의 나이는 족히 됐을 안토니오 호세 볼리

바르 프로아뇨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면서, 그 무

게를 지탱할 수 있는 즐거움을 책읽기에서 찾는

다. 그에게 있어 연애소설을 읽는 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세월의 통증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값

진 즐거움인 것이다.

"연애소설인가요?"

"슬픈가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옵니

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질 만큼 괴로

워하나요?"

와 같이, '늙음이라는 가공할 만한 독에 대한 해

독제'를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연

애소설 읽기에서 찾는다.

아마존 강이 내려다 보이는 오두막 창가에 서서

떠듬떠듬 연애 소설을 읽고 있는 일흔 살의 안토

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를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물론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는 숱한 즐거움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책읽기의 즐거움은 스스로

의 내밀한 황홀경이며, 그것은 체득한 자만이 누

릴 수 있는 값진 선물인 셈이다.

어찌, 고된 것이 즐거울 수 있을까만. 더러는

삶이란 게 곧 책 읽기와 같지 않을까 싶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빠져드는 것이란, 어디 그

런가. 그래도 서너 장은 넘겨봐야, 그래서 글쓴이

의 호흡에 맞춰 숨을 고르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빠져든다'는 게 가능하지 않던가.

그것이 사랑에서도, 생활에서도 흡사한 면을 지

니고 있지 않던가!

고된 것이 결코 즐거울 수는 없겠으나, 그 안에

담긴 깊은 숨결을 느낄 수만 있다면 뭔들 고된 것

으로만 그칠까. 되레 삶의 즐거움이란 고된 줄다

리기와 같다.


우스갯소리지만, 나는 가끔씩 내 아이들을 보면

서 "나는 저 아이들의 아빠다!"라는 다짐을 하곤

한다. '어느새', '그러고보니', '그러게'와 같은

수식이 따르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어느새" 나는

"여기에 와 있구나…"를 확인하는 셈이다.


저 때의 내 모습이 여전히 내 손에 잡히는데 말

이다.


내가 건넜을 그리고 쉼없이 고단해 하던 사랑과

이별과 꿈과 실천의 수고스러움을 저 아이들도 지

나야 하는 것이겠지?

내 아버지가 바라는 지향하는 바에 따른 신념과

확신의 몸부림을 나 역시 피하지 못 하고 있는 것

처럼.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면 '책 읽기의 즐거움'처

럼만 내밀한 것이었으면…. 결코 막연함은 있으되

후회는 없는, 후회는 있으되 좌절은 없는, 그만한

고단함이었으면….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처럼만.




이해를 위해『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줄거리
를 정리한다(출판사, 예하).





아마존 강 유역 난가리트사 강 상류 부두에,

아마존 강 유역 개발을 이유로 몰려든 이주민과

인근의 노다지꾼 그리고 엘 이딜리오의 몇몇 주

민들이 이빨 치료를 받고 있는 데서부터 <연애

소설을..>은 시작된다.

치과 의사 루빈콘도 로아차민은 일 년에 두

번, 우기를 피해 <쉬크르>호와 함께 부두에 온

다. 어김없이 부두 앞에는 회전의자가 놓이고, 썩

은 이빨을 뽑아내고 틀니를 '사 가는' 환자들이

모여 있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이미 일흔을 넘기고

있는 노인이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가 이곳에 살 게 된 것

은, 아주 오래 전, 그 역시 아마존 강 유역 개발

의 이주민으로 아내 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트 에스투피냔 오타발로와 함

께 코르딜레레에서 이주해 온 거였고, 처음에는

엘 도라도 하항에 정착하였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던 두 사람은 열세 살에

약혼을 하여 2년 뒤 결혼을 했다. 어린 부부는 3

년의 처가살이를 한 대가로 어느 정도의 땅뙈기

와 가축 몇 마리를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지만, 생

활은 말할 수 없이 곤핍하였으며, 무엇보다, 어린

아내는 임신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어쩌면 그

이유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에게 있는 것인지

도 모른다 하여 '산 루이스 축제'에 아내를 내보

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축제에 참가한 젊

은 남녀가 질탕하게 취해 어둠을 이용한 살섞음

으로 아이를 생산하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

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아마존 강 유

역 개발 이주민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저들 부부는 아마존 강 유역 엘 도라도 하항에

도착하여, 숲 2헥타와 큰 칼 두 개, 삽 그리고

바구미가 다 갉아 먹은 씨앗 약간을 받아 '약속의

땅'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젊은 아내는 인근 수아르 족의 세

심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그 이듬 해, 말라리아

로 죽고만다.


"가난한 사람이란 모든 걸 용서하는 법이다.

실패만 빼놓고 말이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혼자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다짐하듯, 꿈과 사랑을

앗아간 아마존 정글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곳에

홀로 정착한다.


수아르 족과 함께 생활하며 저들의 언어와 사

냥 기술을 배우고, 숲의 생활에 적응해 간다. 그

러던 와중, 안토니오는 보아뱀에게 물려 죽었다

살아난다. 그럼으로 해서 숲의 무한한 자유와 생

명의 고귀함을 깨닫게 되고 복수심은 외경심으로

까지 바뀌게 된다. 그렇게 하여,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수아르 족일 수는 없으나 수아르 족

으로 생활하며 저들 방식으로 아마존 오지를 개

척해 나간다.

그러나, 그와 동향인 누시뇨(안토니오 보다 먼

저 수아르 족과 더불어 살던)가 노다지꾼 '양키'

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죽음을 목전에

둔 누시뇨를 위해 '양키' 사냥에 나섰던 안토니오

는 수아르 족의 방식대로 '양키'를 잡지 못한다.

다시 말해, 사냥감으로 하여금 용기있게 싸우다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하고, 용맹스럽게 싸우

다 죽어가는 모습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날 수 있

도록 독화살을 썼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그렇

게 죽어간 사냥감의 눈과 귀를 꿰매, 죽는 자의

마지막 영혼을 담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양키'를 총으로 사냥했으며,'양키'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죽어간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누시뇨와 수아르 족은 슬피 운다.

또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역시 자신의 실수

를 인정한다.


수아르 족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에게 카누

와 식량을 내어주며, 다시는 친절히 대할 수 없

을 것이고, 만약 자신의 마을을 찾는다 해도 잠

깐 지나가는 것은 허용하되 묵을 수는 없다는 것

을 상기 시키며 그를 떠나게 한다.


그렇게 하여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수아르

족을 떠나 난가리트사 강 상류에 오두막을 짓고,

이주민들 속에 섞여 살게 된 것이고, 로아차민

치과 의사에게 자신도 이빨을 빼 내고 틀니를 해

넣으면서, 6개월에 한 번씩 들어오는 로아차민

치과 의사 편에 '연애소설'을 조달 받게 되는 것

이다.


그런데, 카누에 실려온 '양키'의 시체로 인해

다시금 부두는 술렁거리게 된다. '뚱뚱보' 읍장은

'양키'의 시체를 가져온 원주민에 의해 살해 된

것으로 단정짓지만, 안토니오는 그것이 원주민에

의한 살해가 아니라 암살쾡이에 의한 사체임을

추론해 낸다. 저들의 가방에 들어있는 새끼 살쾡

이의 가죽으로 미뤄, 암살쾡이가 사냥을 나간 사

이 무참하게 새끼 살쾡이를 죽인 것으로 암살쾡

이의 보복 공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그러한 사건이 있는 뒤 얼마 후, 또다시

노다지꾼 '양키'들이 공격을 받게 되는데, 네 명

의 저들이 밀림으로 떠났으나 단 세명만이 살아

돌아오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로 인해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읍장과 함께 암살쾡이 사냥 대

열에 끼게 된다. 그러나 읍장의 잔꾀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만이 밀림에 남아 암살쾡이를 상대

하게 되는데, 그때의 광경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할 뿐 아니라, 숙연한 마음까지

갖게 한다.


"미안하네, 친구. 그 망할놈의 양키 녀석들이

우리 모두의 삶을 다 망쳐 놓았군."


암살쾡이의 마지막 호흡을 거두며 안토니오 호

세 볼리바르가 남기는 말은 묵직한 암시를 전하

고 있다.



-눈물과 빗물로 두 눈이 범벅이 된 채 그는

살쾡이의 시체를 강가로 끌고 갔고, 강물은

살쾡이를 정글 깊숙한 곳으로, 백인의 더러운

손이 닿지 않을 땅으로, 아마존 강이 합류하

는 곳으로, 비열하고 해로운 것들이 절대 손

댈 수 없도록 비수처럼 날카로운 돌들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일을 맡게 될 여울로 실

어갔다.-


아마존 오지에서 단신으로 살아내며 터득하게

된 신성한 자연의 품을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는 화를 내며 총을 집어 던져

버렸고, 살쾡이가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바라본다.
모든 인간으로부터 치욕을 당한 금빛짐승을.



"아마존 강의 처녀성을 유린한 모든 자들"을

대신하여 자연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안토니

오 호세 볼리바르는 한참동안 눈물을 흘린다.







하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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