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다스린다는 것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
에서만 그치는 건 아닐 거다. 더욱이 그것이 글쓰기를
위한 것이라면, 어찌 구구단을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
듯 답이 딱딱 떨어질까만, 어느새 10년 세월이다.
얼마 전, 교회에서 나오다 화들짝 놀라며 반기는 모
녀를 대하고부터 내 느낌은 더 남다른 것 같다. 그러
니까 그 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데, 이미 어엿한
여대생이 되어 있었고……. "선생님, 웬 흰머리가 그
렇게…"라며 스스럼 없이 호들갑을 떠는 그 애 앞에서
의 그 어색한 반가움이라니!
그렇다. 어쨌든, 나와는 상관없이 그 애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한 기억을 더듬
을 것이고, 추억을 통해 자신이 한 자리를 내 준 시간
만큼의 문신을 가슴에 새긴 채 살아갈 것이다.
"선생님, 그 때 저희들 한테 자주 하셨던 말씀이 뭔
지 혹시 기억하세요?" 그 애는 물었다. "글쎄. 모르겠
어. 네 모습은 그대론데…." 그러자, "1분씩만 시선을
멈추자, 였어요. 늘상 보며 사는 것들이지만 가끔씩은
1분만큼의 시선만으로도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
다고요."
수백 명의 사람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랑의 교
회 마당에서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고, 생각 같
아서는 점심이라도 같이 했으면 했지만, 피차 그럴 상
황도 아니었다. 며칠 뒤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다며 혹
시 모르니 돌아와서 꼭 연락하겠다면서 전화번호니 이
메일 주소를 받아 적고는 총총히 사라지던 그 애의 뒷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좀더 진지해져야 한다. 내 삶이, 내 태도가, 그리고
내가 지향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뭇 더 진지해져
야 한다.
그 아이들의 소중한 유년의 시간 얼만큼을 나는 더
불어 나눠 쓰고 있는 것이다. 싫든 좋든 그 애들에게
있어 나는 어떤 '추억'으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고, 그
것이 곧 알게 모르게 그 애들에게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 앞에서 나는 섬뜩함을 느낀다.
얼마 전, 한 팀 어머니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수업
을 맡으면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일 일이 없는데, 그 팀
은 좀, 힘들었다. 여자 아이들만으로 구성된 6학년 팀
이란 게 그 팀을 맡기 전부터 조심스러워 했던 조건이
었는다. 아니나다를까 힘에 부쳤다. 그래서 그만 두겠
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자리였는데,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들은 논술의 중요성을 운운하며 마치 나의 의
중을 다 읽기나 한 듯 먼저들 설레발을 떨었고, 그런
어머니들 앞에서 못 하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
다. 고작 넉 달을 못 버티고 그만 두겠다는 것이 부끄
러웠던 것이 아니라, 다시 또 누군가를 찾아 논술을
가르칠 게 뻔한 오늘의 웃지 못 할 상황이 나의 입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글쓰기는 곧 생활이다. 생활 속에서의 거울이 되어
주는 것이 곧 글쓰기여야 한다."는 것이 요즘 내가 가
르치는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다시 말해 나를 향해 재차 다짐하는 소리이기
도 하다.
아내와 가끔 말다툼을 하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
도 아이의 교육 문제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
며 일방적으로 학원을 선택하고 끊고 하는 것에 대해
나는 늘 불만이다. 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둬라, 뭘 하
든 지가 좋아서 하는 것이어야지 왜 자꾸 참견하고 간
섭하느냐 하는 것이 나의 주장인데, 아내는 그런 내가
못마땅한가 보다.
그렇다고 아내 말마따나 남들 다 하는 데 나 몰라라
하고 그냥 아이를 '방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말
에 딱히 할 말은 없다. 우리 애도 그와 같지만, 학교
마치고 바로 서너 군데 학원 돌고 오면 저녁 9시가 다
되어 씻고 어쩌고 하다보면 애들은 녹초가 된다. 그러
니 여건만 되면 이민가겠다는 말이 어찌 빈말일까만….
어느 날, 아내와 두 아이를 앉혀 놓고 다음과 같은
다짐을 받았다.
첫째, 밤 8시가 넘어서는 공부하면 안 된다.(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아빠랑 놀아야지 공부한답시고 자기 방
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
둘째, 시험은 70점만 넘으면 된다.(만약 100점을 맞
아도 혼난다. 왜냐하면 100점을 맞기 위해 기를 쓰는
동안 친구하고 못 놀았고, 다른 걸 못 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셋째, 학원은 아이가 다니다 다니기 싫다면 언제든
끊는다.(단, 다시는 그 거 안 한다는 조건이다. 가령,
애가 피아노를 다니다가 정 싫다고 하면, 다시는 피아
노는 없다. 나중에 자기가 커서 자기 힘으로 배우겠다
면야 내 알 바 아니고. 학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죽
어도 학교 가는 게 싫다면, 죽느니 학교를 관둔다.)
아내도 아이들도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 실실거리고
웃으면서도 좋다고 한 사항이다.
그런데 참 재밌는 건, 일 학년인 아들녀석이 그렇게
다니기 싫어하던 바둑을 당장 끊을 거 같더니만, 다른
때보다 더 열심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 번 끊으면
땡이라며?" 하면서 너스레다. 참나.
오늘은 앞서 말한 그 문제의? 여자 아이들 팀 수업
이었다. 그래서 내 첫사랑 얘기를 해 주었다. 벌써 석
주째다. 지난 주엔 야외수업, 지지난 주엔 떡볶이파티.
고작 일 주일에 한 번 만나 수업하는 것을 석 주째 그
러고 있으니 내 꿍꿍이도 어지간 하다. 녀석들은 살판
났다. 다른 학원 다 끊고 글짓기만 했으면 좋겠단다.
얼씨구. 다음 주엔 영화를 보잖다. 뒤미처 있는 학원
시간도 조정을 할테니, 같이 '친구'를 보자고 야단들
이다. 좋다 그랬다. 까짓거. 단, 다음 주까지 독서록
한 편과 '가정의 달 5월'이라는 주제의 글 한 편을 인
터넷에 있는 우리 글방(하현글방, www.club.cbs.co.kr/
jbs108)에 올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러다 정말 내
가 짤릴 판이니까.
누구에게나 추억은 참 소중한 것이다. 어찌됐든, 한
땀 한 땀 우리가 해 입고 가는 것이 추억이라는 옷 아
니겠는가! 살다 보면, 누구를 만나 어떤 추억의 옷을
해 입게 되는지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소관이 아니다.
지금의 부모를 만나게 된 것도, 사랑하는 짝을 만나
아둥바둥 가슴앓이를 하며 죽네사네 하는 것도, 무수
한 익명의 사람들 속에서 어쩌구저쩌구 살게되는 것들
도,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어디 있던가.
어차피 그런 것이라면, 추억을 다스리며 살밖에.
이쯤 해서 이 글을 마무리 져야 하는데, 베시시 웃
음이 입가에 번진다. 글쎄, 나의 첫사랑을 듣다 두 녀
석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 맺히는 것이었다. 성서에 나
오는 야곱의 말을 빌어, "나는 험한 인생을 살았다"
는 말로 시작된 나의 첫사랑 앞에서 이야기가 조금은
슬펐었나 보다.
녀석들은 알까? 여전히 나는 나의 첫사랑을 다스리
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추억은 이처럼 잔인한 선물이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될까,하는 염려 따
위를 버리게 된 것도, 훗날 지금의 내 모습이 아이들
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하는 따위의 생각을 전
혀 안 하고 살게 된 것도, 어쩌면 추억에 대한 강한
신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추억은 남는다. 어떤 추억이든 더듬으며
살기 마련이다. 그러니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우리가 입어야 할 외투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다스릴 줄 알아야 오늘을 또 내일
의 추억으로 삼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스리지
못 한 들, 그 또한 그 나름의 추억이 되는 것이겠지.
난 그저 내 추억이나 소중히 다스리며 살련다.
내가 나눠 쓰고 있는 아이들의 추억이 있는 만큼 녀
석들에게도 나의 추억을 나누어 주는 셈이니까.
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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